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호] 『대피소의 문학』 김대성 저자와의 인터뷰

인터뷰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3-12-29 17:26
조회
209
 

『대피소의 문학』 김대성 저자와의 인터뷰



Q. 문학의 역할이나 소명에 대한 기대가 회의적으로 변하는 시대에 ‘대피소’라는 긴급한 장소와 ‘문학’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왜 ‘대피소의 문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는지요?

저뿐만 아니라 참사의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더 이상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는 무기력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한동안 ‘구조 요청’에 누구도 응답하지 못했다는 부채감 속에서 지냈습니다. 참사의 사회적 의미나 현실을 진단하는 것이 아닌 참사 현장에 관한 글들을 찾아 읽으면서 ‘현실’과 ‘현장’의 온도차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깥을 향해 도움을 구했던 이들이 외려 또 다른 누군가를 구해내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가령, 유가족들의 투쟁이나 참사 현장에 관한 증언) 아무도 구하지 못했다는 무기력이야말로 재난 시스템이 재생산되는 구조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2013년부터 부산을 거점으로 생활예술모임 <곳간>이라는 모임을 열면서 만나고 사귀었던 제도 바깥의 현장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어려웠는데, 일상과 생활이라는 낮은 자리에서 발현되는 힘들이 기왕의 것과는 다른 장소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사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자격을 따지지 않고 누구나 기거할 수 있는 ‘대피소’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기왕의 문학 또한 대피소라는 공통장 속에서 새롭게 발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피소의 문학’은 곳곳에 편재한 참사의 현장(아울러 생활예술의 현장)에 이미 도착해 있는 모두의 역량을 가리키는 이름이었습니다.


Q. 대피소의 문학은 어떤 작가들에게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요? 특히 주목할 만한 작가는 누구이며 어떤 작품인가요?

이 책에선 김애란, 윤이형, 김이설, 이주란, 조해진, 조갑상, 가수 김윤아 등을 거론하고 있지만 ‘대피소의 문학’은 작가라는 정체성보다는 익명의 목소리들로부터 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구조 요청’을 했던 이들의 목소리에 우리가 어떻게 응답했는가라는 물음 앞에 서야 하겠습니다. 한 명도 구하지 못한 ‘416세월호’ 이후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여전히 ‘구조 요청’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 이유는 도움을 구했던 이들이 먼저 도왔기 때문입니다. 가라앉는 세월호 안에서 그들은 외침에 응답하며 누군가를 구했습니다. 유가족 또한 세월호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면서 침몰하는 한국 사회를 구했습니다. 자신의 언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기록 노동자들 또한 ‘대피소의 문학’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습니다. 작가 중에선 『비행운』(2012)부터 애도의 글쓰기로 이행하는 김애란 소설가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용산 참사 이후 김애란의 소설은 잘 알지 못하지만 더 이상 이곳에 없는 존재들을 부르는 목소리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사 이후를 살아내는 소설가들은 소설이라는 양식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작가의 발언과 같은 절대적인 목소리를 신뢰하지도 않습니다. 잡다한 기록이나 상념을 분산적으로 늘어놓는 이주란의 소설이 어떻게 변모해가는지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Q. 책의 3부에는 대피소의 지도들이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그려져 있는데 부산만의 현상인가요, 다른 지역에도 유사한 경향들이 있나요?

