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호] 『기준 없이』 한국어 번역에 관하여 / 『기준 없이』 한국어판 출간 기념 강연 원고

강연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4-04-25 14:19
조회
69
 

『기준 없이』 한국어 번역에 관하여


『기준 없이』 한국어판 출간 기념 강연 원고


강연자 : 스티븐 샤비로
번역 : 이문교 (『기준 없이』 옮긴이)
강연 일시 : 2024년 4월 20일 토요일 오전 10시 ZOOM



저의 책 『기준 없이 : 칸트, 화이트헤드, 들뢰즈 그리고 미학』의 한국어 번역본을 출간해 주신 갈무리 출판사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책은 갈무리 출판사가 번역하여 출간한 저의 세 번째 책입니다. 『기준 없이』는 2009년에 영어로 처음 출간되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본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사실 이 책은 제가 이후에 쓴 모든 것에 근거를 제공해주었습니다.


『기준 없이』는 두 가지 주된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이해하고, 이 철학을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특히 질 들뢰즈의 저작들로 대표되는 1960년대와 1970년대 프랑스 철학의 포스트구조주의 사상과 접촉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동시에 이 책은 윤리학이나 형이상학이 아니라 미학이 제일철학이라고 주장하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로, 1861년에 태어나 1947년에 사망했습니다. 그는 지적 경력 과정에서 뚜렷하게 구분되는 몇 단계를 거쳤습니다. 화이트헤드는 수학자로 시작하여 1884년부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는 특히 수학의 기초, 즉 수학이 옳다고 확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물음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 연구 단계는 수학을 기호 논리에 기초 짓기 위한 대대적인 노력인 『수학 원리』(1901-1911)를 버트런드 러셀과 공동 작업하면서 절정에 달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나중에 쿠르트 괴델과 다른 사람들에 의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괴델은 1930년대 초에 모든 논리 체계는 그 체계 내에서 증명도 반증도 할 수 없는 명제들을 생성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명제에 대한 반증도 찾을 수 없지만, 그 명제의 진리 또한 엄밀하게 증명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즉, 수학은 체계적으로 근거지어질 수 없으며, 완전하고 일관된 수학 체계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마 화이트헤드는 이런 점에 대한 어떤 직관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괴델이 증명을 공표하기 수십 년 전에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논리적 확실성에 대한 탐구를 포기했습니다.


1910년 화이트헤드는 기호 논리학을 포기하고 케임브리지를 떠나 런던으로 이주했습니다. 그 후 14년 동안 그는 런던 대학교의 여러 부서에서 교사이자 행정가로 일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화이트헤드는 영국 고등 교육 시스템의 개혁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당시 이는 두 가지를 의미했습니다. 첫 번째는 남성들만 참여하던 프로그램을 여성에게도 개방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인문학 커리큘럼에 고전(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에만 집중하는 대신 현대적 주제들을 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화이트헤드는 물리학의 철학적 기초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화이트헤드가 1880년대에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윤곽을 이해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천문 관측과 방사능의 발견 및 관련된 변칙적인 결과는 19세기 말에는 이러한 합의를 무너뜨렸습니다. 과학은 위기에 빠졌습니다. 20세기의 첫 수십 년 동안에는 양자역학과 아인슈타인의 특수 및 일반 상대성 이론의 발전으로 인해 물리학의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화이트헤드는 이러한 발전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이러한 불가해하지만 반직관적인 발견이 우리의 일상적인 상식적 세계 경험과 어떻게 관련될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때 화이트헤드의 제자였던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은 물리적 대상이 직접적인 감각 경험과 일반적인 상식에 나타나는 방식과 현대 물리학에서 동일한 대상을 이해하는 방식 사이에 괴리가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결국 물리적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이해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경험적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화이트헤드는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고자 했습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화이트헤드는 그의 첫 번째 중요한 철학 저서를 출간했습니다: 『자연 지식의 원리에 관한 탐구』(1919), 『자연의 개념』(1920), 『상대성 원리』(1922), 『과학과 근대 세계』(1924)가 그것입니다.


