『벤야민-아도르노와 함께 보는 영화』 | 문병호·남승석 지음 | 2024.1.24

카이로스
작성자
갈무리
작성일
2024-01-29 11:59
조회
375


벤야민-아도르노와 함께 보는 영화

국가 폭력의 관점에서
Contemplating East Asian Cinemas with Benjamin and Adorno

문병호·남승석 지음


영화는 종합예술작품으로서 세계와 인간이 처해 있는 현실에 대해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설득력이 큰 인식과 비판의 매개 가능성, 계몽능력을 가진 매체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 영화 해석의 주요 텍스트로 사용되어 온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은 물론이고 그의 『독일 비애극의 원천』, 「운명과 성격」에서, 그리고 아도르노의 미학·예술이론, 역사철학, 사회이론에서 주요한 영화미학적 개념들을 도출하여 새롭고 실험적인 영화해석을 시도한다.


간략한 소개

벤야민의 소망과는 달리 영화의 역사는 대중을 일깨우는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아도르노가 간파하였던 대로 대중 조작, 대중 기만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상업 영화와 오락 영화가 영화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소수의 영화가 갖는 예술적 능력이 무시될 수는 없다.

이 책은 지금까지 영화 해석의 주요 텍스트로 사용되어 온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은 물론이고 그의 『독일 비애극의 원천』, 「운명과 성격」에서, 그리고 아도르노의 미학·예술이론, 역사철학, 사회이론에서 주요한 영화미학적 개념들을 도출하여 새롭고 실험적인 영화해석을 시도한다. 쇼펜하우어는 “예술은 세계가 다시 한번 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세계는 벤야민이 『독일 비애극의 원천』에서 서술하듯이 세계를 만든 인간이 세계에 의해 고통 받는 세계다. 아도르노가 『미니마 모랄리아』에서 “슬픈 학문”이라는 말로 표현하듯 세계의 진행은 구원·화해와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세계사는 부자유한 노동을 강제당하면서 지배 권력에 의해 파편화된 삶을 살아가는 다수의 사람들의 피, 눈물, 고통, 죽음의 역사이다.

『벤야민-아도르노와 함께 보는 영화』가 분석하는 <공동경비구역 JSA>(2000, 한국), <택시운전사>(2017, 한국), <여름궁전>(2006, 중국),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 대만), <복수는 나의 것>(1979, 일본) 등 다섯 편의 영화는 영상매체로서의 영화가 갖는 장점이 최대한 발휘된 작품들이다. 여기에는 다수 사람들의 피, 눈물, 고통, 죽음이 충격적이며 추하고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영상들로 담겨 있다. 이 영상들은 슬프고 추한 세계를 증언한다. 하지만 이 증언에는 세계가 변혁되기를 바라는 소망들도 함께 들어 있다. 그것은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개인들의 삶이 폐기되지 않는 세계에 대한 소망, 국가권력에 의해 개인들의 삶이 파편화되거나 죽음에 이르게 되지 않는 세계에 대한 동경, 제국주의·군국주의와 같은 광기와 폭력의 총체적 체계가 세계에 더 이상 출현하지 않아야 한다는 소망이다.


상세한 소개

이 책은 <공동경비구역 JSA>(2000, 한국), <택시운전사>(2017, 한국), <여름궁전>(2006, 중국),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 대만), <복수는 나의 것>(1979, 일본) 등 다섯 개의 작품을 비평하고 해석한다. 다섯 편의 영화를 다룬 다섯 개의 각 장에는 영화감독이자 영화학자인 남승석의 글 한 편과 철학자 문병호의 글이 한 편씩 배치되어 있다.

각 장이 분석한 영화와 내용 소개

「책머리에」는 이 책의 집필 동기와 탄생 배경을 밝히며 각 장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담고 있다.

「서론 :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사상을 통해 영화를 해석하는 시도의 의미」(문병호)는 이 책에서 주로 참조한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예술철학을 개괄하며 그들의 사상을 영화 해석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실험적으로 보여준다.

