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 이야기』 읽을 거리

작성자
bomi
작성일
2024-03-13 17:04
조회
63
1. 『시녀 이야기』, 페미니스트 디스토피아
<자료 출처> 디스토피아 이야기와 디스토피아적 전망―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_정 정 미(백석대학교)

1)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소설은 기존의 남성작가들의 전유물로서의 전통적 유토피아 작품에 대한 반작용과 저항의 성격을 띤다.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의 본격적인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샬롯 퍼킨스 길먼(Charlotte Perkins Gilman)의 󰡔여자만의 나라󰡕(Herland, 1916)는 전염병과 지진으로 인해 공동체가 분열하고 남성들이 모두 멸종한 후 처녀생식을 통해 종족을 유지하며 살아남은 여자들만의 이상적인 공동체를 그리고 있다. 이 나라는 외부 세계와 차단되어 있고 오로지 모성애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뭉친 민주적인 공동체이면서 과학발달과 환경보존이 병행하는 평화롭고 풍요한 공동체이다.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작품:
-어슐라 르귄(Ursula Le Guin)의 『어둠의 왼편』(The Left Hand of Darkness, 1969)과 『빼앗긴 자들』(The Dispossessed, 1974)로 된
‘해인 연대기’(the Hainish Cycle)
-마쥐 피어시(Marge Piercy)의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들』(Woman on the Edge of Time, 1976)
-조애나 러스(Joanna Russ)의 『남/녀』(The Female Man, 1975) 
등등
반면 (페미니스트) 디스토피아 소설은 과학이 진보를 가져올 것이라는 낙관성에 바탕을 둔 유토피아적 전망을 버리고 통제되지 않은 과학 발전이 도리어 인간의 본성과 가치를 훼손할 것이라는 염려를 공유하고 있다.
*디스토피아 작품: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1932)
-조지오웰(George Orwell)의 『1984』 (Nineteen Eighty-Four, 1948)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던의 조건 The Postmodern Condition: A Report on Knowledge󰡕의 영문 번역판(미네소타 대학 출판부)이 출간된 해는 조지 오웰의 작품제목과 동일한 1984년이었다. 철학자 리오타르((Jean-Françis Lyotard)는 역사의 진보와 과학을 통한 앎과 완전한 자유의 가능성 등을 담아낸 근대성의 모든 서사가 끝났다고 선언하였고 나아가 유토피아의 불가능성을 단언하는 안티 유토피아 주창자가 되었다.(Tolan 147)

2) 페미니스트 디스토피아와 애트우드
애트우드가 디스토피아 서사인 󰡔시녀 이야기󰡕를 쓴 몇 가지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다. 1980년대 중엽 미국과 캐나다에서 다양하게 분출된 사회문제 가운데, 그간의 페미니스트 운동의 성과와 그 반작용으로 인한 성차별주의자들의 역습이 가시화되고 있었던 점,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성차별주의자들과 담합하여 낙태 반대운동 등 여성 근본주의(essentialism)로 회귀하고자 하는 일련의 시도들이 있다는 사실, 과학과 산업 우선 정책으로 인한 환경 파괴와 이로 인한 여성의 몸과 생명 전반에 대한 침해등의 문제가 분출하면서 애트우드가 디스토피아 서사를 쓰도록 추동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한 1984년, 애트우드는 오웰의 작품 󰡔1984󰡕에 그려진 악몽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두려운 예감과 그 징후들을 간파하고 절대적인 종교와 남성 권력자와 이들에게 부역하는 여성들이 결탁하여 설립한 가상의 공간 길리어드(Gilead)를 만들어 ‘시녀’가 된 한 여성에게 가하는 대재앙의 현장을 그린다.
󰡔시녀 이야기󰡕속 여주인공이 겪는 재앙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에서 꿈꾸는 완전한 양성 평등과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생관계를 정반대로 몰아붙인 악몽의 현장이다. 그런데 󰡔시녀 이야기󰡕의 특이한 점은 주인공이자 화자인 내레이터가 자신이 목격한 디스토피아의 경험을 직접 들려준다는 것이다. 길리어드의 엄격한 체제는 그녀의 몸과 목소리를 모두 통제하지만 그녀의 기억과 인지와 감각만큼은 침범하기 어렵다. 󰡔시녀 이야기󰡕는 자의식 속에서 과거에 대한 기억과 미래에 대한 불안과 희망을 모두 품은 화자 오브프레드가 여성의 관점에서 디스토피아를 생생하게 전하는 이야기이다.