이러한 책들을 쓰는 과정에서 화이트헤드의 관심은 점차 과학 철학에서 보다 일반적인 철학적 물음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는 사물에 대한 상식적 이해와 과학적 이해 사이의 분열은 훨씬 더 깊은 문제의 한 사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화이트헤드는 현대 서구 문화에서 자연의 분열이라고 불리는 현상을 진단했습니다. 이것은 현상적 경험과 그러한 경험에 대한 물리적 설명 사이의 분열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나무의 푸르름, 새의 노래, 태양의 따뜻함, 의자의 딱딱함, 벨벳의 촉감 등을 경험합니다. 반면에 우리는 분자와 전자라는 추측된 체계를 갖습니다. 그 체계는 눈에 보이는[외관적인] 자연에 대한 인식을 생산해낼 정도로 마음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두 가지 관계들의 집합들은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화이트헤드는 자연의 중심에서 [부과된] 이러한 분열을 개탄하며 이 분열을 치유할 방법을 모색합니다.


화이트헤드 시대 이후 한 세기 동안 일어난 모든 변화와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분열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에 대한 과학적 설명과 인문학적 설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서로 충돌되고 있습니다. 적어도 미국에서 이러한 분리를 경험하는 방식 중 하나는 대학에서 STEM 과목(과학, 기술, 공학, 수학)과 다른 모든 과목, 특히 예전에는 인문학이라고 불렸던 것을 포함한 모든 과목이 나뉘는 형태입니다. STEM 과목은 계속 강조되는 반면 인문학은 점차 그 비중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특히 영미 철학에서는 분석 학파와 대륙 학파의 구분으로 인문학의 양분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현상학을 포함한 대륙적 사고는 주관적 경험의 직접적인 감각에서 출발합니다. 반면 분석철학은 주관적 경험의 인과적 기초가 되는 분자와 전자뿐만 아니라 논리의 문제에서 출발합니다.


자연의 이분화를 극복하기 위해 화이트헤드는 형이상학적 질문, 즉 우주론적 질문을 더욱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1924년 63세의 나이에 화이트헤드는 하버드 대학교 철학과에 초빙되면서 이러한 관심의 폭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화이트헤드는 자신이 좋아했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가르쳤던 바로 그 학과에 자리를 제안받은 것을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그의 여생을 살았습니다. 1929년 하버드에서 강의하던 중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대작인 방대하고 눈부신 저서 『과정과 실재』를 출간했습니다. 그 후 10년 동안 그는 두 권의 중요한 책을 더 출간했습니다. 1933년 『관념의 모험』과 1938년 『사고의 양태』가 그것입니다. 이 책들에서 화이트헤드는 데카르트에서 칸트에 이르는 서양철학의 주요 경향을 참조하면서도 중요한 면에서 그러한 경향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철학 체계를 발전시켰습니다. 심지어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철학이 서구 아시아 또는 유럽 사상보다는 인도 또는 중국 사상의 일부 변형에 더 근접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저는 아시아 철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제안의 진위를 판단할 수 없지만, 여러분의 관심을 위해 언급합니다.


화이트헤드는 1937년 76세의 나이로 마침내 교수직에서 은퇴했습니다. 그는 10년 후 사망할 때까지 미국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은 사망 후 몇 년 동안 상당히 약해졌습니다. 20세기 후반 대부분의 기간 동안 화이트헤드는 서양 철학계에서 거의 무시당했습니다. 그의 유산은 소수의 개신교와 가톨릭 신학자, 특히 존 콥(John B. Cobb, 최근 아흔아홉 번째 생일을 맞이했지만 여전히 지적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음)에 의해서만 유지되었습니다.


20세기 후반에 화이트헤드의 영향력이 쇠퇴한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철학이 영미 학계의 일반적인 분위기에서 별종적인 것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이트헤드의 사상은 분석적 전통이나 대륙적 전통 어느 쪽에도 잘 맞지 않습니다. 그의 논리와 수학에 대한 초기 연구는 주로 버트런드 러셀을 통해 분석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한 가장 중요한 분석철학이 사상가 중 한 명인 W. V. O. 콰인은 화이트헤드의 지도 아래 『수학 원리』에 초점을 맞춘 박사 학위 논문을 썼습니다. 그러나 화이트헤드의 후기 사상은 논리적, 수학적 기초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화이트헤드 후기 철학의 주요 주제인 시간과 공간, 인간과 비인간적 존재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대륙 철학의 관심들과 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대륙 철학 전통의 주요 인물들, 예를 들어 헤겔, 니체, 후설, 하이데거와는 상당히 거리가 멉니다. 실제로 그는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읽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그의 사상은 어휘와 초점 모두에서 그들과 다릅니다. 화이트헤드는 분석적 진영과 대륙적 진영이라는 구분 중에 어느 한쪽을 선호하기보다는 두 접근법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여지를 찾고 두 접근법을 동등한 위치에 놓는 포괄적인 입장을 발전시킬 것을 추구합니다.


