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켈레비치 <죽음> 출간을 위한 북펀딩을 받습니다

작성자
younyoun
작성일
2023-06-06 20:41
조회
188

안녕하세요.


장켈레비치의 <죽음> 출간을 준비중인 호두 출판사입니다.
호두의 첫 책으로 오랜 시간 준비해 이제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읽는 경험으로밖에는 알 수 없을 것 같은, 이 기이하고 놀라운 책의 출간을 위해 알라딘에서 북펀딩을 하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새로운 철학적 접근과 아직은 낯설지만 경이로운 철학자 장켈레비치를 만나고 싶은 분들의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이 책을 읽으며 수많은 미로에 빠져 길을 잃고 헤메일 수도 있지만, 아름답고 감동적인 삶과 죽음에 대한 문장들은 읽는 이를 자극하고 뒤흔들게 될 것입니다. 이해가 아닌 실감, 지식이 아닌 놀람을 천천히 함께할 분들을 기다립니다.


장켈레비치 <죽음: 이토록 가깝고, 이토록 먼>

*철학자들의 철학자, 장켈레비치가 들려주는 '죽음'에 관한 눈부신 교향곡
*철학사에서 유례없는 죽음에 관한 독창적인 성찰!
*인간의 지혜와 말이 닿을 수 있는 가장 멀리까지 죽음을 사유하다.


▶“충격적인 책!”(레비나스)

▶죽음과 죽음에 관한 생각은 다르다. 나는 이 책만큼 이를 증거한 사유를 알지 못한다. 모든 앎이 여기에 있다. 어떤 지식도 이 책을 통과하지 않고는 성립할 수 없으리라. 당대 한국사회에서 이 책 『죽음』의 탄생, 출간은 위로요, 축복이다. 모두가 작가인 시대에, 이 책과 함께 독자로 살고 싶다.
ㅡ정희진(‘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시인의 목소리를 가진 철학자 장켈레비치. 드디어 그의 책을 누군가의 짧은 인용이 아니라 온전한 전체로 만나게 되었다. 내가 마주친 모든 이가 “신비롭고 가여운 작은 존재였지”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죽음에 관한 정말 아름다운 책. 그의 책을 읽고 있으면 시를 쓰고 싶어진다.
ㅡ진은영(시인)

▶무엇보다 이 책을 넘치게 채우고 있는 것은 생의 찬란함이다. 장켈레비치의 이야기는 신비롭고 불가해한 죽음의 수수께끼에서 출발하지만, 삶의 절대적 가치에서 끝을 맺는다. 그는… 오히려 삶이 진짜 신비임을 드러내어 보여주고 싶어 한다.
ㅡ‘옮긴이의 말’ 중에서


#알라딘 북펀딩 마감 2023-06-08-목, 출간예정 2023-06-30

#알라딘 북펀딩 페이지
https://www.aladin.co.kr/m/bookfund/view.aspx?pid=1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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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지혜와 말이 닿을 수 있는 죽음, 가장 가까이에서!
*철학자들의 철학자, 장켈레비치가 들려주는
*'죽음'에 관한 눈부신 교향곡


<죽음 : 이토록 가깝고 이토록 먼>

죽음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까? 장켈레비치는 죽음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하기 위해 자신을 던진다. 추상화된 익명의 죽음이 아닌, “내 문제”로 ‘죽음’을 실감하려는 그의 작업은 그 급진성과 뜨거움, 반어와 역설의 자유로움으로 “충격적”이라 할만하다. 철학과 문학, 회화와 음악의 언어로 풍요로운 이 책은, “존재했다, 살았다, 사랑했다”는 단 한 번의 신비에 우리를 눈뜨게 한다.


▶예컨대 우리가 때의 불확실성 덕분에 얻게 된 것, 그것은 가짜 평안입니다. 무지나 오해, 깊게 들어가지 않으려는 결심에서 비롯된 거짓된 평온이 있는 거니까요. 그러나 어른이 늘 이 유치한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눈이 가려지는 것을 거부합니다. 절반의 진실을 선고받은 그는, 진리 전부를 감내할 만큼 자신이 충분히 강하다고 믿는 것이죠. 완전한 진실을 알면 사형수의 절망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하여 살아있는 자는 삶을 견디기 위해, 피상적이고 막연한 상태로 있으면서 운명의 표면에만 머무르고 사물의 깊이로 들어가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죽음의 진리를 바닥까지 생각하고 그 위험을 실감하면 더 이상 살 수가 없을 테니까요. 낙관주의는 유익한 무신경이며, 그 덕분에 근심하는 자가 자신의 걱정거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일을 면하게 됩니다. 죽음은 무한정 다음번으로 미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항상 타인들의 문제라는 것이죠.

▶사랑은 사실 무엇보다 하나의 대답이고, 시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재시작이니까요. 사랑은 아무것도 결코 끝나지 않으며, 반대로 모든 것이 새봄처럼 다시 시작하고, 새로운 출발과 새로운 여름, 그리고 제2의 탄생을 위해 도약한다는 것을 표명합니다.

▶특별한 모험이나 비범한 사건, 혹은 색다른 만남에 놀라기 위해 철학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평범한 나날의 실존과 무릇 ‘맨존재’의 사실성과 외부 세계의 실재성에서 놀라움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철학자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기‘보다 오히려’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의 낯섦을 느끼기 위해서는 철학자가 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예술가는 다른 사람들처럼 현재가 과거가 되어 사후의 매력을 회고적으로 느낄 수 있기를 기다리지 않고, 평범한 일상의 색다른 독창성을 당장 그 자리에서 드러냅니다. 철학 또한 인생의 낯섦을 깨닫게 하는데, 그것도 어느 날 죽음이 어쨌든 이 낯섦을 드러낼 테지만 사후에 너무 늦게야 드러내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 그렇게 합니다.

▶얼빠진 자가 보통 아주 뒤늦게 마지막에 가서 위험에 들볶이고 재촉을 받아 미칠 듯한 공황 속에서 비로소 발견하는 것을, 지혜는 완전히 평온한 상태에서 이해합니다. 철학자의 놀라움은 그러니까 상식의 놀라움처럼 뒤늦은 놀라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착오도 없고 때를 잘못 맞추지도 않은 적시의 자각입니다. 그 놀라움은 아쉬움의 우울을 우리에게서 면해줍니다.

▶죽음에게, 밤의 어둠에게 ‘아니’라고 말하는 미친 희망 속에서 삶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시도하고 감행하고 탐험하고 과감히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