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호] 『카메라 소메티카』 박선 저자와의 인터뷰

인터뷰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3-12-29 19:30
조회
239
 

『카메라 소메티카』 박선 저자와의 인터뷰



Q. 제목 『카메라 소메티카』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카메라 소메티카는 영화의 본질적인 성격을 표현해보려는 시도입니다. 카메라 소메티카를 설명하기 위해 이와 유사한 개념들 몇 개를 살펴보고 싶습니다.

영화를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진을 정의하려는 시도는 그것이 발명되는 시점부터 있었고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카메라를 통해 대상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사진은 영화의 모태입니다. 따라서 사진을 지시하는 말을 영화의 비유로 써도 무방할 것입니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최초의 사진 기술을 일컫는 말로 빛이 온통 차단된 방을 뜻합니다. 한쪽 벽면에 작은 구멍 하나를 뚫어 놓으면 빛이 투과하면서 반대편 벽면에 방 바깥의 풍경을 재현합니다. 카메라 옵스큐라 속 이미지는 말 그대로 빛이 그린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완성하는 데는 인간의 의도나 솜씨가 개입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서양 사람들은 초창기 사진을 일컬어 신이 그린 그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신의 그림 앞에서 인간은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신의 그림과 인간의 응시 사이에는 심원한 경계가 놓여 있는 듯합니다.

카메라 루시다는 휴대용 카메라 옵스큐라입니다. 화가는 빛이 투사하는 풍경을 렌즈를 통해 화폭에 고정시킵니다. 그런 다음 화가는 빛 그림의 윤곽을 따라 펜이나 붓으로 선과 명암을 가미합니다. 카메라 옵스큐라와 원리는 같지만 카메라 루시다의 이미지는 인간의 개입을 허락합니다. 카메라 루시다는 빛이 그린 그림이지만 동시에 화가의 채취를 담고 있습니다. 카메라 옵스큐라가 사진 이미지의 객관성을 강조한다면 카메라 루시다는 사진 이미지에도 내밀한 정서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두 용어는 영화의 성격을 표현하는 데도 비유적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영화는 살아 움직이는 듯한 사실적인 이미지를 과시하는 매체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동시에 관객의 정서와 감정을 자극하는 매체입니다.

카메라 폴리티카는 미국의 미디어 학자 더글라스 켈러와 마이클 라이언이 쓴 책의 제목입니다. 카메라 폴리티카는 말 그대로 영화가 정치적 메시지를 담는다는 의미입니다. 이 표현을 달리 해석하면 카메라가 포착하는 이미지는 인간의 이해관계로부터 초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카메라는 누가, 어떤 대상을 향해, 언제, 어디에서 작동하느냐에 따라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그 결과물이 스틸 사진이든 동영상이든 동시대의 이념과 가치관을 드러냅니다. 카메라 옵스큐라의 관찰자, 카메라 루시다의 창작자는 카메라 폴리티카에 이르면 매개자가 됩니다.

이 책의 제목인 카메라 소메티카는 영화에 대한 이전의 비유들이 공유하는 전제를 의문시합니다. 그 전제란 대상과 카메라, 이미지와 감상자 사이의 거리입니다. 그 거리가 관찰과 창작과 매개를 가능하게 만듭니다. 이 경우 보는 사람은 마치 빈 그릇과 같습니다. 이미지가 보는 사람의 뇌리에 박히고 생각과 감정을 전달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지요? 실상 사진과 영화의 감상자는 이미지를 검토하고 그것을 어떻게 분류할지를 판단하는 도식을 품고 있습니다. 도식을 영어로 스키마(schema)라고 부릅니다. 관객은 스크린 속을 나는 비둘기의 모습이 자신이 가진 비둘기 모양의 도식에 부합하기에 그것을 비둘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극영화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객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과 더불어 자신의 인생 경험을 투사하여 극영화 속 이야기를 음미합니다. 관객은 이미지와 그것이 품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자신만의 것으로 가공하고 소유하려 합니다. 이미지를 향한 관객의 소유 욕구는 독점욕이나 탐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오감을 최대한 활용하여 이미지를 음미하고 그것과 동화되려는 의지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이미지를 온전히 이해하고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이 액자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듯한 서양 회화의 ‘트롬페 로일’(Trompe L'Oeil), 그림을 연극적으로 재현하는 ‘타블로 비방’(tableau vivant, 活人畵), 그리고 현대의 3D 영화와 홀로그램 영상은 시청각뿐만 아니라 촉각, 후각, 미각까지를 총동원해 이미지를 독차지하려는 관람자의 욕구에 부응합니다. 카메라 소메티카는 몸을 뜻하는 영어 단어 ‘소마’(soma)를 활용한 조어입니다. 카메라 소메티카는 관객이 온몸으로 향유하는 대상으로서의 영화를 표현합니다. 카메라 소메티카는 현대인이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영상을 직접 만들거나 기존의 시청각물을 재구성하는 등 영상의 개인적, 적극적 소비행위를 지칭하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Q. 『카메라 소메티카』는 신체를 뜻하는 낱말 soma를 차용한 조어입니다. soma 혹은 신체가 우리 시대에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소마’는 원래 그리스 말로 몸이라는 뜻입니다. ‘프뉴마’(pneuma)라는 그리스 말은 몸에 대비되는 영(靈)을 뜻합니다. 저는 ‘소마’라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십자가에 박힌 예수의 몸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면 ‘프뉴마’ 즉, 신성만을 드러내는 것이 맞을 듯한데 평범한 인간의 몸을 갖고 속절없이 십자가에 매달린 형국이 역설적입니다. 깨달음을 향한 고행 속에서 야윈 몸으로 정좌한 붓다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모두 진리가 선택된 소수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고 설파했습니다. 오히려 세속의 지배자들은 자신만이 신성을 부여받았다고 선포하며 뭇 민중을 기만하고 통제하려 했습니다. 예수와 붓다의 헐벗은 몸 즉 소마는 진리가 몸을 움직여 정직한 노동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소유물임을 암시합니다. 뉴미디어의 시대에는 소마의 가치가 더욱 두드러집니다.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뚫고 평범한 모든 사람이 세계 전체의 문제들에 대해 자기 생각을 공유합니다. 집단지성은 가짜 ‘프뉴마’의 결탁이 아닌 다수의 ‘소마’가 연대한 결과물입니다.