게다가 화이트헤드는 20세기에 철학을 하는 과정 자체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도 상당히 독특합니다. 분석적 진영의 비트겐슈타인과 카르납, 대륙적 진영의 하이데거와 데리다 등 대부분의 20세기 서양 사상가들은 무엇보다도 형이상학을 제거하거나 형이상학으로부터 사유를 벗어나게 하는 데 관심을 가졌습니다. 양쪽 진영 모두에게 형이상학은 망상과 신비화와 동일시됩니다. 그와는 반대로 화이트헤드는 형이상학을 비난하거나 형이상학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형이상학 또는 더 자주 우주론으로 기술하기를 계속합니다.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사상을 이런 식으로 제시함으로써 이미 그 자신의 시대에 위험을 감수했고,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는 한층 더 자신의 철학이 구식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들릴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형이상학과 우주론에 대한 화이트헤드의 지속적인 헌신을, 완전히 새롭고 완전히 과거와 단절했다는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에 빠졌던 서구 근대성의 인정받지 못한 (그리고 실제로 무의식적인) 패권주의에 대한 암묵적인 질책으로 보는 경향이 더 강합니다.


20세기 초의 서구 모더니즘은 확실히 그 스스로를 극단적인 결렬의 순간으로 간주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1924년에 쓴 한 에세이에서, 전적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아니지만,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1910년 12월을 전후로 모든 인간관계, 즉 주인과 하인,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들은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계가 변할 때 그와 동시에 종교, 행동, 정치, 문학에도 어떤 변화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화이트헤드 자신은 이러한 결렬(단절)을 인간관계의 견지에서보다는, 그리고 보다 일반적으로 문학, 예술, 문화의 변화들의 견지에서보다는, 물리학에서의 혁명의 견지에서 더 많이 경험한 것으로 보입니다. 화이트헤드는 미국의 위대한 모더니스트 실험적인 작가인 거트루드 스타인과 친구였지만, 그 외에는 모더니즘 예술 및 문화와는 연결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화이트헤드의 미학은 새로움을 대단히 강조하지만, 그는 자신의 시대의 문화적 소동(발효)에 특별히 얽매이지 않는 방식으로 이 미학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이트헤드 연구에서는 지난 세기말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되살아나고 있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질 들뢰즈는 간략하긴 하지만 라이프니츠에 관한 그의 저서(1988년 프랑스어로 출간되고 1993년 영어로 옮겨진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에서 화이트헤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지난 뒤, 화이트헤드에 관한 중요한 저작들이 주디스 존스(Judith Jones)(『강도: 화이트헤드의 존재론에 관한 시론』Intensity: An Essay in Whiteheadian Ontology, 1998년 출간)와 이자벨 스탕게스(Isabelle Stengers)(『화이트헤드와 함께 사유하기: 자유롭고 야생적인 개념들의 창조』Thinking with Whitehead: A Free and Wild Creation of Concepts, 2002년에 프랑스어로 처음 출간되었고 2011년에 영어로 번역됨)에 의해 출간되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화이트헤드를 읽기 시작한 것은 주로 이자벨 스탕게스의 저작들 덕분이었습니다. 저는 철학자가 아니라 한편으로는 영화학자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SF 문학 학자이기 때문에 화이트헤드의 사상에 대한 저의 관심은 이례적일 수 있습니다. 또한 저는 대학원생 시절에는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질 들뢰즈와 같은 포스트 구조주의 사상가들의 영향 아래 [지적]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으로 화이트헤드를 읽게 되고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스탕게스와 더불어 바로 이러한 사상가들을 컨텍스트로해서입니다.


