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 2023.05.10]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 오온

서평
작성자
갈무리
작성일
2023-06-02 20:40
조회
132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 2023.05.10]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 오온


기사 원문 보기 : https://fwdfeminist.com/2023/05/10/review-10/


‘마녀사냥’은 주로 특정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행위를 가리키는 은유로 쓰인다. 어떠한 행위를 마녀사냥이라고 명명하는 순간, 악랄한 고발자와 무고한 피고발자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선명해진다. 이에 담긴 도덕적 함의는 강력해서, 누군가는 ‘마녀사냥’이라는 언어를 자신의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기 위한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기도 한다(기사 보기). 그러나 ‘마녀사냥’의 대중적인 쓰임에서 종종 간과되곤 하는 점은, 마녀사냥이 구체적인 역사적 국면을 표지하는 사건이자 철저하게 젠더화된 현상이라는 사실이다. 실비아 페데리치의 저서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원제 Witches, Witch-hunting, and Women, 갈무리 2023)는 이와 같은 마녀사냥의 젠더화된 구조를 상기시키는 저작이다.

실비아 페데리치는 1970년대 이탈리아에서 조직된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지불 운동’과 근대 초기 유럽의 마녀사냥을 가부장적 자본주의 확산의 메커니즘으로 분석한 『캘리번의 마녀』(갈무리 2011)로 널리 알려진 이탈리아의 페미니스트 연구활동가이다.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는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1부가 근대 초 유럽에서 일어난 마녀사냥의 정치경제적 발생 원인을 탐구한다면, 2부는 1990년대 이후 남반구 국가들에서 급증한 마녀사냥과 그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저항을 다룬다. 이와 같은 구성을 통해 페데리치는 『캘리번의 마녀』에서 펼친 핵심 주장을 재방문하고, 그와 같은 분석을 현대의 사례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살핀다. 요컨대 이 책은 『캘리번의 마녀』의 “대중적인 소책자”(15)이자, 마녀사냥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사유”(22)하고자 하는 기획이다.

먼저 1부에서 페데리치는 마녀사냥의 발생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한다. 첫 번째는 인클로저 운동을 동반한 농업 자본주의의 부상이다. “토지가 상업화되고 화폐로 매개되는 관계가 부상하면서”(42) 중세 유럽 농촌의 공동체주의 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변화에 가장 취약한 집단은 생계를 공유지와 관습권에 의존하던 나이 든 여성들이었다. 다만 페데리치는 이들이 마녀로 기소당한 이유가 오직 가난 때문은 아니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들은 무엇보다 “빈곤과 사회적 배제에 저항”(48)했기 때문에 마녀로 기소당했다. 이들을 기소함으로써 당국은 “사유재산에 대한 공격, 사회적 불복종과 반항, 마법의 보급 전파”(50)를 동시에 처벌하고자 했다. 이렇게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대규모의 마녀사냥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에 용인되거나 정상으로 여겨졌던 행위 형태들을 끔찍하고 무서운 것으로 바라보게”(50) 만듦으로써 자본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조건지었다.

