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Pic 105호] 『광장 비판』 2장, 3장 토론

뉴스레터
작성자
진실연대자들
작성일
2026-10-04 13:22
조회
155

대화 기록

2026 19:31:30–22:15:45 · 109개 메시지

조정환 [19:31:30]
안녕하세요
이명선 [19:31:35]
안녕하세요
김정연 [19:31:49]
안녕하세요
BOM [19:33:04]
안녕하세요
장귀 [19:33:34]
안녕하세요.
BOM [19:34:07]
반갑습니다.
BOM [19:34:43]
오늘 열린 세미나에서는 책 <광장 비판> 중 「두 개의 자유」 와(천정환) 「퀴어한 연대의 불가능성」(연혜원)’을 토론하겠습니다.
BOM [19:35:18]
먼저 ‘두 개의 자유’를 다루고, 휴식 후에 ‘퀴어한 연대의 불가능성’을 진행하겠습니다.
BOM [19:35:26]
본격적으로 세미나를 시작해도 좋을까요?
김정연 [19:35:43]
네
조정환 [19:35:47]
네
신은주alma [19:35:57]
네*^^*
BOM [19:37:17]
네
BOM [19:37:28]
그럼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
BOM [19:38:09]
"두 개의 자유"를 읽으며 미리 생각하신 토론거리가 있다면 자유롭게 올려 주세요.
BOM [19:38:55]
인상적인 내용, 추가 자료, 질문, 내용에 관한 생각 등을 올려주셔도 좋습니다.
김정연 [19:39:20]
“한국 대학은 두 '자유' 때문에 위기에 처해왔다. 첫 번째 '자유'는 윤석열과 극우의 '자유', 또 자유통일당과 '자유대학' 할 때의 '자유'다. … 두 번째는 신자유주의의 '자유', 즉 무소불위의 시장과 자본의 힘이 사회를 지배할 '자유'다.”(83~84쪽)

이 글은 이렇게 말하면서 시작합니다.
김정연 [19:40:12]
그러면서 이 두 자유가 “교집합을 갖고 있으며 긴밀히 상호작용해 왔다”고 합니다.
김정연 [19:40:50]
“한국 대학은 '능력주의 리버럴'과 '능력주의 우파'의 합작품이다.”(84쪽)
조정환 [19:43:06]
여기서 능력주의 우파를 국민의힘과 그 주변 정치 세력, 능력주의 리버럴을 민주당과 그 주변의 정치 세력으로 이해해도 좋을까요?
김정연 [19:45:46]
저도 그렇게 읽었던 것 같습니다
조정환 [19:45:49]
글 전체에서 두 자유에 대한 명시적인 구분을 하는 대목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전자를 질서와 정체성의 자유, 후자를 경쟁의 자유로 이해해도 좋을까요?
BOM [19:46:42]
네, 저는 대체로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그들(능력주의 우파와 능력주의 리버럴)은 "엘리트 계급"이라는 표현으로 하나로 묶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BOM [19:47:39]
저도 두 자유에 대한 명시적 구분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조정환 [19:50:45]
이 두 엘리트 계급의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가운데 좌파도 이 능력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생각도 서술되었던 것 같습니다.
김정연 [19:50:48]
91쪽에는 세 번째 자유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 자유는 다른 맥락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다를까요?

“ '인식론적 자유주의'는 대학과 연구자 문화의 제도화와 함께 발달해 왔고 또 그런 학문장의 진리 생산 기제와 일상의 공론장은 연관되어 있다. '자유언론'과 '자유과학 liberal science' 즉 '자유주의적 학문체제'가 연동되어 있다는 관점은 중요하다. 이 '자유'는 앞에서 언급한 '자유'들과 교집합을 가지면서도 다른 맥락의 '자유'다.”
김정연 [19:52:31]
저자는 한국 사회가 능력주의 파시즘 사회라고 말합니다. (101)
조정환 [19:56:13]
자유과학, 자유언론의 '자유'는 진리, 진실을 위한 투쟁을 함축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합니다. 여기서는 "검열과 간섭으로부터의 자유"(90) 속에서 '사회 전체를 위한 진실'을 추구할 자유로 상상되는 것 같습니다.
김정연 [20:00:20]
설명 감사합니다
조정환 [20:01:19]
필자는 137쪽에서 "대학을 다시 민주적이고 공공적인 것으로 바꿔내는 일이 다시 시민사회 전체의 과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쓰는데, 불명확하지만 그것이 위의 인식론적 자유주의를 회복하는 문제와 겹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조국", "김건희"의 탈진실이 진실의 타락으로 서술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정환 [20:03:48]
그런데 대학 속에서, 대학에 대항하면서 대학 너머의 지성의 다중적 공통화를 추구해 온 사람으로서, 이러한 바람 혹은 목적 설정이 어느 정도 유효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김정연 [20:06:02]
방금 말씀해 주신 137쪽이 속한 소제목이 “자유를 위한 투쟁”(137)인데요
그 아래 두 단락에 자유라는 말은 안 나옵니다.