『기준 없이』에서 저는 화이트헤드의 사상과 질 들뢰즈의 사상 사이의 놀랍고도 예상치 못한 친연성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이 두 사상가는 언뜻 보기에는 매우 다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세계를 열린 다양체로 이루어진 것으로 봅니다. 두 사람 모두 이러한 다양체가 고정된 실체들이 아니라 유한하지만 진행 중인 과정들이라고 말합니다. 이 두 사상가는 어떠한 종류든 미리 주어진 안정성을 전제하는 대신에, 상대적인 고정성들-다소간 안정된 자아 및 사물들-이 혼돈(카오스)으로부터 발현하여 적어도 일정 시간 동안 존속할 수 있는 방식들을 해명하고자 노력합니다.


화이트헤드는 부분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서양철학을 지배해 온 그 자신이“사고의 주어-술어 형식”이라고 부른 것을 거부함으로써 이를 달성합니다. 즉,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세계는 다양한 성질들이 귀속될 수 있는 분리된 [독립적인] 실체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세계는 사물이 아니라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명사와 형용사보다는 동사와 부사로 더 잘 기술될 수 있습니다. 내 눈앞의 벽이 붉게 칠해졌다고 말하기보다는 내 안구에 도달하여 감각에 영향을 미치는 진행 중인 붉어짐(reddening)에 대해서 말하거나, 우리가 벽을 쌓는(walling) 작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과정, 즉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저항하며 함께 버티는 진행 중인 과정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우리의 말하는 방식을 개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가장 안정적이고 변치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물들조차도 여전히 생성의 지속적인 과정들에 관련되어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개울에서 소용돌이가 형성되어 흐르는 물이 계속 흘러가고 교체되는 동안에도 소용돌이 운동을 유지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생물학적 유기체로서 우리가 평생 동안 몸과 마음을 유지하고 새롭게 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세요. 한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이어지는 나의 정체성은 서로 얽히고설킨 신진대사 과정이 끝없이 진행된 결과이며, 이는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시냇물은 매우 단순한 물리적 구조인 반면에, 우리와 같은 살아있는 유기체들은 극히 복잡한 구조들입니다. 그러나 하천과 생물학적 유기체는 모두 일리야 프리고진(Ilya Prigogine)이 열역학적 평형과는 거리가 먼 소산 시스템(dissipative system)이라고 부르는 것의 예시입니다. 이러한 모든 시스템에서 조직화와 상대적 안정성은 지속적인 변화의 과정들에서 발생합니다.


이는 고정된 것처럼 보이는 물리적 대상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이트헤드는 현재 런던 중심부의 빅토리아 제방, 템즈 강변에 서 있는 이집트 석조 오벨리스크인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을 예로 들었습니다(이 오벨리스크는 한 쌍 중 하나이며, 나머지 쌍둥이는 뉴욕 센트럴 파크에 서 있습니다). 이 기둥은 원래 기원전 15세기 고대 이집트의 헬리오폴리스에 세워졌습니다. 그것은 기원전 1세기에 헬리오폴리스에서 알렉산드리아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서기 1877년 알렉산드리아에서 런던으로 약탈당해 옮겨져 오늘날까지 남아 있습니다. 화이트헤드는 이 견고해 보이는 돌기둥도 사실은 변치 않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그 기둥이 수천 년에 걸쳐 여러 차례 옮겨진 것은 부분적으로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라는 인류 역사 때문입니다. 또한 화이트헤드는 물리학자는 그 기둥이 끊임없는“전자들의 춤”에 휘말려 “매일 일부 분자들을 잃고 다른 분자들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평범한 사람도 그 기둥이 더러워지고 때때로 씻기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먼 미래의 어느 날, 조만간 기둥은 쓰러지거나 침식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충분한 시간을 가지세요. 어떤 경우에는 진행 중인 사건이 너무 느리거나 시공간에 너무 넓게 분산되어 있어서 우리가 한 번에 모두 지각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모든 곳에서 모든 것은 지속적으로 진행 중에 있습니다. 지속적인 변화에서 상대적 안정성이 어떻게 발현하는지는 화이트헤드와 들뢰즈 모두의 주요 관심사였습니다. 두 사상가 모두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에 발현과 새로움의 생산이라는 문제들에 대한 관심을 예상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이트헤드와 들뢰즈가 모두 미학을 철학의 중심에 두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점은 그들을 근대 서구 사상에서 미학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에 해당하는 제삼 비판서『판단력 비판』의 임마누엘 칸트와 연결 지어 줍니다. 칸트는 미학을 인식론(『순수이성비판』의 주제)과 도덕성(『실천이성비판』의 주제)에 종속시키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미학을 함께 묶어서 일반화할 수 없는 예외의 영역, 즉 특수한 사례들의 영역으로 열어 놓습니다. 각각의 미학적 사례는 독특합니다. 미적 향유는 그 자체가 갖는 순전한 독특성 때문에 경험적 지성과 도덕 법칙 모두의 구조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칸트의 설명에 따르면 미적 느낌은 경험적 사실과 다르며,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과도 다릅니다. 칸트에게 사실과 도덕적 판단은 모두 객관적으로 보편적인 것으로,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동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미감적 판단은 다르며 항상 단칭적입니다. 저는 어슐러 르 귄(Ursula Le Guin)의 소설, R. W. 파스빈더의 영화, 안나 토르발스도티르(Anna Thorvaldsdottir)의 교향곡, 티에라 왁(Tierra Whack)의 뮤직비디오의 위대함에 대한 저의 느낌을 모두가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경험적 사실이나 도덕적 필요성에 호소함으로써 이러한 작품들에 대한 제 감정을 정당화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는 없습니다.


