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호] 장편소설 『산촌』을 읽고 / 표광소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6 10:16
조회
3641
장편소설 『산촌』을 읽고
『산촌』 서평

표광소(시인)


* 이 글은 2015년 7월 11일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진행된 『산촌』 출간기념 집단서평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소설 『산촌』의 시간적 배경은 1927년이고 공간적 배경은 중국이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봉건주의 정체(청국)를 붕괴시킨 혁명의 지도자 손문이 사망(1925년)하고 손문에 이어 장개석이 국민당을 이끌면서 북벌을 개시하던 1927년 중국의 이야기이다. 북쪽의 군벌과 국민당이 전쟁을 하는 시기에 중국의 어느 산촌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등장인물이다.

이미 실패한 현실 사회주의를 건설하던 시기를 소설로 형상화시킨 작품을 (1991년 8월 이후의 독자들이) 신뢰할 수 있을까? 소설 『산촌』을 처음 만났을 때 첫 소감이었다.

이런 의문을 품고 소설 『산촌』을 읽다가 초반에서 玉에 티를 발견했다. 소설 『산촌』에 표현된, 가뭄 때 지주에게 논을 빼앗긴 농부가 (가뭄이 끝나고) 사망에 이르는 과정은 개연성이 떨어진다.(34~35쪽) 이미 남에게 빼앗긴 논에 농사를 지으러 갔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렵다. IMF 때 건물을 헐값이 팔아넘긴 사람들이 많다. 현금을 보유한 사람들이 헐값으로 건물을 많이 사들일 수 있었다. IMF가 끝난 뒤 자기 집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건물을 사용하겠다고 나설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게다가 죽은 농부의 딸이 3살밖에 안 되는데, 그 집 가장(농부)의 나이가 “많다”고 서술한 소설 『산촌』의 기표 또한 독자를 설득하기 어려워 보인다. 등장인물 ‘알란’이 3살이면 그 부모는 20~30살의 부모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등장인물 ‘국화 아줌마’가 21살에 결혼(58쪽)했다.

소설은 text에서 작가와 독자는 싸움을 한다. 소설 text에서 위와 같은 설정은 독자가 작가를 신뢰하기 어렵게 만든다. 작가를 신뢰하지 못하면 독자는 작가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에 몰입하기 어렵다. 소설에서 개연성은 그만큼 중요하다.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환멸과 소설가의 표절과 출판사들의 상업주의에 대한 환멸 때문에 소설 『산촌』에 접근하기 어렵던 참에 옥에 티까지 발견되었다. 이쯤 되면 소설 『산촌』을 덮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촌』은 왜 재미있는가?

무엇보다도 기승전결 등 소설의 전개가 자연스럽다. 첫 문장에 나오는 ‘노래’라는 낱말을 좇아가다가 보면 농부들 노동요와 뱃사람들 노동요, 그리고 배 일꾼들 노동요가 들려오고 강가에서 소치는 아이와 뱃사람들의 대화에 흥미를 가지게 한다. 소치는 아이가 사는 마을로 시선이 옮아가면서 지주가 치부하는 과정을 인지하게 한다.

기근(대기근의 해)의 고충을 입었던 농민들에게 쌀을 내주고 그들의 토지를 받아 갔다. 몇 주일도 안 되어 추민은 이 지방의 거의 모든 논을 소유하게 되었다. (34쪽 3행)

땅을 빼앗긴 농민들은 說書人 라우리우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유일한 즐거움인 듯하다.

바로 그 마을에 전쟁과 혁명의 역사가 태풍처럼 다가오고, 농민들은 살길을 찾아 나선다. 그 모습은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공포,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우익의 권력지배를 견디며 살아가는 2015년 대한민국의 나와 전혀 상관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說書人 라우리우의 상심과 변신은 나에게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런 여러 가지 장점이 소설 『산촌』을 끝까지 읽게 만든다. 몇 가지 장점을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스토리에서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신뢰가 생기면서 소설에 몰입시킨다. 즉 이 소설의 미덕은 현실을 진솔하게 형상화한 것이다. 산촌 풍경과 산촌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내가 경험한 삶과 닮아 있다. 그래서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기고 계속 읽게 한다.

둘째, 연애 이야기가 미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혁명을 수행하는 이야기(우리의 이야기=역사)보다 연애 이야기(=문학)가 재미있었다. 특히 민툰(마을에서 완전히 잊혀진 옛 사람. 66쪽)을 사랑하는 국화 아줌마가 있고, 그런 국화 아줌마를 짝사랑하는 說書人 라우리우. 그리고 형(지식인)의 마음을 얻지 못한 알란과 알란에게 구애하는 說書人 라우리우. 說書人 라우리우가 혁명 과정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깨닫고 한 사람의 사나이로 변화하는 모습도 흥미롭다. 특히 연애의 삼각관계를 섬세하게 형상화했다.

