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호] '실재론적 마술'을 읽고ㅣ탁선경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3-07-24 14:05
조회
420
 

'실재론적 마술'을 읽고


탁선경(예술가)


사물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 사물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객체라고 하는 것을 그동안 아주 얕은 공부와 지식 안에서 조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 너무 당황스럽다. '실재론적 마술'대한 서평 부탁을 받고는 몇 주 동안(물론 다른 일로 인해 온전히 시간을 다 쏟은 것은 아니지만) 읽고 글을 중간중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감을 못 잡고 있다.

모순으로 가득한 사물이 된다라는 것, 이것은 미적인 것과 연결이 될 것이다. 그리고 미적인 것은 모순으로 가득 찬 사물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순의 존재자들은 미적인 것 이외에 여럿을 연결하며 무수히 많은 것들이 이 안에 현존하고 있음을 알려줄 것이다.

'실재론적 마술'은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문학 장르에 대한 언어 유희다. ‘실재'는 불투명하고 신비로운 것이며, 그러한 인과성은 기계적이거나 선형적이지 않다. 이 책은 칸트 시대 이래 늘 중매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온 미적인 것의 역할을 해방시키고자 한다. 또한 이 미적인 것들이 객체들의 위에서 그것을 돋보이게 하거나,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그 역할을 그레이엄 하먼의 객체 지향 존재론(OOO)이 돕고 있다.

이 이론은 인과성, 미적인 것, 비밀, 예술과 같은 불확실하고 환상적인 것들을 설명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OOO는 개체의 독립성과 자율성에 초점을 맞추고, 관계성이나 연속성보다 객체의 개별성과 불연속성에 의한 요소에 주목한다. 객체의 본질은 ‘물러남’에 있으며, 모든 객체는 환원 불가능한 실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객체의 환원 불가능성’은 '실재론적 마술'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객체는 행위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존재함으로써 행위하는 것이다.

미적인 차원은 모호하고 환상적이기 때문에 자기 모순적이다. 그래서인지 '실재론적 마술'은 인문학 영역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미학의 역사를 상세하게 짚어 나간다. 과정관계론은 마치 실재를 보는 공식적인 방법이 정해져 있다는 듯 좋고 나쁨 그리고 취향의 다름을 재단하고 판단하려 든다.

미적인 차원은 인과적인 차원이다. 또한 인과성은 미적이고 신비로운 것이다. 신비는 비밀, 밀폐된 것, 물러난 것, 말할 수 없는 것이고, 사물은 신비로운 것이다. 인과성을 객체지향적 관점에서 접근하게 되면 다른 이론들로는 미처 설명해 내지 못하는 것들이 가능해진다. 반실재론에서는 인과성에서 신비의 핵심적인 요소를 제거했다 하지만 인과성에 관한 OOO이론은 인과성에서 결정적인 것은 마술의 속임수 그 자체에 있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사물이라고 부르는 것과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을 함께 고려할 수 있게 된다. 의식은 원격작용이며, 예술은 그야말로 인과성에 대한 탐구이다.

플라톤 시대에 사람들은 원격작용을 물리적 영역과 비물리적 영역 사이를 매개하는 악마적인 힘을 가진 것으로 보았다. 또한 이것은 '이온'에서 소크라테스가 예술이 끈으로 엮여 있는 자석 중 하나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과도 같다. 데카르트 역시 플라톤 시대의 사람들처럼 원격작용을 우려했다. 그는 강력한 모호함을 못 견디는 철학자였다. 이 철학자들은 예술이 가지고 있는 악마적인 힘이 우리에게 어떤 효과를 주기 때문에 예술을 금지하고 검열하려 했다. 하지만 예술은 ‘인과적’이다. 따라서 예술은 ‘자기 모순적’이다. 그리하여 예술은 ‘매혹’적이다.

