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4/17 『개념무기들』6장

작성자
bomi
작성일
2021-04-17 12:49
조회
178
공통진실 찾기 세미나
조정환, 『개념무기들』 6장, 갈무리, 2020, 194~277쪽 발제


6장 정치1: 역설의 존재론과 들뢰즈 정치학의 자장


<들뢰즈 현상의 세 국면>

1. 첫 번째 국면
1968년
차이의 사상가
이 시기 들뢰즈의 정치철학은 재현 비판을 거쳐 욕망의 표현으로, 욕망의 표현에서 탈물질적 의미 놀이로, 다시 의미의 사건에서 계열화로 발전되었다. 차이, 욕망, 표현을 중심으로 발전하는 들뢰즈의 정치철학은 모순, 종합, 재현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전통 좌파 정치학과 대비된다. (195)
들뢰즈는 재현을 거부하는 차이의 철학을 통해 국가에 의한 정치의 종합이라는 구도를 파괴하면서 삶의 미시적 영역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작은 갈등들, 언어들, 이미지들, 계략들, 발명들 등이 낳는 탈물질적 놀이와 의미의 사건을 정치의 중심 무대로 가져왔다. (196)

2. 두 번째 국면
1989년
도주선의 철학자
이 시기 들뢰즈의 정치철학을 전유하는 두 흐름이 있었다. 들뢰즈의 개념을 후기자본주의의 유목적 성격을 부각하는 것에 이용하는 흐름이 있었다. 이에 반해, 이민자들, 이주민들, 청년들 등 새로운 주체성들의 등장을 기존 질서로부터의 이탈을 통한 변화의 가능성으로 읽어내고자 하는 흐름이 있었다. (198)
1989년은 통합된 세계시장이 실질적으로 등장한 때이다. 통합된 세계시장은 두 계기의 결합으로 탄생했는데 하나는 초국적 금융자본이며 또 하나는 각국 시민들의 이주, 탈주이다. 이 두 계기는 모두 68혁명의 효과였다. 들뢰즈의 영토화/탈영토화/재영토화, 코드화/탈코드화/재코드화의 개념은 68년부터 이어진 힘들의 역동적 흐름의 개념적 형상을 부여하고, 다양체의 정치화를 통해 통합된 세계시장과 그것의 이중성을 이해할 실마리를 제시한다. 특히 다양체를 가로지르는 도주선 개념은 체제를 혁명할 소수적 비전을 제시한다. (198~200)

3. 세 번째 국면
1999년
리좀과 네트워크의 정치철학자
‘네트워크’는 “연합의 분자적 방법”에 붙여진 21세기적 이름이다. 만국 자본가의 다수적, 수목적 연합과 –제국- 만국 다중의 소수적, 리좀적 연합의 이중화라는 대립적 현상을 제시한 바 있는 들뢰즈는 이 시기에 맑스주의의 전지구적 혁신을 주도하는 21세기적 인물로 나타난다. (201)


<들뢰즈 정치학의 기초로서의 역설의 존재론>

1. 차이와 반복의 존재론

*차이
사유 안에 차이를 복원하고 이로써 사유하기의 그 생식성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네 개의 매듭이 풀려야 한다. 1) 차이를 개념의 동일성에 종속시키는 매듭 2) 차이를 지각 안의 유사성에 종속시키는 매듭 3) 차이를 부정성에 종속시키는 서술에서의 대립 (204) 4) 차이를 유들과 종들에 종속시킴으로써 판단을 내리는 매듭.(206)
<토론거리> 매듭들의 예시에 관해.
들뢰즈가 말하는 차이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문제제기적인 것이 존재함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곧 차이를 긍정하는 것이다. 문제제기적 다양체가 다양한 긍정, 즉 차이의 긍정을 낳는다. (205) “역사는 부정을 통해, 부정의 부정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문제들의 규정을 통해, 차이들의 긍정을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206)
재현의 매듭들을 풀어냈을 때 비로소 허상의 평면이 드러난다. 허상의 체계는 기초개념들을 통해 발산과 탈중심화를 가능케 하며 서로 유비적이지 않은 계열화를 가능케 한다. (207,8)

