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호] 자본과 언어 | 김상범(대학생)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3 09:51
조회
1489
『자본과 언어』

김상범(대학생)


1.
많은 경제학자들과 경제 분석가들이 금융화가 '금융경제'와 '실물경제'의 분리를 불러왔다고 주장해 왔지만 크리스티안 마라찌는 이러한 주장을 거부한다. 그는 이러한 "힐퍼딩주의적이고 통화주의적인"(p.89) 이분법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금융적 세계화의 직접적인 기원이 생산양식상의 구조변화들에 존재"(p.88)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포스트포드주의적인 생산양식의 디플레이션 경향에 의해 시간이 지나면 연금기금이 더 많은 가치를 수당으로 지불해야 하며, 이에 따라 리스크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연금기금은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해 다른 후진국에 투자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세계가 금융화 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포드주의적 생산양식에서 포스트포드주의적인 생산양식으로의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러한 생산양식의 변화는 언어와 소통이 생산의 영역으로 침투해 들어감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침투는 수요의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만든다.

생산한다는 것은 수요에 반응하는 것을 의미하지, 포드주의 경제의 경우에서 그랬던 것처럼 수요가 재화의 공급에 의존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공급과 수요의 관계에서 일어난 이러한 역전은 소통이 생산과정에 직접 들어오는 것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pp.73~74)

이러한 포스트포드주의적인 생산양식은 노동과 노동자의 분리를 철폐시켰고, 포드주의 공장을 해체시키면서 망상적인reticular 소통공간의 발전을 이루었으며, 노동시간을 측정불가능하게 만들었고, 맑스가 말한 '일반지성'이 주요한 생산력이 되도록 만들었다.

실물 경제의 이러한 소통화, 언어화 현상은 금융경제에서도 나타난다. 마라찌에 의하면, "신경제에서는 언어와 소통이 재화와 용역의 생산 및 분배영역과 금융영역 주 영역 전반에 걸쳐 구조적으로 동시에 현현"(p.16) 따라서 우리는 이른바 '실물경제'와 '금융경제'를 분리해서 사고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노동세계에서의 변화들과 금융시장에서의 변동들을 동전의 양면으로 이해"(p.16)해야 한다.

금융경제의 언어적, 소통적 성격을 규명하는 마라찌의 분석은 매우 흥미롭다. 마라찌는 언어와 소통이 하나의 '생산적 힘'이 될 수 있다는 존 오스틴의 주장에 기반하여 금융경제와 투자자들의 행동을 분석하고 있다.

마라찌에 의하면 금융경제를 추동하는 것은 케인스의 용어로 '관습', 즉 "특정시기 다수의 견해들보다 우세한, 그리하여 공동체의 '선택지'로서 여론이 되는 견해"(p.37)라고 한다. 이러한 관습은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다수의 투자자들에게 "인지적인 압박"(p.39)으로 작용하며 이러한 관습의 기능은 "대단히 언어적"(p.40)이다. 이렇게 관습이 언어적이라는 것은 이러한 관습이 "실재 사실들을 생산해는 발화"(p.46)로서의 일련의 수행적 발화들의 산물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관습은 이러한 수행적 발화들을 체제 속에 배치함으로써 일종의 권력이 된다. 또한 관습적 언어의 수행적 효과는 화자의 권위와 권력에 의존한다. FRB 의장의 말이 주식시장에 미치는 효과는 나의 말이 미치는 효과와는 그 강도와 규모면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관습적인 언어수행이 반복되면서 사람들은 이러한 관습의 인공성을 망각하게 되고 마치 관습이 하나의 자연 본성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렇게 금융경제가 '자연적 본성'처럼 보이는 관례적인 인공적 관습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모든 정보를 갖고 있고 "완전하게 합리적인" 개인을 출발점으로 가정하는 신 고전학파의 주장을 거부하는 것이다. 오히려 신 경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부족한 개인들의 쏠림현상을 유발하는 '모방적 합리성'에 의존해야 한다. 이러한 모방적 합리성은 "개인 투자가가 정보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정보 앞에서 다른 투자자들이 보이는 반응으로 생각되는 것에 반응"(p.35)하는 시장의 자기지시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방적 합리성'은 수행적 발화에 대한 관습화된 반응에 의해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과 같이 말이다.

나는 가능한 한 빨리 주식을 팔아버림으로써 그린스펀의 선언에 반응한다. 왜냐하면 분명 그린스펀이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모든 사람...이 똑같이 행동할 것이기 때문이다.(p.35)

그러나 수행적 발화는 단순히 관습에 의해 규정되지만은 않는다. 이러한 수행적 발화는 '창조적인 힘'을 가지고 "상징적 언어가 감싸고 있는 것을...파열하도록"(p.46) 만듦으로서 관습을 위기에 빠뜨리게 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러한 관습의 위기를 자율주의자답게 '다중'과 연관시킨다.

'그' 관습을 선택함으로써 다중은 스스로 공동체가 된다. 이것은 주권의 선거가 다중을 민중으로 변형시키는 것과 거의 같다.

그러므로 견고한 언어적 경제 시스템에서, 관습의 위기는 다중신체의 폭발을 의미한다. 복수적인 개별적 차이들인 다중은 새로운 관습을 생산/선택하는 소위 역사적 과제를 다시 한 번 수행해야 한다.

2.
마이클 하트의 말대로 『자본과 언어』의 핵심적인 테제는 "언어가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의 작동과 위기들을 이해하기 위한 모델을 제공해준다는 것"(p.9)이다. 언어와 소통은 금융경제와 실물경제 양자에 침투하여 이 두 영역이 분리되지 않고,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를 갖도록 만든다. 따라서 금융경제가 실물경제로부터 '자율적인' 영역으로 묘사하거나 금융경제와 실물경제가 '자의적'인 관계를 가진다고 주장하는 많은 경제학자들은 잘 못된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언어와 소통의 경제로의 침투와 그로 인해 나타나는 여러 현상을 세밀하고 정교하게 분석하고 있다. 금융경제로의 침투는 언어적 관습이 가지는 힘에 대한 분석을 통해 파헤쳐지고, 실물경제로의 침투는 '포스트포드주의'에 대한 분석을 통해 파헤쳐진다. 이 처럼 이 책은 현대자본주의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언어의 경제로의 침투'가 중요하다고 해도, '경제의 언어로의 침투' 또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주제가 아닐까? 이에 대해 기회가 되면 써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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