3) 권력의 횡포와 개인의 저항
󰡔시녀 이야기󰡕가 출간되었을 때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은 이 소설이 젠더 파시즘에 대한 섬뜩한 예언을 하였다고 주목하면서도 이 작품이 젠더 파시즘에 대응하는 정도가 지나치게 소극적이라고 불만을 드러내는 비평가들도 있었다. 작가가 여권(女權)의 재앙상태를 섬뜩하게 제시하여 페미니스트의 분노를 촉발하면서도 여주인공 오브프레드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적극적인 정치적 대응을 하지 못한 채 자기 보호에만 급급하게 그려졌다는 주장이다. 한 여성이 저항하기에는 너무 강력한 맞수인 국가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떠받치고 있는 절대자인 신을 배치하여 여성의 수동성과 제한성을 부각한 뒤 결말은 위협으로부터 구원해주는 기사요, 구세주인 연인을 등장시켜 탈출을 하도록 돕는 플롯은 전통적인 여성 로맨스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비판이다.
애트우드는 인터뷰와 논평을 통해 권력의 침투성과 ‘치밀함’(seamlessness)을
강조하면서 󰡔시녀 이야기󰡕속에 나오는 권력에 의한 “다양한 억압적인 상황들
”은 이미 지난 역사 속에서 자행된 바가 있는 것들이라고 덧붙였다(1985, 66). 소설 속 오브프레드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기억하여 기록으로 남기는 역할이 부여되었다. 오브프레드는 자신이 결박된 상태에서 바꿀 수 있는것은 없지만 생존에의 의지를 기록이나 증언을 통해 남겨야한다고 말한다. 그녀가 기록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지점은 임지의 삭막한 방에서 완전히 외부와 절연되어 있다고 느끼는 순간에 우연찮게 라틴어로 새겨진 암호와 같은 문자를 발견하면서이다.
관건은 시녀가 들려준 이야기를 토대로 독자들이 삶을 엿보는 데 머물지 않고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며 “긍정적인 여성 모델”에대한 더 나은 인식을 갖도록 이 작품이 유도할 수 있을지 여부다.

4) 증언과 역사 사이: 디스토피아의 현재성
소설 󰡔시녀 이야기󰡕에는 오브프레드의 증언에 해당하는 45개의 장(章)들이 끝나고 말미에 “󰡔시녀 이야기󰡕에 대한 역사적 주해”(Historical Notes on The
Handmaid’s Tale)라는 짧은 부록이 붙어 있다. “역사적 주해”는 길리어드가 멸망한 지 약 200년이 흐른 뒤인 2195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 국가를 연구하는 ‘길리어드 연구’ 학회의 12번 째 심포지엄 장면을 담고 있다. 독자는 “역사적 주해”를 읽고 나서야 자신이 읽은 시녀의 이야기가 학회에서 재구축한 하나의 메타픽션이며 “역사적 주해” 까지 포함한 󰡔시녀 이야기󰡕가 애트우드의 완결본 소설 󰡔시녀 이야기󰡕가 되는 복잡한 구조를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애트우드는 이 가상의 역사학회 현장을 다룬 “역사적 주해” 장을 추가함으로써 길리어드에서 삶을 살았던 한 여자의 증언과 길리어드라는 연구 대상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역사기술’ (historiography)을 비교하도록 유도한다. 역사학회의 연구발표장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부록을 통해 발표자들의 어조와 역사 해석과 청중의 박수갈채가 터지는 지점을 추적하면서, 우리가 읽은 역사 현장으로서의 디스토피아가 어떻게 ‘역사’로 재해석되고 연구되고 배포되는지 엿보게 한다.
애트우드는 허구적 서사 속의 한 시녀의 이야기와 ‘남자의 이야기’인 역사가 모두 허구성을 갖는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오브프레드의 증언의 가치를 새롭게 짚어볼 수 있다. 그녀가 디스토피아라는 시공간 안에서 취할 수 있는 정치적 저항은 비록 제한되어 있었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재구성하여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시 애트우드의 서사 안에서 이중으로 재구성됨으로써 그 증언을 통한 저항은 새로운 힘을 획득한다.
󰡔시녀 이야기󰡕는 디스토피아에서 남성권력의 침투성과 치밀함과 폭력성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증언의 이야기이자 여성의 이야기를 재구축하고 왜곡하는 남성중심, 엘리트 중심주의적 사고가 디스토피아를 도모하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2. 『시녀 이야기』, 생태적 상상력
<자료 출처>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 에 나타난
생태적 상상력_이 승 례(충남대)

