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호] 크랙 캐피털리즘 | 사공준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2 13:34
조회
901
크랙 캐피털리즘

사공준


몇 년 전 서울의 모 대안학교 행사에 참석했던 적이 있다. 발표 등 여러 가지 행사가 있었는데 폐파이프, PET병을 타악기로 만들어 학생들이 공연을 하였다. (이 공연단은 이후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공연을 마친 후 모 대학교 교수님이 축사 겸 소감을 피력하면서 국악의 접목 등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말씀이 끝나자 즉각 대안학교 이사장(이 분도 교수)께서 반박을 하였다. 앞서 진행된 행사들을 참석했으면 그런 정도의 승화과정을 이미 거쳤다는 것을 아실 것인데 늦게 오셔서 그런 말씀을 하신다는 내용이었다. 축사한 교수님도 곧 사과하셨다.

약간의 해프닝이었지만, 현장에 계속 발을 디디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미묘한 차이 같은 것이 느껴졌었다.

‘크랙 캐피탈리즘’은 철저히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현장에서 쓰인 책이다. 사회주의권의 붕괴는 맑시즘에 대한 재성찰을 불러일으켜 다양한 논쟁과 실천들이 있어 왔고 남미의 실험이 주목을 받아 왔다.

"세계 도처에서 나타난 노동조합운동의 쇠퇴, 과거에 노동운동에 의해 쟁취된 많은 물질적 이득들의 파국적 침식, 급진적 개혁에 실질적으로 헌신했던 사회민주당들의 잠재적 소멸, 소련 및 다른 '공산주의 나라들'의 붕괴, 중국의 세계자본주의 속으로의 통합, 라틴아메리카 및 아프리카에서 민족해방운동의 패배, 대학들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투쟁의 이론으로서 맑스주의의 위기" 등등.

특히 촛불 시위와 월가 점령 시위 등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시위 형태는 과거의 투쟁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고 이를 이해하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있었다. '혁명적 원리로서의 웃음'이 더불어 나타나며 “반란이 지금 경제적 물리적 공유지의 울타리치기에 대항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사회적 공유지에 대항”하는 과정이어서 “1960년대 이래로, 봉기는 더욱 분명하게 카니발적”으로 되었다고 해석한다. 촛불 시위 당시 형성되었던 해방구(?)는 일시적 자율지대 temporary autonomous zone TAZ라고 부른다. TAZ는 국가와 직접 교전하지 않는 봉기를 지칭한다.

이러한 자본주의가 가진 구조적 모순과 그 해결방법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움직임 중 가장 중요한 요약이 바로 이 책 『크랙 캐피탈리즘』이다.

구체적으로 홀러웨이는 '런던 작곡가, 멕시코 정원사, 버밍햄 자동차 공장 노동자, 치아빠스 원주민 농민, 바르셀로나 출판업자, 꼬차밤바 주민들, 서울의 간호사들, 사빠띠스따 혁명가들...'의 행위들 속에서 자본주의를 균열내는 행위를 규정하고 더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그간 있었던 투쟁들 속에서 공통성을 추출하고 조심조심 한걸음 더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우선 그는 "노동에 대해 재규정함으로써 새로운 인식틀을 제공"하려는 시도를 한다.

"노동의 이중적 성격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에 핵심적"이라는 것이다.

그 이론적 근거로 맑스에 대한 재해석을 요구하는데 『자본론』 1권 출판 후 엥겔스에게 쓴 내용 중 "노동이 사용가치로 표현되는가 교환가치로 표현되는가에 따른 노동의 이중적 성격"이 "자본론에서 최상의 지점"이라 지적한 부분을 강조한다.

"소외된 노동은 소외되지 않은 노동과의 대조를 함축"하며 "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관계가 노동자의 자본가에 대한 관계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유용노동이 교환 가능한 가치로 치환되어 추상노동화 하는 지점을 주목하라고 한다. 유용노동은 추상노동 속에서 즉 "단지 양적으로만 계산되는, 다른 노동들과의 관계 속에만 존재한다. 상품들이 교환될 때, 중요한 것은 그것들 사이의 양적 관계"이고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은 ... 추상노동, 즉 그것의 구체적 특징의 추상 속에서 이해된 노동"이며 따라서 "노동의 추상화는.. 노동의 소외"이다.

