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2부 1장 - '서구 문화와 공산주의의 대결' 발제문

작성자
atsh1n
작성일
2023-09-30 11:49
조회
542
제2부, 제1장, 서구 문화와 공산주의의 대결
래스키의 『신앙, 이성 그리고 문명』에 대하여

이 글은 래스키 『신앙, 이성 그리고 문명』에 대한 마루야마의 서평이다. 해당 책은 크게 두 가지 테마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번째는 제1차대전에서 제2차대전까지의 이른바 전쟁 사이의 시기에서의 정치·경제·사상·학문·예술 각 영역에 걸친 종합적인 비판이며, 두 번째는 기독교와 볼셰비즘의 역사적인 유비와 대조이다(250).” 이 책에 대한 마루야마의 짧은 요약은 다음과 같다:
“현대는 마치 로마제국의 말기와 마찬가지로, 모든 옛 문명의 가치체계가 퇴폐하고 몰락하고 있는 시대이다. 거기서는 정치라는 것이 특권계급의 이기적인 자의에 맡겨져 있으며, 부는 집중되고, 관리는 부패하고, 지배자에게도 피지배자에게도 내적인 확신이 상실되었으며, 문화는 말초적으로까지 세련되어, 대중은 희망도 광명도 없이, 덧없이 데카당스 속에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그런 시대의 갱생은 새로운 가치체계의 재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하나의 새로운 신앙에 의해 인간이 절망에서 벗어나 다시 생활에 대한 의욕을 찾아내고 사회와 문화의 새로운 건설에 대한 동경과 포부로 맞설 수 있다. 그리하여 인류의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epoch)가 만들어진다(251).” 그리고 로마 몰락 이후 기독교가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냈듯 현대문명의 퇴폐 속에서는 “소비에트원리가 ‘새로운 신앙’으로 탄생했으며, 일찍이 기독교가 했던 그런 역할을 수행(251)”하려 하고 있다.
먼저 마루야마가 논하는 것은, 래스키의 지식인론이다. 레스키는 당대 지식인들의 타락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들은 대중과 유리되어 “그 시대 최고의 사회적 투쟁 바깥에 초연해 있으면서, 오히려 거꾸로 그런 고고함에 긍지를 느끼고 있”(254)다는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인텔리는 대중에 호소하기를 중단하고 사회적 혁신에 대한 관심도 던져버리고, 점차로 지배계급의 부속물로 전락”(257)했다. “그것은 지식인의 최고의 임무를 배신한 것이며, 그 임무를 게을리 한 것이 독일의, 이탈리아의, 그리고 프랑스의 비극을 초래”(257)했던 것이다. 여기서 래스키가 힘주어 말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지식인은 개인임과 동시에 한 사람의 시민이라는 것, 만약 지식인이 시대가 직면하고 있는 중대한 문제나 대중에게서 삶과 죽음을 의미하는 문제에 등을 돌리는 일이 있으면, 그 시대의 모든 문학은 결코 시대를 구제할 수 없으며, 또 위대한 문학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이다.”(257)
또 하나의 논점은 래스키가 당대를 로마와 유비함으로써 소비에트의 에토스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쇠퇴 이후 “인간 정신을 재생”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현대의 타락을 구제할 새로운 신앙의 원천은 (1)내셔널리즘이나 (2)역사적 종교에도 존재하는 듯 하다. 그러나 (1)내셔널리즘이 고취하는 애국적 감정의 위험성을 고려해보거나, (2)새로운 정세, 즉 사람들의 관심이 세속화한 현대라는 상황을 살펴볼 때는 둘 다 적절하지 않다. 즉 현세에서의 개인적 자아의 실현이라는 과제를 짊어질 역할은 사회주의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래스키가 강조하는 소피에트의 미덕이 “제도적 개변 그 자체보다도 러시아혁명의 에토스가 그 국민에게 부여한 정신적 갱생”(260)에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 혁명의 에토스는 모든 남녀노소 시민에게 “위대한 세계적 사명에 공헌하고 있다는 기쁨과 확신 속에 생활”(260)하게 만들었다. 이는 현대 문화의 퇴폐와 붕괴라는 사태를 타개할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래스키는 소비에트 원리가 세계적으로 승인받는 것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스키는 “마치 기독교가 모든 박해와 전 세계의 모멸을 받으면서도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해서 3세기 후에는 마침내 세계와 인류의 갱생을 성취한 것과 같은 역할을(264)” 소비에트 원리에서 발견하고 있다. 왜냐하면 역시나 “전쟁 이후의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길”(264)은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루야마는 래스키의 논의가 이전보다 더욱 좌파적이게 되었음을 지적하면서, 그의 발상이 가진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한다. 그것은 “래스키가 코뮤니즘을 어디까지나 하나의 ‘신앙’으로서 포착”하고 있다는 것인데, 여기서는 마르크스주의 특유의 유물론적 사고에 입각한 역사발전론이 포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기서 열렬하게 주장되는 것은 오로지 ‘가치체계의 재건’이며, ‘정신적 구제에 대한 갈망’이며, ‘개인적 자아의 실현’이며, ‘인간의 내면에 있는 지극히 높은 것에 대한 호소’이다.”(266) 그래서 “대중의 물질적 복지의 보증은 다만 그들의 인격적 내면성 실현의 전제로서만 의의를 지니고 있”으며, “거기서의 사회주의는 시종일관 목적론적이며, 생산력의 측면보다도 더 많이 ‘소비’와 ‘수요’의 측면에서 주장”(266)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마루야마는 래스키가 “여전히 영국의 사상적 전통의 강력한 지배 하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는 다원론자였던 래스키가 마르크스주의자로 변신하면서도 그의 기저에 흐르는 ‘에토스’, 즉 그의 뿌리 깊은 ‘개인주의’는 변치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여기서 마루야마는 래스키에게서 앙드레 지드가 그랬던 것 같은 “개성적 인격의 궁극성”이라는 신념과 “잘 이해된 코뮤니즘”의 융화라는 ‘불안한 희망적 관측’을 발견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더해 개인주의-즉, 서양의 ‘프티부르주아성’이야말로 서구 세계에서의 모든 귀중한 정신적 유산의 중핵을 형성해왔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음을 강조하며 글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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