우리가 시를 읽을 때 경이로워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힘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플라톤과 데카르트가 두려워했던 ‘원격작용’, ‘악마적인 힘’ 말이다. 우리는 시에 매혹된다. 경이는 한 존재자가 다른 존재자를 끌어당기는 유보 상태, 즉 ‘매혹’이다. 또한 목소리에도 ‘매혹’이라고 부르는 것과, 인과성이 일어나는 감각적 에너지의 차원이 있다. 이러한 ‘원격작용’, ‘악마적인 힘’은 예술에서뿐만 아니라 생태적 존재, 즉 생명체를 바라볼 때도 일어난다.

티머시 모턴의 또 다른 책 '인류'에서 목차 ‘유령적 현상학’ 부분을 보면 “생태학적 존재자들은 유령적이다”라는 문장이 있다. 여기서의 ‘유령’은 ‘환영’뿐만 아니라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는 우리가 생태학적 존재자들 - 인간, 나무, 생태계, 구름 - 에 관해 더 많이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더 그것들을 어떤 생명체가 아닌 ‘유령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자기 모순적인 미적인 것, 유령적인 생태학적 존재, 영감의 여신 뮤즈부터 시작해서 예술가, 작품, 관중까지 모두 악마적인 힘으로 연결된 것들이고 이러한 악마적인 힘은 예술을 번역으로 보거나 어떤 것에 대한 은유로 보는 것과도 모두 통한다. 티머시 모턴은 이러한 유령, 환영, 환상성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가 하이데거를 나치즘으로 몰아넣은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어떤 사물이 된다는 것은 모순으로 가득 차는 것이다

OOO의 관점에서 볼 때, 사물은 그 자신이 아닌 다른 사물을 자신 속에 포함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물이 된다는 것은 모순으로 가득 차는 것이다. 마치 부분이 전체의 일부가 아니고, 부분을 생각하면 전체가 떠오른다는 어떤 모순적인 충돌과 대립의 이미지가 떠오르듯이 말이다.

더미의 역설, 대머리의 역설, 출입구에 서 있는 내가 방 안에 있는 것인지 방 밖에 있는 것인지 판단하는 문제, 모래알 하나에서 무한을 본다고 했던 블레이크의 통찰, 이 모든 예들은 바로 이러한 OOO적 관점이다. 일관성을 도입하려는 모든 시도는 더 급격한 비일관성을 만들어 내고, 메타 언어가 엄격하면 엄격할수록 점점 더 치명적인 모순에 노출된다. 객체가 양진문장적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고는 주체와 객체의 이원론을 계속 재생산하게 된다. '실재론적 마술'에서는 이러한 더미의 역설과 관련된 내용이 마지막까지 매우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이 모순된 사물의 현존에 관한 진실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이런 물음이 생긴다. 그렇다면 이 어찌할 수 없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 모순을 그냥 인정하고 그저 받아들이라는 것인가? 이건 너무 허무주의적인 방법이지 않을까? 이런 나의 물음이야말로 명백하게 그 다음을 추적하고 판단하려 드는 과정관계론적인 접근인 것일까? 티머시 모턴은 OOO는 허무주의의 형태이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허무주의로 치닫는 경향이 있는 것은 관계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관계주의는 객체가 다른 객체와 맺는 관계의 합일 뿐이고, 그 안에서 객체는 그렇게 계속 모호한 것으로 퇴행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OOO는 ‘객체가 물러나는 것’이 전혀 ‘관계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그저 단순히 ‘객체들이 나타나는 방식’이며, 그것이 ‘그러한 성질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관점으로 풀어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객체들은 서로로 환원될 수 없으며 만약 객체가 그것의 관계로 환원될 수 있다면 ‘낯섦’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물들은 자신들 앞에 있는 낯선 영역, 흔적과 발자국으로 된 영역, 즉 미적 차원에서만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행위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존재함으로써 행위한다’는 이 객체의 환원 불가능한 본질

미학, 지각, 인과성은 모두 동의어이다. '실재론적 마술'에서 티머시 모턴은 모든 곳에 미적인 것이 있다고 보고, 어떤 관점들 간에 우위를 두는 기계론적 관점이나 제거주의적 유물론의 관점을 비판한다. 인간과 비인간이 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고, 인간의 정신이 생각하고 있을 때 하는 일과 연필통이 연필을 잡고 있을 때 하는 일 사이에는 존재론적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과 정신’의 문제는 그동안 인간중심주의적인 개념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정작 OOO는 인간중심주의적 세계관과는 거리가 있다. 이러한 OOO의 세계관은 이처럼 그동안 가려지고 물러나 있는 존재들을 한번 더 재고해 보게 함으로써 그것들을 다시 존재하게 한다.