1장은 2000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를 다룬다. 「1. 세대 전이적 트라우마와 정치적 알레고리의 공간적 형상화」(남승석)는 이 작품의 서사 구조, 영상 문법, 장르적 성격을 분석하고 이 작품을 ‘대항기억을 촉발하는 정치적 구성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2. 이데올로기 대립과 삶의 파편화, 화해에의 동경」(문병호)은 분단과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한 고통을 중심에 놓고 이 영화의 알레고리를 해석한다.

2장은 2017년 개봉한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를 다룬다. 「1. 거대한 역사적 변화의 흐름 속에 던져진 한 개인의 초상화」(남승석)는 이 영화의 ‘변형된 마트료시카’ 구조, 그리고 리본 매듭, 부처님 오신 날, 택시 같은 영화미학적 장치의 의미를 분석하며 결국 이 영화가 다중의 민주화 열망과 부채의식, 추모하는 마음을 그려낸다고 본다. 「2. 예외 상태에서 자행되는 극한적인 폭력에 대한 응시와 평화에의 희망」(문병호)은 이 영화를 “외부 관찰자의 시점으로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보면서 택시운전사의 ‘응시’가 갖는 알레고리의 성격, 슈미트·아감벤 등이 이론화하는 ‘예외 상태’가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방식, 그리고 이러한 폭압적인 역사가 어떻게 “삶이 살고 있지 않다”는 아도르노의 진술과 공명하는지에 관해 해설한다. 나아가 영화의 두 주인공(택시운전사와 외국인 기자)의 응시가 극한적인 폭력과 고통 속에서도 공동체의 평화로 나아가기를 희망하는 의지를 형상화하고 있음을 짚어낸다.

3장은 2000년 개봉한 로우예 감독의 중국 영화 <여름궁전>을 분석한다. 이 영화는 1989년 6월 4일 중국 북경에서 발생한 천안문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중국 공산당 정권에 의해 상영금지를 당했다. 영화학자 남승석은 「1. 국가적 트라우마와 감정의 영화적 지도 그리기」에서 이 영화가 젊은 주인공들의 이동과 ‘부유’하는 삶을 그림으로써 어떻게 당대 청년들의 불안을 성공적으로 포착했는지를 분석한다. 철학자 문병호는 「2. 세계가 인간에게 강요하는 고통과 개별 인간들의 운명, 영혼의 파편화」에서 천안문 사건을 ‘세계의 고통사’의 일부로 파악하며, 이 영화가 세계가 인간에게 강요하는 고통으로 인해서 개별 인간 영혼의 파편화가 일어나는 방식을 형상화하고 있다고 본다.

4장은 1991년 개봉한 에드워드 양 감독의 대만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분석한다. 3시간 57분의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이 영화는 대만의 근대화와 그로 인한 개인의 폭력성을 알레고리적으로 탐구한 작품이다. 영화는 1961년에 한 14살 소년이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과정을 그리면서, 대만 사회의 부조리한 사회 구조와 그로 인한 미시적 폭력들을 탐색한다. 남승석의 글 「1. 소년 살인사건을 소재로 하는 국가독재체제에 대한 비판적 형상화」는 ‘소년이 저지른 소녀에 대한 살인사건’이 어째서 대만 사회에 만연한 폭력성을 형상화하는 것일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문병호의 글 「2. 거대 폭력의 틀에 갇힌 절망적인 삶의 암호 표지」 역시 “300년 이상 지속된 식민 지배의 상처, 문화 정체성 혼란, 국민당 정권의 폭압 통치가 복합적으로 착종되어 있는” 대만 사회의 고통과 영화를 직접적으로 관련시킨다. 두 필자는 공통적으로 이 영화가 갖는 근본적인 수수께끼적 성격, 손전등 같은 소도구가 갖는 서사적, 역사철학적 의미 등을 살펴본다.

