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디보』 11장
- 최고로 아름답고 무수히 다양한 형태들


현대적 종합이 이룬 최고의 성취는 이른바 대진화라 불리는 고생물학적 관점, 즉 종 상위 수준의 진화와 이른바 소진화라 불리는 유전학적 관점, 즉 종 내부의 변이라는 양자를 화해시킨 일이다. 종합 이론은 종내 변이를 낳는 작은 유전적 변화들을 일으키는 자연 선택이 장구한 기간 적용될 경우, 화석 기록에 드러나는 대규모 형태 변화가 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과학자들의 동의가 뒷받침되긴 했으나, 사실 그것은 추정에 가까웠다. 누구도 정말 대규모 변화를 통제하는 유전자 메커니즘이 종내 변이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메커니즘과 동일한지, 혹은 다른지 알지 못했다. …… 원시 좌우대칭동물로부터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동물 형태들의 진화에 오래된 툴킷 유전자들이 쓰인다는 사실. (357)

이보디보가 최초로 이룬, 그리고 아마도 가장 충격적인 발견은 모든 동물을 만드는 유전자들이 동일한 기원을 지녔다는 사실이다. …… 공통 선조. …… 둘째, 눈이나 심장이나 사지처럼 동물들이 각기 독립적으로 이뤄낸 발명으로 보였던 기관이나 구조들이 사실 공통 유전자 요인들의 통제를 받아 만들어진 것임이 밝혀짐으로써, 복잡한 구조의 발생에 대한 기존의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 셋째, 툴킷의 역사가 이처럼 오래된 것을 볼 때 이 유전자들의 발명 자체가 진화의 촉진제는 아니었다. …… 유전자들 자체가 진화의 ‘운전사’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유전자 툴킷은 가능성을 나타낸다. 잠재력을 실현하는 것은 생태 환경의 힘이었다. (358-359)

[모듈성]. 어떻게 이런 독립성, 나아가 복잡성과 다양성이 얻어졌을까? …… 하나의 유전자는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무수히 많은 스위치들의 통제를 받을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러하다. 따라서 하나의 스위치에 일어난 돌연변이가 다른 스위치들, 또는 그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 기능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자연선택될 수 있다. …… ‘무수한’ 형태들(즉 다양성)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조절 신호 및 스위치들을 조합하는 방식이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 이런 잠재력을 현실화한 것이 바로 자연선택이다. 가능한 모든 경로가 탐험된 것은 아니며, 가능한 모든 형태가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매우 다양하다]. (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