*반복
1) 표면적 반복: 습관의 반복: 물질적 반복 – 차이가 절도된다.
2) 심층적 반복: 기억의 반복: 심리적 반복 – 차이가 포괄된다.
3) 궁극의 반복: 죽음의 반복: 존재론적 반복 – 차이를 만든다.
앞의 두 반복이 순환 주기 안에서 사고 될 수 있는 것이라면 세 번째 반복은 그 순환 주기를 파괴하면서 앞의 두 반복이 자신에게 의존하도록 만든다. 자신을 스스로 반복하는 것은 반복되고 있는 유일한 사태뿐이다. 즉 회귀하는 것은 세 번째 반복뿐이다. (210) “영원회귀는 오직 세 번째 시간 속에만 있다.” (211)
영원회귀 안의 반복은 차이의 고유한 역량의 표현이다. 차이는 영원회귀 안의 반복을 통해서만 자기 자신을 되찾고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즉 차이가 영원회귀의 반복을 가능케 하고 영원회귀가 차이를 긍정한다. (212)
“영원회귀의 바퀴는 차이에서 출발하여 반복을 산출하는 동시에 반복에서 출발하여 차이를 선별한다. (213,4)
들뢰즈는 (재현이 아니라) 반복이야말로 이제까지 실현된 유일한 존재론이고 존재의 일의성이라고 말한다. (212)

2. 의미의 논리

들뢰즈의 유물론적 존재론에서 나타났던 존재자와 존재의 관계는 여기서 명제와 의미의 관계로 반복된다. 의미는 존재론적 반복에 의해 규정되는 심층적 반복, 심리적 반복의 시간으로 나타난다. 의미는 사물들 속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정신 속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의미는 지각적 노에마(의식의 지향성이 같는 대상면)에 가깝다. 의미는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내속/존속한다. 의미는 사건인데 이때 사건은 한 사태에서의 사건의 현실화와는 다른 사건이다. (216,7)
의미는 사태들의 부대물로서의 열외존재이며 존재에 속하기보다 비존재에 속하는 무엇이다. 그것은 실존하지는 않지만, 명제 안에 존속한다. 그것은 명제와 사물, 기표와 기의 계열 안에서 부단히 순환함으로써 이 두 계열의 소통을 가능케 하면서 양식과 상식을 전복시키는 역설적 심급이다. 그것은 어떤 자리도 없이 존재하는 동적 객체이다. (217)
”혁명가는 기술적 발전과 사회적 총체성 사이에서 이 사이에 그의 영구혁명의 꿈을 새기면서 그 간격 안에서 살아간다“ 이 말은, 혁명(그리고 예술과 철학)이 새겨져야 하는 자리가 ‘자리를 갖지 않는’ 의미의 평면임을 뜻한다. 이 평면은 차이에 의해 추동되는 심층적, 심리적 반복의 시간 그 자체이며, 또한 계열들의 미분적 관계들(즉 구조)의 함숫값으로서의 특이점들이다. 이 특이성들이 기표와 기의를 결정할 수 있도록 분배되면서 의미의 존재를 보장한다. (218,9)
”특이성들의 형태 변이나 재분배는 하나의 이야기를 형성한다. 각각의 조합, 각각의 배열은 하나의 사건이다.“ (220)
코뮤니즘을 생각할 수 있는 평면은 결코 물질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통일성일 수 없다. 그것은 사건들 혹은 효과들의 통일성으로서 물체들의 통일을 따라다니면서도 그 평면 외부에 있는 시간이다. 그것은 언젠가 도달할 시간이 아니라 삶의 매 순간 어느 곳에서나 움직이고 있는 내속하는 시간이다. (222)
의미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역설의 영역에 들어서야 한다. 역설의 열정이야말로 최고의 잠재력을 실현한다. (224)
<질문> ‘역설’과 ‘위선’은 어떻게 다른가?
의미는 문제로서 표현되며 명제들이 그것에 상응한다. 문제는 발생적 요소의 실재, 명제의 어떤 테제로도 환원되지 않는 복잡한 테마이다. 문제는 명제들 안에 내속하며 열외존재(=(비)-존재)와 일치한다. 이 문제가 의미의 장이다. 명제가 의미의 겉이라면 의미는 명제의 안감이다. 의미는 명제 속에 존속하는 순수사건이다. 의미는 물체와 명제 사이에 형성되는 경계선으로서의 형이상학적 표면이다. (227)

3. 표현주의적 존재론

들뢰즈는 자신의 존재론을 표현 개념을 통해 구체화한다. (227)
표현에서는 펼치는 것이 내보내는 것이자 동시에 감싸는 것으로 되는 이중운동이 나타난다. 신이 표현적이라고 할 때, 이것은 ‘표현하는 것’과 ‘표현’, 그리고 ‘표현되는 것’을 포함한다. 신의 ‘표현’에서 ‘표현되는 것’은 다시 ‘표현하는 것’ 속에 내속한다. 따라서 신은 ‘표현되는 것’을 통해 ‘표현’하는 ‘표현하는 것’이다. 이처럼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신이 표현의 역능임을 강조한다. (230)


