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제 길을 간다 | 황규관 지음 | 2000.9.29

마이노리티
작성자
갈무리
작성일
2018-03-10 16:28
조회
670


물은 제 길을 간다

지은이 황규관 | 정가 5,000원 | 쪽수 128쪽
출판일 2000년 9월 29일 | 판형 국판 변형 (128x210) | 도서 상태 초판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도서분류 마이노리티시선 6
ISBN 89-86114-32-1 |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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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소개

황규관의 이번 시집의 시들은 크게 두 가지 계열군으로, 물 론 더 세분된 분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나뉘어진다고 볼 수 있겠다. 제1, 2부의 [귀거래를 생각하며]라는 시를 가운 데 두고 대지에 맨발을 딛고서 자연 물상의 세심한 관찰과 사 유를 통해 얻는 성찰을 다루는 시들로 주변을 이루는 한 계열 과 후반부의 금지와의 싸움, 또는 그 해체를 통해서 삶의 영역 을 확장해나가는 발상에 뿌리를 둔 시들로 구분해 보는 것이다. 전자를 농촌 서정이라고 한다면 후자를 도시적 정서라고 할 수 있겠는데 도시적 정서는 농촌 서정을 압도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발문 : 전복적 삶과 금지와의 싸움으로서의 시 ― 조기조 (시인)

올해 초, 황규관이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강화도로 이사를 한다고 했다. 강화도에 가서 농사를 짓겠다는 거였다. 나는 저 으기 걱정이 되어 그의 강화도행을 말렸다. 너나 나나 없는 놈 들에게 그래도 서울이 벌어먹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게 내 만류 의 근거였다. 그러나 그는 [귀거래를 생각하며]라는 눈물나는 출애굽기를 남기고 가족을 솔거하여 서울을 떠나고 말았다. 한 편 나는 그가 과감히 서울을 벗어나 살게 되었다는 사실 앞에 서, 그 용기 있는 선택적 삶이 부럽기만 했다. 그리고 그가 그 곳에서 아주 잘 견뎌서 내 탈서울의 근거라도 마련해 주기를 마음속으로 은근히 바래기도 하였다. 이따금 전화를 걸어와 '오늘은 감자를 심었다'는둥 하며 그곳 생활의 즐거움을 전해 줄 때는 실업에 시달리는 내 서울 생활의 숨통을 더욱 답답하 게 조여오곤 했다.

그런데 웬걸 , 며칠 전에 그는 전화를 걸어와 서울에 일자리 있으면 알아봐 달라고 은근히 청탁을 해왔다. 내 한 몸 도 건사를 못해 마누라 등에 업혀 살아가는 처지라 어찌 도움 을 주지는 못하지만 걱정도 되고 또 부아가 나기도 했다. 농사 를 짓겠다고 한 자가 자기가 뿌린 씨앗을 거두기도 전에 다시 도시로 나와야겠다고 할 땐 그만한 사정이 있을 테지만 도대체 어찌된 삶이기에 그렇게 쉽게 몸을 놀리는 것일까 생각하며 나 는 그의 지난 이력을 거슬러 상기해보게 되었다.

내가 황규관을 처음 만난 것은 1993년 봄이었다. 당시 나는 구로노동자문학회에 소속되어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정기 문학 강좌에 그가 수강하러 온 것이 그와의 첫 만남이 되었다. 나이 는 스물 여섯이라는데 약간의 대머리기와 이미 결혼하여 젖먹 이 아이까지 하나 두고 있고, 얼마 전까지 광양제철소에서 일 을 하다 최근 상경을 하게 되어 문학회에 오게 되었노라고 자 신을 소개하는 말에 나는 그가 여간 노골노골하지 않겠다는 느 낌을 받았다. 그야말로 "물 설고 산 설은" 서울로 갓난아이를 들쳐업고 상경을 하기까지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고 나는 그것이 매우 가상하게 느껴졌다. 그의 상경을 보다 수월하게 했던 것은 포철 계열회사 근무라는 보장이 있었을 테지만 황규 관은 몇 년 안 가서 자의로 그 직장을 그만두고 한동안 실업에 시달리다 도시철도공사에 입사를 했다. 그리고 또 도시철도공 사마저 팽개치고 강화도로 이주를 한 것이다.

지금껏 고향도 없이 살았다 / 어머니는 전쟁 전 李아무개 수양딸로 간 뒤 / 친부모 양부모 소식 다 끊긴 채 사시다 / 나를 서자로 낳고 버림받았다 / 가는 곳마다 / 내 피에 섞인 이물질이 얼마나 서러웠던가 / 따뜻한 밥 한그릇 먹고 마당에 나가 / 창공의 별에게 정들었더라면, / 정말 그랬더라면 / 나는 이파리 많은 나무가 되었을지 모른다 / 지나가는 바람에 온잎이 출렁이는 나무가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은 /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뿐이었다 / 그 욕망 따라 여기까지 왔다 굴욕의 길이었다 / 비애의 길이었다 대지로 돌아가자 / 서울 온지 육 년만에 귀거래를 생각하며 / 없는 고향이, 나와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가 / 새울음 소리에 그 많은 잎을 뒤척이는 나무 한그루를 / 내 안에 심어놓았음을 알았다 / 고향도 없이 여지껏 떠돌았는데 / 물 설고 산 설은 곳으로 떠날 생각을 하며 / 나는 혼자 울고 있는데 ― [귀거래를 생각하며] 전문

