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5_발제] 안티오이디푸스 593-605

작성자
objectapple
작성일
2020-10-25 09:54
조회
22
# 반-정신의학마저도
19세기 이래로, 정신 질환들과 광기에 대한 연구는 가족주의적 기본전제와 그 상관물들, 즉 인물론적 기본전제와 자아의 기본전제에 사로잡혀 있어 왔다.

정신분석은 정신의학과 단절하기는커녕, 정신의학의 요구들을 정신병원 밖으로 옮겨 놓고, 특히 가족에 대해 내부적·내공적·환상적인 <자유로운> 사용을 강요했는데, 이런 사용은 신경증이라고 떼어 놓았던 것에 특별히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더 어이없게도 반-정신의학은 사회적·분열발생적 인과성을 재전개된 가족들 속에서 찾았다. (...) 베이트슨의 이중구속(이중의 막다른 골목, 이중조임) (...) 그럴 때 연구자는 / 분열증을 생기게 하는 사회적 매커니즘들을 지정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이 메커니즘들을 사회적 생산은 물론 / 분열증적 과정도 빠져나가는 가족의 질서 속에서 / 발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가장 혁명적인 반-정신의학자 랭의 모순. 하지만 그가 정신의학 실천과 단절하고, 정신병의 참된 사회적 발생을 정하는 일에 착수하고, 과정인 한에서 <여행>의 계속 및 <정상적 자아>의 해소의 필요성을 치료 조건으로 요구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랭이 내세우는 치유책이라곤 단지 <부모 간의 진심 어린 확인>, <현실 인물들의 인정>, 마르틴 부버식의 참된 자아 내지 자기의 발견인 그런 식의 최악의 가족주의적·인물론적·자아적 기본전제들에 다시 빠지고 있다.

본질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사회는 그 하부구조, 그 생산양식, 그 가장 정확한 자본주의경제 회로의 층위에서 분열증화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리비도는 이 사회장을 투자할 때 이 사회장이 소우주-가족에 의해 표현되고 번역되는 형식으로가 아니라 / 이 사회장이 가족 속에서 가족적이지 않으며 가족적이지 않게 투자된 그 절단들과 흐름들을 지나가게 하는 형식으로 투자한다는 것, 따라서 가족적 투자들은 언제나 유일하게 1차적인 사회적-욕망적 리비도 투자들의 결과라는 것, 끝으로 정신적 소외는 이 투자들과 직접 관련되며 사회적 소외 못지않게 사회적이고, 사회적 소외는 그 나름으로 이해관계의 전의식적 투자들과 관련된다는 것 등.

# 분열자는 무엇으로 인해 병들었을까?
분열자란 오이디푸스적, 가족적, 인물론적인 모든 좌표에서 빠져나온 자이기 때문이다. (...) 하나의 병이나 <붕괴>가 아니라 하나의 <돌파>인 분열증적 과정인지를 아는 것이다. 분열증적 과정이란, 우리를 욕망적 생산으로부터 떼어 놓는 벽이나 극한을 뛰어넘고, 욕망의 흐름들을 지나가게 하는 것이다. 랭의 위대함은 (...) 이 여행의 믿기 힘든 효력을 지적할 줄 알았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이른바 정상적 자아를 녹여 버리는 끊임없는 파괴의 임무를 자신의 정립적 임무와 겸비하지 않는 분열-분석은 없다.