제 책에서 미감적 판단은, 경험적 판단이나 도덕적 판단과는 달리, 기준 없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작품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제 감정을 공유해 달라고 요청하며, 이런 식으로 미감적 판단은 보편성을 향해 나아갑니다. 하지만 이는 기껏해야 주관적인 보편성일 뿐이며 객관적인 보편성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제가 이 특정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와 방법, 그리고 그 작품이 가치 있고 감동적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을 아주 자세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른 독자, 시청자 또는 청취자가 눈치채지 못한 작품의 특징들을 지적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이 바로 교사로서, 그리고 문화 비평가로서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칸트는 이미 저와 취미를 공유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그들도 저와 같은 방식으로 예술 작품에 대해 느껴야 한다고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고 경고합니다. 칸트는 우리가 미감적 판단에 대해 주장(argue)할 수는 있지만 논쟁(dispute)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즉, 내가 아무리 웅변적이고 격렬하게 나의 미적 취미를 표현하더라도 그 취향을 논리적으로 입증할 수 없으며, 객관적인 근거에 호소하여 정당화할 수도 없습니다.


제 생각에 미학에 대한 칸트의 논의는-비록 그것이 대개 지식(제1비판)과 도덕(제2비판)에 대한 그의 주장들보다는 덜 중요하게 여겨지긴 하지만-그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 중 하나입니다. 칸트가 강조하는 부분은 위대한 예술 작품들은 유일하거나 독특하기 때문에 (경험적 지식을 입법[규제]하는) 지성의 범주들을 낳을 수 없으며, 또한 그것들은 (도덕성을 근거 짓는) 명령이나 정언명법의 토대가 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합니다. 즉 칸트에 따르면 위대한 예술 작품은 실제로 모방할 수 없으며, 모방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결국에는 설득력 없는 실패작을 낳습니다. 오히려 위대한 예술 작품들은 본보기적(exemplary)이라고 칸트는 말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위대한 예술 작품들은 모방될(emulated) 수는 있지만 성공적으로 모방될(imitated)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독창적인 작품들은 그것을 모방하지 않고(독창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신에 그 본보기를 따르려 노력하는, 그래서 그것들 나름대로 독창적이 되고자 노력하는 새로운 작품들에 영감을 줄 수 있습니다. 『기준 없이』의 주장은 화이트헤드와 들뢰즈 모두 본보기들(examples)과 모방(emulation)에 근거한 칸트의 미학적 실천을 취하면서도 이러한 실천을 칸트가 그것들[본보기들과 모방]을 그로부터 배제시켰던 바로 그 형이상학적 사변의 영역들에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미학은 더 이상 인식론과 윤리학의 규칙들에 대한 예외가 아니라, 바로 그것들의 실천을 위한 근거가 됩니다.