5장은 1979년에 개봉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일본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을 분석한다. 이 영화는 1960년대 초반 일본의 연쇄살인범 니시구치 아키라(작중 이름은 에노키즈 이와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일본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살인범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저자들에 따르면 이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나 범죄물이 아니다. 영화는 19세기 말부터 1945년까지 동아시아 전체, 더 나아가 태평양권을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이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형언하기 어려운 고통을 강요하였던 일본 제국주의·군국주의의 폭력을 주제로 삼고 있다. 남승석은 「1. 연쇄살인범과 운명의 수수께끼적 착종관계」에서 이 작품의 영화사적 위상, 줄거리, 비선형적 서사 구조, 장르적 스타일 등을 섬세하게 해설하면서 결국 영화의 수수께끼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문병호는 「2. ‘죄의 연관관계’로서의 일본 현대사에 대한 보복적 심판」에서 “총체적인 광기·폭력의 극단적인 형식으로서의 일본 제국주의·군국주의”가 영화 속에서 어떻게 드러났는지를 분석한다. 그러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모든 예술작품은 인간이 처해 있는 현실에 대한 인식과 비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영화의 가능성과 현실, 그리고 이 책의 집필 동기

이 책은 영화라는 문화상품이자 예술형태가 처한 현실에 대한 진단으로 시작한다. 저자들은 영화 그리고 영화계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저자들에 따르면 영화는 종합예술작품으로서 세계와 인간이 처해 있는 현실에 대해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설득력이 큰 인식과 비판의 매개 가능성, 계몽능력을 가진 매체이다. 그러나 오늘날 영화를 포획하고 있는 현실은 영화의 이러한 순기능을 극단적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저자들은 본다. 영화는 자본권력이 저지르는 갖은 종류의 폭력에 부역하는 매체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비극적 현실에서, 순수 예술작품으로 성공한 영화들이 갖는 의미는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특히 아도르노와 벤야민의 사상을 오랜 시간 연구해온 철학자 문병호는 처음 남승석의 공동집필 제안을 받았을 때 20세기에 탄생한 전적으로 새로운 예술 형식인 영화가 할리우드가 상징하는 것처럼 종종 거대 자본이 투입되고 경제적 이윤만을 추구하는 영화산업의 희생물이 됨으로써 문화산업이 창궐하는 데 광범위하고도 구조적으로 연루되어 온 역사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문병호 공동저자는 남승석 공동저자가 해석의 대상으로 제안한 여러 편의 영화를 보고 난 후 순수예술로서의 영화가 가진 세계 인식 능력과 세계 변혁의 잠재력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영화가 갖춘 순수예술로서의 계몽 능력과 교육 기능을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사상을 빌려 강조할 필요성을 느껴 이 책의 공동집필에 참여하게 되었다.

수수께끼적인 세계와 알레고리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독일 비애극의 원천』에서 독일 바로크 비애극에는 30년 전쟁이 인간에게 강요한 고통이 퇴적되어 있음을 통찰하였다. 30년 전쟁은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지속된 참혹한 전쟁이었다. 벤야민은 독일 바로크 비애극과 ‘세계가 인간에게 강요한 고통’이 서로 등치 관계에 놓여 있음을 인식했다. 그리고 독일 바로크 비애극의 본질을 관통하는 표현 형식이 알레고리임을 통찰하였다. 문병호 공동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알레고리는 세계의 고통사, 곧 세계가 인간에게 강요한 고통의 역사를 예술작품에 그림과 같은 언어로서, 다시 말해 형상 언어로서 형상화해 놓은, 예술작품에 특유한 언어”라고 말한다. 알레고리는 형상 언어로서의 언어이며, 수수께끼적 형상으로 세계의 고통사에 대해 말해 주는 언어이다.

다시 말해서, 이 책에서 분석한 영화들이 그러하듯이, 알레고리는 세계가 진행된 역사와 등치 관계를 형성하면서 이 역사를 근원적으로 퇴적시켜 놓은 것이다. 알레고리는 세계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게 하고, 수수께끼와 같은 세계를 해명할 수 있게 하며, 세계의 진행에 들어 있는 부정성을 비판할 수 있게 한다. 나아가 알레고리는 세계의 부정성은 변혁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개념적이고 논리적인 설득력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인간의 의식에 매개할 수 있는 계몽 능력을 가진다.

