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호] 우리 시대 예술진화의 전망 ‘다중-예술’과 ‘예술인간’ | 이성혁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5 23:50
조회
2383
우리 시대 예술진화의 전망 ‘다중-예술’과 ‘예술인간’
『예술인간의 탄생』 서평


이성혁(문학평론가)


* 이 글은 2015년 3월 23일 동국대학원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dgugs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69


조정환의 『예술인간의 탄생』은 ‘예술진화론’의 입장을 통해 현대 인지자본주의 아래에서의 예술 과 인간형의 변화, 다중-예술가와 ‘예술인간’의 등장 등을 탐색하고 전망한다. 특히 예술종말론과 예술진화론에 대한 계보학적·비판적 탐구가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데, 여기서 근현대 사상가들 이 제시한 예술론의 핵심이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통해 설명되고 있다.

조정환은 68혁명의 열기와 연동된 아방가르드(플럭서스)의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라는 슬로건을 자본이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전용했는지, 그러한 전용이 산업자본주의의 인지자본주의로의 전화와 비물질노동의 확산과 연동되는지 밝혀내면서, 이를 푸코의 신자유주의 분석과 ‘자기의 테크놀로지’ 론과 연결시킨다. 이에 따르면, 노동자 특히 비물질적 노동자는 노동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창조적 능력을 쥐어짜기 위한 ‘자기의 테크놀로지’를 개발해야 한다. 그는 시장에서 축출되지 않기 위하여, 자본처럼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가 예술가다’라는 슬로건 에서의 ‘예술’은, 자본의 명령에 따른 자기 개발의 ‘창조적 기술’로 변조된다. 이러한 경향은 인 지자본주의의 비물질노동 체제와 연동되면서, 노동의 예술화와 예술의 노동화와 결합된다.

그렇게 노동과 예술은 점차 수렴되지만, 이는 자본의 명령 아래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맑스가 말한 “직접적으로 자기본성의 작동에 의해 창조되어 직접적으로 향유되는 것”(103쪽)으로서의 예술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조정환은, 그렇다고 비포처럼 비물질노동체제에 등을 돌리고 자율적 치 유지대를 형성하자는 대안으로 나가지는 않는다. 그는 랏자라또, 네그리, 마라찌 등의 자율주의자와 마찬가지로, “비물질노동이 갖는 특이한 변형과 창조의 능력을, 새로운 삶과 세계를 구축할 공통적 인 것의 잠재적인 동시에 실재적인 지평으로 간주하면서, 비물질적 인지노동의 잠재력을 중심으로 코 뮤니즘에 대한 사유를 전개”(176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예술의 진화는 “이 인지노동과 인 지장치의 자본관계로부터의 분리와 해방이라는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방식으로 이루어”(177쪽)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해방이 이루어졌을 때 다중의 ‘예술의지’는 개화될 것이며, 예술의 진화는 ‘ 다중-예술’로 나타날 것이고, ‘예술인간’은 탄생할 것이다.

조정환에 따르면, ‘다중-예술’은 현재 잠재성으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다중-예술’의 현 실화가 이루어진 최근의 예로 <세월호가족대책위원회>(<가대위>)의 활동을 들고 있다. “그 어떤 예 술가 개인이나 집단도 수행하지 못한, 또 수행할 수 없는 독특한 예술실천을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 준 <가대위>는 “새로운 삶, 새로운 시간, 새로운 관계가 무엇이어야 할 것인가에 관해, 전업적 작가들이, 아니 우리 사회 전체가 다시 숙고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389쪽)는 것. 이에 따르 면, 정치적인 것을 창출한 <가대위>의 실천이야말로 다중예술의 ‘정치시학’을 보여주었으며 삶정치 와 예술의 융합을 이루어냈다. 하여, <가대위>의 활동에서 예술은 다중의 삶에서 분리되는 것이 아니 라 다중의 삶 속에서 창출되고 실현된다. 우리 시대에서 예술의 진화는 그렇게 이루어지리라는 것이 이 책이 가시화한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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