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세이사』 5장 - 잃어버린 역사 1996~1997 전반부

작성자
deepeye
작성일
2023-12-25 19:32
조회
227
1. ‘전후의 신들’의 황혼

(1) 마루야마 마사오의 사회주의 재고

- 헤이세이 9년(1997년)을 전후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 발족 및 기존 보수 계열 2개 단체가 ‘일본회의’ 결성. 표면적으로 보면 ‘우경화의 원점’이라 불릴만함.

- 그러나 새역모와 비판자들의 지난한 논쟁에도 불고하고 헤이세이 0년대(1989~1997년) 말기는 ‘과거로부터의 축적’이 더는 사회적인 공통 감각을 길러내지 않는 시대의 전조와 같았음.

- 그 상징적인 사건은 1996년 일어난 마루야마 마사오(일본 정치사상사), 고사카 마사타카(국제정치학), 시바 료타로(소설)의 서거.

- 60년대 안보 반대 운동을 지휘한 마루야마에게 ‘전후 민주주의의 교조’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실제 그가 남겼던 육성은 다른 면모를 드러냄. 단순히 실태로서 어떤 정치가 전개됐는지 쫓는 것을 비판하며, “가치의 척도-언어화된 이념으로서, 오히려 비판적으로 현실과 대치해온 사상의 흐름을 ‘전후 민주주의’라고 불러야 한다고”(155) 주장. 그것은 ‘사회주의 멸망’을 볼 때 역시 눈앞에 붕괴하는 소련 현실만 볼 게 아니라, 이념으로서의 사회주의를 보는 데까지 이어짐.

(2) 걸프전과 유엔 개혁론

- 이외에도 말년의 마루야마는 ‘일국 평화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NGO 등 비정부기구에 주권국가 수준의 발언권을 부여하는 유엔 중심주의 입장에 근접.

(3) 고사카 마사타카가 개헌파로

- 고사카 마사타카는 본래 헌법 9조에 대해 현실을 규제하기 위해 내거는 ‘가치’로 의미 있다고 주장. 그러나 걸프전을 계기로 ‘이념’과 거리를 둔 채, 헌법 9조 개정을 주장하게 됨. 가혹한 국제현실을 외면한 채 이념에 안도하고, 일본인들의 생각을 정지시키기 때문.

- 냉전 하에서 사상의 실을 짜낸 전후 논단의 신적인 존재(마루야마, 마사타카)가 1996년 사라졌을 때, 타자와 마주하는 감각을 근본적으로 결여한, 밋밋한 ‘역사 같은 어떤 것’이 머리를 쳐들기 시작.

2. ‘패전 전으로 회귀’는 일어났나

(1) 무너져가는 온건파 연합

- 1997년 4월 11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자민당 유력자인 노나카 히로무는 “이번 심의가 아무쪼록 다시 대정익찬회 1940~1945년에 존재한 일본 제국의 관제 국민통합 기구. 모든 정당을 해산하고 일국일당 체제로 운영.
같은 형태”(164)로 반복되선 안 된다고 발언. 이날 의제는 오키나와 주둔 군용지 특별조치법의 개정이었는데, 자민당·신진 양당의 미일 동맹중시 경향으로 중의원에서 90%가 찬성해서 특조법 개정.

(2) ‘역사 문제’의 정치 국면화

- 1993년 8월 총리 취임 직후 호소카와 모리히로가 회견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침략전쟁, 잘못된 전쟁”이라고 표명. 헤이세이 시대 ‘역사 문제’의 정치 국면화 계기로 작용. 온건파들마저 그때의 ‘희생’이 도대체 무엇이었냐고 항의. ‘전후’ 과제를 일단락하려는 호소카와의 발화 의도와 달리 1980년대 만들어진 ‘전후 합의’를 파괴하는 단서가 됨.

- 1980년대 ‘전후 합의’는 (1) 국제적으로 침략전쟁이었다고 인식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2) 헌법 9조의 평화주의를 내건다는 점을 과거에 대한 반성으로 간주. 좌우 국민 대다수가 수용 가능한 합의점이었음. 그 공통 감각이 호소카와의 발언으로 깨진 것.

- 호소카와 비자민 연립정권 조기 붕괴 → 1995년 자민당에 의해 사회당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옹립 → 호소카와 정권 인사들은 야당으로 전락한 뒤 역사 문제에서 입장 보수화

- 그러나 ‘야당 제1당(사회당)이 온건파였다는 점에서, 패전 전 제국의회에서 호전적인 포퓰리즘을 펼쳤던 야당과 달랐음. 저자는 “평화헌법의 이념 아래서 억제됐던 이 악몽의 메커니즘이 오랜만에 등장한 ’강경파 제1야당‘ 아래서 되살아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168) 없다고 지적.

(3) 오타 마사히데와 오키나와 기지 문제

- 한편 ’온건파의 강경론‘이 1995년 9월 미 해병대원 등의 초등학교 여학생 살해 사건으로 끓어오르기도 했음. 오타 마사히데 지사는 미군 기지 유지에 대한 ‘대리 서명 거부’. 표면적으로는 소녀 폭행 사건이 계기로 작용한 것 같지만, 이면에는 냉전 종식 이후 진척되던 해외 주둔 미군 축소에 제동을 걸었던 ‘나이 리포트’(170 참조)에 대한 저항이었음.

- 이후 오타 지사와 신념이 같았던 무라야마 총리는 오키나와현에 대한 법적 절차를 착수하지 않았고, 뒤를 이은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가 1996년 4월 이전 부지를 준비한다는 조건으로 미국과 후텐만 기지 반환 합의.

(4) 무라야마·하시모토 내각의 군상

- 자민·사회·사키가케 연립 정권, 무라야마·하시모토의 리더십으로 1995년 8월 15일 ‘무라야마 담화’ 발표. 좌우익 양쪽에서 협공 당하는 국론분열의 위기를 “정치가가 전후를 헤쳐온 경험의 무게로 극복”(172)한 사건. 저자는 아직까지 역사가 ‘살아’ 있었던 마지막 시기로 평가.

(5) 부처 재편에서 ‘관저 주도’로

- 하시모토 총리는 오키나와 문제 외에도 21개 부처를 12개로 합친 뒤, 내각부를 설치해 총리가 직접 지휘할 수 있도록 추진. 그러나 소비세를 5% 올린 시점이 경제 불황과 겹쳐서 실각. 이때 만들어진 ‘톱다운 형’ 통치기구는 2012년 말부터 레이와 시대에 걸쳐 장기 집권을 이끄는 아베 신조를 지탱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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