고통스러운 세계, 영화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벤야민이 역사를 “세계의 고통사”(『독일 비애극의 원천』)로 본다는 통찰은 이 책에서 중요하게 언급된다. 이 책이 분석한 다섯 편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 한국), <택시운전사>(2017, 한국), <여름궁전>(2006, 중국),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 대만), <복수는 나의 것>(1979, 일본)은 모두 동아시아의 작품으로 식민지, 전쟁, 분단, 독재, 폭력, 억압으로 얼룩진 이 지역의 역사를 깊이 있게 성찰하는 작품들이다. 이 책은 순수예술작품으로서의 영화의 힘과 가능성에 대해 말한다. 고통스러운 세계에서 영화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자들은 이 책에서 분석한 작품들이 알레고리 수준에 도달한 작품들이라고 본다. 수수께끼적 형상화에 성공한 영화들은 세계가 인간에게 강요한 고통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을 제기한다. 저자들이 보기에 이 물음은 관객들에게 세계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세계 변혁의 당위성 제고에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다. 만약 이와 같은 영화들이 더 많이 생산된다면, 영화는 인류가 현재 처해 있는 갖은 종류의 부정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정신적 연대 결성 및 실천적 행동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버마스가 벤야민의 사유를 “의식을 형성하는 비판, 구원하는 비판”이라고 해석하듯이, 순수 예술작품으로서의 영화는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는 인류에게 비판을 통한 부정적 현실의 극복에 기여하는 순기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저자들은 본다.


지은이

문병호 Byeong-Ho Mun, 1954~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아도르노 철학에 대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대학원과 고려대, 성균관대, 서울여대에서 강의하였으며 광주여자대학교 교수와 연세대학교 인문한국(HK) 교수로 일했다. 현재는 대안연구공동체 교수로 활동하면서 아도르노 저작의 번역에 참여하고 있으며, 사회비판과 관련된 연구 및 저서 집필을 병행하고 있다. 저서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읽기』, 『서정시와 문명비판』, 『비판과 화해』, 『문화산업시대의 문화예술교육』, 『왜 우리에게 불의와 불행은 반복되는가?』 등이 있고 주요 역서로 아도르노의 『신음악의 철학』공역 , 『미학 강의 I』, 『사회학 강의』 등이 있다. 공동저서 『정보혁명』, 역서 『사회학 논문집 I』, 『베토벤. 음악의 철학』(공역)이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남승석 Seung Suk Nam, 1971~

연세대 학술연구교수이자 영화감독.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 컴퓨터공학과에서 인공지능과 음성인식을 전공했다. 시카고예술학교와 파리 국립고등예술학교에서 조형물, 사진과 영화를 공부했다. 서강대 영상대학원에서 전쟁과 공간, 미디어와 문화연구, 작가주의와 다큐멘터리를 연구했고, 하버드대 예술 및 과학 대학원에서 풍경, 지도, 도시에 관련된 학제적 연구를 했다. 가천대, 연세대, 한예종, 서울예대, 건국대 등에서 강의했다. 영화감독으로서 <니나>, <키키+고도>, <지혜> 등의 장편영화를 완성했고 다큐멘터리 <하동채복 : 두 사람의 노래>, <무순, 세상을 가로질러>, <시몬 김성수 : 우리는 최고다>를 연출했다. 대표 저서로 『에롤 모리스의 다큐멘터리』, 『동아시아 영화도시를 걷는 여성들』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알레고리는 세계의 고통사, 곧 세계가 인간에게 강요한 고통의 역사를 예술작품에 그림과 같은 언어로서, 다시 말해 형상 언어로서 형상화해 놓은 ― 예술작품에 특유한 ― 언어이다. 알레고리는 형상 언어로서의 언어이며, 수수께끼적인 성격을 가진 형상을 통해 세계의 고통사에 대해 말해 주는 언어이다. ― 서론, 30쪽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발생한 남북한 군인들의 비극적인 총격 사건을 주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공동경비구역이라는 실제 공간을 세트로 재현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한반도의 남북 군사 갈등의 모순과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공동경비구역의 정치적 알레고리가 영화적 공간으로 재창조된다. ― 1장 <공동경비구역 JSA>, 1. 세대 전이적 트라우마와 정치적 알레고리의 공간적 형상화, 77쪽

<택시운전사>에서 형상화된 두 주인공의 응시는 응시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응시는 벤야민이 말하는 알레고리에서도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알레고리적 성격을 갖는 응시는 세계에 대한 인식과 비판, 더 나아가 세계를 구원하려는 의지를 포함한다. ... <택시운전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발생한 참극에 대한 인식과 비판을 넘어서서 이러한 참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를 형성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 2장 <택시운전사>, 2. 예외 상태에서 자행되는 극한적인 폭력에 대한 응시와 평화에의 희망, 151쪽

