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호] 개인의 자립, 사회구성원 안에서 어떻게 봐야하나? | 홍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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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5 12:34
조회
1915
개인의 자립, 사회구성원 안에서 어떻게 봐야하나?
『자립기』 서평


홍지혜(다중지성의 정원 회원)


* 이 글은 2014년 12월 15일 인터넷신문 <대자보>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jabo.co.kr/sub_read.html?uid=35370&section=sc4&section2=


자립. 스스로 홀로 서다. 인간은 스스로 홀로 설 수 있을까? 넓은 의미로 보았을 때 인간은 아직 자립하지 못하였다. 아니, 할 수 없다. 할 수 없다는 이것이 지금까지의 문명사적 결론이다. 과학의 발견과 함께 개인이 발견된 근대 이후 과학, 자본과 함께 길항하며 발전해 온 개인의 개념은 현대에 들어와 갈팡질팡하고 있다. 건강하게 조형해 보려던 개인주의의 이념이 이기주의로 쉽게 이행된 것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개인을 깊이 파헤쳐 봤자 별로 나올 게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일까. 공동체에 대한 담론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흔히 사용되는 좁은 의미로서의 자립은 성인이 된 이후 원 가족으로부터 경제, 심리, 정서적 독립을 이루는 경우를 말한다. 마이클 J. 로젠펠드의 『자립기』는 서구문화의 한 흐름을 선도 해 왔던 미국, 미국사회 중에서도 1960년대를 기점으로, 한 개인이 가족으로부터 어떻게 자립의 과정을 거치는지를 현미경적으로 고찰한 책이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았을 때 개인의 자립과정에 영향을 미친 주요 원인은 결혼의 비전통적 결합이다. 여러 가지 비전통적 결합 중에서도 특히 이인종 결합(이를테면 흑인과 백인의 결합)과 동성애 결합이 두드러진다. 저자에 따르면 1960년대의 미국사회는 시민권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고, 미국의 정치 제도가 전보다 극적으로 개방된 시기이다. 이 시기에 비전통적 결합은 급속도로 증가하였고, 비전통적 결합에 완고하던 기존의 가족제도도 새로운 결혼 문화에 수용적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통찰이다. 비전통적 결합 때문에 자립기가 형성된 것인지, 아니면 한 개인이 가족을 떠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독립을 시작하면서 비전통적 결합이 증가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비전통적 결합, 가족으로부터의 독립 등 복합적 이유들이 ‘자립기’를 형성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자립기’가 새로운 가족구조의 변화에 결정적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2014년 한국사회 혹은 한국의 가족문화는 1960년대 미국 사회와 비교했을 때 어떠할까. 도시 이외의 지역에서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되지 못한 남성들은 제3세계 국가의 이인종 여성들과의 결혼을 선택하고 있다. 그들에게서는 또 다른 이인종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란다. 하나의 민족이라는 자부심이 유난했던 한국사회의 학교 에서 이인종 아이들은 한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다. 아직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았지만 동성커플의 결혼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매체를 통해 흘러나온다.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았을 뿐 우리는 공공연하게 동성커플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다. 이미 우리는 순일하지 않다.

한 사회가 변화의 시기를 거쳐갈 때 우리는 이전에 알던 것들과의 괴리 속에서 당혹해 한다. 이념들은 엉킨다. 납득은 더디다. 과정을 이미 치러내고 있는 사회 변화의 지점들을 짚어내어 당혹을 완화하고, 새로 출현한 존재들에 대해 준비해야 하는 과정은 한 사회를 건강하게 꾸리는 필수요건이다.

자립. 스스로 홀로 서다. 좁은 의미로 보자면 원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이지만, 그 독립이 사회 구성원 안에서 어떻게 자리매김되는지, 한 사회가 그 자리매김에 얼마만큼의 준비를 했는지에 따라 독립은 넓은 의미에서 개인의 ‘자립’ 개념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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