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호] 크리스티앙 마라찌의 『자본과 언어』에 대한 독후감 | 이성혁(문학평론가, 『미래의 시를 향하여』 지은이)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3 10:36
조회
1926
크리스티앙 마라찌의 『자본과 언어』에 대한 독후감

이성혁(문학평론가, 『미래의 시를 향하여』 지은이)


* 이 글은 2013년 7월 27일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진행된 『자본과 언어』 출간기념 집단서평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이 책의 제목인 ‘자본과 언어’는 주로 문학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독서 의욕을 불러 일으켰다. 필자는 자본의 메커니즘과 언어생활의 연관관계, 그리고 화폐의 추상성과 언어의 추상성의 유사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해볼 시간을 갖고 싶어 했다. 그런데 정작 이러한 주제에 대한 책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마라찌의 이 책의 출간을 알고서 서평을 쓰겠다고 나선 것도 내가 생각하는 주제에 대해 여러 시사점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서였다. 그러나 겁이 난 것도 사실인데, 마라찌의 『금융자본주의의 폭력』에 대한 서평을 쓰려고 시도했다가 포기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 이 책을 읽긴 했지만 책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하니 여러 가지로 글 쓸 자신이 없어졌다. ‘경제학’에 문외한인 데다가 ‘경제’에 대한 담론 자체에 도 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최근 금융위기에 대해 본격적인 분석을 하고 있는 그 책을 과연 잘 이해했는지 자신이 없어서였다.(‘정치경제학 교과서’ 등이나 맑스의 책을 공부한 바는 있으나 사실 일종의 사상서로서 읽었지 현 경제상황을 분석하는 ‘경제학’을 배우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 책 『자본과 언어』 역시 어떤 불안감을 갖고 읽어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책은 흥미를 가지고 읽었지만 ‘서평’을 쓰려고 하자 벽을 마주한 느낌부터 들었다. 이 책을 정확히 이해하고 요령 있게 요약할 자신이 영 없었던 것,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자본과 언어』는 작지만 방대한 내용을 펼치고 있다. 포스트포디즘이라는 노동양태의 변화에서 ‘지구화’의 모순적 전개-‘제국’으로의 이행-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이다. 화폐론에서 세계자본주의론까지 이론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확실히 이해하고 논평하기가 쉽지 않은 책이라고 본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마이클 하트의 서문을 빌려와서 말을 시작하는 꼼수를 부려야겠다는 생각이다. 마이클 하트는 『자본과 언어』의 핵심적인 테제가 도발적이게도 다음 두 가지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한다. 1) 금융의 세계는 언어적 관습들을 특징으로 하며 그것들을 통해 작동하며, 2) 지배적인 새로운 노동형태들은 언어를 통해, 그리고 언어적 수행과 유사한 수단들을 통해 생산된다는 것. 그런데 매력적인 것은 마라찌가 이 둘을 연결시킨다는 것에 있다고 한다. 금융의 세계와 새로운 노동형태-비물질노동-의 연결은 『금융자본주의의 폭력』에서도 일관되게 시도되고 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나로서도 무척 놀라웠다. 이 책에서도 주장되고 있지만, 통상의 ‘정치경제학’이 주장하듯이 현재 자본주의의 ‘신경제’에 핵심적인 위상을 갖게 된 ‘금융’이 산업자본(‘실물경제’)에서 생산된 잉여가치를 기생적으로 분배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생산양식 상의 구조적 변화들에”(88) 기인한다는 것이다. 즉 포드주의의 위기에 따른 잉여가치 축적 양식의 변화가 ‘신경제’를 추동하였으며, ‘신경제’의 금융화는 포스트포디즘의 ‘비물질노동’ 형태와 연접되어 직접적으로 잉여가치를 포획한다는 것이다.

금융화와 새로운 노동형태의 연접은, 하트가 말하듯이 두 영역에서 언어가 핵심적인 기제가 가능한 것 같다. 지구화된 금융에서 주권은 국민국가에 있지 않고 여론에 있다고 마라찌가 말하고 있듯이, 미국 연방 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발언과 그 해석에 따라 금융 시장은 요동친다. 이 ‘발화-해석’의 장은 일정한 관습을 가진 ‘공동체’에 의존하는데, 발화에 대한 공동체의 반응으로 금융 시장이 요동치기 때문에 그 시장은 ‘경제적 합리성’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희열과 공포(패닉)가 ‘이상과열’을 낳고 과도한 거래를 낳게 된다. 이 금융의 영역 안쪽에는 언어적 수행이 노동이 되는 포스트포디즘 노동 형태, 또는 ‘인지노동’이 확산되고 있다. 인지노동에서 고정자본은 기계가 아니라 노동자의 신체다. 맑스에 따르면 고정자본인 기계에는 일반지성이 축적되어 있는데, 역시 노동자의 신체에도 일반지성이 축적되어 있다. 노동자에게 축적되는 일반지성은 언어적 소통을 통한 인지적 정동적인 능력의 확장을 의미한다. 자본은 이제 일반지성을 북돋는 진보적인 역할을 하지 않고 일반지성 자체를 착취하여 잉여가치를 포획한다. 노동자의 근육이 아니라 언어적 능력이 자본에 포획되는 것이므로, 이는 언어적 능력이 진화하고 확장되는 장인 삶 자체가 착취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노동시간과 삶의 시간은 점점 구분될 수 없게 되며 가치법칙 역시 붕괴되기 시작한다. 그 자체가 노동으로 변모한 삶과 언어는 자본에 포획당하기 위해 추상화된다. 이러한 추상화는 극도로 추상적인 금융 시장과 연동되어 가동된다.

금융화와 인지노동에 따르는 삶의 추상화, 언어의 추상화에 대해서는 얼마 전에 방한한 자율주의 사상가 프랑코 베라르디(일명 비포)의 『봉기-시와 금융에 관하여』(한국어판: 갈무리, 2012)에서도 논의되었다. 그에 따르면, “정보영역과 경제의 통합”이 뚜렷한 특징인 금융독재 아래에서는 “가치화과정이 기호적인 것으로 바뀌”고 노동 역시 기호를 추상적으로 조립하는 과정으로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금융독재는 언어를 자동화 하고 식민화 하는 과정”이며, 여기서 의미는 정보로 환원되어 교환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비포는 이 과정에 저항하는 한 통로로서 ‘시’를 중요시한다. “언어의 과잉(초과)”인 시는 “의미화과정의 새로운 경로를 창출하고, 시간과 감수성의 관계의 재활성화로 가는 길을 여는 기호의 연쇄”이기에 정보화될 수 없고 교환될 수도 없다. 다시 말하면, “목소리의 특이한 진동”인 시는 “공명을 창출할 수 있고, 공명은 공통의 공간을 생산”하기에 “사회의 성애적인 신체”를 재활성화 하고 “특이성으로 들어가는 인식의 문들을 연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포는, 금융독재에 저항하는 집단적 자율지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시의 능력이 필수불가결하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여기서 ‘시’란 작품으로서의 시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시에 내장되어 있는 특성을 가리키는 ‘시적인 것’을 의미한다.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이 작품으로서의 시를 써야 한다는 의미가 아닌 것이다.) 현 시대의 사회운동에 필수불가결한 ‘시-시적인 것’은 “미학적이고 실존적 수준에서 특이성의 영역을 창조하기 위해 기능”하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자본주의에 의한 삶의 피폐화에 맞서서 살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비포가 주장하는 ‘시’를 생각해보면서 이 ‘독후감’을 일단 ‘봉합’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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