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호] 『존재의 지도: 기계와 매체의 존재론』ㅣ강미정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0-09-24 14:50
조회
87
 

『존재의 지도: 기계와 매체의 존재론』


강미정


21세기에 접어든 후 서구 철학계 일각에서 ‘비인간 전회’(the nonhuman turn)의 물결이 형성되었다. 비인간이라는 화두는, 인간너머의 존재에 관한 포스트휴머니즘 및 트랜스휴머니즘의 사유뿐만 아니라 현재의 지질시대를 인류세라고 명명한 생태학적 위기감과 더불어 부상했다. 현재 진행 중인 비인간주의로 향한 흐름 가운데는 ‘사변적 실재론’ 또는 ‘객체지향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 OOO)을 표방하며 철학의 물줄기를 인식론으로부터 존재론으로 바꿔 놓으려는 철학자 그룹이 있다. 『존재의 지도』의 저자 레비 브라이언트는 OOO의 명명자로서 『사변적 전회』(Speculative Turn, 2011)를 편저하기도 했다. 『사변적 전회』에 공저자로 참여하고 『네트워크의 군주』(2009), 『비유물론』(2016) 등을 출판한 그레이엄 하먼에게도 역시 OOO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브라이언트와 하먼은 공히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하는 것들(things)을 ‘객체’로 바라보는 평평한 존재론을 지향해 왔다. 최근 들어 이 두 철학자의 저서들이 속속 우리말로 번역됨에 따라 국내에서도 비인간주의적이고 객체지향적인 철학에 관한 관심이 점증하고 있다. 지난 7월 갈무리에서 출판된 브라이언트의 『존재의 지도』에 관한 소견을 밝히면서 그의 철학적 입장을 하먼의 그것과 비교해 보는 것은 OOO를 이해하는 한 방안이 될 것 같다. 두 철학자가 유사한 정향을 띠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상 그들의 학문하기 노선은 매우 상이하다. 그러하기에 양자가 어떻게 다른 견해를 펼쳐 왔는지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접하는 것은 브라이언트의 사상을 좀 더 명확하게 해줄 것이다.


무엇보다도 브라이언트와 하먼의 입장은 유물론(가령 들뢰즈적인 신유물론)을 지지하는가 하는 지점에서 차별화된다. 하먼(2020)이 『비유물론』에서 신유물론의 강령들을 조목조목 기각했던 반면, 브라이언트는 처음부터 스스로 유물론자임을 천명하고 유물론 전통을 갱신할 것을 다짐한다(17-28). 브라이언트의 존재지도학은 과거의 기호학적이고 담론주의적인 유물론이 봉착한 한계를 극복하고 마르크스가 초석을 놓은 실천철학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려는 방법론적 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존재지도학을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자들(entities) 또는 존재자들의 네트워크들 사이의 관계에 관한 지도제작(cartography)이라고 규정하고 있다(173). 브라이언트는 『객체들의 민주주의』(2011)나 『사변적 전회』에서 사용했던 ‘객체’라는 용어를 ‘기계’로 대체하고, 그 함의의 상당 부분을 매클루언이나 키틀러가 제시한 매체(media) 개념에서 끌어온다. 그는 ‘기계’와 ‘매체’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때 ‘매체’는 매클루언의 현상학적이고 휴먼주의적인 접근을 벗어나 포스트휴먼주의적으로 수정된 의미를 보유하고 있다. 브라이언트에 따르면 “매체가 메시지이며, 인간의 감각을 확장시킨다.”라는 매클루언의 언명은 비인간 영역으로 확대되어야 하고, “한 기계가 또 다른 기계의 매체로 작동하며[즉, 또 다른 기계를 매개하며], 전자가 후자의 감각을 증폭시키거나 후자의 활동을 수정한다.”(63) 라고 고쳐 써야 한다. 그럴 때에야 기계들이 주위 환경 또는 다른 기계들과 상호작용하는 관계망의 지형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라이언트나 하먼이 ‘객체지향적’ 견지를 확보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중심적 시각을 벗어나 모든 유형의 존재자에게 동등한 존재론적 위상을 수여하기 위해, 다시 말해 비인간 존재자들에게도 행위능력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브라이언트가 ‘객체’보다 ‘기계’를 선호하는 주요한 이유는 ‘객체’를 주체에 대립적인 존재자이자 주체에 의해 상정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인간중심적 사고 습관에 있다. 객체와 달리 ‘기계’는 “주체와 객체의 관계를 심문하기에 대한 철학적 강박에서 벗어나게”(37) 해준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브라이언트는 “존재자들이 입력물에 역동적으로 작용하여 출력물을 산출하는 방식 강조하기 위해”(25) 존재자를 ‘기계’라고 부르고 있다. 이와 같은 OOO에서는 ‘세계’도 하나의 기계회집체, 즉 “어떤 생태에서 다른 기계들의 매개를 통해서 상호작용하는 기계들이 서로 접속하여 구성한 회집체(assemblage)”로 간주된다(177). 존재를 기계들의 회집체로 간주하는 브라이언트가 들뢰즈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유기체의 전체주의적 존재 방식과 기계의 민주주의적 방식을 변별한 후 후자를 취함으로써 ‘평평한’ 존재론을 전개했던 들뢰즈의 논점을 이해하는 독자들에게는 브라이언트의 규정이 상당히 친숙하게 다가갈 것이다. 더욱이 브라이언트가 존재하는(be) 것 자체보다 그것이 무엇을 행하고(do) 무엇이 되는가(become)에 더 초점을 맞추는 생성의 존재론을 펼치고 있기에, 그의 존재지도학은 포스트들뢰즈적 사상의 범주에 귀속된다고 하겠다.


