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호] 신정균을 찾아서ㅣ김명환

김명환의 삐라의 추억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3-09-01 13:40
조회
605
 

김명환의 삐라의 추억


신정균을 찾아서


2018년 2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웹진 “자율평론”(http://me2.do/xogSCzGQ)에 ‘김명환의 삐라의 추억’을 연재하다가 중단했다. 삐라쟁이가 삐라를 만들지는 못하고, 옛 삐라쟁이의 발자취를 뒤적인다는 게 한심하기도 했지만, 나의 추적이 간도와 만주와 상해와 연해주와 시베리아를 헤매다 경성에 이르렀는데,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이하 전평) 기관지 “전국노동자신문”(이하 전노신)을 만들었다고 여겨지는 신정균이 도대체 오리무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노신과 함께 나타났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름 석자를 가지고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먼저 안태정의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를 만났다. 처음에는, 전평 기관지책이 정재철이었다. 정재철이 ‘경성콤그룹’ 대구지역책이었으니, 나름 인쇄노조 출신의 멋진 “운동일선 복귀”라고 생각했다. 정재철 밑에 편집부원 신정균의 이름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전평 조직개편으로 정재철이 문화부로 가고, 신정균이 기관지책이 된다. 그리고 전평이 지하로 내려간 이후로 그 이름이 사라진다. 체포됐다면 그 이름이 나올 텐데 흔적도 없다. 신정균은 가명이었을까? 등사판 삐라 『삐라의 추억』을 내고 서평을 써주신 안태정 선생을 만났다. 그도 신정균을 모른다고 한다.


신정균은 전현수의 석사학위 논문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의 조직과 활동」의 전평 주요인물 목록표에 나타난다. 비고란에 “6차공산당사건”이라고 적혀있다. ‘경성콤그룹사건’을 “5차공산당사건”이라 불렀다고 한다. 요즘 말로 하면 “시즌6”인 “6차사건”이니 꽤 규모가 있었나 보다. “사건”이니 수사기록이나 재판기록이 있다는 거고 가명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전현수 선생께 문의 메일을 보냈지만, “너무 오래전의 논문”이라 자료를 찾기 힘들다는 답신이 왔다.


신정균은 임경석의 『역사극장』에 다시 나타났다. 박영발, 정재철 등과 함께 “서울크룹사건”에 그 이름이 등장한다. “그룹보다는 작고 야체이카보다는 큰” 규모의 조직을 크룹이라고 했다. 나는 임경석 선생께 문의 메일을 보내지 않았다. 사건기록으로 그의 출생과 성장과 활동을 알 수는 있겠지만 사실 나는, 그 뒤의 일들이 무서웠다.


일본에게건 미국에게건 중국에게건 소련에게건 남한에게건 북한에게건 체포당하고 고문당하고 모욕당하고 살해당하는 것이 이 땅의 혁명가들이 걸어왔던 길이다. 그들은 치욕스럽게도 간첩죄나 반혁명죄 횡령 밀수 밀매 강도 강간 아편중독 파렴치범 등으로 처단되었다. 죽은 자에게조차 모욕을 주는 더러운 전통을 가해자들은 닮고 있다. 그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쓰기에 나는 너무 약해져 있었다. 내가 좀 더 기운이 있었을 때 썼으면 좋았겠지만, 그때는 삐라를 만드느라 너무 바빴다. 나는 신정균을 찾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제 삐라쟁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삐라의 추억”을 쓰면서 만났던 혁명가들의 이야기 중에서, 약해빠진 나를 두고두고 괴롭히는,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하고 슬픈 이야기들이다. 내가 더 약해지기 전에 나는 서둘러 이 슬픈 이야기들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 김명환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4년 사화집 『시여 무기여』에 시 「봄」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89년 월간 『노동해방문학』 문예창작부장, 2000년 ‘철도노조 전면적 직선제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본부’ 기관지 『바꿔야 산다』 편집장, 2007년 철도노조 기관지 『철도노동자』 편집주간으로 활동했다. 시집 『첫사랑』, 산문집 『젊은 날의 시인에게』, 『볼셰비키의 친구』, 『삐라의 추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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