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호] 저항하고, 나를 지키고, 주변을 돌보는 우리는, 마녀의 후손이다ㅣ지혜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3-06-13 21:35
조회
496
 

저항하고, 나를 지키고, 주변을 돌보는 우리는, 마녀의 후손이다


지혜(병역거부자)


“뾰로롱 꼬마 마녀 열두 살 난 마법 마법의 천사 무지갯빛 미소를 당신에게 살짝 뿌려드리겠어요.”

어린 시절, TV에서 양갈래 머리를 한 꼬마 마녀가 마법을 부리는 만화를 보고 자랐다. 나에게 마녀는 귀여운 마법 소녀라고 인식을 시켜준 계기가 아닐까 싶다. 실비아 페데리치가 전해주는 마녀 이야기는 귀여움과는 거리가 있다. 16, 17세기 유럽에서 진행된 마녀사냥과 현재 아프리카 등지에서 벌어지는 여성살해, 마녀사냥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페데리치가 앞서 저술한 『캘리번과 마녀』에 이어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이하 『마녀의 후손들』)에서는 마녀사냥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자본주의 체제 전환기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으로 설명한다. 몇 년 전 읽다가 그만 두었던 『캘리번과 마녀』를 읽고 『마녀의 후손들』을 읽었다. 『캘리번과 마녀』를 먼저 읽어서 그런지 술술 읽혀 2부 6장까지 한달음에 읽었다. 『마녀의 후손들』이 『캘리번과 마녀』의 핵심 주제를 재고찰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대중적인 소책자로 집필된 만큼 페데리치가 설명하는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마녀사냥을 발생시킨 맥락을 따라가 볼 수 있다. 『캘리번과 마녀』를 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마녀의 후손들』을 입문서로 먼저 읽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이왕이면 실비아 페데리치가 쓴 『혁명의 영점』까지 함께 읽기를 추천한다.

책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본 축적과 유럽 마녀사냥에 대한 재고’를 논하는 1부와 ‘자본 축적의 새로운 형태와 우리 시대의 마녀사냥’을 다루는 2부이다. 실비아 페데리치는 “우리의 땅을 사랑해요”라는 노래를 소개하면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한다. 이 노래는 매우 높은 빈도의 마녀 재판이 진행되었던 덴마크에서 성 요한의 탄생일 하루 전날 불린다. 1617년에서 1625년 사이 약 8년 동안 297건의 마녀재판이 덴마크에서 벌어졌다. “우리의 땅을 사랑해요. …모든 마을에는 그 마을의 마녀가 있어요. 모든 교구에 트롤이 있듯이요. 기쁨의 불로서 그들이 살지 못하게 할 거예요. 우리는 이 나라의 평화를 원해요. 성 요한, 성 요한! 승리할 수 있어요. 심장이 의심으로 가득 차 차가워지지 않는다면요.”

이 책 2장의 ‘왜 마녀사냥을 다시 이야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페데리치는 16, 17세기 마녀사냥에 중요한 구조적 측면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마녀사냥이 근대 자본주의 세계가 부상하는 길을 열어젖힌 다양한 사회적 과정의 교차점에서 생겨난 일”(p.35)이라는 점은 인정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마녀는 누구였는가 하는 질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도래한 전제조건과 관련해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밝힌다. 마을에 국한된 마녀사냥이 아닌 마을, 국가 수준에서 동시에 전개되는 사건과 과정의 연속성 속에서 보자는 것이다.

저자는 15세기 말 잉글랜드 각지에서 일어났던 인클로저 운동과 유럽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났던 농업자본주의가 부상한 것을 마녀재판이 자행된 사회적 배경으로 꼽는다. 인클로저를 통해 잉글랜드에서 토지 귀족과 부유한 농부들이 공유지에 담장을 두르면서, 생계를 공유지에 의존했던 농민과 점유자들은 땅에서 쫓겨났다. 인클로저가 일어나면서 나이 든 여성은 취약한 계층이 되었다. 땅을 빼앗기고 가난해진 여성들은 집마다 돌아다니며 구걸하거나 ‘구빈세’에 의지해야 하는 빈민이 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여성이 빈곤과 사회적 배제에 저항하거나 당시 여성 대중에게 부과되는 여성성 모델을 부정하고, 독립과 자율을 주장하거나 기존의 성적 관습에 도전하면 마녀로 몰렸다. 마녀는 민간에서 전해지는 약초를 다룰 줄 알고 여러 주술을 행하는 민간 치유자였고 마을에서 인기 있는 사람이었다. 페데리치는 마녀재판을 통해 마녀들을 화형시킨 것이 마녀들의 신체를 훼손하는 것뿐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이전에 유럽 농촌사회를 이루고 있던 공동체와 공통장, 신념체계를 제거하고 말살하는 행위였음을 밝힌다. 마녀사냥은 우리와 동물이 맺고 있던 관계를 전환했으며 새로운 사회규범, 윤리 체계를 부과했다. 성 요한의 축일 전에 불린다는 덴마크 노래는 땅을 통해 빚어진 마녀사냥과 기독교 규범이 도입된 과정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준다고 생각한다.