생태학자인 티머시 모턴은 이러한 미적 평등을 생태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그것의 역설에 대해서도 언급하지만 이 책에서는 생태적 접근에 대해 많이 다루고 있지는 않다. 사실 나는 생태적 사유에 대해 그리 관심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실재론적 마술'을 통해 티머시 모턴의 생태적 사유를 참고하고 싶어서 '인류'와 '생태적 삶'을 주문해 읽고 있다. '생태적 삶'의 내용은 '실재론적 마술'과 많은 부분이 겹치고 '실재론적 마술'에 비해 보다 쉽고 간단하게 서술되어 있다.

미적인 것, 환영, 생태학적 존재자들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이유 만으로 역할을 부여받는다. 생태적 사물에서도 역시 생명과 비-생명 사이의 경계를 확고하게 세우려고 할 때 더미의 역설이 생긴다.

'생태적 삶'을 읽다가 ‘본질과 나타남’에 관한 예가 있어 적어 둔다.


“사과와 사과의 모습, 즉 사과 데이터 사이에는 근본적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은 초월적이기 때문에 사과를 아무리 연구하더라도 그 간극을 지목하고 그것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낼 수는 없다.” ― 티머시 모튼 '생태적 삶'


칸트는 아름다움이란 객체와 공존하는 경험이라고 했다. 또한 아름다움이란 그 상호사물적 공간 안에서 두 객체가 융합되는 것이고, 탄생이 숭고라면 아름다움은 객체의 끝, 죽음으로 보았다. 태어난다는 것은 ‘나타남과 본질’ 사이의 새로운 대균열이 열리는 것이고 존속한다는 것은 대균열이 다른 갈라진 존재자와 관련하여 자신을 유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끝난다는 것은 자신의 감각적 나타남과 일치하는 것이다.

어떤 객체가 모든 측면에서 다른 객체와 같은 위상에 도달하는 것을 파괴라고 부르며, 한 객체가 다른 객체에 의해 완벽하게 번역되면 그 객체는 파괴된다. 그러므로 조화롭게 공존하려면 객체와 다른 객체, 서로 간의 위상이 조금이라도 어긋나야 한다. 왜냐하면 객체는 이미 존재론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위상에서 일탈해 있기 때문이다.

앞서 티머시 모턴은 환상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하이데거의 태도를 지적한 바 있다. 티머시 모턴의 생각을 조금 더 덧붙이자면 하이데거는 환상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에 환상을 혼란에 빠지고 ‘군중’에 사로잡힌 현존재의 기능으로 격하시켰다. 이러한 하이데거의 태도는 상관주의에 대한 경고이다. 상관주의는 나치즘의 온상이다. 하이데거는 ‘환상성’이야말로 모든 행위가 있는 곳임을 보지 못했다.

티머시 모턴은 사물이 자기-모순적일 수 있다는 헤겔적 감각을 계속 유지한다.

“그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환상이 아니다. 본질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본질이 된다.”면서 말이다.

어떤 것이 그 자신과 모순되지 못할 때 그것은 현존하기를 멈춘다.

사물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모순으로 가득 차는 것.

인과적이고 미적인 것은 모순적이다. 원격작용 또는 악마적인 힘으로 연결된 것, 번역, 은유, 예술, 유령적인 생태학적 존재. 이들은 스스로 모순되지 못할 때 현존하기를 멈춘다. 이들은 모순으로 가득 찬 사물로 존재함으로써 행위한다. 모순으로 가득 찬 사물은 현존하기를 계속한다.