확실히 저자에게는 “대학을 다시 민주적이고 공공적인 것으로 바꿔내는 일”이 “능력주의와 불평등을 극복하는 일”(두 과제가 서로 다르지 않다고 저자는 쓰고 있습니다)과 연관되고 그 일이 저자 자신이 지향하는 “자유”를 실현하는 데 결정적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김정연 [20:07:11]
그럴 때 자유는 어떤 자유일까 궁금했습니다
김정연 [20:08:16]
저자는 대학이 민주적이고 공공적이었던 때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조정환 [20:08:36]
글 첫머리에서 윤석열의 계엄이 대학을 패싱한 것에 착목한 것은 흥미로운 접근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다시' 대학을 민주화하고 공공화하는 것이 바람으로 설정됨으로써 첫째로는 우리 역사에 대학이 민주적이고 공공적인 적이 과연 있었나 하는 반문을 하게 만들고 둘째로는 설령 민주적이고 공공적인 대학이라 할지라도 대학이라는 제도 자체가 과연 지성과 진실을 정립하고 공통화하는 기관인가 하는 물음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했습니다.
김정연 [20:14:05]
“대학이 사회변화를 선도하지도, 사회 비판과 실천을 선도하지도 못하는 상황은 구조적이면서도 역사적인 것인가? 아니면 원래 그런 것인가? 1980~90년대의 대학에서 청년기를 겪은 내가 착시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106)

