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호] 뉴딜은 어떻게 여성의 가사노동을 착취했나 / 여사라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3-02 22:43
조회
183
뉴딜은 어떻게 여성의 가사노동을 착취했나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의 『집안의 노동자』 (갈무리, 2017)


여사라 (시민단체 활동가)


* 이 서평은 『여성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goo.gl/uasQ5B


『집안의 노동자』는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이 가능할 수 있었던 사회적, 경제적 배경과 그 정책이 빛을 보기까지 그림자 속에서 격렬하게 투쟁했던 수많은 이름 없는 노동자들, 특히 여성을 다룬다.

‘인간의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다’라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선언처럼 뉴딜 정책은 대공황 이후 실업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값없이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노동자들의 전방위적인 투쟁과 연대 끝에 이뤄낸 것이었다.

책을 쓴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는 여러 서신, 공문서 등 방대한 문헌을 참조해 후버 정부의 방임 아래 고통 받았던 노동자 계층의 어려움과 긴 투쟁의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한편, 그 투쟁의 열매로서의 뉴딜과 사회보장법의 등장을 충실하게 기술한다.

여성을 포함한 노동계급의 투쟁은 뉴딜을 위시한 여러 정책과 국가와 노동자 간 관계와 노동 재생산에서 국가의 역할 자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모든 과정의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진정한 묘미는 뉴딜 정책을 페미니스트 관점으로 새롭게 조명한 것에 있다.

뉴딜 정책 하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의 ‘큰 정부’는 여성과 여성 노동을 비롯한 가족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노동 재생산과 사회화에 있어서 가족 내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며 여성의 노동 시장 진입을 억제했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는 이전 노동부 장관 제임스 데이비스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여성은 더 고상한 삶의 영역에서 더 숭고한 의무를 책임지고 있다. 이브는 아담의 동반자이자 배우자로서 모든 면에서 아담과 평등하지만, 미래를 위해 이브를 보호하고 부양하는 일은 아담의 몫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여성이 가정에서 국가의 운명을 이끌었으면 좋겠다.”(69쪽)

이런 정부의 방향성은 결혼을 이유로 여성을 해고하는 법률을 도입하고 ‘남편이 안정된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경우 여성을 고용할 때 차별을 허용하는’ 등의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출됐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공사업진흥국에서 여성을 대상으로는 빨래, 다림질, 장보기 외에 전문성 있는 내용은 하나도 가르치지 않는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도 구현됐다.

『집안의 노동자』는 이처럼 점진적이면서도 치열했던 ‘자본과 노동자라는 두 전선 사이의 갈등’과 노동자 중에서도 더 차별받고 억압되었던 여성의 삶, 그 면면을 보여주고 있다. ‘자본과 노동자라는 두 전선 사이의 갈등’ 패러다임은 약 한 세기가 지난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뉴딜이 부상하기 전 미국처럼 한국의 청년 실업률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금수저, 흙수저로 대변되는 부와 기회의 불평등은 더 심해져만 가는 형편이다. 인간답게 살 권리를 주장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노동자들을 등에 업고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이 비로소 빛을 보았듯이, 여러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 불합리성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응집된 ‘촛불 혁명’으로 한국에서는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축, 즉 정부에서는 복지 국가를 주창하며 최저임금과 노인연금 인상 등을 비롯한 정책을 연일 내놓고 있고 다른 한 축에서는 이를 포퓰리즘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이를 두고 ‘빨갱이’라며 색깔론을 펴기도 한다. ‘근로 시간 제한과 최저임금 확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억압하며, 이러한 요구를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주장이라며 묵살’했던 뉴딜 이전의 미국 사법부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에도 건재하다.

전례 없는 위기상황 속에서 분배를 통한 성장의 기치를 외치며 복지 국가를 지향하는 새로운 정부가 과연 이데올로기의 논리, 색깔 논리에 갇히지 않고,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떨쳐내고 성공적으로 그 과업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뉴딜 정책 하에서 여성이 오히려 차별받고 억압받았듯, 공공 일자리와 복지를 늘리고 노동의 재생산을 책임지는 큰 정부의 새로운 정책이 세대의 생산과 재생산을 담당하는 기능을 짊어진 여성의 정체성만을 지나치게 부각할 우려는 없는 것인가?

여성을 개인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자아실현의 욕구를 지닌 개별적 인간으로 보기보다는 가족을 책임지고 노동 재생산, 심리적 지지, 훈육과 사회화를 담당하는 가족의 주 보조자로 보는, 여성에 대한 획일화된 관점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노동자로서, 또한 여성으로서 던져봐야 하는 주요한 질문에 달라 코스따의 『집안의 노동자』는 유효한 지침을 준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기에 달라 코스따의 이 책 출간이 더 반갑다.

“나는 처음으로 확고한 목표가 생겼다. 여성이라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사고할 권리를 가진 한 명의 인간이 되고 싶다.”(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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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책

『혁명의 영점』(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옮김, 갈무리, 2013)

페데리치는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지불을 요구했던 1970년대 여성운동에서 출발하여 1990년대 이후 여성운동의 제도화에 대한 비판과, 신자유주의의 등장으로 더욱 열악해진 삶의 조건들을 회복하기 위한 공유재 재구축을 위한 운동까지, 급진주의 여성운동에 몸담아 왔다. 『혁명의 영점』은 이러한 여성투쟁의 본질에 대한 페데리치의 40년간의 연구와 이론 작업을 집대성한 것이다.

『캘리번과 마녀』(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김민철 옮김, 갈무리, 2011)

자본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남성이 임금 노동자로 탈바꿈된 것만큼 여성이 가사노동자이자 노동력 재생산기계로 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페미니즘 역사서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닦았던 이 폭력적인 시초축적 과정에서 마녀사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었음을 밝힌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마리아 미즈 지음, 갈무리, 2014)

『에코페미니즘』,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의 저자로 알려진 에코페미니스트 마리아 미즈의 고전적 저작. 가사노동, 비공식 영역의 노동, 식민지에서의 노동과 자연이 만들어 내는 생산(물)이 경제의 수면 아래 있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4, 5백년 동안 여성, 자연, 식민지는 문명사회 외부로 축출되고, 가려져 왔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이 ‘빙산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왜 가려졌는지, 이 부분의 가치와 비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비물질노동과 다중』(안또니오 네그리, 질 들뢰즈 외 지음, 갈무리, 2005)

'신자유주의, 정보사회, 탈산업사회, 주목경제, 신경제, 포스트 포드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의 응답을 한 권에 엮은 책. '물질노동이 헤게모니에서 비물질노동의 헤게모니'로의 노동형태 변화를 주요 현상으로 지적하고, 비물질노동의 두 축인 정동노동과 지성노동을 분석한 후, '다중'이라는 새로운 주체성의 형성에 비물질노동이 미치는 영향을 살핀다. 1부에는 '정동'에 관한 질 들뢰즈의 연속 강의, 2부에는 마우리찌오 랏짜라또와 삐올로 비르노의 글을 실었다. 3부에서는 새로운 주체성, 미적 생산, 시간의 재구성의 문제를 실마리로 비물질노동 개념을 발전시켜 보려는 나름의 이론적 개입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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