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호] 규제를 풀어주면 투자한다는 거짓말 | 김환희(다중지성의 정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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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2 13:48
조회
1498
규제를 풀어주면 투자한다는 거짓말
- 크리스티안 마라찌의 『금융자본주의의 폭력』(심성보 옮김, 2013, 갈무리)

김환희(다중지성의 정원 회원)


최근에 박근혜 대통령이 기업인들과 함께 미국 순방길에 올랐다. 그 기업인들과 박근혜는 비행기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기사화된 내용을 살피자면, ‘경제가 어려우니 각종 규제를 풀어주어 투자를 촉진해야 한다.’로 요약될 수 있다. IMF 이후로 한치도 변함없는 논리 그대로이다. 그런데 과연 각종 과세와 규제를 제거해주면, 거기에서 발생한 이익을 기업들은 산업시설과 고용창출에 사용하여 국가경제의 부흥을 도모하는 선순환을 발생시킬 것인가? 마라찌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한다. 산업자본주의는 금융자본주의로 완전히 변모했기 때문에, 각 기업들이, (혹여 그 기업이 100 % 제조업에만 관련되었을지라도) 실물경제에 발생한 이윤을 투자하지 않고 부동산과 주식, 금융상품 등을 통한 사적 이윤의 극대화만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금융자본주의 하의 사익추구의 극대화는, 부의 선순환 시스템과 단절되기에 소비를 진작하지 못하여 경제대공황을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크리스티안 마라찌의 ‘금융자본주의의 폭력’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자본주의의 변화한 양태다. 포드주의의 위기 후에 자본주의는 새로운 버전으로 변형되었다. 그것은 인지자본주의 혹은 생명자본주의라고 통칭할 수 있으며, 이는 금융화의 경제양상과 병행하여 진행된다. 그것은 자본이 잉여가치 자체를 생산하는 방식의 거대한 전한이다. “가치추출은 더 이상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장소에만 한정되지 않으며 이른바 공장 문을 넘어서 확장된다. 가치추출이 자본의 유통영역, 곧 상품과 서비스가 교환되는 영역에 직접 개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은 유통과정 혹은 생명자본주의라 부를 수 있는 영역에서 부불노동의 증대를 통해 이윤을 창출한다. 따라서 이윤 증가는 임금인상은 말할 것도 없고 안정적인 고용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여기서 발생한 기업의 이윤은 대부분 금융상품에 흘러들어 실물경제의 전면적 금융화를 초래한다. 기업이나 국가경제(주식시장)의 운영자체도 주주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변동된다. 이는 단기적 이익을 위해 노동 복지의 질적 저하와 상시적 구조조정의 강제를 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는 금융자본주의의 거대한 위기의 임박한 도래이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시스템이 붕괴직전에 처해있고, 이는 온전히 금융자본주의의 탐욕이 부른 시스템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위기가 도래했을 때, 국가적 대처가 대부분의 서민과 노동자들에게 내핍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해결을 도모하면 안 될 것이다. 이번 기회에 인지자본주의와 금융자본에 대한 강력한 과세를 부과해야 할 것이다. 즉 자본이 창출하는 모든 이윤에 대해서 높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이는 경제가 국가적 수준의 위기에 처해있을 때, 각국이 대처하는 방식과는 정반대되는 대처법이다. 한국만 보더라도 경제가 불황이니 대기업이나 부자에게 투자를 촉진시키기 위해 감세를 해줘야 하고 각종 복지를 감축해야 한다는 논리가 횡행하곤 하였다. 이는 부의 40퍼센트 이상을 과잉되게 소유하고 있는 1프로의 부자가 아닌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서민들에게 더 강력한 내핍을 강제하는 역설적인 논리였던 것이다.

위기가 도래할 것은 명백해 보이고, 그 원인은 국가와 언론과 기업이 호도하는 것과 다르게, 금융자본주의의 자본가들에게 있다. 따라서 위기의 주기적 반복을 통하여 전국민의 노예화를우리가 희망하는게 아니라면, 도래할 것이 뻔한 내핍에의 강제를 거부해야 한다. 그것은 지금 당장 우리가 아래로부터의 사회적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기 앞에서 금융자본과 기득권층의 이윤을 대대적으로 선취하여 공동체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적 투자에 몰입해야 한다. 그것이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경제위기에 대한 영구적 대처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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