황규관은 또 노동자문학회 활동에서도 몇 번의 굴곡을 보여 주었다. 그가 문학회에 들어온 해에 보기 좋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해서 문학회 회원들의 선망과 질시를 함께 받게 되었는데 그가 자신의 첫 시집 {철산동 우체국}(내일을 여는 책, 1998)을 묶으면서 전태일문학상 수상작들을, 그러니까 자신의 등단작들을 고스란히 제외시켜 놓았다. 또 문학회 활동 중간에 노동자 문학회가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조목조목 따진 후 자신이 그 러한 공간에서 더 이상 문학회 활동을 할 수 없음을 설명하며 탈퇴했다가 다시 재가입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좌충우돌형의 행태는 무엇 때문이고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자신의 등단작인 노동 현장에서 건져낸 시들을 버림으로써 '나는 노동자시인이 아니다'라고 자신의 정체를 부정하는 것이 나, IMF로 불려지는 초유의 실업사태 속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팽개치고 농사를 짓겠다고 농촌으로 들어가는 황규관은 상식적 인 수준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이력의 소유자이다. 상대적으로 보장된 대기업노동자들의 특성 가운데 하나로 그 속에서 생활적 안정을 찾으려고 하는 데 비추어보면 황규관 의 그러한 잦은 전직 및 이주는, 역마살이 낀 모양이구만, 이라 는 단순한 역술적 풀이로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노동자들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그것이 황규관만의 특별한 경우 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다. 자본의 위기의 현재적 표현인 신자유주의의 노동유연화 전략은 오늘날의 노동자들에 게 어떠한 안정된 삶도 허락하지 않는다. 바로 이 자본의 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오늘날의 노동자들인 것이다. 자본은 인간을 공장으로 몰아넣었지만 이제는 밖으로 내팽개치고 있 다. 노동자들은 유리의 길 위에 서 있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창출을 자본주의 극복의 대안으로 설 정해 온 노동자의 자존심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지향했던 사 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함께 심한 상처를 받으면서, 또 자신 의 삶이 위기 속에 놓여 있음을 최근 실감나게 감지하며 노동 자의 가치에 대한 인식은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노동자의 삶이 뭐가 아름답고 자랑스럽냐는 부정 인식의 지평 위에 황규관의 문제제기와 전복적 삶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부정은 감시와 억압 과 착취에 짓눌려 있는 불안하기만 한 삶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개척해보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낳게 하였다고 볼 수가 있다. 그의 지난 시절의 삶의 궤적은 만족스럽지 못한 삶 을 강제하는 세계를 뚫고 나가는 탈주 지도인지도 모른다. 그 런 전복적 삶 속에서 시도되는 그의 시쓰기는 여타의 노동자시 인들과는 다른 독특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황규관의 이번 시집의 시들은 크게 두 가지 계열군으로, 물 론 더 세분된 분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나뉘어진다고 볼 수 있겠다. 제1, 2부의 [귀거래를 생각하며]라는 시를 가운 데 두고 대지에 맨발을 딛고서 자연 물상의 세심한 관찰과 사 유를 통해 얻는 성찰을 다루는 시들로 주변을 이루는 한 계열 과 후반부의 금지와의 싸움, 또는 그 해체를 통해서 삶의 영역 을 확장해나가는 발상에 뿌리를 둔 시들로 구분해 보는 것이다. 전자를 농촌 서정이라고 한다면 후자를 도시적 정서라고 할 수 있겠는데 도시적 정서는 농촌 서정을 압도하고 있다고 보여진 다. 아마 그의 농촌 체험이 아직 깊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거둔 씨앗으로 농사를 지어 수확을 해본 사람만이 진짜 농사꾼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는 이제 겨우 남에게 얻은 씨를 뿌려보는 경험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에서다. 나는 후반부의 시 들에서 즐거운 시읽기를 맛보았다.

애가 둘인데 / 나는 아직 길을 모른다. / 어두워져 / 세상에 내뿜는 집집의 불빛을 보면 / 여지껏 바깥이구나, / 마음이 쩌-억 금간다. / 죄짓고 참회하고 죄짓고 참회하고 / 여기까지 왔다 / 지은 죄가 긍정되는 삶을 / 한 번 살아보고 싶은데, / 어제 지은 죄로 / 봄볕마저 내게는 채찍이다. / 아무래도 길은 죄 안에 있는 것 같다. ― [죄 안에 길이 있다] 전문

