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5장 발제문

작성자
voov11
작성일
2023-03-15 07:21
조회
109
5장 가정의 잔혹함과 주체의 탄생

- 독자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고통 - 과부의 곤경 - 을 증언하고 실증하려는 어떤 의지가 근대 뱅골인의 삶에 상당히 새겨져있다. 이러한 의지, 그리고 그 의지가 구축한 아카이브 이 두가지 모두 19세기 인도에서 영국의 식민지배가 발전 시킨 근대성의 일부이다. 241
- 실증하고자 하는 이러한 의지 밑에 놓여 있던 것은 고통의 일반적인 형상으로서의 뱅골 상층 카스트 힌두 가족들 내의 과부 이미지였다. 수 많은 과부가 과부살이의 법도와 내훈에 자신을 종속시켰으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삶을 통제하려는 사회적 금기에 저항한 과부들도 많았다. 몇몇 과부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공적으로 기록한 칼리아니 다타의 사적인 행동 자체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변화 증거이다. 241
- 과부살이의 내훈들은 속죄하라는 것을 나타낸다. 하지만 식민지배가 도래하기 전 까지 과부살이는 뱅골 사회의 문제로 떠오르지 않았다. 식민지배는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1870~1920년 사이의 초기 뱅골 소설에 이르기 까지 뱅골의 글쓰기에서 과부와 과부의 곤경은 무엇보다 중요한 주제였다. 242
- 특히 여성의 조건을 문명화 자격을 측정하는 지표로 사용한 영국의 식민담론과 사티나 과부 재혼 같은 문제에 주목한 뱅골의 근대적 사회 비평 형식의 출범, 이 둘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음을 입증했다.
- 내가 여기서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는 그동안의 학자들이 추구한 문제와는 다른데, 과부살이의 경험에 관한 가족과 가족의 수많은 기억으로부터 집단적, 공적 과거가 창출되는 가운데, 고통받는 부의 일반적 형상이 뱅골의 역사안에서 생산되었음은 명백하다. 집단적 과거는 근대적 공적 삶의 조건하에서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 필요했다. 어떤 종류의 주체가 공적 기억과 가족의 기억이라는 두 종류 기억의 상호 작용에서 생산되는가? 이 주체가 고통의 실증에 관심을 가지려면 어떤 주체여야 하는가? 이렇듯 억압과 상처를 증언하고 실증하려는 의지를 표나게 드러내는, 뱅골의 근대적 집단적 주체의 역사를 어떻게 쓸것인가?

동정심과 계몽적 주체

- 일반회된, 몸과 무관한 관찰자의 위치에서 고통을 인지하고 실증하는 능력은 근대적 자아의 시작을 알리는 표시다. 자아는 원칙적으로 일반화될 수 있어야 한다. 244
- 공감 능력은 특정인의 유일성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는 잠재력으로 여겨지는데, 이것은 흄과 애덤 스미스같은 계몽사상 철학자들이 자연적 정서론으로 논증했다.
- 고통을 드러내는 행위와 고통받는 자를 관찰하거나 대면하는 행위는 구분되어야 한다. 고통받는 당사자가 아니라 고통의 일반화된 모습에 공감함으로써 제2의 고통받는 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 그리고 궁극적으로 사회의 개입을 위해 그 고통을 실증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근대적 주체의 위치성을 갖는다. 달리 말하면 고통에 대한 근대적 관찰의 계기는 추상적 일반적 인간 존재의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인식의 어떤 계기인 것이다.
- 19세기 초반 논의에 따르면 이러한 일들은 이성의 도움 없이는 생겨날 수 없었다. 이성은 더 정확히 말하면 교육은 근대적 인간이 일반적인 것을 볼 수 있는 이 능력을 실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간주되었다. 245
- 람모훈 로이가 쓴 고대의 여성 권리에 대한 근대의 틈입에 관한 소론은 여성의 재산권을 옹호한 최초의 논증 중 하나이다. 이러한 논의 안에는 권리와 정서가 얽혀 잇다. 이 글에는 첫째, 과부와 여성에 대한 잔혹함을 관찰하는 로이의 위상은 초월적인 근대적 주체 위상이다. 246 공감능력이란 대표하는 사람을 대표되는 사람들과 결합 시키는 것이다. 여성계라는 표현은 일반적 공동체를 의미하는데, 이 일반적 공동체는 여성 공동체 편에서 관찰하는 관찰자와 괴로움을 공유하는 것이고 이것을 우리는 동정심 일반이라고 부를 수 있다. 247
- 동정심이나 공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동정심이 일반이 되려면 사회는 어떻게 양서오디어야 하는 가에 대한 답변으로 유럽 계몽 사상과 연관된 답들이 제시된다. 이성이 모든 인간 존재 안에 자연적으로 현존하고 있는 동정심을 유출 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성만이 풍속과 관습이 야기한 맹족을 제거한다고 주장한다. 즉 이성적이 이간 존재는 고통을 볼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공감하고 동정하고 연민을 느끼는 인간의 자연적인 능력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248
- 그런데 왜 보는 것이 공감으로 귀착되지 못하는 가에 대한 답변으로 로이는 무감각의 관습들 탓이라고 설명한다. 이 관습이 교정되거 제거되면 여성이 강제로 죽게 되는 것에 동정심이 유발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249
- 이성은 동정이라는 정서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풍속을 제거하며 정서들이 본래대로 흐르게 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관은 보편적이다. 252


