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2부 5장 - 스탈린 비판에서의 정치의 논리 발제문

작성자
deepeye
작성일
2023-10-21 11:06
조회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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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원리’ 그 자체가 문제 될 때, 사회에 뿌리를 내린 생활양식이나 사람들이 자명한 것으로 여겼던 가치감각이 동시에 근본적인 동요를 겪게 된다. 과거 프랑스 혁명 역시 어리석음과 잔학함이 많았지만, 이제는 그걸 탄핵하는 사람들도 인권선언의 제 원칙이 오늘날 문명세계의 공리로 적용되고 있다는 걸 받아들였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에 대해서는 아직 그것이 안겨준 심리적 충격으로부터 회복될 수 있는 거리를 갖고 있지 않았다. 양극단으로 나눠진 전체적인 옹호(공산주의 진영)와 전체적인 공격(반공주의 진영)은 소비에트에 대한 진위성의 견지보다 적을 공격하기 위한 ‘사회적 효과’만을 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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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제20차 소련공산당대회에서 이루어진 ‘스탈린 비판’은 러시아 혁명이 안겨준 만성적인 열병 상태에 역사적인 전기를 가져다주는 듯했다. 스탈린 비판의 사상적 의의는 소비에트에 백 퍼센트 동의해온 맹목적인 공산주의자들과 소비에트와 코뮤니즘을 고정된 법칙으로 환원했던 반공주의자들에게 내리는 철퇴와 같았다. 마루야마는 ‘스탈린 비판’을 러시아 혁명 이래 코뮤니즘을 둘러싸고 양성된 정신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그것이 일으킨 본래의 역사적 의의를 파고들고, 학문적 과제와 정치적 교훈을 끌어내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사고방법을 비판하고자 했는데, 그 이유는 특정한 정치 상황에 제약받는 정신 경향이나 정치적 수단까지 ‘세계관’ 자체 속에 편입시키고, 그 모든 것을 ‘투쟁’의 필연성으로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반공론의 ‘전체주의화’를 촉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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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스탈린 비판 메커니즘을 보면, 개인숭배의 원인을 집단지도의 결여로 돌리고, 거꾸로 집단지도의 무시를 개인숭배로부터 설명한다는 순환론법이 잠재되어 있다. 또한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보고에 의하면, 개인숭배 원인은 첫째, 소련에서 사회주의 건설이 이루어진 객관적인 역사적 제 조건과 둘째, 스탈린의 개인적 자질과 관련된 주관적 요인을 들었다. 마루야마는 이 문제가 ‘이론적’으로 다뤄지지 않는 한, 중대한 정치적 사상은 거시적인 객관적 정세론 혹은 지도자의 선천적·내재적 소질이라는 두 방향으로 손쉽게 해소돼버릴 것으로 봤다. “그런 차원의 문제를 일단 특수적·개별적 조건으로부터 분리시켜 법칙화하지 않으면, 객관정세론은 “그것은 한때의 일이었다”는 식으로 되고, 또 개인적 자질론은 “그러니 모두 훌륭한 사람이 됩시다”라는 식으로 끝나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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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공산주의의 문제로 드러나는 것은 ‘소급론’이다. 예컨대 프롤레타리아트가 ‘본질적으로’ 혁명적이며, 더구나 공산당이 언제나 혁명의 전위라고 한다면, 구체적인 혁명의 실패는 공산당 이외의 사회민주주의 지도자의 배반에 의해서밖에 설명할 수 없게 되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고관에서는 현실에서 범한 오류, 어리석은 짓이 궁극적으로는 사상이나 원칙에 대한 무지 또는 잘못된 적용 때문인 것처럼 귀착되고 만다. 마루야마는 스탈린을 예로 들며, “틀림이 없는 원칙이나 이론으로의 귀의라는 것이, 그것만으로는 올바른 행동의 보증으로서 얼마나 신뢰할 수 없는가 하는 것을 말해”(375)준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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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숭배’와 관련해서 스탈린 독재의 제 측면은 정치심리의 차원뿐만 아니라 ‘조직의 문제’까지 제기한다. 예컨대 톨리아티는 개인숭배에 모든 원인을 돌리는 것이야말로 비마르크스주의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소비에트의 정치적·경제적 생활에서 관료적 조직형태가 우위를 차지한 것은 당에 맹아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권력의 입헌적 절차 행사에 대한 코뮤니스트들의 경시는 단순히 혁명적 혹은 비상사태적 상황으로부터의 요청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입헌주의–부르주아민주주의–프롤레타리아민주주의라는 단선적 진화의 사고방식에서 오는 낙관 역시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중국공산당은 소련의 스탈린 비판 이후, 개인숭배의 연원을 “수백수천만 사람들의 일종의 습관의 힘”에서 찾았는데, 이 맥락에서 개인숭배는 착취계급 속에 그 기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소생산자들 속에서 그 기초가 있다. 그러나 전형적 소부르주아 근성이 만연한 프랑스 같은 곳에서는 ‘개인주의’가 ‘개인숭배’를 치열하게 견제하고 있으며, 역설적으로 소련 같은 곳에서 개인숭배가 만연한 현상이 이론으로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한편 국가기관의 집권과 분권의 문제, ‘견제와 균형’의 문제 역시 오로지 부르주아민주주의국가만의 문제라는 인식이 존재했으며, 사회주의체제는 본래 인민의 국가이므로 그런 보장은 필요없다는 식으로 주장되어왔다. 이런 인식에서 입법부나 재판부 등의 국가기관이나 매스 커뮤니케이션 기구는 “어차피 본질적으로는 적의 것이다”라는 규정과 ‘기회주의적 이용’이라는 두 방향이 아무 관련없이 병존하게 되었다. 이런 모순은 의회제도, 국가보안국에 대한 인식에서도 드러나 있다.(384p 참조) 이처럼 스탈린 비판은 마르크스주의국가에서 지금까지 간과되었거나 의식적으로 숨겨왔던 제도의 다양한 여러 측면을 스스로 분명하게 밝히는 기회가 되었다. 마루야마는 인간에게 진짜로 위험한 것은 언제나 예리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오히려 충분히 의식하지 못한 쪽이 더 위험하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미국에게는 공산주의의 위험보다 ‘자유민주주의 정치’의 타성화, 형해화의 위험이 더 크며, 러시아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나쁜 영향보다 사회주의 체제가 역사적 진보성에 눌러앉을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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