Q. 피테르 브뤼헐의 작품들이 책 전체에서 큰 울림을 갖고 있습니다. 브뤼헐은 언제 처음 만나셨고, 브뤼헐의 작업에 특별히 주목하게 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브뤼헐과 『카메라 소메티카』라는 책의 관계를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고등학생 시절 영어 공부를 위해 『리더스 다이제스트』 영한 대역판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때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테르 브뤼헐의 그림을 소개하는 글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글에서 처음으로 브뤼헐 그림에 대한 상세한 소개를 접했습니다. 그 글은 브뤼헐을 숨은그림찾기 놀이의 대가 정도로 설명했습니다. 제 책에서 언급하는 <갈보리 가는 길>만 해도 오백여 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고 합니다. 인물뿐만 아니라 각종 소품까지 고려하면 한 폭의 회화작품에 어마어마한 양의 피사체가 그려진 셈입니다. 유명한 서양회화 작품을 보면 보통 누군가의 초상화이거나 정물화, 또는 성서 속 인물이나 신화적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브뤼헐 그림의 주인공들은 평범한 농민이나 심지어 아이들입니다. 브뤼헐의 <이카루스의 추락>을 보면 신화 속 영웅 이카루스는 바다 한쪽 구석에 말 그대로 ‘처박혀’ 있고 전경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존재는 밭가는 농부입니다. 제가 십 대였던 시절에도 <이카루스의 추락>을 보며 묘한 통쾌감을 느꼈습니다. <갈보리 가는 길>에서도 주인공 예수는 한참을 둘러봐야 겨우 찾아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카메라 소메티카』에서 소개하는 영화 <뮤지엄 아워스>에서도 미술관 안내원인 요한은 브뤼헐 그림 속 오브제를 찾아내는 일에 재미를 느낀다고 말합니다. 브뤼헐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요한과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브뤼헐 그림에 애착을 느끼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귀엽고 역동적인 인물들 때문입니다. 브뤼헐 그림 속의 인물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묘사되며 각각이 모종의 동작을 부여받습니다. 그들의 몸동작을 보면 마음속으로 그것을 따라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회화의 세계 안으로 침잠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인물 각자가 겪고 있을 사연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림 속의 수많은 사람 하나하나가 표정과 몸짓으로 나름의 인생사를 증언합니다. 그 때문에 브뤼헐을 서양회화사의 셰익스피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미술관에 걸린 브뤼헐 그림을 보고 있는 상황을 상상합니다. 감상자는 그림 속의 인물을 훑어보면서도 그림의 구도를 관망하며 주된 메시지가 무엇인지 헤아려 봅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인간군상 속에서 진정 주인공이 누구인지 파악하기 어렵고 또 브뤼헐 특유의 부감도법은 여러 소실점을 갖고 있어 그림 전체의 구도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도쿄경제대학 서경식 교수는 “중요한 것은 숨겨져 있다”라는 말로 브뤼헐 회화의 의도를 설명합니다.

저는 오감을 총동원해 이미지를 전유(專有)하고자 하는 영화 관객의 태도를 ‘카메라 소메티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브뤼헐 회화 속에 ‘숨겨진 어떤 것’을 찾아내려는 감상자의 태도 또한 ‘카메라 소메티카’와 일맥상통합니다. ‘카메라 소메티카’의 관객은 동굴벽화를 눈앞에 두고서도, 스마트 폰의 유튜브 화면을 보면서도 동일한 욕망을 투사할 것입니다. 제 책에서 브뤼헐의 그림이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브뤼헐의 작품이 ‘카메라 소메티카’가 암시하는 관객성을 선취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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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소메티카


※ 편집자 주 : 이 인터뷰는 <카메라 소메티카> 보도자료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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