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호] 『문학의 역사(들)』 전성욱 저자와의 인터뷰

인터뷰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3-12-29 16:59
조회
143
 

『문학의 역사(들)』 전성욱 저자와의 인터뷰



Q. 현재 제목은 이 책이 “문학사”를 쓴 책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부제 “소설의 윤리와 변신 가능한 인간의 길”을 보면 문학사보다는 좀더 큰 기획을 염두에 두고 쓰인 책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목과 부제에 대해서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간단히 설명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 책의 제목인 ‘문학의 역사(들)’에는 공허하고 균질적인 시간을 흐르는 연대기적인 문학사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습니다. 서구적 근대성으로부터 주조된 한국문학은 ‘근대’나 ‘한국’과 같은 거대한 환영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문학은 그들 각자의 것으로 쓰이고 또 읽혀져야 할 것입니다. 부제가 의미하는 바는, 다른 그 무엇과 기꺼이 접속할 수 있고, 그 접속으로써 자기를 또 다른 무엇으로 갱신할 수 있는 윤리적 인간, 우리가 도달해야 할 소설의 미래는 그런 인간형의 모색을 통해 가능하리라는 믿음입니다.


Q. 『82년생 김지영』처럼 2016~2017년에 독자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은 소설들에 관한 비평문이 책에 수록되었습니다. 독자들이 『문학의 역사(들)』에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몇몇 소설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관점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82년생 김지영』은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을 얻었던 소설입니다. 그 공감의 요지는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대단히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소설의 서사구조가 갖는 상투성이 여성의 현실을 통속화한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소재나 주제로 여성을 전면화하였으나 정치적으로는 대단히 반여성적인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신경숙의 「전설」을 두고 벌어졌던 표절시비에 대해서도 저는 좀 다른 입장에서 접근하였습니다. 저는 한 작가의 인격에 대한 도덕적 비난 혹은 그를 옹위하는 세력에 대한 반권력적 비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문학권력’을 비판하는 이들은 자주 권력을 실체화하는 오류를 범하였습니다. 권력은 누군가 움켜쥐고 있는 것이라기보다 관계의 배치 속에서 발휘되는 것입니다. 신경숙 표절 논란은 그런 관계의 배치가 한국의 파행적 근대성과 깊이 연루하고 있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소중한 성찰의 기회였던 것입니다. 일일이 다 거론할 수 없지만, 이 책의 평문들에는 제가 놓인 위치에서 발생한 시차(視差)를 통해 각각의 작품들을 독해하려는 분명한 자의식이 담겨있습니다.


Q. 이 책을 어떤 독자들이 읽었으면 하는지요?

널리 읽히기 보다는 깊이 읽히기를 바랍니다. 자기의지를 공고하게 하려는 이들보다 자의식이 깨어지기를 원하는 이들이 읽었으면 합니다. 공감하려는 이들보다 반론하는 이들에게 읽히기를 바랍니다. 혹은 공감하면서도 반론할 수 있는 이들에게 읽히기를 바랍니다. 문학을 사랑해서 그 문학에 분노하는 이들이 읽어주었으면 합니다. 지방에서 읽고 쓰는 저자에 대한 도도한 편견 없이 읽어주기를 바랍니다.


Q. 우리 시대에 문학이 “불가능을 무릅쓰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요?

무릅쓰는 것, 그 자체가 불가능에 응대하는 방법입니다. 무릅쓴다는 것은 다가올 위험과 고통을 감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이익에 몰두하는 자는 무릅쓸 수 없습니다. 자기를 드높이려는 의욕에 몸이 달은 자들이 불가능성을 소리 높여 이야기하곤 합니다. 자기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공공의 이해에 대한 책임을 갖는 윤리적 인간만이 무릅쓸 수 있습니다. 재현 불가능하므로 그 아포리아를 표현해야 한다거나, 대의 불가능하므로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식의 발상은 가혹한 경험의 부담이 없는 공허한 언술이기 십상입니다. 자기 스스로 재현과 대의의 좌절을 그 자체로 생생하게 겪어내는 이가 무릅쓰는 사람입니다. 겪어내고 견뎌내려는 자, 그러니까 자기로부터 망명하는 이가 곧 무릅쓰는 사람입니다.


*


문학의 역사(들)


※ 편집자 주 : 이 인터뷰는 <문학의 역사(들)> 보도자료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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