마녀사냥 뒤에는 여성이 가진 힘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4장)는 것을 밝히며 페데리치는 논의를 이어간다. 여성은 아기를 낳는 존재로 “재생산 과정과 특수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에 전자본주의사회에서 많은 여성은 자연의 비밀에 대한 특별한 이해를 가진 존재로 여겨졌다”(p.62). 자본주의 이행기에 기계화된 관념이 구축되면서 여성은 주요 목표물이 되었다. 합리적 과학주의, 엄격한 노동 규율을 위해 통제되지 않는 신체성-여성의 권능은 해체되어야 했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교회, 국가에 의해 결혼에 속한 것으로, 출산에 부합해야 했다. 마녀사냥은 여성 전체를 상대로 한 테러 체제였으며(p.70) 끔찍한 고문과 처형은 여성의 사회적 권능을 파괴하기 위해 진행되었다. 마녀사냥의 이유는 마녀로 몰린 여성들이 임신 중지 유도 식물 같은 금지된 지식을 알려주거나, 공동체의 집합적 기억을 전달하는 역할(p.71)을 했기 때문이다. 마녀라 불린 이들은 집마다 돌면서 이런저런 이야기와 비밀을 퍼뜨리고 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씨줄과 날줄처럼 직조하는 이들이었다. 여성이 권력체계에 도전하면 악마의 음모로 묘사되었고, 이것은 매카시즘과 ‘테러와의 전쟁’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 시대에까지 반복되었다. 마녀는 각자의 시대에 공산주의자였고 테러리스트였다.

세계 곳곳에서 마녀사냥은 계속되고 있다. 페데리치는 신종 마녀사냥과 여성살해와 같은 폭력의 배경에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 축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이 이 세계의 자연자원과 인간 노동에 대한 압도적인 통제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필요한 정치적 재식민화 과정이 ‘지구화’이며, 지구화는 자기 공동체의 재생산을 직접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여성들을 공격하지 않고는 달성될 수 없기 때문”(p.97)에 여성에 대한 폭력이 증가하는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현재 아프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마녀사냥, 지구화 그리고 페미니스트 연대를 다룬다. 이 부분은 『캘리번과 마녀』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내용이다. 페데리치는 가나에서 ‘마녀수용소’가 만들어진 것이 나이 든 여성이 처한 위험을 나타낸다고 밝힌다. 오늘날 아프리카 ‘마녀들’이 고발당하는 범죄는 유럽의 마녀사냥과 유사한 지점이 있다. 이 범죄들은 유럽의 악마 신앙을 차용한 것으로 보이고, 복음화의 영향을 반영하는 듯하다. “마녀는 주로 나이 든 여자나 가난한 농부이고, 종종 혼자 살며 또는 남자와 경쟁한다고 여겨지는 여성들이다.”(p.143) 나이 든 여성이 젠더 전쟁의 표적이 된 원인은 돈이 중요한 사회의 작동원리로 작용하게 되면서 지역 사회에 대한 여성의 기여도가 평가절하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프리카 여성운동을 조직해야 할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마녀사냥꾼을 욕보이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옷을 벗어 던지고 일부러 ‘저속하고 불온한’ 행동하며 모욕을 주는 시위를 소개한다. 마녀사냥이 돌아왔듯이 우리에겐 공통장을 다시 구축하는 페미니스트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 페데리치의 주장이다.

