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간 발제문 올립니다

작성자
Yeongdae Park
작성일
2019-06-13 18:58
조회
248
□ 다지원 <앎의 나무> 세미나 ∥ 2019년 6월 13일 ∥ 발제자 : 박영대
텍스트: 마뚜라나, 『앎의 나무』, 1~3부

1. ‘내재적 시선’을 확립하는 것

요점은 색채지각 현상을 설명하려면 먼저 우리가 바라보는 물체의 색이 그 물체를 떠나온 빛의 속성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색채지각이 신경계의 특정 흥분상태에 – 이것은 신경계의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주의를 집중할 필요가 있다. (29)

→ 1장 앞에서는 맹점을 비롯한 다양한 색채현상을 소개한다. 이 놀라운 실험을 토대로 저자들이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우리가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그 무언가가 객관적으로 우리에게 들어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즉 외부 사물이나 조건에 따라 객관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 셈이다. 본다는 일에는, 외부의 사물 이전에 우리의 신체구조가 먼저 관여하고 있다. 신경계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우리 “신경계의 특정한 흥분상태”가 펼쳐놓는 세계가 우선 있고, 그 세계 속에서 외부 사물을 특정한 양상으로 지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외부 사물도 그 자체로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나름대로 독특한 양상을 만들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신체적 구조가 좌우하는 ‘인지 세계’가 더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인식(지각)에는 외부 사물과 우리 자신(의 신체구조)이 함께 섞여있으며, 그 중에서 우리 자신의 구조가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외부에 의해 결정되고 외부가 작용한다는 것에 반대하면, 우리 자신의 구조나 우리의 자체적인 메커니즘에 주목하게 된다. 그것이 이른바 ‘내재적 시선’, 내재성이라 부를 수 있다. 외부환경과의 관계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기보다, 자체적으로 내부적으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런 시선으로 우리 자신과 생물,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내재적 시선이다.
앞부분에서는 ‘시각’적 인식만을 예로 들었지만, 모든 형태의 앎(지식)으로 이를 확장할 수도 있다. 모든 앎 자체에는 이미 우리 자신의 특성, 신체적 구조, 존재방식 등이 포함되어 있다. 순수하고 객관적 앎이란 불가능하다. 혹은 모든 앎은 이미 우리 자신이 혼합되고 섞여있다. 하지만 이 결론에서, 순수성이나 객관성을 포기해야하는 좌절을 느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순수와 객관, 불순과 혼합이나 주관의 이분법을 깨트릴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이분법의 구속에서 벗어날 때, 더 많은 앎의 가능성과 새로운 앎이 등장하게 된다. ‘주관적이고 해석된’ 앎이라고 소극적으로 부를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이 창출하는 앎, 생산해내는 세계로서 앎으로 밀고나갈 수 있다. 저자들은 이 책과 자기생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를 하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체적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즉 우리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야, 우리의 앎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앎을 알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모든 인지적 경험은 자신의 생물학적 구조를 바탕으로 매우 개인적으로[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인식자를 전제하기 때문이다.(22)” 그래서 모든 앎은 누군가의 앎이며, 누군가의 생물학적 구조를 바탕으로 해서 창출된 앎일 수밖에 없다. 우리 자신(나아가 우리 자신이 생물이기 때문에 생물 전체)을 알기 위한 과정에서, 저자들은 생물을 ‘자기조직’으로 이해한다.

2. 자기조직성(오토포이에시스)

생물을 특징짓는 것은 자기 자신을 말 그대로 지속적으로 생성하는 데 있다. 이런 뜻에서 우리는 생물을 정의하는 조직을 자기생성 조직이라 부르고자 한다. …… 자연에서 일어나는 다른 분자변화들과 달리 세포의 역동성에 특이한 점은 다음과 같다. 세포의 물질대사를 통해 생성된 구성요소들은 그것들을 생성한 변화작용의 그물 안으로 다시 통합된다. …… 자기생성 체계의 가장 독특한 점이란 말하자면 자기 옷을 스스로 여민다는 사실, 곧 자신의 역동성을 바탕으로 자신을 주위 환경과 다른 것으로서 구성한다는 사실이다. (56~58)