마녀사냥의 두 번째 메커니즘은 여성 신체와 재생산에 대한 규제다. 마녀에 대한 공격은 “성행위와 출산을 국가의 지배하에 두는 성 규범으로부터의 일탈을 처벌하는 것”(50)이기도 했다. 자본주의는 노동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사회 규율을 도입해야 했는데, 이때 관건은 인간 신체를 자연적인 것이 아닌 기계적인 것으로 바라보게끔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재생산과 특수한 관계를 맺고 있는 여성들의 사회적 권능을 빼앗을 필요가 있었다. 즉, “자연 세계의 ‘합리화’는 더 엄격한 노동 규율과 과학 혁명의 전제 조건이었고, 이는 ‘마녀’의 말살을 통해서 일어났다.”(63) 그렇게 통제된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결혼 제도에 폭력적으로 편입됨으로써 “노동력 재생산과 노동자 위무에 복무”(66)하는 기능에 국한되게 되었다. 게다가 마녀사냥은 주로 나이 든 여성들이 기억하고 있었던 공동체의 집합적 지식—“어떤 약속이 있었는지, 어떤 믿음이 배신당했는지, (특히 땅과 관련해서) 재산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관습적 합의사항이 무엇인지, 그리고 누가 그것을 위반했는지 등”(71)—의 파괴를 초래하기도 했다. 따라서 페데리치는 인클로저를 “단순히 토지에 말뚝을 박고 사람들을 쫓아낸 것”(52)이 아니라 “지식과 앎, 우리의 신체, 우리가 타인 및 자연과 맺는 관계의 인클로저”(53)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이 책을 관통하는 관점은 “새로운 방식의 여성에 대한 폭력이 나타날 때 그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언제나 자본주의 발전과 국가 권력을 구성하는 구조적 경향에 있다”(92)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시각이다. 이는 2부에서 페데리치가 근대 초 유럽(주로 잉글랜드)의 마녀사냥 사례들에서 도출한 위와 같은 분석틀을 현대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 발생한 마녀사냥 사례들에 적용하는 이론적 바탕이기도 하다. 페데리치는 1990년대 이후로 주로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동남아시아 등의 지역에서 극심해진 여성에 대한 폭력을 ‘신 인클로저’라고 명명하고, 그 원인을 20세기 후반 본격화된 ‘지구화’에서 찾는다. 세계경제체제가 남반구 국가들에 대한 신식민지화를 꾀하면서, 이들을 분할하여 통치하기(divide and rule)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 지구적인 규제 완화로 인한 사회경제적 안전망의 해체는 여성들에 대한 남성들의, 노인들에 대한 젊은이들의 불신을 부추겼으며, 잔인한 폭력이 발생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했다.

무엇보다 페데리치는 1990년대 가나, 케냐, 잠비아 등지에서 일어난 마녀사냥의 배경이 되는 ‘반마술운동’이 “화폐경제가 도입된 식민지기에 들어와서야”(124) 시작되었으며, “과거의 유산이기보다는 아프리카 정치경제의 신자유주의적 재구조화가 낳은 사회적 위기에 대한 반응”(127)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와 같은 분석은 북반구의 페미니스트들이 “아프리카 사람들은 후진적이라는 식민주의적 이미지”(151)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아프리카의 마녀사냥 이슈에 개입하기를 주저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반문과, 유엔이 표방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마녀사냥이 ‘전근대적’인 현상이자 지나간 과거의 사건에 불과하다는 인식은 서구 중심의 발전주의적 시간관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따라서 페데리치는 책의 말미에서 페미니스트들이 “마녀사냥이 양산되는 사회적 조건을 분석”(153)하고 이를 국제적인 현안으로 부상시켜 그에 대항하는 운동을 조직할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현대에도 여전히 현존하는 마녀사냥에 대한 전 세계 페미니스트들의 연대와 행동을 촉구하는 선언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테다.

페데리치가 거듭 강조하듯, 마녀사냥은 우리가 마주한 현안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확장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은 여성살해(femicide)와 같은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임신중지 접근권 부정, 강제 불임화, 소액신용대출(microcredit)과 같은 사회경제적 폭력까지도 아우른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가해자 개개인에 대한 처벌에 그치지 않고 사회경제적 차원의 변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법적 처벌 강화 요구는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정부 당국에 더 많은 권력을 실어줄 뿐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110)는 페데리치의 지적은 어느새 흉악범에 대한 신상공개가 일상화된 한국의 상황에 비판적인 빛을 비추어 준다.

다만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에서 아쉬운 점을 하나 꼽자면, 대중서로 기획된 탓에 마녀사냥에 대한 계보학적 분석이나 논증이 다소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아쉬움은 페데리치의 전작인 『캘리번의 마녀』를 함께 읽을 때 어느 정도 해소되긴 하나, 두 저서 모두에서 마녀 고발의 원인에 대한 분석이 주로 잉글랜드의 사례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은 페데리치의 분석틀을 다른 시공간—예컨대 현대 아프리카—에 적용하는 것의 타당성에 대한 의문을 남기기도 한다. 이는 페데리치가 기대고 있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보편주의적 주장이 갖는 필연적인 난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설득력을 갖는다면, 그것은 여성들 간의 차이를 여성들의 간의 연대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페데리치의 요청이 우리에게 갖는 긴급성에서 기인하는 것일 테다.

마지막으로, 공역에 따르는 여러 난점에도 불구하고 번역의 질이 고르며, 한국 독자들에게 생소할 용어나 사건에 대한 상세한 역주가 이해를 돕는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실비아 페데리치의 이론에 입문하고자 하는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 신지영·김정연·김예나·문현 옮김 | 갈무리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