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호] 자립기-우리는 대안적 삶을 꿈꾸는가 | 이가영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5 12:33
조회
1884
자립기 ― 우리는 대안적 삶을 꿈꾸는가
『자립기』 서평


이가영


한국보다 상당히 진보적이어서 인종차별은 일부지역의 문제일거라고 기대했던 내게, 이방인으로서 관찰한 미국의 모습은 흥미로웠다. 동부라는 지역적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대학에는 외국 유학생들보다도 적은 숫자의 흑인 학생들이 있었으며, 흑인과 백인학생이 사귀거나 어울리는 모습은 그리 흔하지는 않았다. 학교가 전부인 그 작은 도시에서 부유한 백인들, 가난한 백인들, 그리고 흑인들의 거주지는 분리되어 있었다. 흑인 교수님은 거의 보지 못했다. 서부에는 조금 더 다양한 그림들이 있지 않았을까 기대는 하지만 뉴욕과 같은 대도시에서나 흑인, 백인 커플을 가끔 볼 수 있을 정도며, 같은 인종끼리 어울리고 결혼을 하는 것이 대다수였음은 분명했다.

얼마전 있었던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 사태와 흑인들의 시위는 뿌리깊은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를 다시금 고스란히 드러내는 듯하여 씁쓸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최초의 히스패닉 여성 대법관이 등장했다는 말은 한편으로는 대단한 진보일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이제 겨우’ 백인이 아닌 타인종에게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니 갈 길이 먼 것이다.

대학원의 50명 남짓되는 동기들 중에 한 두 명 정도는 게이들이 있고, 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던 것을 기억한다. 직장동료가 남남커플의 집들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와 비교한다면 동성애에 대한 수용의 폭은 비교도 할 수 없이 크며 사회전반에 이미 스며들어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는지 모르지만, 미국은 아직도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가지고 싸우고 있는 나라이다.

아직도 상당히 보수적인 이 나라에서는 법제화 또는 시스템을 통해 다인종과 다양성을 수용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루어진다. 단적인 예로, 다양성 관리 Managing Diversity는 미국 대기업들이 신경써야 하는 중요한 인사관리의 한 영역이기도 하며, 일부 기업에서는 CFO(Chief Financial Officer) 나 COO(Chief Operating Officer)와 같이 CDO (Chief Diversity Officer)라는 직함을 가진 임원을 두고 있을 정도이다.

이 싸움의 진정한 끝은 아마 미국 전역의 대다수 인구가 이인종과 동성애에 관용의 시선을 갖고, 전통적인 통제를 벗어나 ‘자립기’를 경험한 세대들로 교체되었을 때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 이 연구의 저자 마이클 로젠펠드가 주장하는 바이다.

연구는 미국의 인구통계조사라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하였으며, 1960년대 이후 자립기를 경험한 젊은이들이 생겨난 인구변동으로 인해 이인종, 동성간의 결혼이나 결합이 증가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자립기는 젊은이를 기성세대의 통제에서 벗어나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생각을 가지고 파트너를 찾거나 비전통적인 결합과 관용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미국사회가 아직도 이인종간의 결합이나 동성간의 결합에 관대하지 못하다는 것은 사실이나, 구체적인 원인과 그 추이에 대해서는 간과하기 쉬웠는데, 이 연구에서는 소위 ‘자립기’라는 시기를 경험한 세대들이 일으킨 변화에 대해 주목한 것이다. 청교도식의 매우 엄격하고 보수적인 사회가 갑작스럽게 변화를 일으킨데 있어서 이 자립기의 등장과 높아진 교육수준, 자녀의 독립성을 강조한 가정교육 등이 큰 기여를 한 것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이는 산업혁명을 포함한 어떠한 역사적 중요사건이 촉발한 것이 아니라 서서히 이루어진, 그리고 정확히 측정가능하지 않은 자립기라는 기간에 대한 인지라는 점에서 그동안 밝히기 어려운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나라에 자립기를 겪은 세대가 존재하며, 이인종, 동성간의 결합을 허용하는 길은 얼마나 요원한 것일까?

우리나라 국민은 사실이든 아니든 단일민족이라 믿고 살아왔으며 한국은 집단주의 collectivism가 상당히 높은 나라 중의 하나로써, 다른 이들과 다른 나, 남들과 다른 누군가는 늘 주목의 대상이며 동시에 ‘튀어서’ 유난스럽게 구는, 더 나아가서는 미움의 대상이 되기 쉽다. 사소한 개인의 취향조차도 자유롭지 못하다. 예전 상사가 남들처럼 그냥 커피 마시면 되지 꼭 그렇게 혼자서 다른 걸 주문해야겠냐고 면박을 주던 일은 직장동료들과 커피전문점에 들를 때면 늘 생각나곤 한다. 어쨌든 남들과 무언가 다른 것은 존중받기보다는 민폐를 끼치는 불편함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오죽하랴. 정상적이지 않은, 인간사 섭리를 뒤집는 동성애라니. 이것은 불편함을 뛰어 넘어 혐오의 대상인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에 비해서는 다양한 대안적 가정의 형태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혼전동거나 아이없는 부부, 늘어나는 이혼, 1인가구, 입양자녀와 사는 한부모 가정 등은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일부의 이러한 움직임이 우리사회 전반의 의식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다소 의심스럽다. 일례로, 2000년에 홍석천씨가 커밍아웃한 이후로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동성애 문제에 공론화 되거나 수용의 측면에서 발전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하는데, 이 사실이 상징하는 바 또한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우리에겐 자립기를 거치며 전통적인 통제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관용의 태도를 경험할 시간을 가진 세대가 존재하느냐를 되짚어본다면 그 원인과 추이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짧은 현대화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세대들이 교체되기에는 아직 시간이 부족하며, 그나마도 유교적인 전통, 지리적으로 작은 나라, 인구의 대다수가 수도권에 집중해있다는 점은 젊은 세대가 물리적으로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 어쩌면 전쟁과 독재, 급격한 경제발전 등 격변하는 시대를 살았던 우리에게 서구식의 현대화된 가치관의 대입은 다소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어느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난 뒤, 소위 먹고 살만해진 이후를 따져본대도 과연 타인을 포용할 수 있는 원동력이 있었는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봐야 한다. 특히 최근 20, 30대들의 경제적 불안정은 정신적인 독립과 가치관 정립에 더한 혼돈만을 가져다 줄 뿐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조금이라도 안정된 미래를 얻기 위해서 기성세대의 규칙에 순응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면 나와 다른 남을 진정으로 수용하기란 더욱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경쟁과 팽창을 강조하는 주류의 문화에 순응하는 이들과 이 주류에서 탈락하여 사회구성원으로써 당연히 요구받는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이들로 이분화 된다고 한다면, 주류에서 탈락한 이들은 부모로부터 물리적, 경제적 독립이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이들의 자립기는 이 전 세대보다 못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타문화와 다양성을 수용하는 정도가 이 연구를 빌려 자립기의 경험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사회에는 머나먼 일이 될 것 같다. 동성간의 결합, 타인종, 타국가에 대한 존중은 여전히 진지한 공론의 대상이 아닌 호기심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아직도 홍석천씨는 스스로를 희화한 게이로 방송출연을 해야 하며,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의 인기는 높지만, 정작 학교에서 혼혈학생들은 따가운 시선을 멍에처럼 짊어지고 살아야 하고, 외국인 남성과 사귀는 한국여성은 경멸적인 시선을 피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사회가 타인을 수용하는 법을 체화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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