즉, 화이트헤드와 들뢰즈는 모두 칸트의 미학적 예외주의를 급진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그들은 미감적 판단에 대한 칸트의 설명을 칸트 자신도 경악했을 정도로 극단적인 지점까지 밀어붙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칸트 자신의 공식화들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화이트헤드의 우주론은 그가 ‘현실적 계기들’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시작하고, 들뢰즈의 존재에 대한 설명은 그가 ‘독특성들’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 두 가지 모두 칸트에게는 지성의 토대 짓는 개념들에 대한 미학적 예외들, 도덕 법칙의 명령들에 대한 미학적 예외들로 간주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이트헤드와 들뢰즈는 모두 그러한 미학적 사례들이 우선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그러한 미학적 사례들이 기존의 규범들에서 벗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해서 오직 그러한 무질서한 사례들을 기초로 하여 그것들을 모음으로써만 그것들이 따르지 않는 규범들이 소급적으로 제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화이트헤드는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을 썼던 철학적 입장에서, 어떤 순수 느낌에 대한 비판을 구축하려는” 자신의 야망을 기술할 때 그의 프로젝트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해줍니다. 이런 식으로 느낌은 이성적 사고에 선행할 뿐만 아니라 합리성의 모든 표현에 필요한 기초를 제공합니다. 화이트헤드는 “이것이 또한 칸트 철학에서 요구되는 나머지 비판들을 대체해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이는 맹목적인 느낌이 이성적 인식을 대체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느낌이 인식을 발전시키는 데 필수적인 기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점은 뇌에 관한 최근의 연구가 확인해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시오는 정서가 발달하지 않은 사람은 이성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따라서 화이트헤드에게 진리와 의무는 그 자체로 미학적 틀 안에서, 즉 느낌들에 기초하여 해명되어야 합니다. 들뢰즈의 경우, 그의 경력 초기에 칸트에 관한 짧은 책을 “적에 관한 책”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들뢰즈는 칸트, 특히 『판단력 비판』의 칸트가 시간을 운동과 측정에 대한 종속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네 가지 시적 공식”을 제시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이것은 다시금 우리를 앞선 두 비판서들에서 설정된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곳으로 데려갑니다. 칸트는 앞선 두 비판들에서 사유의 한계를 입법(규제)하고자 시도했지만, 대신에 마지막 미학적 비판에서는 들뢰즈가 “주체 안에 열린 틈새 심연들 속 폭풍”이라고 기술한 것, 즉 순수한 느낌의 무조음악을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이런 것들이 제가 저의 책『기준 없이』에서 해명하고자 했던 문제들입니다. 이 책의 목적은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지적, 정서적 탐구를 위한 새로운 길들을 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SF 소설과 뮤직비디오 등을 다룬 저의 후속 저서 작업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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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호] On the Korean translation of Without Criteria / 『기준 없이』 한국어판 출간 기념 강연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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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호] 『기준 없이』 한국어 번역에 관하여 / 『기준 없이』 한국어판 출간 기념 강연 원고
자율평론 | 2024.04.25 | 추천 0 | 조회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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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호] 서울은 왜 예술가에게 기생하는가?ㅣ안태호
자율평론 | 2024.04.20 | 추천 0 | 조회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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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호] 도시에서 다른 삶과 연대는 가능할까ㅣ권수빈
자율평론 | 2024.04.06 | 추천 0 | 조회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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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호] 들뢰즈라는 바다, 그리고 나름의 부표일 수 있는 『대담』ㅣ이윤하
자율평론 | 2024.04.06 | 추천 0 | 조회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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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호] 니콜라예프스크블루스1ㅣ김명환
자율평론 | 2024.04.03 | 추천 0 | 조회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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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 상호-비평(inter-criticism)의 수행을 따라가는 흥분의 정동ㅣ임대근
자율평론 | 2024.03.26 | 추천 0 | 조회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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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 『벤야민-아도르노와 함께 보는 영화: 국가 폭력의 관점에서』를 읽고ㅣ유건식
자율평론 | 2024.03.25 | 추천 0 | 조회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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