결론부에서 실비아 페데리치는 마녀사냥의 역사와 논리만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자행되는 마녀사냥의 다양한 방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우리가 이것을 살아 있는 기억으로 만들 때만, 그러한 과거가 우리에게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p.165)라고 끝을 맺는다.

가십이 ‘God(신)’, ‘Sibb(혈족)이 합쳐진 단어로, 대부모를 뜻했으며 나아가 산파, 여성 친구 등 더 많은 뜻을 내포했고 여성들 사이의 우정을 나타내는 말이었다는 부분은 놀라웠다. 우정과 연대를 담은 말이 뒤에서 하는 험담을 의미하는 말로 바뀐 것에는 여성혐오적 의미가 덧씌워진 과정이 있었다. 나에게도 가십은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오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을 뒤에서 헐뜯는 행위, 뒷담화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십에 대한 나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하는 건 아닐까, 가십이 갖고 있는 본래 의미인 여성들의 우정을 나의 의식수준에서부터 회복해야 할 것 같다. 가십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을 돌아보고 본래 의미인 ‘우정’을 회복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실천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여적여”, 여성의 적은 여자라는 인식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겠다. 앞서 소개한 뾰로롱 꼬마 마녀 가사에는 “이제 우리 친구 사이 고민이 있으면 숨기지 말아요 당신의 눈동자만 보면 난 알 수 있어요”라는 구절이 있다. 여성이 여성을 돕는 방향으로, 서로 나누는 연민과 공감의 대화를 해 나간다면 가십은 본래 의미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마녀의 후손들』을 읽으며 우리 시대,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일어난 마녀사냥에 대해 생각해 보고 과거와 현재에 살아있는 마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여성해방 운동에 대한 백래시와 성소수자, 난민, 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한국형 마녀사냥 현상으로 주시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사회에서 부과하는 여성상을 거부한 여성들, 자신이 박탈당한 권리를 외친 여성들, 저항하고 행동하며 자신의 생명력을 지키고 주변을 돌보는 여성들 사이에 마녀의 후손은 살아있다. 70년대 공장에서 노동을 하며 노조를 만들다가 탄압을 받고 경찰에 연행당하지 않기 위해 옷을 벗었던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 슬럿 워크에 영감을 받아 내가 잡년이라며 외치고 행진했던 ‘잡년들’, 2016년에 일어난 강남역 여성살인 사건 이후에 안전을 요구하고 죽임당하지 않을 권리를 외쳤던 이들, 2019년 대량 해고 사태에 항의하며 농성하던 중 옷을 벗고 경찰 앞에 섰던 톨게이트 수납원들, 여성의 가슴 사진을 음란물로 규정한 페이스북 정책에 항의하며 가슴을 드러내고 시위했던 불꽃페미액션 활동가들, 제주 비자림로 숲에서 나무가 베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나무가 되어 나온 사람들, 미투운동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들, 대추리에서 두물머리에서 밀양에서 강정에서 군사기지를 만든다고 강을 정비한다고 송전탑을 세운다고 벌이는 대규모 국책사업 과정에서 국가가 자행하는 폭력에 몸으로 맞서 생명과 평화를 외친 사람들, 폭력의 현장으로 끌려가는 동물들을 목격자의 자리에서 비질을 하는 사람들, 일터를 지키기 위해 몸에 비린내를 묻혀가며 시위하는 노량진 수산시장 여성 상인들과 바다가 오염되면 우리는 갈 곳이 없다고 외치는 월정리 해녀들…. 이 수많은 몸 사이에 ‘마녀의 후손들’은 살아 숨 쉬고 있다. 우리 시대와 앞선 시대에 한국에서 벌어진 몸들의 저항을 기억한다.

여성, 더 넓게 ‘여성-비인간존재’에 대한 억압과 폭력에 굴하지 않고 몸으로 맞서는 것, 몸을 드러낸다는 것은 취약한 일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몸이 가진 힘을 보여주는 직접행동이기도 하다. 여성이 가진 생명력과 권능을 여성 스스로 인정하고 자신을 옭아매는 재갈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사회적으로 부과되는 여성을 평가절하하는 시선에 촉각을 곤두세워야겠다. 한국 사회에서 대두되는 폭력을 새로운 자본주의 축적, 재식민화하는 과정과 연관성 속에서 살펴볼 가능성을 생각한다. 한국과 세계에서 벌어지는 저항의 행동을 지구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연대의 그물망을 짜는 것. 내가 있는 곳에서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겠다.