죄는 금지의 설정 속에서 발생하고, 금지의 위반에는 참회 혹은 처벌이라는 죄과가 부과하며 세계는 수많은 금지를 통해 서 관리되고 있다. 본래 금지는 세계의 조화로운 질서 유지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의되어 설정되었을 것이지만 합의 주체들의 힘의 역학관계에 따라 일방적 규제와 억압으로 나타 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금지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고 살아갈 때 그 삶이 긍정되지 않는다면 금지의 위반을 통 해서 제대로 된 삶의 길을 모색해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발상은 범상한 것에 불과하다. 이미 그것은 삶의 경험 속에 충 분히 축적되어 있다. 그런데 이 시에서의 문제의식은, 제대로 된 길을 가려다보면 그것은 이미 금지의 경계를 넘게 되어 끊 임없이 참회가 있어야 하는, 즉 죄의식의 시달림이 있다는 것 이다. 그것은 금지를 통해서 자신의 이해를 도모하고자 하는 자들의 지속적이고 강제적인 교육의 효과이다. 우리는 제대로 사는 길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잘 알 지만 그 길은 죄의 길이기 일쑤이고 죄의 길을 가는 것은 위험 하다고 생각하는 안일함과 패배주의 때문에 가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우리의 삶의 이중적 단면을 황규관은 분명하게 짚어내며 질타하고 있기도 하다.

한 세상 다 버리고 / 겨울바람에 제 몸을 우지끈 꺾어버렸던 나무처럼 / 자해 한번 없이, / 아니 그 직전 자기 모멸도 없이 살아서 / 붉은 영혼에 시커먼 활자가 박혀서 / 아직껏 폭발하지 못하는 것이다 ― [소름끼치는 책] 부분

금지와의 싸움, 혹은 그 해체와 재구성을 통한 삶의 공간화 를 외부 세계의 질서에 대한 관념적 비판의식만이 아니라 이러 한 치열한 자아에의 내시를 곁들여 구체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세밀한 관찰 묘사, 자기 성찰, 풍자 등으로 매우 다양하 게 변주되면서 첫 시집에서 보여준 반복적인 단순함을 극복해 내고 있다. [공중화장실에서의 단상]에서는 화장실의 낙서 같 은 세상이 왔으면 하고 바라는데 그 세상은 "주름잡은 바지가 다 구겨지는 세상"으로 재치 있게 비유되고, [하루 종일 빈둥 거리다]에서는 잠시도 머뭇거려서는 곤란한 무한 속도경쟁의 시대에 아무런 명분 없이 빈둥거림으로써 도대체 뭣 때문에 그 렇게 바쁘게만 살아야 하느냐고 딴지를 걸어보기도 한다. 또 [선데이 서울]에서는 욕망과 금지 사이의 현란한 스펙트럼을 자기 고백적 형식을 취함으로써 사변에 떨어지지 않고, [허락 받지 못한 데서]에서는 따뜻한 시선이 흔히 빠지기 쉬운 감상 을 거뜬히 벗어나고 있기도 하다.

3
황규관은 첫 시집 {철산동 우체국}을 세상에 내놓고 별로 문 단적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한 세상의 반응에 대하여 그는 약간 쓸쓸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과 2년 반만에 새 시집을 다시 내놓음으로서 세상의 그러한 평가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의 시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 황규관의 시들은 삶이 어떻게 억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고 아 름다워질 수 있을까 하는 점을 치열한 자기 성찰과 함께 금지 영역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한 삶의 공간화라는 주제 속에서 펼 쳐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타율적 삶에서 벗어나 자율적인 주 체성을 회복해나가려는 황규관의 삶의 태도와 일치되면서 진정 성을 획득해내고 있다.

물론 금지와의 싸움이라는 주제는 황규관만의 독특한 주제 는 아니다. 또 황규관은 이미 첫 시집에서 [간통 이후]라는 멋 진 시를 보여준 바도 있다. 그러나 그 대개의 시들은 금지를 위반하며 얻는 감각적 일탈적 해방감이 목표였다면 황규관의 이번 시집은, 특히 제3부에 배치된 시들은 일탈을 넘어 금지의 영역마저 삶의 공간으로 확장하려는 적극적인 시도를 보여준다 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황규관의 시들을 앞에서 편의상 두 계열군으로 구분해보았 지만 소위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다방향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 다. 그것은 아직 전일한 주제의식을 획득하지 못했다는 이야기 가 될 수도 있겠지만 혼돈 속의 다양한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 다는 말로도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후자의 한 가능성에 기초 하여 그의 시들이 노동자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지점에 놓 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말이 곧 황규관의 시를 단순 히 노동시라고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문자로 드러나지 않은 시의 여백과 배면에서 오늘날 노동자로 살아가는 고단함과 치 열한 자기 확장의 노력이 담겨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시인 소개

황규관은 1968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1993년 전태일문학상에서 <지리산에서>외 9편이 당선되었다.
1998년 처 시집 [철산동 우체국](내일을 여는 책)을 낸 바 있다.


목차

제1부
내가 세운 뜻 외

제2부
귀거래를 생각하며 외

제3부
공중화장실에서의 단상 외

제 4부
집이 그립다 외

발문/조기조 - 전복적 삶과 금지와의 싸움으로서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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