그리고 사물은 기꺼이 현실화된다.

참고문헌
티머시 모턴. 실재론적 마술. 갈무리 출판사. 2023
티머시 모턴. 인류. 부산대학교출판문화원. 2021
티머시 모턴. 생태적 삶. 앨피. 2023

* 탁선경
예술가. 2017년 '나는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2019년 '목소리'전 이후 인문학 공동체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며 삶의 건강함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창의적인 예술의 방식과 자리를 고민, 모색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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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론적 마술


※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3년 7월 6일 <뉴스프리존>( https://bit.ly/3O7CsHu )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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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사변적 실재론 입문』(그레이엄 하먼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23)


사변적 실재론 운동의 최초 구성원 중 한 명이 집필한 일반 개론서. 하먼은 자신의 객체지향 존재론에 대한 요약을 제시하며 최초의 사변적 실재론 동료들인 레이 브라지에, 이에인 해밀턴 그랜트 그리고 퀑탱 메이야수에 대한 비판적이면서도 균형 잡힌 평가를 제시한다. 다음과 같은 철학적 물음들이 네 개의 장을 함께 엮는다. ‘상관주의’란 정확히 무엇인가? 무엇이 사변적 실재론의 주적인가? 철학적 실재론은 무엇과 관련이 있는가? 실재론에 더 이바지하는 것은 수학과 자연과학인가 아니면 미학을 포함하는 인지 활동에 대한 더 넓은 모형인가?


에일리언 현상학, 혹은 사물의 경험은 어떠한 것인가』(이언 보고스트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22)


이질적인 ‘사물들의 은밀한 삶’을 ‘경험’하고 ‘소통’하기 위한 실천으로서의 ‘실용주의적 사변적 실재론’을 모색하고 있는 책. 이 책에서 이언 보고스트는 사물을 존재의 중심에 두는 객체지향 존재론을 전개한다. 여기서 인간은 유일한 관심사도 아니고 심지어 근본적인 요소도 아니다. 철학적 주제는 인간과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물들에 더는 한정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철학적 주제는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포스트휴머니즘의 세 흐름』(이동신 지음, 갈무리, 2022)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중심주의를 경계하면서 우리 시대에 비인간 존재들이 내리는 가장 절실한 지시를 따르는 것이다. 기후위기와 인류세 시대의 삶의 방식에 관한 실천적 고민은 그렇게 답을 찾기 시작한다. 포스트휴머니즘 사유를 대표하는 사상가들인 캐서린 헤일스, 캐리 울프, 그레이엄 하먼은 각각 테크놀로지, 동물, 사물의 영역에서 비인간 존재와의 관계를 급진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포스트휴머니즘의 세 흐름』은 이러한 생각들의 연결과 공조의 방법을 모색한다.


사물들의 우주』(스티븐 샤비로 지음, 안호성 옮김, 갈무리, 2021)


이 책은 비상관주의적 사고에 대한 사변적 실재론의 일반적인 주장, 즉 인간 정신이 관계하고 이해하는 방식과 떨어져서 존재하는 사물 및 객체에 대한 주장을 탐구한다. 스티븐 샤비로는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가 현재에 지배적인 사변적 실재론 사상을 예상했고 그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한 세기 동안의 형식화와 정화를 향한 집요한 근대주의적 시도를 거쳐, 어쩌면 애초에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한 시대에 화이트헤드는 마치 우리의 뇌리에 스며들듯이 돌아온 것이다.


존재의 지도 : 기계와 매체의 존재론』(레비 브라이언트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20)


자연주의와 유물론을 당당히 옹호하는 한편으로, 이들 친숙한 관점을 변화시키고 문화 자체가 어떻게 자연에 의해 형성되는지를 보여준다. 브라이언트는 범생태적 존재론을 지지하는데, 요컨대 사회는 담론과 서사, 이데올로기 같은 기표적 행위주체들과 더불어 강과 산맥 같은 비인간의 물질적 행위주체들도 고려함으로써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생태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해서 브라이언트는 새로운 기계지향 존재론의 토대를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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