이러한 것들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사회적 종합은 행위의 노동으로의 추상”을 통해 이루어지며 “자본주의적 노동의 추상적 질은 사회적 상호관계가 사회통제의 모든 형태를 넘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행위가 완전히 추상노동에 포섭되지는 않으며" 흘러넘치는 부분에 자본주의를 균열내고 새로운 “대안적 사회관계의 구축”이 가능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추상노동과 구체적 행위 사이에는 항상적으로 살아있는 적대가 있다. 이 점이 이 책의 주장에 중심적”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나는 교사이고 시장에서 팔 노동력을 생산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나는 사회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도록 나의 학생을 가르친다. 나는 민간병원의 간호사이며 내 고용주를 위해 이윤을 생산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나는 나의 환자들이 그들 삶의 가장 어려운 어떤 순간들을 살아내도록 도우려 한다.”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를 재생산하는 노동을 넘어서서 “행위”를 통해 자본주의를 균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저자는 "새로운 사회는 오직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붕괴될 때에만 생성될 수 있다. 그와는 반대로 하나의 체제의 다른 체제에 의한 혁명적 대체는 불가능하기도 하려니와 바람직하지도 않다. 세상을 바꾸는 것을 생각하는 유일한 방법은 특수한 것에서 유래하는 틈새 운동들의 증식으로 뿐이다....좌절과 반격으로 끝난 반자본주의 실험들도 너무 많다. 가능한 세계를 위한 너무나 많은 미완의 실험들이 있다....

매우 불공정하고 파괴적인 사회 조직의 변화를 상상하는 것보다 인류의 완전한 절멸을 생각하는 것이 더 쉬운 단계에 도달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삶을 자본을 만드는 노동에 바치지 않으면, 우리는 가난에, 심지어 기아에, 그리고 종종 물리적 탄압에 직면한다..."라고 하며

“노동의 창출과 자본의 창출은 동일한 과정이다. 그리고 자본에 대한 투쟁은 ... 노동에 대한 투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존엄은 자본주의를 만드는 것을 거부하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며, “이론은... 균열들을 만들어 내려는 필사의 노력의 일부로 이해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까지 주장한다. “존엄은 자본주의에 대한 공격이지만 반드시 그것에 대한 대립은 아니다. 자본과 대립하게 되면, 자본이 의제를 설정하는 것을 허용하게 된다. 존엄은 우리 자신의 의제를 설정하는 것에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혁명과정에서 나타난 민중들의 창의적 조직 형태인 코뮨, 소비에트 등을 발전시키고자 새롭게 시도한다. “코뮤니즘은 미래의 발전단계가 아니라 직접적 필요성”이 된다.

“만약 자본주의의 세포 형태가 상품이라면, 자본을 넘어선 사회의 세포형태는 공통적인 것”이며 “우리의 주의를 자본주의의 파괴에 두지 말고 뭔가 다른 것을 건설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자본주의 만들기를 중지하고, (혁명은 자본주의를 파괴하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기를 거부하는 것) 우리가 스스로 의제를 설정하여 노동에 대항하여 “행위” 해야 하며 벽을 부수고 자본주의를 균열시키며 거부하고 창조하라고 외친다.

한편 ‘공통체’의 저자인 마이클 하트와의 교차 서신 논쟁을 부록으로 실어 “행위” 이후의 조직에 대한 생각의 단초를 제공하고자 노력한 부분과 이해를 돕기 위한 세심한 번역이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

최근 ‘협동조합’기업의 폭발적인 증가가 베네수엘라 차베스의 사망 후 더욱 주목 받으리라 생각하며 조합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행위”로 승화하여 미래의 “대안세계화운동”으로 자리 잡기를 희망한다. 또한 ‘크랙 캐피탈리즘’이 현장에서 몸으로 자본과 맞서면서 체제를 넘어서려는 모든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기본 도서로 읽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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