이런 대목을 보면 자신이 청년기에 겪은 80~90년대의 대학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BOM [20:14:14]
이후에 이야기할 "퀴어한 연대의 불가능성"은 '시민'과 '국가'의 관계를 고찰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요, 이처럼 '자유'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국가'와 '대학'의 관계를 고찰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정환 [20:17:06]
박정희 정권 말기에 실험되고 김영삼 정권에서 도입되어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 윤석열 정부 등에서 본격화되고 심화되어 온 신자유주의화 과정은 대학을 자본축적의 직접적 장치로 전화시켜 왔습니다. 박정희 정권기와 전두환, 노태우 정권기에는 대학이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 기능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가 민주적이고 공공적인 대학 시절인가가 문제가 됩니다.
조정환 [20:22:48]
80~90년대 초의 시기를 염두에 두는 것이라면 당시의 학생운동은 대학의 자기운동이라기보다 노학연대의 이념 하에서 노동운동과 연합하는 비대학, 탈대학, 반대학 운동의 성격이 좀 더 강하지 않았던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무림의 ‘존재 이전’이라는 말은 대학생 신분을 거부하고 노동자가 되고자 하는 노력이었으니까요. 학림이라고 할지라도 대학생을 선도 투쟁의 주체로 설정했지만 주력 주체는 노동계급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노학연대를 벗어난 학생의 자기운동화가 추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연 [20:24:16]
저자는 오늘날 “대학에서 억압·착취당하는 '당사자'는 왜 저항에 나서지 못하는가?”라고 묻고 그 이유들을 상세하게 목록화한 다음, 극복 방법으로 “저항이나 실천에 대한 개인적 리스크를 집단·제도의 리스크로 전환하고, 대학과 교육 당국에 가능한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것”, “'조직화'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발화와 행동의 조건을 조금이라도 우호적으로 바꾸는 일”, “대학과 학술장의 대항공론 주체(대학원생 및 비정규교수노조, 여성 연구자 모임, 종교·노동·학술 네트워크)와 공간, 외부 자원과의 결합을 통해 정치적 기회를 열어가는 것”, “대학 내부에서 비정규직들에게 자연화된 권위와 헤게모니 장치에 균열을 내는 것”, “저항이 없는 게 아니라 어딘가에 늘 있고 '주체'도 있지만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런 작용 자체에 대항하는 일”, “정보의 네트워크를 새로 구축하고 한국식 학술 사회의 인간관계나 상징권력의 작용을 합리적 계약관계로 전환하는 일”, “결국 개인으로서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단결로 얻는 보상을 최대화하는 것” 등을 한 문단에 걸쳐 제출합니다. (136)
김정연 [20:26:05]
이러한 조치들이 대학 신자유주의화의 심화, 능력주의 파시즘화의 심화를 막을 수 있을까요?
조정환 [20:35:57]
대안들이 나열되고 있어 이것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효과를 나타낼지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대안들이 주어진 대학 제도 속에서 모색될 뿐 대학이 놓여 있는 시민사회와 다중지성 체제와의 관계 속에서 숙고되지는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광장 비판'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대학 비판'이라는 과제를 등한시할 위험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 경우, 필자가 제기하고 있는 모순들과 문제들을 수반하면서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대학 자체의 사회 내에서의 기능을 암묵적으로 긍정하면서 대학의 대학 내적 문제점을 개혁하는 데에 관심을 쏟는 것에 그칠 위험이 커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조정환 [20:41:39]
나로서는 (필자가 관심의 초점으로 삼고 있는) '공공성'이 혁명적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공통성'과의 실제적이고 유효한 관계 설정 속에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통화와 의식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공공성은 사적인 것(the private)의 보조물로 전락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능력주의 비판의 근거도 '자유'보다는 우선 '공통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정환 [20:46:42]
이런 의미에서, 대학의 민주화와 공공화 문제는 대학이 다중의 공통화와의 관계에서 어떤 위치,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공통화를 촉진하는지 깨뜨리는지 등)에 대한 검토를 떠나서는 의미를 갖기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대학개혁은 아래로부터 (인간·비인간) 다중이 발전시키고 또 요구하는 집단지성과의 관계 속에서 그 방향을 잡아 나가야 할 것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BOM [20:50:49]
동의합니다. 다중의 공통화와의 관계에서 대학의 민주화를 바라볼 때, 능력주의와 불평등을 넘어설 수 있는 진정한 해법이 나오리라 생각됩니다.
조정환 [20:51:24]
이 맥락에서 보면 "검열과 간섭으로부터의 자유"를 대안적인 자유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대학인'이 위로부터 권력의 검열과 간섭만이 아니라 다중의 섭정적 감시와 개입까지 검열과 간섭으로 볼 여지를 열어둔다는 점에서 문제적이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BOM [20:54:15]
네, 저도 '인식론적 자유주의'를 읽을 때, 어쩌면 이 자유 하에서 대학(혹은 지식인)이 사회적 책임에서도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BOM [20:54:29]
이쯤에서 10분 휴식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조정환 [20:54:36]
좋습니다.
이명선 [20:54:44]
네
김정연 [20:55:18]
네
BOM [20:55:22]
네
BOM [20:55:36]
휴식 후 9시 5분에 다시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BOM [21:06:22]
세미나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조정환 [21:06:28]
네
신은주alma [21:06:40]
네
김정연 [21:06:44]
네
BOM [21:06:47]
두 번째로 다룰 글의 제목은 "퀴어한 연대의 불가능성"입니다.
BOM [21:07:13]
글을 읽으며 미리 생각하신 토론거리가 있다면 자유롭게 올려 주세요.
인상적인 내용, 추가 자료, 질문, 내용에 관한 생각 등을 올려주셔도 좋습니다.
조정환 [21:09:44]
이 글은 매우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느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문제를 광장과 관계 짓는 방식이 매우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조정환 [21:13:52]
매우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말은, 광장에 참여한 사람들이 다양하고 그 다양성은 어떤 등가성, 평등, 책임도 보장되지 않는 비대칭의 다양성인데, 그 비대칭의 차이와 다양성 사이의 연대가 가능한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김정연 [21:14:58]
저자의 주장을 표현한다고 느껴진 대목입니다.