분열자는 과정으로서의 분열증 때문에 병든 것이 아니니 무엇으로 인해 병들었을까? 무엇이 돌파를 붕괴로 변형할까? 반대로 그가 병든 것은, 과정의 강제된 정지 또는 과정의 공전의 연속 또는 과정이 억지로 목적으로 여겨지게 되는 방식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그 깊은 경향성 내지 그 절대적 극한을 구성하는 탈코드화된 흐름들 위에 구성되어 있는데,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이 경향성에 반대하고 이 극한을 추출해서, 이것들을 자신이 언제나 더 큰 규모로 재생산할 수 있는 내적인 상대적 극한들로 대체하거나, 그 경향성을 전제주의와 가장 억센 탁압에 종속시키는 공리계로 대체한다. 이런 의미에서 모순은 사회장을 가로지르는 / 흐름들의 층위에 자리 잡을 뿐 아니라, 또한 사회장의 구성 부분들인 흐름들의 리비도 투자들의 층위에도 자리 잡는다. 즉 모순은 전제군주적 원국가의 편집증적 재구성과 정립적인 분열증적 도주선들 사이에 자리 잡는다.
이로부터 다음의 세 가지 실제 가능성이 그려진다.
1. 신경증적 정지들 : 첫째, 과정이 정지되고, 욕망적 생산의 극한이 이전되고, 변장되고, 이제 오이디푸스적 부분집합으로 옮겨 간다. 이때 분열증자는 실효적으로 신경증화되며, 그의 병을 구성하는 것은 바로 이 신경증화이다.
2. 정신병적 목적화들 : 둘째, 분열자가 신경증화에, 오이디푸스에 저항한다. (...) 이 둘째 경우에, 저항하지만 / 모든 면에서 과정을 봉쇄하기에 충분한 신경증화와 대결해서, 과정은 자기 자신을 목적으로 여기기에 이르렀다. 즉 정신병자가 생산된다. (...) 신경증이기보다 긴장병이며, 오이디푸스와 거세이기보다 / 긴장병이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신경증화와 한 효과, 하나의 동일한 병의 역효과이다.
3. 변태적 공전의 연속들 : 셋째, 과정이 공전하기 시작한다. 탈영토화 과정은 더 이상 자신의 새로운 땅을 찾지 못하고 창조하지 못한다. 탈영토화 과정은 오이디푸스적 재영토화, 즉 의고적·잔여적이고 우스꽝스럽게 제한적인 땅과 대결해서, 그럭저럭 사고 없이 기성 질서와 더불어 마련된 훨씬 더 인공적인 땅을 형성하리라. 이는 변태이다. (변태-정신병이고 편집증-신경증 → 모든 것은 과정에 대립하는 신경증화의 결실)
끝으로, 모든 것은 과정이며, 과정으로서의 분열증이다. 왜냐하면 그 고유한 여정들, 그 신경증적 정지들, 그 변태적 공전의 연속들, 그 정신병적 목적화들 등 모든 것은 바로 분열증에 비추어 측정되기 때문이다.

# 넷째 테제 – 사회적 리비도 투자의 두 극
오이디푸스가 사회장 전체를 유한한 가족적 형상에 적용함으로써 태어나는 한, 그는 리비도에 의한 이 사회장의 그 어떤 투자도 내포하지 않으며, 이 적용을 가능하게 하고 필연적이게 하는 아주 특수한 투자를 내포한다. 바로 이런 까닭에 오이디푸스는 우리에게 신경증자의 느낌이기에 앞서 편집증자의 관념으로 보였다. 실제로, 편집증적 투자는 / 분자적인 욕망적 생산을 / 이 생산이 기관 없는 충만한 몸의 표면에서 형성하는 그램분자적 집합에 / 종속시키는 데 있으며, 또 바로 이렇게 함으로써 / 이 생산을 특정한 조건들에서 / 충만한 몸의 기능을 수행하는 사회체 형식에 예속시키는 데 있다.