계몽적 주체를 대리보충하기 : 차이의 번역

- 자연적 동정론은 두 가지의 문제를 갖는데, 즉 인간 정체성의 공간을 이성으로만 채웠다. 두 번째는 뱅골의 역사가 계몽사상으로 덮을 수 있는 서판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 뱅골 남성들이 여성의 고통을 바라보게 한 것은 이성과 흐리다이, 마음씨였다. 실제로 로이와 비디아사가르를 동정심있게 만든 것은 그들이 가진 마음씨 탓이라고 말한다. 19세기 전설적인 공인들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애덤스미스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특성이 아니었지만 전기에서 자세히 열거된다. 즉 마음씨 안에 풍부한 동정심이 있다는 것이다. 즉 태생부터 특별한 동정심을 가졌기에 특별한 사례에서 일반 사례로 변한 것이다.
- 이렇게 능력으로 이해하는 것은 본성으로 보는 애덤스미스나 흄과의 입장과는 다른 것이다. 공감의 관념은 상상을 수반하는데, 이 상상 능력은 인간 본성의 일부였다.
- 그에 반해 로이나 비디아사가르처럼 태생적 성격을 강조하는 부분에서는 산스크리트 미학에 의존하였다. 이것은 유럽의 공감이론에서의 상상과는 달랐다. 흐리다이, 마음씨를 가진 것은 규칙이 아니라 예외였다.

- 19세기 뱅골에서 전기를 쓰는 일은 사회개량에 기여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관념이었으며 자연적 동정론은 이때 도움이 되었다. 전기는 교육의 도구였다. 그러나 한편 공감, 마음씨는 귀한 것이었기 때문에 뱅골의 사람들은 혼란스러워 했다.
- 목격은 누구에게서 공감이나 공감이나 동정심을 낳았는가라는 질문에 두 개의 답을 하는데 계몽 주체이거나 드문 재능으로서 불린 주체였다. 이 다른 주체가 동일한 텍스트들에서 발견되는 것은 즉 이것은 상호대리보퉁 관계를 맺으며 뱅골 근대성의 뒤얽힌 요소가 되었다.

근대적 주체로서의 과부 : 내면성 그리고 순수성의 문제

- 과부를 외부에서 본 로이나 비디아사가르는 결국에 과부의 고통 경험을 포함하지는 못했다. 과부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것이 프로젝트가 되었을 때, 과부는 스스로 자기에 대해서 말했고 이는 과부가 자신에 대한 관찰자가 된 순간이다. 즉 고통받는 이로서의 과부의 역사 아카이브는 결국 과부 본인들의 주체성을 담게 되었다. 과부는 응시의 객체이자 주체가 되어 억압과 고통을 증언했다. 이는 시민이라는 근대적 주체와 동일했다.
- 주체성 자체는 내면성이라고 부르는 것과 공적인 이성 사이에서 만들어졌고, 대립이 균열로 나타났다. 이전에는 사적 자아는 비어져있었으나 사적 자아가 채워지면서 주체성이 만들어졌다.
- 내면은 인간의 주체성을 구성하는 정념, 욕망, 정서의 의식적인 세계였고 의삭의 하부세계였다. 그렇지 않으면 개별적인 주체의 감각이 발전하기 어려웠다. 이성은 개인적 주체성을 구성하기 어렵다. 근대적 주체는 정념, 정서 같은 것들이 마음에 들어와있어야 하나. 정념과 이성의 투쟁관계가 바로 주체의 내면이다.
- 미첼은 근대적 개인이 사회적인 것과 일반적인 것이라는 개념에 위협이 된다고 하는데, 개인들에게 무한한 개체성이 부여되면 사회적인 것의 통일이 어떻게 보장되는가?그 답은 개인의 층위에서는 이성이며, 이성이 사회 영역내의 적절한 곳으로 이끈다.
- 한편으로 과부의 고통에 대해서 이렇게 뱅골의 남성들이 주위를 기울인 것은 체통있는 세련된 감각을, 그리고 남성들과의 성관계로 초래된 두려움을 말해주는 것이다. 과부의 고통을 말할 때 과부의 주체성과 행위능력은 어디에 있는가? 오히려 과부들에게 규제될 수 없는 젊의 충동과 정념이 있다고 서술한다.