페데리치 읽기는 마녀로 몰린 여자들이 사슬에 묶여 불태워지는 모습, 그 고통을 직시하는 과정이었다. 괴로움에 긴 한숨이 나올 때가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월경을 하고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의 재생산을 하는 여성의 권능에 대해 마주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화형대에 매달려 웃는 여성의 모습을 상상한다. 뾰로롱 꼬마 마녀처럼 이왕이면 무지갯빛 미소를 뿌리는 마법의 천사. 그는 불이다. 타오르면서 태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한때 나무였고 한때는 불이었고 바다였고 바람이었다가 여성의 몸을 입고 태어났다.

책을 읽으며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 나오는 장면이 떠올랐다. 으슥한 밤, 숲속에서 여성들의 회합이 열린다. 환하게 빛이 나는 모닥불 주위를 둘러서서 한두 명씩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음에 음이 쌓이면서 노래가 된다. 보면서 전율이 올랐던 장면이다. 본래의 의미인 가십이 일어나는, 여성들이 모닥불 주위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는 모습을 상상하고 떠올린다. 2022년 가을, 지리산 자락에 있는 여성해방 마고숲밭에서 생태마을디자인교육이 마치는 잔치에서 친구들과 함께 모닥불을 둘러싸고 춤을 추었다. 더 많은 이들이 『마녀의 후손들』을 읽고 불 피워놓고 자유롭게 춤추면서 살기를 바란다.


*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3년 6월 2일 <참세상>( https://bit.ly/43T3lFq )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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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 부대낌과 상호작용의 정치』(권명아 지음, 갈무리, 2019)


정동과 페미니즘, 페미니즘과 젠더 정치의 정동 효과들에 대한 이론적 연구이자, 온 힘을 다해 무언가 '다른 삶'을 만들어보기 위해 부대낀 날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페미니즘과 젠더 어펙트에 대한 이론적 탐색과 실천적 개입은 하나의 몸과 다른 하나의 몸이 부대껴 만들어내는 힘, 마찰, 갈등에서부터, 개별 존재의 몸과 사회, 정치의 몸들이 만나 부대끼는 여러 지점들까지, 그리고 이런 현존하는 갈등 너머를 지향하는 '대안 공동체'에서도 발생하는 '꼬뮌의 질병'을 관통하면서 진행된다.


움직이는 별자리들 : 잠재성, 운동, 사건, 삶으로서의 문학에 대한 시론』(김미정 지음, 갈무리, 2019)


정동, 페미니즘, 공통장의 문제의식을 통해 한국문학사의 여러 장면들을 읽어가며 근대적 개인의 신화를 질문에 붙이고, 포스트 개인(post individual)의 사유를 전개한다. 이 책에서 정동적 모먼트로 언급되는 2014년 세월호, 2016~17년 촛불, 2016년 강남역 이후는 모두, 주어진 조건들을 사람들 스스로 전유하고 다른 것으로 만들어가는 장면들이다. 이 책이 문학을 통해 사유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우리 안의 잠재성, 사건의 계기들이다.


캘리번과 마녀 : 여성, 신체 그리고 시초축적』(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김민철 옮김, 갈무리, 2011)


자본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남성이 임금 노동자로 탈바꿈된 것만큼 여성이 가사노동자이자 노동력 재생산기계로 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페미니즘 역사서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닦았던 이 폭력적인 시초축적 과정에서 마녀사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었음을 밝힌다. 이 책에서는 공식적인 역사서나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역사책에서도 다뤄지지 않는 산파 여성들·점쟁이 여성들·식민지의 원주민 여성 노예들·여성 마술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까판의 문법』(조정환 지음, 갈무리, 2020)


이 책 『까판의 문법』(그리고 이와 동시에 출간하는 『증언혐오』)은 2019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지 5년이 되는 날에 시작된 증언선 윤지오호의 침몰이라는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저자가 기울인 1년여에 걸친 집중적인 연구의 결실이다. 이 두 책은 하나의 사건의 두 얼굴을 보여준다. 『까판의 문법』은 전 사회적 까판의 논리와 운동 메커니즘을 권력형 성폭력 가해권력이 사용하는 권력 테크놀로지로서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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