“광장에서 형성된 연대는 매우 쉽게 ‘시민의 승리’라는 언어로 회수되며, 그 안에서 작동했던 신체들의 복잡한 언어들은 재빠르게 단조로워진다. 남태령 집회는 분명 기존의 운동 문법을 교란했고, 소속과 자격을 묻지 않는 평등한 주체 출현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러나 광장의 시간이 지나면, 이 실천은 다시금 '책임감 있는 시민적 참여' '성숙한 민주주의' '건강한 연대'라는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한다. 바로 이 번역의 순간에, 다시금 불평등이 재생산된다.”(163)
조정환 [21:15:45]
다른 하나는 광장 자체에 대한 이해가 광장에 대한 정치적 포섭에 대한 이해로 계속 환원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김정연 [21:16:58]
저자는 “광장의 스펙타클을 버려야 한다”, “광장을 정치의 기준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정치를 광장의 성취만으로 기억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조정환 [21:17:23]
위 인용문에서도 나타나다시피, "….회수되며…단조로워진다….시간이 지나면…번역되기 시작한다…번역의 순간에…" 이 말들은 광장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광장 이후, 광장에 대한 해석과 포섭의 시간에 이루어지는 사건들입니다.
조정환 [21:18:06]
이 ‘이후 시간’의 해석적 사건들을 광장 자체에 투사함으로써 '광장 비판'이라는 용어가 형성되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조정환 [21:19:50]
즉 광장에 대한 특정한 해석, 특히 위로부터의 포섭적 해석에 대항해 다른 해석을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야 할 순간에 광장과 거리를 두면서 광장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조정환 [21:24:22]
광장으로부터 광장의 스펙터클로 직행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광장과 '광장의 스펙터클'(예컨대 응원봉 예찬 같은 언론 기사)은 광장의 시간이 진행되고 있을 때에도 동시적으로 전개되었던 두 개의 사건 층위였는데 이 글의 필자는 광장의 시간이 끝난 후에 곧바로 광장을 광장의 스펙터클과 동일시하면서 광장은 스펙터클이었다는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는 쪽으로 나아갑니다. 복잡한 사건의 단선화가 이루어진달까요?
조정환 [21:25:42]
살펴 보면 이 환원은 퀴어의 비광장적 특이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조정환 [21:28:05]
'좋은 시민'이라는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퀴어의 존재론적 특이함을 구출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BOM [21:28:12]
말씀을 듣고 보니, 이상하지만 사실 글을 읽는 동안에는 그 이상함을 인지하기 어려울 만큼 자연스럽고(?) 익숙한 흐름으로 저에게는 다가왔습니다. 그렇다면 글에서 퀴어 정체성이 공통화로 나아가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조정환 [21:29:30]
저로서는, 퀴어를 광장 ‘외부’에서 정체화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정연 [21:29:44]
저자가 출연한 유튜브 영상을 보면 광장에서 자신이 느꼈던 어떤 불편함(종교적인 분위기에 대한 거부감도 표현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수많은 ‘가시화된’ 광장이 있었음에도 그로 인해 정권을 잡은 세력이 주는 반복적인 배신감/열패감(집권 후 차별금지법 제정이 추진되지 않는다, 문재인 이후 윤석열이 집권했다 등), 탄핵 광장 이전에 있었던 수많은, “기자들이 한 명도 오지 않는” 비가시화된 광장들이 탄핵 광장만큼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 등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김정연 [21:33:14]
이 책을 기획한 박영신 편집자님은 “광장이 빛의 혁명이라는 수식어로 정권을 미화하는 데 쓰이는 수단 정도로 전락해 간 것”에 대한 문제의식도 표현했습니다.
조정환 [21:33:29]
광장에 대해 거는 기대와 광장의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은 당사자의 실천(조직화를 포함하여) 이외의 다른 것일 수 없지 않을까요? 광장의 ‘현실’이 수많은 존재들의 실천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정환 [21:36:45]
혁명에 대한 관조적 태도가 문제적이지 않을까요?
김정연 [21:38:36]
저는 이런 문장을 읽었을 때

“광장의 스펙터클은 퀴어와 돌봄을 잠시 등장시킬 수는 있지만, 그들이 머물 수 있는 시간과 형식을 제공하지는 않는다.”(168)