편집증적 투자가 욕망적 생산을 예속시키는 한, 이 투자에 아주 중요한 것은, 이 생산의 극한이 이전되는 것이요, 또 이 극한이 / 사회적 출발 집합과 / 그에 대응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가족적 도달 부분집합이라는 두 그램분자적 집합 사이의 / 극한으로서, 욕망이 사회적 탄압을 중복하기에 이르는 / 가족적 억압의 덫에 걸리는 식으로, 사회체 내부로 옮겨가는 것이다. (...) 요컨대 오이디푸스는 무의식 자체 속에 사회장의 모든 반동적·편집증적 투자를 내포하며, 이 투자는 / 오이디푸스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 또 전의식적 투자들을 저지할 뿐 아니라 부양할 수도 있다. 따라서 분열-분석의 관점에서 오이디푸스의 분석은, 아들의 혼란한 느낌들을 거슬러 올라가 망상적 관념들까지, 즉 부모나 부모의 내면화된 대표들이나 부모의 대체물들의 투자선들까지 이르는 데 있다.

이 이미지들의 형식 자체, 이것들의 각 장면, 이것들의 가능한 관계들의 집합은, 리비도가 이것들을 가로질러 말을 건네는 하나의 코드의 산물, 하나의 사회적 공리계의 산물이다. 인물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위해 자신의 코드를 투자하는 / 사회적 집합의 파생된 허상들이다. (...) 바로 이런 까닭에 사랑은, 욕망은 반동적 지표들 아니면 혁명적 지표들을 제시한다.

이 혁명적 지표들은 그와 반대로 비-구상적 지표들로 등장하는데, 거기서 인물들은 욕망의 탈코드화된 흐름들에, 진동의 선들에 자리를 내주며, 또 거기서 이미지들의 절단들은 흐름들을 소멸하기는커녕 / 많은 차원에서 흐름들을 통과시키면서 특이점들, 기호-점들을 구성하는 분열들에 자리를 내준다.

인물들과 자아의 형식을 해체하는 것은 전-오이디푸스적 미분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무오이디푸스적 독자성들의 선들, 욕망 기계들을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대상들도 목표들도 원천들도 아닌 / 오로지 형식 내지 기계적 지표들에만 관심을 두는 / 하나의 성 혁명이 있기 때문이다.

<분열-분석의 넷째이자 마지막 테제는 사회적 리비도 투자의 두 극의 구별>

반동적·파시즘적·편집증적 극 VS 혁명적·분열증적 극
: 우리는 / 무의식의 사회적 투자들의 성격을 / 정신의학에서 이어받은 용어들로 규정하는 데 아무 불편함이 없지만,
이는 이 용어들이 사회적 투자들을 / 단순한 투사들로 만드는 가족적 함의를 지니기를 / 그치는 한에서이며,
또 망상이 / 직접적으로 적합한 1차적인 사회적 내용을 갖고 있다고 / 인정받는 때부터다.

욕망적 생산과 욕망 기계들이 / 어떤 권력 형식 내지 선별적 통치 형식 아래서 큰 규모로 구성하는 군집적 집합들로, 욕망적 생산과 욕망 기계들을 예속함으로써 정의 VS 종속이 역전되고 권력이 전복됨으로써 정의

독자성들을 부수고 선별하며 / 코드들 내지 공리계들 속에 간직되는 독자성들만을 조절하는, 그램분자적이며 구조화된 집합들을 통해 정의 VS 큰 집합들을 가공하기에 알맞은 그만큼의 재료들로 다루는, 독자성들의 분자적 다양체들을 통해 정의

이 체계 내지 이 집합에 고유한 내재성의 장을 채우는 이미지들을 생산하는 그런 방식으로, 이 체계의 내부 극한들에 따라 흐름들을 정지하고 옥죄며 흐름들을 되돌리거나 다시 절단하는 / 통합선과 영토화선을 통해 정의 VS 새로운 흐름들을 생산하는 비-구상적인 자기 고유의 절단들 내지 분열들을 발명하며, 그것들을 / 욕망적 생산과 떼어 놓는 코드화된 벽 내지 영토적 극한을 항상 뛰어넘는, 탈코드화되고 탈영토화된 흐름들이 따라가는 도주선들에 의해 정의

예속 집단들에 의해 정의 VS 주체 집단들에 의해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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