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호] 행위를 실행하는 사람들의 도덕ㅣ안호성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1-07-13 16:20
조회
103
 

행위를 실행하는 사람들의 도덕


안호성 (번역가)


그레이엄 하먼이 『네트워크의 군주』에서 브뤼노 라투르를 철학자로서 고찰한 것을 기반으로 이번에는 라투르의 정치 철학을 해설한다. 『브뤼노 라투르 : 정치적인 것을 다시 회집하기』를 읽으면 라투르의 정치 철학적 사유의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 하먼은 라투르의 정치적 사상을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고 있어서 그 윤곽을 뚜렷하게 그려낼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라투르의 정치적 사상 이상의 것을 말하는데, 하먼이 좌익 정치와 우익 정치, 진리(하익) 정치와 권력(상익) 정치의 철학적 토대, 혹은 형이상학적 토대를 해명해주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책에서 진리 정치와 권력 정치는 초월과 내재라는 견지에서 고찰될 수 있을 것 같다. 진리 정치는 초월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진리 정치는 하먼이 탁월하게 하익down 정치라고 부르는 것처럼 참된 지식이나 옳음과 같은 것이 “저 너머”에 있어서 그 아래에 있는 “이 세계/현세”로 내려오는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세계”의 타락은 이곳의 권력이 진리의 형상에 부합하지 않은 채 무지나 이기적인 성향에 의해 형성된 사회적 억압의 부산물인 것이 된다. 반면에 권력 정치는 내재에 자리 잡고 있어 진리가 존재들 간의 힘겨루기 자체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 경우, 지식과 대립해서 무지가 정치의 근본이 되며, 진리란 힘겨루기 속에서 쟁취한 것, 즉 아래에서 위를 점하며up 얻은 승리 자체가 진리가 된다.


라투르는 권력 정치, 건전한 무지를 시발점으로 사유를 시작하는데, 진리 정치의 압도적인 초월성이 문자 그대로 마땅한 근거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진리 정치는 일견 아름다워 보이는 기준을 제공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일종의 지식의 폭력, 인식론 경찰이라 부르는 것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먼이 지적하듯, 라투르의 경우에 중요한 것은 “‘힘이 곧 정의다’에 관한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힘을 획득하려고 절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정의는 그 주위에 실패하거나 심지어 측은한 인물이 있다는 견해다.” (p88) 일본어에는 “머릿속이 꽃밭頭がお花畑”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투박하게 생각이 무름, 현실을 보지 않고 꿈만 꿈을 뜻한다. 초기 라투르는 진리 정치를 보고 “머릿속이 꽃밭”이라고 조소할 것이다. 라투르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자신이 옳다는 확신을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할 수 있지만, 그 확신은 결코 당신의 마음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돕지 않는다면 당신은 결코 확신을 진전시키지 못할 것이다. (p89)


그렇게 하먼은 하익 정치를 진리 정치라고 다시 이름 짓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스스로 진리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27) 좌익 정치와 우익 정치에 관해서 중요한 논점이 한 가지 지적될 수 있다면, 그것은 자연상태의 논쟁에 관한 것이다. 지나친 단순화일 순 있으나, 이는 진부하게 성선설 vs 성악설이라는 견지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좌익의 경우, 자연상태는 “좋은 (성선설)” 것이어서 이 자연상태와 대립하는 사회적인 것을 치워버려야 할 억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을 것이며, 우익의 경우에는 자연상태가 “나쁜 (성악설)” 것이어서 그렇기에 사회적 계약을 통해 통제되어야 할 따름이다. 그런데 라투르를 좌익이나 우익으로 분류할 수 없는 이유는 라투르가 자연상태 논쟁에 사실상 무관심하며, 심지어는 자연상태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 이 논쟁을 진부하다고 표현했던 대로, 형이상학적으로 라투르에게 매개되지 않은 상태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투르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지 아니면 개선될 수 없는지에 관한 물음에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음으로써 좌익과 우익의 이원론을 벗어나는데, 그 이유는 라투르가 인간 본성이라는 주제에 결코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궁극적인 운명은 어떤 오래가는 내적 본성에서 비롯될 것도 아니고 인간의 근본적인 평등이나 불평등에서 비롯될 것도 아니라, 인간이 다양한 사물과 결부되는 데서 비롯될 것이다. (p372)


