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호] 안또니오 네그리의 타계에 부쳐ㅣ조정환

시론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4-01-03 15:01
조회
318
 

안또니오 네그리의 타계에 부쳐


조정환 (정치철학자)


 
 

...네그리의 죽음?

네그리는 누구일까?

그는 자본에 맞서, 국가에 맞서, 그리고 운동을 가변자본 한계 속에서 조직하는 노동계급 운동을 넘어서기 위해 고립, 수배, 망명, 투옥을 불사하고 투쟁했던 한 사람이다.

그는 자본의 자기발전이 아니라 산 노동의 투쟁이 인간들의 사회적 삶을 궁극적으로 규정하는 힘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힘주어 강조한 사람이다.

산 노동의 힘은 근대 자본의 변증법 속에서(Within) 그것에 대항하면서(Against) 그것을 끝내 넘어서는(Beyond) 변증법적이고 탈근대적인 구성력이고 제헌권력임을 사유와 실천으로 입증해 보이고자 한 사람이다.

전 지구화하는 주권권력의 시대에 그는 이 제헌권력이 다중으로 실재하고 있음을 직시한 사람이다. 산 노동은 고용노동과 비고용노동으로, 임금노동과 비임금노동으로뿐만 아니라 여성, 원주민, 흑인, LGBT 등으로 정체화되어 있는 다양의 삶 자체임을 직시하고 그것을 ‘다중’이라고 호명한 인물이다.

그는 1960~70년대 이탈리아의 오뻬라이스모, 아우또노미아 운동에서 시작하여 1980년대 파리의 학생운동, 1990년대 유럽의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멕시코의 사빠띠쓰따 운동, 2000년대의 전 세계적 대항지구화 운동, 2010년대 북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전 지구적 반란과 점거운동 등에서 다중의 기예와 표현력을 읽은 사람이다.

2020년대에 우리는 네그리가 충분히 이론화할 수 없었던 새로운 사태들에 직면하고 있다. 그것은 현재의 지배종인 인류의 멸종을 가시화하는 핵방사능, 바이러스, 기후위기의 등장이다. 네그리에게 시간이 있었다면 아마도 그는 이것을 정치적 다중이나 사회적 다중의 근저에서 침묵의 행보를 하던 다중, 요컨대 존재론적 다중으로, 그리고 행성적 다중의 표출로 이론화했을 것이다.

상품관계, 화폐관계를 기초로 한 자본은 궁극적으로 이 인간 실존의 위기, 멸종 위기를 불러오는 테러의 주범이면서 오히려 네그리의 정치적 삶을 (그의 죽음의 순간에조차) 테러리즘 기획으로 묘사하는 데 열을 올린다. 그것은 행성적 위기조차 핵발전, 생명산업, 탄소산업의 발전과 축적의 기회로 만들고자 하는 탐욕적 자본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부시) 기획의 연속이다. 그러한 폭력 기획을 지속하는 것은 공통화(commonizing)가 상품화(commodifying)의 한계이고 죽음임을 직감하는 자본의 본능 때문일 것이다.

네그리는 노년을 감미로운 감속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젊은 가속주의자들에게 기술적인 것의 가속을 넘어 공통적인 것의 가속이 필요하다고 주문한 바 있다. 생전에 ‘맑스를 넘어선 맑스’, ‘레닌을 넘어선 레닌’(*2024년 레닌 사후 100주년을 맞아 출간하려고 갈무리가 준비하고 있던 책 <전략의 공장>)을 추구했던 그가 새로운 세대에게 ‘네그리를 넘어선 네그리’를 주문했던 것일까?

우리가 그의 주문을 받아, 멸종이 멀지 않게 느껴지도록 또 희망보다 절망이 더 빨리 감각되도록 만드는 이 자본세(제이슨 무어)를 끝내고 행성적 다중들의 연결망인 쑬루세(도나 해러웨이)의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우리가 그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윤리정치적 주체성으로 사유하고 행위하는 한에서, 영면에 든 그가 영원할 것임은 분명하다. ‘아우또노미아는 영원하다…’는 그의 말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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