지도라고 하셨지만 걷고 있을 때만 나타나는 길처럼 보인다고 할까요, 언제라도 다시 찾을 수 있는 공간과는 다르다 하겠습니다. 모임도 생명과 같아서 누군가가 돌보지 않으면 수명을 다합니다. 물질적인 기반이 충분하지 않거나 제도적인 체제가 갖춰지지 않은 대부분의 모임은 그곳에서 오랫동안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모임 또한 부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생각합니다. 그곳에 입회하지 않는 한 영영 알 수 없는 ‘대피소’가 곳곳에서 명멸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부산이라는 지역에 국한되지도 않겠지요. 이미 사라진 모임도 많지만 그것이 실패인 것만이 아니라 먼 곳에서 도착하는 별빛처럼 여전히 이곳을 향해 오고 있고, 어두운 이곳을 비추는 희미한 빛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요즘은 규모가 작은 모임조차 ‘지원사업’이라는 후원 없이 운영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국가행정 시스템이 일상적인 현장까지 침투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나눔과 증여의 가치가 활성화되었던 자리를 교환과 성과라는 지표가 빠른 속도로 대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이런 현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Q. 생활예술모임 <곳간>에서 열고 있는 ‘문학의 곳간’이라는 모임 형식은 ‘대피소의 문학’으로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문학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혜안이나 전문가적인 관점이 아니더라도 각자가 살아온 이력을 바탕으로 작품을 읽고, 작품을 경유해 자신의 생활과 삶의 가치를 발굴해 그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문학의 곳간’을 열 때 품었던 생각이었습니다. 문학은 누군가가 독점하는 특권적인 영역이 아니라 저마다의 생활 속에서 길어올린 삶의 이력이 쟁여져 있는 보고이기에 모두가 나눠야 할 ‘공통적인 것’임을 모임을 통해 증명해나가고 싶었습니다. 문학은 저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으며, 자물쇠를 채워 독점해야 할 것이 아니라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읽고 쓸 수 있는 권리는 언제라도, 누구와도 교류할 수 있는 만남의 권리와 이어져 있습니다. 문학을 ‘읽기’의 대상이 아닌 ‘잇기’의 매개로 삼을 때 떨어져 있는 것들을 이어주는 ‘다리’의 역할만이 아니라 제한되고 감금된 현실의 장벽을 뚫어내는 ‘굴착기’로 급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어떤 독자들이 이 책을 꼭 읽어주길 바라시나요?

각자의 현장을 보살피며 지켜내고 있는 이들이 읽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속박과 핍박받는 이들, 결별과 추방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들에게 작은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립하며 살고자 하는 이들, 축적이 아니 나눔의 방식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가닿았으면 합니다. 더불어 지속적으로 자립하는 살 수 있는 삶의 생태계를 구성하는 데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낯선 이들과도 기꺼이 만나 우정의 장소를 일구는 놀이의 현장과 운동의 현장에서, 또 축제와 투쟁의 현장에서 잠깐의 보금자리로, 대피소로, 곳간으로 자리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대피소의 문학


※ 편집자 주 : 이 인터뷰는 <대피소의 문학> 보도자료에 게재되었습니다.

전체 0

전체 491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17
[80호] 『예술과 공통장』 권범철 저자와의 인터뷰
자율평론 | 2024.02.05 | 추천 0 | 조회 448
자율평론 2024.02.05 0 448
16
[80호] 『초월과 자기-초월』 김동규 역자와의 인터뷰
자율평론 | 2024.01.06 | 추천 0 | 조회 597
자율평론 2024.01.06 0 597
15
[79호] 『대담 : 1972~1990』 신지영 역자와의 인터뷰
자율평론 | 2023.12.29 | 추천 0 | 조회 290
자율평론 2023.12.29 0 290
14
[79호] 『카메라 소메티카』 박선 저자와의 인터뷰
자율평론 | 2023.12.29 | 추천 0 | 조회 241
자율평론 2023.12.29 0 241
13
[79호] 『광장과 젠더』 소영현 저자와의 인터뷰
자율평론 | 2023.12.29 | 추천 0 | 조회 210
자율평론 2023.12.29 0 210
12
[79호] 『근현대 프랑스철학의 뿌리들』 황수영 저자와의 인터뷰
자율평론 | 2023.12.29 | 추천 0 | 조회 216
자율평론 2023.12.29 0 216
11
[79호] 『불타는 유토피아』 안진국 저자와의 인터뷰
자율평론 | 2023.12.29 | 추천 0 | 조회 189
자율평론 2023.12.29 0 189
10
[79호] 『개념무기들』 조정환 저자와의 인터뷰
자율평론 | 2023.12.29 | 추천 0 | 조회 221
자율평론 2023.12.29 0 221
9
[79호] 『폭력의 진부함』 이라영 저자와의 인터뷰
자율평론 | 2023.12.29 | 추천 0 | 조회 197
자율평론 2023.12.29 0 197
8
[79호] 『대피소의 문학』 김대성 저자와의 인터뷰
자율평론 | 2023.12.29 | 추천 0 | 조회 209
자율평론 2023.12.29 0 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