그렇다면 필자의 결론은 “광장의 제도화”(퀴어와 돌봄이 머물 수 있는 시간과 형식의 구축)로 나아가지 않을까 했는데 광장의 스펙터클을 버리자, 광장을 정치의 기준으로 삼지 말자는 쪽으로 나아가서 조금 의외였던 것 같습니다.
조정환 [21:39:39]
저는 개인적으로 이 책이 의미 있는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혁명에 대한 평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책의 기획 의도도 이러한 방향을 함축하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BOM [21:45:04]
혁명에 대한 평론을 하는 것과 혁명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를까요?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지 궁금합니다.
조정환 [21:47:13]
만약 이재명 정부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하고 추진하지 않았다면 공약을 지키라고 압박을 가하는 것이 당면한 과제일 것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요구’였는데 그 요구는 광장의 일부에서 제기된 것이었고 이재명 정부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광장과 혁명은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열쇠가 아닙니다. 거기에서 다양한 요구들이 제기되지만 참가자들의 투쟁역량에 따라 해결할 수 있는 과제들이 해결되고 나머지는 갈등적 과제로 남게 됩니다. 예컨대 내란을 진압한 것은 이번 혁명이 수행한 중요한 성과입니다. 그 진압과정이 어떤 방식으로 완료될지, 그 진압이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지는 아직도 미결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조정환 [21:49:02]
'평론'이라는 말로 혁명 외부에서 혁명을 관조하면서 하는 이야기라는 의미를 담고자 했습니다. 실천적 연루가 누락되면 '이야기'의 의제 설정부터 가치 평가까지 화자의 자의성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조정환 [21:55:34]
문재인 이후 윤석열이 집권한 것뿐만 아니라 촛불혁명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것도 촛불혁명이 '원인'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혁명은 진공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존재들, 세력들, 말들 사이의 갈등과 투쟁입니다. 이 때문에 혁명에 어떤 세력이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했는가를 물어야 할 구체적 분석과 역대응의 시간이 원망, 혐오의 시간으로 무력화되지 않게 주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혁명이 있었다고 혁명이 무의미해질 수는 없습니다. 세계사의 모든 혁명적 과정은 관조적으로 보면 원망스럽고 혐오스러울 실패를 수반했습니다. 반혁명, 수동혁명이 혁명에 동시 병발하거나 뒤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실패를 넘어서는 힘은 늘 새롭게 성장해 나오곤 했습니다.
조정환 [21:57:17]
혁명에 대한 반혁명적 대응들을 반혁명 세력/사건의 문제로 보지 않고 혁명 자체에 내재했던 어떤 문제의 표현으로 보는 순간 혁명은 불필요한 장애물, 거리를 두어야 할 위험으로 취급되게 됩니다.
조정환 [22:01:24]
"광장이 빛의 혁명이라는 수식어로 정권을 미화하는 데 쓰이는 수단 정도로 전락해 간 것"이라는 말은 내란을 진압하는 시간동안 매 순간의 피 말리는 투쟁들을 간과하는 것이며 이재명 정부 등장 이후 여러 계급 세력들 사이의 각축전을 간과하는 표현으로 읽힙니다. 그리고 화자 자신이 그 '전락'(?)의 과정과 맺는 관계가 누락되어 있습니다.
BOM [22:05:24]
책의 뒷면에 발췌된 책의 <서문>에는 "이 책이 내세운 '광장 비판'은 정치 현실에 대한 총괄적 비판이다."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정치 현실"은 "제도 정치"와 구별되는 표현인데 이것들이 어느새 뒤섞이고 따라서 정치와 혁명의 관계는 알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조정환 [22:07:29]
만약 빛의 혁명이 실패하여 윤석열 정권이 계속되고 있다면 우리 사회의 의제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입니다. 차별금지법 쟁취는커녕 언론 자유, 정치활동의 자유 쟁취가 의제가 되고 있겠지요. 시위할 자유를 달라, 집회할 자유를 달라며 싸워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정도라도 다행이 아니냐고 위안하려는 것이 아니라 차별금지법에서 내란진압에 이르는 그 어느 투쟁 과제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입니다.
BOM [22:08:22]
세미나를 마칠 시간이 훌쩍 넘어 버렸습니다.
조정환 [22:08:59]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정치에 대한 관조적 대상화의 결과로 인해 ‘총괄적 비판’으로 되고 있지는 않은가를 살펴 볼 필요도 있다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BOM [22:09:49]
네. 오늘의 토론을 바탕으로 다음 글들을 읽어 보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BOM [22:10:05]
세 편의 글이 남았는데요, 범위를 어떻게 정하면 좋을까요?
조정환 [22:11:45]
시간 부족으로 충분히 말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데 퀴어를 광장의 외부에 특정한 정체성으로 놓아가는 방향보다 지 광장 내부에서의 어긋남, 차이로 설정하는 방향이 선택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두 번째 글에 대한 소감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BOM [22:12:27]
마무리 발언 감사합니다.
BOM [22:12:33]
다음 범위는 세 편의 글을 모두 읽는 방법과 두 편의 글을 먼저 읽고 이후 남은 한 편과 함께 책 전체를 토론하는 방법 중 무엇이 좋을까요?
조정환 [22:13:58]
어느 쪽도 좋은데 세 편의 글을 읽어 마무리하는 쪽이 어떨까 싶습니다.
김정연 [22:14:26]
찬성합니다
이명선 [22:14:33]
좋습니다
BOM [22:14:38]
네 좋습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 남은 세 편의 글을 토론하겠습니다.
신은주alma [22:14:44]
좋습니다!
BOM [22:14:56]
다음 세미나는 10월 17일 저녁 7시 30분입니다.
BOM [22:15:12]
세미나를 마치겠습니다.
김정연 [22:15:18]
감사합니다.
장귀 [22:15:19]
감사합니다.
신은주alma [22:15:21]
이모티콘
BOM [22:15:33]
수고하셨습니다. 편안한 밤 되시고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조정환 [22:15:33]
수고 많으셨습니다.
신은주alma [22:15:41]
이모티콘
이명선 [22:15:41]
감사합니다
조정환 [22:15:45]다음 시간에 뵐게요.