- 소설의 발전이 되면서 과부의 내면성에 대한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다. 과부의 금지된 사랑은 소설의 주된 주제가 되었다.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과부의 내면세계를 보려면, 바로 새로운 뱅골 주체의 과부의 자유와 자기 표현 욕망을 넣어야 했다. 이때 내면성이 자율적이고 내부로 묘사될 때 자기 의식적 행보가 취해졌음을 보게 된다.
- 즉 비디아사가르에게서 과부의 욕망은 육욕으로 전달되었는데 하지만 이는 뒤틀림을 낳는다. 즉 순수한 육체의 정념을 뛰어넘는 사랑이 강조된다. 이러한 뒤틀림 속에서 몸과 몸의 정념은 외재적으로, 감감의 영역에 속한다. 내면성은 인간의 내재적 본성이고 바로 그 영역에서 인간의 감각의 지배를 벗어나 사랑을 정신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즉 소설은 과부의 사랑을허락하더라도 육체적인 것이 되지 않으려고, 이론화되었다. 육체적인 것은 뱅골 문학에서 결여되었다.

- 반킴찬드라의 경우 이성은 정념과 투쟁한다고 하고, 내면성에 중심을 두지만 그에게서 몸은 자율적인 현존을 누린다. 이렇게 외재적 본성과 내재적 본성이 구분되긴 하지만 이 두 가지를 매개한다. (타고르는 드라마를 외재적인 육체의 공간에서 주체의 내면성의 공간으로 이동시키는데 이는 시선을 통찰에 종속 시킨다.)

- 앞서 소설들은 몸과 무관한 사적인 소통가능한 내면의 영역을 확립했다. 육욕을 몸안에 있는 동물적 정념으로, 그리고 그것에 사랑의 관념 (순수한) 대비시키며 과부의 자율성을 표현한다. 즉 몸으로부터 자아를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 이렇게 내면성이 부여된 과부는 자신에 대해 쓸 수 있게 되었다.
- 그러나 몸은 여전히 주변화되어 있고, 몸과 주체의 내면공간을 횡단하는 섹슈얼리티 같은 것들을 존재하지 않는다.

- 이때 뱅골에서 주체성의 내면은 가족이라는 틀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파비트라타의 추구는 근대적 주체에게 내면의 투쟁공간을 부여하였지만 몸과 비교되는 자율성을 주었지만 가족 로망스는 이어졌고 이는 유럽의 가족과는 달랐다. 확대 가족 이상화에 의해 섹슈얼리티 범주는 출현이 막혔다.
- 근대적 주체는 행위자이고, 고통은 시민의 입장에서 실증될 수 있지만 가족 로망스는 다른 것을 말한다.

누가 고통을 증언하게 되었는가?
- 소설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는 관념을 양성하였고, 정서를 재생산하였다. 이때 뱅골에서 담론적, 집단적 주체가 생겨난다면 이 주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이것은 유럽의 시민주체와 같은 가?
- 유럽-부르주아 근대성의 포준적 서사들은 가족적 기억과 공적 기억은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공적 삶과 병합할 수 없는 것은 사적 억압구조로 들어왔고 억압과 섹슈얼리티 역사는 공적 삶의 사적인 역사가 되었다.

- 뱅골의 경우 시민주체의 공적 기억과 사적 친족 기억이 합쳐지는 것은 드물었다. 뱅골의 근대적 주체라고 부를 수 잇는 집단은 다양한 주체 위상이 교차하고 심지어 주체성의 비부르주아적 비개인주의적 실천들이 교차하는 중계되는 유동점이다.
- 뱅골의 근대성 담론적 집단적 주체는 다중적이고 통약불가능한 실천에서 형성되었고, 일부는 근대적, 비근대적이었다.
- 마음씨를 가진 주체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고통을 들을 수 있는), 신들에게 말하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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