1) 몸
생태학이 형이상학적인 것을 거부하고, 물질을 중요한 대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육체는 생태학에서 중심 기호로 자리잡게 된다.
몸의 주체성에 대한 복권은 시녀이야기 를 관통하는 핵심주제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을 통제하는 길리어드의 본질은 이름이 지닌 양가적 특성에서 드러난다. 먼저 “길리어드”는 성경의 예레미아서에 등장하는 유토피아의 이름과 동일하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꿈꾸던 신정일치의 열망이 함축된 이름인 것이다. 다른 의미에서, 길리어드(Gilead)라는 이름을 “Gi”와“lead”로나누어보면 공화국의 특성이 보다 명확하게 나타난다. “Gi”란단어는사전적으로 미군을 의미하며 “lead”는소수의남성들이주도하는lead) 가부장적 체제임을 암시한다. 또한 “lead”는“납”이라는 뜻으로 환경오염 핵폐기물, 화학무기로 생식기능이 파괴된 문명을 암시한다. 따라서 길리어드는 기독교적이며 가부장적인 “신성한아버지의이름”으로 인간의 육체를 억압하고 조종하는 반생태적 공화국이다.
또한 시녀 이야기에서의 “눈”은 독재하는“아버지의법”을 대변하고, “손”은 그것을 가로지는 인간의 욕망, 촉각의 진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2) 꽃
마거릿 애트우드는 오프레드가 디스토피아를 견디며 육체성을 확인하는 상징으로서 꽃을 소설 곳곳에 그려 넣고 있다. 작가는 극단의 디스토피아를 연출할 수밖에 없었던 정황과 독자들에대한 미안함을 토로하며 꽃의 상징성이 의도적인 것이었음을 이야기한다.
시녀 이야기 에서 꽃을 바라보고, 욕망하고, 기억하는 행위는 생존의 욕구와 연결되어 있다. 오프레드의 꽃에 대한 욕망은 디스토피아의 현실을 견디는 힘이 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에의 의지는 정치적 성격과 연결된다.
멕시코계 미국 페미니스트인 글로리아 안잘두아(Gloria Anzalua)는 얼굴 만들기, 영혼 만들기Making Face, Making Soul 에서 예술의 정치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바 있다.
“예술은다른 존재들 사이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창조적인행위는지배문화에대항하기 위해 명확한 미학적 전략을 차용하는 정치적 행동주의의 양식이다”
여기서창조성 아름다움 정치성은하나의맥락으로 수렴될 수 있다. 미학적 전략이 지배문화에 대해 우회하는 방식으로 서서히 균열을 내는 창조적 방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거릿 애트우드 역시 예술의 사회적 책임을 중요시 여기는 작가이며 예술과 정치성의 관계를 오프레드의 꽃에 대한 집착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바라 리그니(Barbara Ridney)는 마거릿 애트우드가 “사회를개혁하고 폭로, 비판하고 교정하기 위해 독자의 도덕적 분노를 일깨우고 싶어하는 예술가”라고이야기한다(126) 그런의미에서오프레드의꽃에대한 욕망과 아름다움을 향한 의지는 정치적 성격을 지닌 창조적 행위라고 해석할 수 있다.

3) 정원
소설 속에서 꽃은 정원의 상징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정원의 주인인 세레나 조이는 길리어드의 불모성을 상징한다. 그리고 정원은 오프레드의 육체성이 함축되어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전복적이다. 이 작품 속에서 정원은 분량이 크지는 않지만, 유일하게 생명력으로 가득한 낯선 공간이다.
자연을 닮은 여성의 생명력, 자연과 여성의 본원적 친밀성은 생태여성주의의 핵심이다. 에리히 노이만(Erich Neumann)은 그의 저서 위대한 어머니 여신The Great Mother 에서 “여성과 식물의 유대관계는 인간 상징성의 모든 단계에서 추적해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식물에서 여신의 원형적 형상을 찾는 시도를 한 바 있다.(427) 마거릿 애트우드가 그려내는 정원은 단순한 인간의 배경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욕망하면서도 인간과 공명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생태적이다.
결국, 오프레드가 예술가적인 면모로 끊임없이 꽃을 바라보고 기억하는 행위는 여성으로서의 육체성과 정체성에 대한 확인인 것이다. 길리어드가 여성의 몸을 재배치하는 동안 제거되었던 섹슈얼리티에 대한 회복의 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정원은 여성의 몸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길리어드가 결코 포획할 수 없었던 육체의 전복적 특성을 함축한다고 볼 수 있다.

4) 구원
시녀이야기 의 스토리는 “밤”(Night)을 중심으로 순환되며 그사이에 각각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밤은 오프레드에게세 잠시나마 “눈”의 감시를 피할수 있는 자신만의 시간이며 유일한 휴식의 시간이다. 오프레드는 “시간을 해가 아닌 달로 측정”한다. 시간을 음력으로 측정하는 오프레드에게 “달”은
절대적인 존재이다. 달은 여성의 생체주기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여성주의적의 의미를 내포한다. 또한 그 모양을 바꾸지 않는 해의 획일성에 비해 순환적이고 유동적인 특성을 지닌다.
여성과 자연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급진적 페미니즘은 생태여성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 밤의 시간이 꿈꾸고 모색하는 통로가 된다는 점에서 가부장적 억압이 존재하는 낮의 시간을 균열시키는 전복적 의미를 지닌다.
오프레드의 섹슈얼리티는 닉과의 관계를 통해 클라이막스에 이른다. 그녀의 섹슈얼리티는 길리어드의 체제 속에서 명백한 위반이라는 사실에 의미가 있다. 소설의 결말은 닉이 지하조직(Underground Railroad)을 동원해 오프레드를 길리어드에서 구해내는 것으로 암시된다. 결국 오프레드의 섹슈얼리티는 그녀를 구원한 셈이다. 조르쥬 바타이유(Georges Bataille)식으로 확대하자면 오프레드는 금기에 대한 위반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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