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호] 『개념무기들』 조정환 저자와의 인터뷰

인터뷰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3-12-29 17:45
조회
221
 

『개념무기들』 조정환 저자와의 인터뷰



Q. 이 책의 가제가 ‘들뢰즈 철학의 위도와 경도’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책 소개와 본문에서도 ‘위도’와 ‘경도’라는 단어가 발견되는데요, 이 책에서 ‘위도’와 ‘경도’라는 말이 어떤 의미로 사용된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들뢰즈의 행동학은 운동학과 동역학이 씨줄(위도)과 날줄(경도)로 얽히는 것입니다. 객체의 내포역량(잠재력)을 살피는 것이 동역학이며 그 내포역량의 이동과 운동을 살피는 것이 운동학입니다. 이 책에서 시간, 정동, 주체, 정치, 속도 등은 모두 이 두 차원으로 나누어지는데 크로노스/아이온, 정서/정동, 권력정치/소수정치, 속도/속력 등이 그것입니다. /의 앞이 경도를, /의 뒤가 위도를 표현하는 개념들입니다. 운동학적 개념들은 동역학적 개념들과의 관계 속에 들어올 때 비로소 도구이기를 멈추고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Q. 출판 전에 이 책의 제목을 들은 몇몇 독자님들이 철학을 도구가 아니라 무기로 위치 지은 것에 대해서 새롭고 통쾌하다는 반응을 많이 보내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무기’라는 단어를 제목에서 강조하신 것은 철학이 ‘도구’로 기능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의 표현이기도 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주류 철학은 자본과 국가를 위해서 봉사하도록 조직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들뢰즈는 서구의 주류 철학자가 권력에 봉사하는 ‘사유의 공무원’으로 기능해 왔다고 비판하며 이렇게 권력의 도구가 되는 철학을 왕립철학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무기는 무엇엔가에 예속되어 쓰이는 도구와는 달리 자유로운 활동을 표현하기 위해 들뢰즈가 사용하는 말입니다.


Q. 독자들이 책을 직접 읽음으로써 더 많은 답을 구할 수 있겠지만, 코로나19와 기후위기가 지금 지구인들에게 시급한 과제로 눈앞에 놓여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들뢰즈 철학의 어떤 개념무기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코로나19나 기후위기는 이윤을 찾아서라면 지구 어느 구석이든 달려가 자신의 지배 아래에 두어 온 지난 수백 년간의 세계자본주의 발전이 낳는 재앙적 결과입니다. 자본주의의 지리적 장악, 사회적 지배, 인지적 통제가 계속되는 한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고 재생에너지 사용이 확대된다고 해도 이 재앙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들은 원인이 아니라 증상을 해소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들뢰즈는 이러한 기술주의적 방안과는 달리 탈영토화, 도주선, 소수정치 등의 개념을 통해서 세계자본주의 권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강조하고 리좀, 블록화, 친구 등의 개념을 통해서 도주하는 힘들의 공통되기를 강조합니다. 애벌레주체성의 속력을 가속하는 정동적 움직임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기술주의적 조치 외에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기술, 자연과 기술 사이의 관계를 재편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Q. 이 책은 선생님의 25년간의 들뢰즈 연구의 결실입니다. 이 책의 몇몇 각주들에서 사변적 실재론, 신유물론, 객체지향철학에 대한 연구를 이후의 과제로 남겨둔다는 서술을 읽었습니다. 이후 선생님의 연구 방향과 차기작 작업에 대해 귀띔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변적 실재론의 한 가닥인 객체지향철학은 흐름에서 객체로, 동사에서 명사로의 전환을 주장합니다. 얼핏 보면 들뢰즈 철학의 전복과 역전을 추구하는 듯하지만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새로운 철학들은 들뢰즈의 철학과 많은 것을 계승하고 공유합니다.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려는 노력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이 책 『개념무기들』에서 네그리의 삶정치학과 들뢰즈의 소수정치학의 차이와 접점을 연구한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존재론을 중심으로 발전되고 있는 사변적 실재론, 신유물론, 객체지향존재론 등의 새로운 형이상학들이 들뢰즈의 존재론 및 정치학과 어떤 방향에서 연결될 수 있을지를 탐구하면서 객체지향-자율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해 볼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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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무기들


※ 편집자 주 : 이 인터뷰는 <개념무기들> 보도자료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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