하지만 브라이언트는 들뢰즈의 초월적 경험론을 비롯한 철학사상들 외에도 매체이론, 생태철학, 과학철학의 성과들을 광범위하게 수용함으로써 독자적인 “포스트휴먼 매체생태론”으로서 OOO 또는 MOO(machine-oriented ontology)를 구축하고 있다. 그에게는 인간, 나무, 바위, 자동차,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무형적이고 추상적인 헌법, 소설, 도시도 모두 기계다. 모든 종류의 기계들과 그 네트워크들은 인간 및 기타 다른 기계들의 행동을 촉발시키는 역능을 보유한 명령으로 작동한다. 예컨대 도시는 다종다양한 유무형의 기계들로 이뤄져 있다. 인간이라는 유기기계는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특정 방식으로 조작(operations)을 수행하고, 각종 제도와 규범 같은 무형기계들은 도시의 삶을 규제한다(159-163). 도시의 조직을 유지하고 증가하는 엔트로피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의 흐름 또는 유통이 필요하다. 에너지와 물질의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기계 회집체인 도시는 내부와 외부 모두로부터 에너지원을 공급받고 소비의 부산물로 쓰레기를 산출한다. 요컨대 비인간주의적으로 도시 생태를 바라본다면 그것을 조직하는 사회적 관계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비판적 관점을 보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브라이언트는 생태계에서 기계 회집체들의 역능과 그 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엔트로피, 에너지 흐름, 중력, 시공간의 토폴로지 같은 개념들을 전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작업을 통해 비판이론의 새로운 도구를 제공할 메타정치와 메타윤리를 수행하고 있다.


연속적 발생이 아닌 단속적(斷續的) 도약을, 사물의 행함보다 그것임에 비중을 두는 하먼(2020)은 확실히 브라이언트가 갱신하고자 하는 유물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비유물론을 공언하고 물자체에 대해 논한다 하더라도 하먼의 객체지향 철학이 관념론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하먼은 사물 또는 객체의 있음(being)에 대해 논구하는 실재론자이지, 존재가 인간의 앎에 의존한다고 믿는 관념론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브라이언트나 하먼은 둘 다 실재론자지만, 이른바 신유물론에 대해 어떤 전망을 갖는가에 따라 양자의 OOO는 결정적으로 갈라진다. 철학사 전체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 감각적 현상으로부터 물러나 있는 어떤 견고한 실재를 다시 상정하고 실체/명사가 행위/동사에 우선한다고 설파하는 하먼은 다시 전통 철학으로 복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브라이언트나 하먼 모두 20세기 말을 풍미한 비판이론에서 영향을 받았고 나름의 방식으로 그것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나, 포스트 들뢰즈적인 브라이언트보다 전통 철학의 묵직함을 상기시키는 하먼이 외려 더 새롭고 급진적으로 보이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비록 서로 다른 노선을 취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몽동, 들뢰즈, 라투르 같은 선배들의 뒤를 이어 비인간 존재론을 전개하는 그들의 철학은 휴먼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유방식을 제안할 뿐만 아니라, 도처에서 인류세의 위기를 운운하는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재차 질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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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0년 9월 21일 <크리틱-칼>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s://bit.ly/362rtL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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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브뤼노 라투르 지음, 홍철기 옮김, 갈무리, 2009)


이 책은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연구해온 인류학자인 저자 브뤼노 라투르가 근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방식에 던지는 독특하고 근본적인 문제제기이다. 탈근대주의의 근대성 비판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라투르가 말하는 근대인의 본질은 이분법이 아닌 ‘하이브리드’의 증식이다. ‘하이브리드’의 이해를 통해서만 사회와 자연, 정치와 과학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현재의 정치·사회적 위기와 환경·기술적 위기라는 이중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비유물론 : 객체와 사회 이론』(그레이엄 하먼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20)


사회적 세계에는 어떤 객체들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특정한 피자헛 매장은 그 매장을 구성하는 종업원과 탁자, 냅킨만큼 실재적일 뿐만 아니라, 그 매장이 종업원과 손님의 삶에 미치는 사회적 및 경제적 영향과 피자헛 기업, 미합중국, 행성 지구만큼 실재적이기도 한가? 이 책에서 객체지향 철학의 창시자인 저자 그레이엄 하먼은 사회생활 속 객체의 본성과 지위를 규명하고자 한다. 객체에 대한 관심은 유물론의 한 형태에 해당한다고 흔히 가정되지만, 하먼은 이 견해를 거부하면서 그 대신에 독창적이고 독특한 '비유물론' 접근법을 전개한다.


가상과 사건 : 활동주의 철학과 사건발생적 예술』(브라이언 마수미 지음, 조성훈 옮김, 갈무리, 2016)


사건은 늘 지나간다. 어떤 사건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 지나감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현실적으로 현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방금-존재했던 것과 곧-존재하려고-하는-것을 포괄하는 경험을 지각하는가? <가상과 사건>에서 브라이언 마수미는 윌리엄 제임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질 들뢰즈 등의 저작에 의존하여 ‘가상’이라는 개념을 이 물음에 접근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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