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호] 『빚의 마법』을 읽고 / 김영철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6 10:31
조회
2677
『빚의 마법』을 읽고
『빚의 마법』 서평


김영철(다중지성의 정원 회원)


사람들은 자의나 타의로 빚을 지며 살아가게 된다.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면 빚을 지게 되는데, 빚을 많이 쓸수록 점수는 쌓이고 신용도 높아간다. 주택대출, 교육대출, 자동차 할부 구입, 정부부채 등 사람들이 책임져야 할 빚들이 많다. 어차피 빚을 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라면, 우리가 입는 옷, 우리의 먹을거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듯이 빚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리차드 디인스트(Richard Dienst)가 지은 " The Bonds of debt"가 “빚의 마법”으로 번역되었다. 이 책은 빚의 굴레에 대해 경제적, 정치적으로 분석할 뿐만 아니라 빚과 함께 새로운 연대와 해방의 길이 열릴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빚이 희망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발상의 전환을 통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빚 없는 경제는 가능한가? 디인스트의 견해처럼 현재의 경제체제에서 빚의 역할은 매우 크다. 경기부양을 위해서 취하는 재정지출, 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공적 자금 투입 등은 빚 없이는 생각하기 힘들다. 세계적으로 경제성장이 더딘 상황에서 빚의 역할은 갈수록 커질 것 같다.

빚은 개인적인 문제인가? 사회적인 문제인가? 빚의 문제가 개인적 상황에서 나타나는 굴레처럼 생각될 수도 있지만, 현재의 경제 체제에서 빚의 역할을 보면 그 문제는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 된다. 그런데 더 나아가 빚은 인간의 근본적인 조건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저자는 "인간은 더 이상 울타리 쳐진 인간이 아니라 빚진 인간이다."이라는 들뢰즈의 말이나 "인간의 가장 고유한 존재는 결여"라는 아감벤의 생각 등을 참조한다. 여기서 빚은 경제 영역을 넘어 인간들에게 근본적이고 공통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빚이 우연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불행이 아니라면, 빚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은 허황된 것일까? 빚과 함께 지내면서 빚이 지닌 독성을 약화시키거나 무력화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빚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디인스트"는 빚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권하기보다는, 누구도 빚을 감당하기에 너무 가난하지 않은 미래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말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기획들의 중요한 축으로서 "소액신용"에 대한 이야기와 “희년”에 대한 이야기를 검토한다. 소액신용에서 빚짐은 일종의 "축소할 수 없는 기술적 보철" 같은 것으로, 이자의 추구가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의 활력화를 추구하는 수단이 될 수 있고, 그렇다면 소액신용을 통해, 시장 논리가 식민화해 온 사회적 삶의 차원들을 재정치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액신용"과는 다른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희년"과 관련된 상상이다. 희년은 성경(레위기, 25장)에 나오는 이야기로, 이 이야기는 "50년마다 선포되어 모든 빚의 탕감, 원소유주에게 주택과 토지를 돌려주기, 노예와 종의 방면 등이 이루어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희년은 물질적 부의 굴레에서 고통 받는 인간의 해방을 선언하는 것이라고 읽혀진다.

"소액신용"이나 "희년" 이야기의 가능성과 한계를 전망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불어 넣는 상상력을 통해 빚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들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빚의 성격이 이자의 추구에서 사람들의 활력을 증진시키는 것으로 변화되었을 때,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촉진될 것이다. 그리고 빚을 주기적으로 탕감하는 희년의 모티브는 채무의 굴레로부터의 해방과 인간성의 회복을 꿈꾸도록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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