→ 실제 생물의 정의는 <아직도>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다. 생물학의 놀라운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는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어쩌면 생물학의 발전이 생물 개념의 위기를 초래하기도 했다. (cf. 박테리아, 극한 생물균 등. 인간중심주의만 버리면 생물계는 정말 다종다양하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생물을 ‘자기생성 조직’으로 정의한다. 즉 스스로를 주변환경으로부터 구분지으며 개체로서 생성해내는 조직이다. 여기서는 스스로 개체화된다는 것, ‘자기’라는 존재를 자율적으로 생산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개념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생성한다’는 말을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생산이란 원인이 자신과 다른 결과를 산출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원인과 결과가 서로 다르다고 전제하며, 외적 생산이란 틀로서 세계를 이해한다(외부적 시선). 때문에 어떠한 존재든 반드시 그 존재를 낳는 또 다른 존재(원인)을 필요로 한다. ‘무언가 있으려면, 뭐라도 그 전에 미리 있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인 셈이다. 이 외적 생산이라는 전제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식으로 인과관계와 역사를 이해했다. 나라는 인간이 있으려면 부모가 있어야 하며, 부모가 있으려면 부모의 부모가 있다는 식으로. 결국 이는 최초의 인간이라는 기원에 도달하게 되고, 최초의 인간을 만든 어떤 존재(=신)이 필요하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이어진다.
생명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원을 쫓아가는 사고방식은 최초의 생명이나 세포에 대한 사고로 이어지고, 나아가 최초의 생명을 산출한 또 다른 존재에 대한 문제를 던져놓는다. 소심한 과학자는 ‘생명의 신비/경이/우연’으로 남겨놓고, 대범한 과학자는 외계 지적생명설이나 외계생명체 유입설(포자설)을 끌어들인다. 그 점에서 외계인설이나 신학은 동일한 지반 위에 있다. 결과와 산출하는 원인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 (평생 생물학을 연구한 저명한 과학자들이 종종 창조론이나 외계인설, 신비주의 등으로 ‘넘어가는’ 것은 예외나 특이한 사례가 아니다. DNA의 이중나선을 발견한 크릭.)
저자들이 싸우고 있는 생각은 바로 이런 외부적 인과관계다. 생명은 외부의 원인이나 산출행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체적으로 스스로를 정립하고 개체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생명의 힘이다. (물론 어떤 학자는 이를 ‘생명’에만 국한시키지 않는다. 모든 존재(무생물이나 광석 등)가 ‘자기조직적’이라고 주장한다. 에리히 얀치, 『자기조직하는 우주』. 우리의 필독서다.)
그러므로 저자들이 그리는 생명활동, 생산활동은 외부적으로 ‘낳는’ 게 아니다. “세포의 물질대사를 통해 생성된 구성요소들은 그것들을 생성한 변화작용의 그물 안으로 다시 통합된다”는 것이다. 생성한 결과가 다시 원인으로 통합되는, 내재적 생산이다. 이 때 원인과 결과는 외적으로 분리되지 않으며(분리되는 경우가 ‘복제’다. 72쪽),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온다. 이를 내재적 원인/결과라고 불러야 하며, 우리가 기존에 지니고 있던 인과관계나 생산의 이미지를 버려야 한다. 그래야 생명의 실상, 진면목을 볼 수 있다. (cf. 자기원인성, 자기생산성)
이렇게 내재적 시선을 가질 때, 우리는 우리를 창조한 신(외부환경이든 외계생명이든 마찬가지다)을 버릴 수 있다. 더 나아가 자기조직적 능력 자체가 곧 생명력=신이라 새롭게 정의할 수 있다.

인식과 행위은 동일하다

독자들은 마치 ‘사실’이나 물체가 저기 바깥에 있어서 그것을 그냥 가져다 머리에 넣으면 되는 것처럼 인식현상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늘 되새겨야 할 것이다. ……
어떤 물체가 ‘저기 바깥에’ 있다는 경험은 인간의 구조에 의해 특수한 방식으로 형성된다. 이런 뜻에서 인간의 구조는 기술(description)활동을 통해서 생겨나는 ‘물체’의 가능조건이다.
이러한 순환성, 행위와 경험의 뒤얽힘, 한편으로 우리의 존재방식과 다른 한편으로 세계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방식 사이의 불가분한 관계, 이것들은 다시 말해 인식활동이 세계를 산출함을 뜻한다. 인식의 이런 속성이야말로 우리의 문제이자 출발점이며 탐구의 길잡이이다. 이 모든 것을 다음의 경구로 간추릴 수 있겠다. 함이 곧 앎이며 앎이 곧 함이다. (33~34)

→ 또 다른 주요 쟁점은, 앎과 함의 동일성이다. 인식과 행위는 동일한 것을 각각 다르게 비춘 결과일 뿐이다. 즉 물체가 ‘저기 바깥에’ 그대로 있다는 이해는, 그 자체로 우리의 생물학적 구조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식이나 이해 자체가 곧 우리의 구조가 산출해내는 결과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의 생물학적 구조가 산출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행위나 행동임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가. 즉 우리의 구조가 우리 자신에게, 혹은 우리의 정신에게 ‘만들어내는’ 것인 셈이다. 앞서의 내용처럼, ‘만들어낸다’고 할 때, 이를 외부적 생산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내재적 생산! 내재적 변화! 그러므로 물체가 우리의 인지세계 속에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우리의 구조이며, 우리의 구조가 우리 자신에게 물체에 대한 인식을 생산해내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인식은 행위와 동일하게 된다.
그리고 그 변화(=인식=행위)가 우리의 인지세계 속에서 발생했지만, 다시금 우리의 인지세계로 통합되어 인지세계 자체를 변화시키는 일이 된다. 이것이 나아가 실제 세계 자체를 새롭게 구성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당연히 외부적 변화도 수반하는 것이다. (내재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자기 안에서만 일어나는 ‘자폐적’ 체계로 이해하서는 곤란하다. 분명 외부 물체를 ‘인식’하며 외부 물체와 외부 세계에 작용을 가한다. 다만 이 외부적 관계보다 내재성, 내적 변화를 우선시하고 모든 활동의 기초로서 파악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우리의 존재와 행위와 인식이 언제나 함께 얽혀있다”(33). 존재방식이 인식을 결정하며, 인식은 행위와 같은 변화다. 그리고 그 인식/행위는 외부 세계에 작용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존재방식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책을 끝까지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이렇지 않을까?) 중요한 점은 이를 시간적 선후관계나 피드백처럼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 일어나는 작용이며, 그래서 셋은 동일한 것이다. 이 점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되리라. (cf. 『에티카』가 윤리학(=행동학)이면서, 동시에 존재방식과 인식론을 함께 다루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셋을 별도의 메커니즘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메커니즘 속에서 동시에 도출되는 세 가지 측면으로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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