그런데 하먼에 따르면 초기 라투르의 문제는, 힘으로 기만당할 수 있을 어떤 초월적 정의를 위한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꿀 꿈이 없으니 꿈에서 깬다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권력 정치를 시작으로 사유를 시작하며, 라투르는 나름의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데, 그것은 “마땅한 승자와 마땅하지 않은 패자 사이의 비대칭성” (p117)이다. 그렇게 해서 라투르는 어떻게든 일종의 초월성을 회복할 필요가 생기는데, 거기서 라투르가 제안하는 것이 진리 정치의 압도적인 초월성과는 다른 “미니-초월성”이다. 초기 라투르가 도덕주의자를 비웃는 것과 달리, 후기 라투르에게서 도덕은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그런데 이때의 도덕은 규범적인 것이 아니며, “영원히 초연한 상태에 있는 아름다운 영혼의 도덕이 아니다. 그것은 편을 들고 행위도 실행하는 사람들의 도덕이다.” (p246) 라투르가 말하는 도덕은 우리의 주목에서 배제된 존재를 외부에서 찾아내며, “도덕 관념을 갖춘 도덕이 자기발생적인 집합체가 자신을 우주 전체로 착각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기 때문이다.” (p248)


즉, 도덕은 과학과 연계하여 비인간 객체를 포함한 주목받지 못한 행위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목소리를 발할 수 있도록 하며, 자기발생적인 집합체가 자신을 전체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가로막음으로써 코스모폴리틱스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그리고 이 요지는, 라투르에게 있어서 전략은 비인간 객체를 포함해서 다수의 행위자와 동맹을 맺어 협력할 수 있을 때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초기 라투르와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어떤 철학자를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눈 것은 그것들 사이에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언제나 동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 하먼은 자연상태, 우익, 좌익, 진리 정치, 권력 정치 등의 개념을 통해 정치적인 것의 철학적 토대를 검토하고, 라투르의 사상을 분기별로 나누며 그것이 코스모폴리틱스에 다다르기까지의 과정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또한, 이 책에는 정치에 관한 것 이외에도 철학에 관한 주석이 포함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하먼은 라투르를 화이트헤드주의로 분류하고 들뢰즈주의와 대립시키는데, 화이트헤드와 들뢰즈의 사상적 친밀성이 자주 연구되어온 걸 생각하면 대단히 흥미로우며, 또한 하먼 자신의 객체지향적 관점과의 대치점을 보여주는 것도 흥미롭다.


이 책이 보여주는 정치·철학적 깊이, 그리고 브뤼노 라투르와 그레이엄 하먼이 보여주는 새로움과 지적 통쾌함은 해당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



※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1년 7월 12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https://bit.ly/3k8EUAh )에 게재되었습니다.


*


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네트워크의 군주 : 브뤼노 라투르와 객체지향 철학』(그레이엄 하먼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19)


현대 철학의 ‘사변적 전회’를 선도한 하먼의 ‘객체지향 철학’과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이 만나는 풍경을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브뤼노 라투르를 현대의 중요한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설득력 있게 고찰하고 있는 이 책은 ‘자연’과 ‘문화’의 이분화를 넘어서는 ‘실재론적 객체지향 형이상학’을 인류세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철학으로 제시한다.