정리

1. 개요

• 전반부 — 자유·대학·공통화: 극우적 자유와 신자유주의적 자유의 구분에서 출발해, 인식론적 자유주의가 대안이 될 수 있는지 검토했다. 논의는 ‘대학의 민주성과 공공성을 회복하자’는 목표의 역사적 전제와 제도적 한계를 묻고, 대학을 다중의 집단지성·공통화와 연결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 후반부 — 광장·퀴어·혁명: 비대칭적인 차이들 사이의 연대와 시민적 언어에 의한 포섭 문제를 검토했다. 이후 광장의 실천, 광장을 재현하는 스펙터클, 광장에 대한 정치적 포섭을 구별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혁명을 외부에서 평가하는 태도와 실천적으로 연루된 비판의 차이를 논의했다.

• 두 논의를 잇는 질문: 대학의 공공성이나 광장의 성취를 평가할 때, 이미 주어진 제도와 지배적 해석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아래로부터의 공통화와 당사자들의 실천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2. 핵심주장

가. 「두 개의 자유」: 대학의 회복을 넘어 지성의 공통화로

글의 문제 제기에 대해

극우의 ‘자유’와 시장·자본의 지배를 허용하는 신자유주의의 ‘자유’는 상호작용하며 대학의 위기를 만들어 왔다. ‘능력주의 우파’와 ‘능력주의 리버럴’은 이 과정의 공동 주체로 제시된다. 한편 자유언론·자유과학과 연결되는 인식론적 자유주의는 앞의 두 자유와 겹치면서도 다른 맥락의 자유로 소개되며, 대학의 민주화·공공화가 능력주의와 불평등의 극복 과제로 제시된다.

토론에서 제기된 해석과 비판

1. 자유 개념의 구분이 불충분하다. 조정환은 두 자유를 각각 ‘질서와 정체성의 자유’, ‘경쟁의 자유’로 이해할 수 있는지 물었고, 김정연과 BOM은 관련 해석을 보탰다. 이는 토론상의 잠정적 구분이지 책의 명시적 정의는 아니다. 김정연은 저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자유가 무엇인지 질문했다.

2. ‘다시 민주적이고 공공적인 대학’이라는 목표의 역사적 전제를 검토해야 한다. 김정연은 저자의 1980~90년대 경험을 짚었다. 조정환은 당시 학생운동의 저항성을 대학 제도 자체의 민주성으로 곧바로 볼 수 없으며, 노학연대의 추구는 대학이 대학을 넘어서려는 노력의 표현이었다고 평가했다.

3. 대학 내부의 개혁만으로 대학의 사회적 기능을 비판할 수는 없다. 김정연은 책에 제시된 조직화·정보 공개·위험 분담 등의 조치가 신자유주의화와 능력주의 파시즘화를 막을 수 있는지 물었다. 조정환은 개별 대안들의 상호작용이 불명확하고, 대학과 시민사회·다중지성 체제와의 관계에 대한 검토가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4. 공공성은 공통화와의 관계에서 평가해야 한다. 조정환은 공통화와 연결되지 않은 공공성이 사적인 것의 보조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학개혁의 방향도 아래로부터 인간·비인간 다중이 발전시키는 집단지성을 촉진하는지, 깨뜨리는지와 같은 대학 울타리 너머와의 관계를 기준으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BOM은 이에 동의했다.

5. 학문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을 함께 물어야 한다. 조정환은 ‘검열과 간섭으로부터의 자유’가 다중의 섭정적 감시와 개입까지 배제하는 논리로 쓰일 가능성을 지적했다. BOM도 지식인이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것은 아닌지 질문했다. 문제는 자유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억압과 아래로부터의 개입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이다.

나. 「퀴어한 연대의 불가능성」: 광장의 포섭을 광장 자체와 동일시하지 않기

글의 문제 제기에 대해

광장의 복잡한 신체와 실천이 ‘시민의 승리’, ‘성숙한 민주주의’, ‘건강한 연대’라는 언어로 번역될 때 차이와 비대칭성이 지워지고 불평등이 재생산된다. 퀴어와 돌봄이 잠시 가시화되더라도 지속적으로 머물 시간과 형식은 제공되지 않는다. 김정연은 글의 이러한 문제 제기가 광장의 제도화가 아니라 광장의 스펙터클과 거리를 두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점에 의문을 표했다.