유홍의 정신적 혼란은 6·4 천안문 사태로 극에 달한다. 영화의 중반부에 천안문과 관련된 주요한 시퀀스는 유홍이 ‘북청대학 학생들이 천안문 광장으로 몰려갔다’고 일기장을 읽는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천안문을 향하는 트럭들 위로 친구들이 올라탄다. ― 3장 <여름궁전>, 1. 국가적 트라우마와 감정의 영화적 지도 그리기, 169쪽

소년들이 거대 폭력에 저항하기는커녕 거대 폭력이 구축해 놓은 틀에 갇힌 채 갱단을 조직하여 상호 간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그들이 입은 손상을 거대 폭력에게 배상해 줄 것을 요구하는 대신에 그들이 입은 손상을 그들 스스로 배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거대 폭력과 소년들 사이에서 소년들의 주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소년들은 자신의 주체를 스스로 포기한 채 자신들 상호 간의 싸움에 빠져든다. 소년들의 싸움을 보면서 환호성을 올리는 것은 거대 폭력이다. ― 4장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2. 거대 폭력의 틀에 갇힌 절망적인 삶의 암호 표지, 249쪽

이 영화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경찰의 조사에서 드러나는 개인의 살인과 폭력, 그리고 국가의 개인에 대한 폭력과 그로 인한 전이적 트라우마를 세세히 다루고 있다. 하지만 결말은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작가주의 예술영화 스타일로 마무리된다. 이 영화는 도시와 시골의 문제를 아우르는, 근대화와 관련된 개인 욕망의 문제를 총망라하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보고서이면서 예술작품이다. ― 5장 <복수는 나의 것>, 1. 연쇄살인범과 운명의 수수께끼적 착종관계, 259쪽

일본 제국주의·군국주의가 일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절대다수의 무력한 개별 인간들에게 강요한 운명은 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본의 패배와 함께 막을 내리지 않았다. 예컨대 그것이 조선에 강요하였던 운명은 1945년 8월 15일에 끝나지 않았고 오늘날에도 한국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 5장 <복수는 나의 것>, 2. ‘죄의 연관관계’로서의 일본 현대사에 대한 보복적 심판 301~302쪽


목차

책머리에 6

서론 :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사상을 통해 영화를 해석하는 시도의 의미 / 문병호 19

1장 <공동경비구역 JSA>(2000) 54
1. 세대 전이적 트라우마와 정치적 알레고리의 공간적 형상화 / 남승석 56
2. 이데올로기 대립과 삶의 파편화, 화해에의 동경 / 문병호 79

2장 <택시운전사>(2017) 100
1. 거대한 역사적 변화의 흐름 속에 던져진 한 개인의 초상화 / 남승석 102
2. 예외 상태에서 자행되는 극한적인 폭력에 대한 응시와 평화에의 희망 / 문병호 129

3장 <여름궁전>(2006) 154
1. 국가적 트라우마와 감정의 영화적 지도 그리기 / 남승석 156
2. 세계가 인간에게 강요하는 고통과 개별 인간들의 운명, 영혼의 파편화 / 문병호 179

4장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 198
1. 소년 살인사건을 소재로 하는 국가독재체제에 대한 비판적 형상화 / 남승석 200
2. 거대 폭력의 틀에 갇힌 절망적인 삶의 암호 표지 / 문병호 226

5장 <복수는 나의 것>(1979) 254
1. 연쇄살인범과 운명의 수수께끼적 착종관계 / 남승석 256
2. ‘죄의 연관관계’로서의 일본 현대사에 대한 보복적 심판 / 문병호 298

참고문헌 333
인명 찾아보기 336
용어 찾아보기 339


책 정보

2024.1.24 출간 l 130×188mm, 무선제본 l 카이로스총서100, Cupiditas
정가 22,000원 | 쪽수 344쪽 | ISBN 9788961953375 93680
도서분류 1. 영화철학 2. 영화비평 3.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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