<들뢰즈 정치학의 자장>

들뢰즈의 존재론의 정치적 함의는 개량주의적 기술주의와 전체주의 모두에 반대하며 차이만을 돌아오게 하는 존재론적 반복에 입각한 영구혁명의 논리다. (231)
들뢰즈가 노동거부를 지지하는 것은 노동계급이 ‘가변자본’으로서의 자신을 거부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다. (246) 그런데 맑스에 따르면 노동과 가변자본은 직접적으로 동일시될 수 없고 노동이 가변자본으로 되는 것은 노동이 자본가에 의해 구매된 상품인 한에서이다. (247)
들뢰즈가 말하는 자율은 생성으로서의 자율이지 현실로서의 자율이 결코 아니다. 전자는 자율의 생성적 잠재력임에 반해 후자는 이미 실현된 자율의 양태이다. 경계되고 부정되어야 할 것은 후자, 즉 자본주의적 노동 내부에서 특정하게 실현된 자율을 확인하고 또 주장하는 경향이다. (251)
맑스, 들뢰즈, 네그리의 사유에서 역설을 식별하는 것은 더없이 중요한 일이다. 역능은 이중 흐름이며 역설적인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현실 속에 민중언 없다. 맑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발명에 대해, 들뢰즈는 민중의 발명에 대해 끊임없이 말한다. 이것들은 차이들, 잠재력들, 소수적인 것들의 연합과 접속의 과정 혹은 구성의 과정이며 그 구정의 양식을 지칭한다. 네그리의 다중은 바로 이런 구성과정과 구성양식을 지칭하기 위해 발명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다중과 산 노동은 능력들의 새로운 배치능력, 즉 가능성의 범주이다. (253)
문화정치와 소수정치 외에도 정보사회론, 페미니즘, 대중독재론, 아나키즘등 들뢰즈의 정치학적 영향은 다양한 곳에서 드러난다. (256)


<들뢰즈와 삶정치학, 그리고 맑스주의의 혁신>

맑스는 생산력을 기계의 효율성으로 환원하는 것에 반대하여 가장 중요한 생산력은 ‘인간 자식’이라 말한 마 있다. 여기서 인간은 사회 속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결합된 생산자들을 지칭한다. 이러한 사회적 개인은 한 사회를 구성하는 과학, 언어, 지식, 기술, 숙련, 기계, 그리고 활동들의 네트워크이다. 이런 한에서 생산력은 기호적이고 사회적인 생산력이다. (267)
들뢰즈는 생산력의 개념을 ‘순수 내재성’ 으로서의 ‘하나의 삶’의 지평으로 확장하면서 그것을 ‘n승의 역량’으로 정의한다. 차이는 반복의 역량이며 반복은 차이의 생산이다. 따라서 ‘순수 내재성’은 사회적이거나 기혹이기 이전의 ‘순수 생산력’으로 이해된다. (268)
들뢰즈는 추상기계개념을 통해 내재성의 면에서 지층이 형성되고 체제가 발생하는 과정을 사유한다. 이때 자본주의적 생산을 욕망하는 기계들의 연결접속, 분리접속, 결합접속의 과정으로 이해된다. (270) 문제는 흐름들의 접속이다. 자본주의가 탄생하는 데에는 탈코드화한 흐름들이 모두 만나 결합접속되고 서로 반작용하되 이 만남, 이 결합접속, 이 반작용 등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271)
자본기계를 탄생시킨 마주침의 요소들 중 맑스가 [자본]에서 강조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탈영토화한 노동자이고 다른 하나는 탈코드화한 화폐이다. (272) 자유노동자와 자본이라는 이 두 요소의 마주침이 자본기계를 생산했다. 그런데 이 마주침은 대등하노 구평적인 마주침이 결코 아니다. 자본기계의 생산적 흐름은 자신 속에 자연기계와 기술기계를 끊임없이 재취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인간의 생산능력을 자신 속에 부단히 포섭한다. (273)
자본주의 추상기계 속에서 산 노동은 유통과정에서는 자본에 팔릴 노동자의 노동력으로 나타나고, 판매 후의 생산과정에서는 가치를 증식시킬 자본의 가변자본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렇게 노동력 상품이자 가변자본의 형태를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 노동은 자본주의적 추상기계속에 내재하는 탈영토화의 특이점으로 실존한다. (275)
우리는 들뢰즈와 네그리에게서 탈영토화하는 힘들의 자기구성양식을 부르는 서로 다른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도래할 민중을 부르는 이름인 ”민중의 발명“ (들뢰즈), 힘의 존재론적 경향이자 기획의 이름인 ”다중“ (네그리)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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