토론에서 제기된 해석과 비판

1. 비대칭적 다양성 사이의 연대는 중요한 문제다. 조정환은 광장의 다양성이 등가성·평등·책임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으며 이 비대칭적인 존재들 사이의 연대 문제를 제기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비판은 이 질문 자체보다 그것을 광장과 관계 짓는 방식에 집중되었다.

2. 광장·스펙터클·포섭은 서로 다른 층위다. 조정환은 광장의 실제 실천과 언론 등의 스펙터클화가 동시적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사후의 해석·포섭도 광장 자체에 투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필요한 것은 광장으로부터의 이탈보다 포섭적 해석에 맞서는 해석 투쟁과 광장의 재구성이라는 입장이다.

3. 퀴어를 광장 외부의 고정된 정체성으로 놓지 않아야 한다. 조정환은 퀴어를 광장 내부의 어긋남과 차이로 설정하는 방향을 제안했다. BOM의 ‘퀴어 정체성이 공통화로 나아가지 못한 것인가’라는 질문도 이 쟁점과 연결된다. 다만 이 대안은 마무리 제안에 머물렀고 충분히 논의되지는 않았다.

4. 미해결 요구와 혁명의 성과를 동시에 보아야 한다. 조정환은 내란 진압을 중요한 성과로 평가하면서도 차별금지법 등 미해결 요구를 계속 투쟁할 과제로 보았다. 혁명은 만능열쇠가 아니며, 성과를 인정하는 것이 미해결 과제를 포기하거나 현 정부에 만족하자는 뜻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5. 정권의 등장과 반혁명적 대응을 혁명의 단순한 결과로 환원하지 않아야 한다. 조정환은 혁명 이후의 정권과 실패를 설명하려면 각 세력의 대응, 계급적 각축, 반혁명·수동혁명을 구체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섭의 책임을 혁명 자체에 돌리면 혁명을 회피해야 할 대상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는 비판이다.

6. 비판에는 화자 자신의 실천적 관계가 포함되어야 한다. 비판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자의 실천적 연루가 빠질 때 의제 설정과 평가가 자의적으로 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3. 대화의 특이점

• 텍스트 내부의 어휘와 논리적 연결을 검토했다. ‘두 개의 자유’라는 제목과 세 번째 자유의 등장, ‘자유를 위한 투쟁’이라는 소제목과 본문의 관계, ‘다시’라는 표현의 역사적 전제가 주요 질문을 낳았다.

• 공통화가 두 글을 관통하는 평가 기준으로 등장했다. 전반부에서는 대학과 다중지성의 관계를, 후반부에서는 퀴어의 차이와 광장 내부의 연대를 재검토하는 기준으로 쓰였다. 단순한 공공성 회복이나 정체성의 인정에 머물지 않으려는 방향이 특징적이다.

• 사건의 시간과 층위를 구별하는 비판이 두드러졌다. 광장과 광장 이후의 포섭을 구분할 뿐 아니라 광장 진행 중의 실천과 그것의 실시간 스펙터클화도 구별했다. ‘광장 → 정권 → 배신’이라는 단선적 서사 대신 동시적인 갈등과 대응을 분석하려 했다.

• 문제 제기의 가치와 결론의 타당성을 분리했다. 퀴어·돌봄의 비가시화와 광장 내부의 비대칭성을 중요한 문제로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곧 광장 자체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결론을 정당화하는지는 별도로 물었다.

• 질문·인용과 개념적 비판이 맞물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김정연은 책의 대목과 외부 발언을 소개하고 질문을 제기했으며, 조정환은 역사적·개념적 비판을 전개했다. BOM은 진행과 함께 국가·대학, 정치 현실·제도 정치, 평론·실천의 관계를 질문했다.

• 외부 발언의 원자료 확인은 남아 있다. 유튜브 출연자의 경험과 편집자의 기획 의도는 김정연의 소개를 통해 논의되었다. 대화만으로 해당 발언의 전체 맥락이나 정확한 표현을 확정할 수는 없다.

4. 남은 과제

가. 대화에서 드러난 미해결 쟁점과 후속 검토 방향

1. 세 자유의 관계를 명료화하기: 극우적 자유, 신자유주의적 자유, 인식론적 자유주의는 어디서 겹치고 갈라지는가? 능력주의를 넘어서는 자유와 공통화는 어떤 관계를 맺는가? 책의 관련 대목을 다시 대조할 필요가 있다.