비유물론 : 객체와 사회 이론』(그레이엄 하먼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20)


사회적 세계에는 어떤 객체들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특정한 피자헛 매장은 그 매장을 구성하는 종업원과 탁자, 냅킨만큼 실재적일 뿐만 아니라, 그 매장이 종업원과 손님의 삶에 미치는 사회적 및 경제적 영향과 피자헛 기업, 미합중국, 행성 지구만큼 실재적이기도 한가? 이 책에서 객체지향 철학의 창시자인 저자 그레이엄 하먼은 사회생활 속 객체의 본성과 지위를 규명하고자 한다. 객체에 대한 관심은 유물론의 한 형태에 해당한다고 흔히 가정되지만, 하먼은 이 견해를 거부하면서 그 대신에 독창적이고 독특한 '비유물론' 접근법을 전개한다.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브뤼노 라투르 지음, 홍철기 옮김, 갈무리, 2009)


이 책은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연구해온 인류학자인 저자 브뤼노 라투르가 근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방식에 던지는 독특하고 근본적인 문제제기이다. 탈근대주의의 근대성 비판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라투르가 말하는 근대인의 본질은 이분법이 아닌 ‘하이브리드’의 증식이다. ‘하이브리드’의 이해를 통해서만 사회와 자연, 정치와 과학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현재의 정치·사회적 위기와 환경·기술적 위기라는 이중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존재의 지도 : 기계와 매체의 존재론』(레비 브라이언트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20)


자연주의와 유물론을 당당히 옹호하는 한편으로, 이들 친숙한 관점을 변화시키고 문화 자체가 어떻게 자연에 의해 형성되는지를 보여준다. 브라이언트는 범생태적 존재론을 지지하는데, 요컨대 사회는 담론과 서사, 이데올로기 같은 기표적 행위주체들과 더불어 강과 산맥 같은 비인간의 물질적 행위주체들도 고려함으로써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생태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해서 브라이언트는 새로운 기계지향 존재론의 토대를 구축한다.

전체 0

전체 369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369
[70호] 『디지털 포스트휴먼의 조건』 서평ㅣ손보미
자율평론 | 2021.10.17 | 추천 0 | 조회 20
자율평론 2021.10.17 0 20
368
[70호] 신의 죽음 이후, 신 담론을 다시 묻다ㅣ손민석
자율평론 | 2021.10.17 | 추천 0 | 조회 19
자율평론 2021.10.17 0 19
367
[70호] 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ㅣ이수영
자율평론 | 2021.10.13 | 추천 0 | 조회 26
자율평론 2021.10.13 0 26
366
[69호] 환대와 적대 사이, ‘내기’로 초대하는 성스러움에 대한 탐구서 - 리처드 카니의 『재신론』ㅣ김혜령
자율평론 | 2021.09.17 | 추천 0 | 조회 47
자율평론 2021.09.17 0 47
365
[69호] 신 이후의 신(神)을 생각한다ㅣ이종성
자율평론 | 2021.08.30 | 추천 0 | 조회 54
자율평론 2021.08.30 0 54
364
[69호] 해방철학과 마르크스의 만남은 무엇을 낳았는가 - 엔리케 두셀과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ㅣ전지윤
자율평론 | 2021.08.14 | 추천 0 | 조회 72
자율평론 2021.08.14 0 72
363
[69호] 플랫폼·코인은 잉여가치…그 너머에 절대 궁핍이 있다ㅣ염인수
자율평론 | 2021.08.03 | 추천 0 | 조회 78
자율평론 2021.08.03 0 78
362
[69호] '산 노동'으로서의 미지의 마르크스...여전히 우리에게 새로운 마르크스ㅣ강길모
자율평론 | 2021.07.29 | 추천 0 | 조회 84
자율평론 2021.07.29 0 84
361
[69호] 행위를 실행하는 사람들의 도덕ㅣ안호성
자율평론 | 2021.07.13 | 추천 0 | 조회 103
자율평론 2021.07.13 0 103
360
[69호] 포스트휴먼의 미래, 예술가·시인의 상상에 달렸다ㅣ한보희
자율평론 | 2021.07.13 | 추천 0 | 조회 84
자율평론 2021.07.13 0 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