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호] 참 어눌한 시인, 그래서 더 거침없는 시ㅣ안오일(시인, 아동청소년문학가)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2 14:17
조회
1501
참 어눌한 시인, 그래서 더 거침없는 시

안오일(시인, 아동청소년문학가)


* 이 글은 인터넷신문 『대자보』 2013년 6월 3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http://jabo.co.kr/sub_read.html?uid=34032%C2%A7ion=sc4%C2%A7ion2=


시집 『엄마 생각』은 조문경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이 글은 서평이라기보다는 시집에 대한 느낌을 간단하게 옮긴 감상 글에 가깝다 하겠다.

조문경은 참 어눌한 시인이다. 말과 행동이 굼뜨기도 하고 문명 변화에 둔감하기도 하다. 주변의 시선에 쉽게 마음을 휘둘리지 않는 시인의 성격 탓이다. 그렇게 스리슬쩍 세상을 건너뛰다가도 어떤 것에 마음이 꽂히면 그 마음의 정체가 형상을 갖추고 나올 때까지 관찰하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시인이다. 대상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눈이 매섭다. 그렇게 해서 쓰인 시들은 그래서 거침이 없다. 요즘 시풍에 눈치 보지 않고 자신만의 인식을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시집 『엄마 생각』에서는 그런 시인의 모습이 그대로 보이고 있다. 어눌한 평상시의 모습과 시에서의 거침없는 모습, 거기에서 느끼는 반전의 매력이 만만치 않은 시인이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가장 강하게 다가온 이미지가 세 가지 있다.

첫째는 흘러가는 세상의 한 물결에서도 참으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본다는 것이다. 바람에 날리는 은행잎에서, 부화를 기다리는 개구리 알에서, 지나가다가 본 소싸움에서, 나뭇가지에 걸린 카세트테이프에서, 엘리베이터 안 한 아이의 작은 행동에서 시인은 거침없이 한 세상을 읽어내고 자신의 목소리로 풀어낸다. 스쳐지나가는 한 스냅도 그대로 보아 넘기지 않고 그곳에 삶에 대한 시인만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얼마 안 있으면 저 조그만 알들 속에서 팔짝팔짝 뛰며 살아가는
개구리가 나올 것이다
무엇을 하며 사는지
왜 사는지
생의 소소한 재미 또 슬픔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살아 있는 것이
수리산 계곡에서 지금 춘분을 넘어서 ‘개구리다’에게 가고 있다
- 시 「개구리 알을 보다가」 부분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은
모두 긴장에 뿌리내린다
두렵게 보라, 뿔로 뿔을 누르면서
자기를 자기에게 오직 살아 있도록
만드는 저 소싸움을
잠깐의 평화도 팽팽한 긴장일 뿐인
- 시 「소싸움」 부분

시인의 세상에 대한 연민과 긴장이 팽팽한 부분들이다.

두 번째는 시집 제목에서도 나온 엄마 생각이다. 이 느낌은 나를 낳아주신 엄마로부터 시작해서 돌아가고픈 궁극적인 품 같은 그리움일 거라 생각한다. 그 크기는 아주 크고 우주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런 그리움들이 여러 시들에서 보였지만 특히 강하게 다가온 시는 「젊은 엄마에게 가는 길」과 「엄마 생각」이다.

저 길을 보따리 메고 오시던 젊은 엄마
엄마의 길은 전부 나에게 오던 길이었지만
난 웃으며 부르지 못했다
동네 입구 커다란 느티나무
하늘을 향해 큰 호흡을 한다
젊은 엄마가 내 폐에 빨려 들어온다
엄마에게 가는 길은 한번도
변하지 않았나 보다
- 시 「젊은 엄마에게 가는 길」 부분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아이처럼
404호 요양실
91세 된 할머니 엄-마-엄-마- 하며
콧물 훌쩍이며 운다
잠든다
- 시 「엄마 생각」 전문

모든 사람들을 궁극적으로 품어줄 큰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살아가면서 지나치기도 하고 외면하기도 했으나 언제나 처음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엄마- 그 기억.

세 번째는 '긍정의 힘'이다. '삶에 대한 사랑'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모습에서도 긍정으로, 아모르파티로 치환해 내는 마술이 느껴진다. 어쩌면 시인은 마술사인지도 모르겠다. 그 마술에 독자들이 빨려 들어간다면 시인의 역할은 충분하지 않나 싶다. 이 부분에 대한 시들이 이번 시집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느날 내가 본 장엄(莊嚴)은 다음과 같다
먹장구름 뒤덮고 몹시 바람이 강한 날, 조성된 칸나꽃밭이 다 뭉개져버렸는데
천변을 뒤덮은 환삼덩굴의 풍경은 마치, 오호 마치
통째로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초록짐승이었다
폭풍의 날을 위한 풀처럼
-시 「환삼덩굴」 부분

불끈
아스팔트를 들어 올린 것이다
거친 톱니 이파리와
쭉 뽑아 올린 꽃대
마치 보디빌더가 바벨을 들어 올린 것 같이
민들레 피었다

-중략-

지금 민들레는 모션을 취하고 있다
보디빌더의 근육처럼 뿌리의 흙들도
보이지는 않지만 불룩불룩 할 것이다, 아- 저 팽창
아스팔트 들어 올리다
-시 「민들레 보디빌더 만들기」 부분

시인의 눈이 거대한 폭풍의 눈처럼 매섭다. 그래 나는 나니까, 하며 폭풍을 기다리는 환삼덩굴처럼, 제 상황을 비웃듯 아스팔트를 거뜬히 들어 올리는 민들레처럼 시인의 단단한 힘이 느껴지는 시들이다.

이 외에도 시인은 앞전 시집에서 볼 수 없었던 감각적인 관념의 시들도 시도하였다. 시인의 끝없는 자유로운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시들이다. 또 다른 매력이다. 생생한 감각이 바람을 타고 유영하듯 다가온「밀림의 혀」와「주름」외에도 여러 편의 시들이 있다. 때론 관능적으로 때론 천진한 아이처럼.

시인에 따라 시에 대한 가치 지향성은 다 다르다. 조문경 시인은 '삶에 대한 사랑'이 강하다. 야단치듯, 어루만지듯 삶에 대한 사랑은 한결같다. 앞으로 시집을 또 내더라도 포즈만 다를 뿐 그 지향성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꿋꿋하게 걸어가는 사람도 없을 듯싶다. 세상이 보기엔 우둔한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그 우둔함이 또한 세상을 이끌어간다고 하지 않던가.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 같은 시에서 삶에 대한 강한 은유를 느낀다. 조문경 시인의 매력이 절정에 이르렀다. 이번 시집 『엄마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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