2. 대학의 역사와 학생운동의 역사를 구별하기: ‘민주적이고 공공적이었던 대학’이라는 진술은 어떤 시기·제도·실천을 가리키는가? 학생운동의 저항을 대학 제도의 움직임과 동일시하지 않는 역사적 검토가 필요하다.

3. 공공성과 공통화의 연결을 구체화하기: 대학 내부의 조직화·정보 공개·위험 분담을 대학 밖의 집단적 지성과정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4. 학문의 자유와 아래로부터의 개입의 경계를 정하기: 국가·자본의 검열을 막으면서 다중의 감시·참여·책임 요구를 수용할 기준은 무엇인가? ‘섭정적 개입’의 구체적 형식과 한계를 더 논의해야 한다.

5. 광장의 실천·재현·포섭을 사례별로 분석하기: 남태령 집회, 응원봉 담론, ‘시민의 승리’ 서사 등을 대상으로 누가 어떤 차이를 지우거나 보존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가시화된 광장과 가시화된 광장의 관계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6. 퀴어와 돌봄이 지속할 시간·형식을 설계하기: 광장 내부의 어긋남과 차이를 보존하는 조직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김정연이 제기한 ‘광장의 제도화’가 새로운 자격 심사나 정상성의 기준을 재생산하지 않을 조건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7. 혁명·반혁명·수동혁명·제도 정치의 관계를 구체화하기: 내란 진압의 성과, 이후의 계급적 각축, 차별금지법 등 미해결 요구를 하나의 성공·실패 평가로 묶지 않고 각각의 주체·역량·대응을 분석해야 한다.

8. 실천적으로 연루된 비판의 기준을 발전시키기: 비판자가 자신과 사건의 관계를 드러내면서도 참여 경험을 비판의 자격 요건으로 만들지 않을 방법은 무엇인가? 이는 대화의 ‘관조적 평론’ 비판을 더 명료하게 하기 위한 후속 질문이다.

위 항목은 대화에서 남은 질문을 정리하고 일부를 후속 검토 방향으로 구체화한 것이며, 대화의 합의에 대한 기록은 아니다.

나. 확정된 다음 세미나 계획

• 일시: October 17, 2026 7:30 PM

• 읽기 범위: 『광장 비판』의 남은 세 편을 모두 읽고 토론한다.

전체 110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사항
진실연대자들의 뉴스레터 『TAPic』 모음
bomi | 2021.03.29 | 추천 5 | 조회 2027
bomi 2021.03.29 5 2027
공지사항
뉴스레터 TAPic 소개
bomi | 2021.03.07 | 추천 4 | 조회 1657
bomi 2021.03.07 4 1657
108
New [TAPic 105호] 『광장 비판』 2장, 3장 토론
진실연대자들 | 2026.10.04 | 추천 0 | 조회 155
진실연대자들 2026.10.04 0 155
107
[TAPic 104호] 『광장 비판』 서문, 1장 토론
자율평론 | 2026.09.06 | 추천 1 | 조회 460
자율평론 2026.09.06 1 460
106
[TAPic 103호] 『21세기 스파르타쿠스』 3부 사빠띠스따 토론
진실연대자들 | 2026.08.16 | 추천 1 | 조회 292
진실연대자들 2026.08.16 1 292
105
[TAPic 102호] 『21세기 스파르타쿠스』 2부 열린세미나 갈무리
진실연대자들 | 2026.08.05 | 추천 0 | 조회 262
진실연대자들 2026.08.05 0 262
104
[TAPic 101호] 『21세기 스파르타쿠스』 1부 열린세미나 토론
진실연대자들 | 2026.08.05 | 추천 0 | 조회 206
진실연대자들 2026.08.05 0 206
103
[TAPic 100호] 6.3 지방선거와 보궐선거
진실연대자들 | 2026.08.05 | 추천 0 | 조회 218
진실연대자들 2026.08.05 0 218
102
[TAPic 99호] 『비인간 권력』 결론 「코뮤니즘적 AI」 토론
진실연대자들 | 2026.08.05 | 추천 0 | 조회 203
진실연대자들 2026.08.05 0 203
101
[TAPic 98호] 『비인간 권력』 3장 토론
진실연대자들 | 2026.08.05 | 추천 0 | 조회 185
진실연대자들 2026.08.05 0 185
100
[TAPic 97호] 『비인간 권력』 2장 토론
진실연대자들 | 2026.08.05 | 추천 0 | 조회 199
진실연대자들 2026.08.05 0 199
99
[TAPic 96호] 『비인간 권력』 1장 토론
진실연대자들 | 2026.08.05 | 추천 0 | 조회 222
진실연대자들 2026.08.05 0 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