삼각관계 1. 민툰(마을에서 완전히 잊혀진 옛 사람. 66쪽) ← 국화 아줌마 ← 說書人 라우리우
민툰 : 고리대금업자한테 땅을 모두 빼앗긴 뒤 마을에서 몰래 떠나(67쪽)면서 고리대금업자와 지주보다 훌륭하고 유명 인사가 되어 꼭 돌아오리라고 ‘국화 아줌마’(아내)에게 편지 남겨(68쪽). 사회주의 혁명 지도자가 되어 애인과 함께 귀향.
국화 아줌마 : “용기 있는 사람”(=민툰)을 사랑한다. 베틀로 실을 짜며 생계유지. 기계 등장하여 실 값 폭락. 지주 추민의 첩을 돌보는 일로 연명. 민툰을 기다리던 국화 아줌마는 실망하여 마을에서 떠나 스님이 됨.

說書人 라우리우 : 이론가>행동파. 국화 아줌마를 사랑하지만 마음뿐. 국화 아줌마가 지주네 집 보모로 들어가자 실의에 빠진다. “공허한 꿈 때문에 내 청춘을 다 보냈구나.”라고(215쪽). 지주에 대한 적개심으로 “토지제도와 지주를 파멸시키고” 싶어한다(216쪽). 혁명군 만나면서 각성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혁명에 참여. 그리고 혁명가 민툰이 “봉건 사상이 (국화 아줌마에게) 얼마나 (안 좋은) 영향을 끼쳤는지 (깨닫고) 새 사상을 가르쳐 주시오.”라는 주문 앞에 선다.

삼각관계 2. 농부 마우마우 → 암까마귀 ← 무당(늙은 총각) 벤친
농부 마우마우 : 암까마귀와 결혼. 우익 세력을 돕다가 사회주의 혁명군에 붙들려 투신자살. (367쪽)

삼각관계 3. 형(지식인) ← 알란 ← 說書人 라우리우
형 : 마을 떠나 대도시 노동자로 근무. 노동야학에서 계급에 눈뜬다. 알란을 사랑하지 않고, 가치관이 다르다고 가족에게 표명(120쪽). 약혼을 사실상 깨뜨린다. 알란은 說書人 라우리우의 구애(385~388쪽)를 받아들인다.

셋째, 혁명가를 미화시키지 않았다. 혁명가들이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이웃 같다. 고리대금업자에게 재산을 빼앗기고 고향에서 떠나 혁명의 지도자가 되어 돌아온 민툰의 모습을 우상화시키지 않고 현실 그대로 형상화했다. 그런 민툰에게 실망한 국화 아줌마는 속세를 떠난다.

넷째. 청나라를 신해혁명으로 무너뜨리고 중화인민공화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눈앞에서 보는 것 같이 묘사했다. 등장인물들의 변신 또한 이 소설을 놓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매력이다.

‧ 농부 마우마우 변신 : 아내를 먹여 살리느라 지주의 앞잡이로 변신.
‧ 무당(늙은 총각) 벤친의 변신 : 혁명군 진입 뒤 농부로 변신.
‧ 說書人 라우리우 변신 : 혁명군 진입 뒤 혁명군 홍보하는 선전선동가로 변신. 이론가에서 행동가로 변신.
‧ 뻬이후 삼촌의 변신 : 시골 학교 교사. 우익 군대 패잔병 환송 잔치 책임자 - 실패. 혁명군의 서기로 변신.

그런가하면, 중국의 연애 풍속도 엿볼 수 있다.
중국에 이혼이 급증할 때가 세 번 있었다.

1. 중국에 사회주의 국가가 세워진 직후 : 사회주의 혁명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배우자와 헤어져서 새로운 배우자와 결혼하였다. 시골 아내를 버리고 도시 여자를 선택했다.
2. 문화 혁명 당시 : 문화혁명의 대상이 되는 사람과 헤어지는 사례가 많았다. 연좌를 피하려고.
3. 등소평의 개방 직후 : 개혁 개방을 하면서 자유연애에 대해 선호하는 풍조가 생겼다.

소설 『산촌』의 연애 풍속도는 개화기 조선의 모습과 닮아 있다. (현진건의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 등장하는 남편과 부인, 17살에 집안의 강요로 결혼하는 시인 이육사의 결혼 등.) 자유연애가 서구 문물과 함께 이식되던 무렵의 현실을 간접 경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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