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2부 2장 - '래스키의 러시아혁명관과 그 추이' 발제문

작성자
deepeye
작성일
2023-10-07 11:47
조회
237
이번 장에서 마루야마는 래스키의 저작 <현대의 혁명에 관한 고찰> 제 2장 ‘러시아혁명’을 소개하면서 그 사상의 발전 궤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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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스키가 보기에 당시 러시아 혁명은 양 극단의 시각에 둘러싸여 있었다. 과도한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볼셰비키적 혁명 방식을 지나치게 낙관했고, 과도한 공포에 선 사람들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절박함에 매달리게 됐다. 래스키는 어느 한 극단에 서지 않고, 어째서 혁명이 그토록 거대한 희생을 수반하지 않으면 안되었는지 이해하고자 했다. 또한 러시아혁명의 ‘희생’을 논할 때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시간’이란 요소라고 주장했다. 혁명 후 3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소련의 역사를 쉽사리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영국에선 종교적 관용이라는 관념이 풍토화되기 위해 15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한편 러시아혁명에 대해 가장 빈번한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첫째, 민중 무장봉기에 의한 혁명이었다는 것, 둘째, 그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래스키가 혁명을 이해하기 위한 초점 역시 그 과정에 집중돼 있었다. 민중 무장봉기에 대해선 러시아에서만 가능했던 예외적인 조건들을 강조하며, 이를 간과한 채 보편타당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를 경계했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대해서는 ‘혁명 직후’와 ‘스탈린 시절’을 구분하며 전자의 불가피함을 옹호했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사례에서 드러나듯, 반혁명 세력에게 고전적인 정치적 자유를 부여해주는 것은 혁명의 분쇄를 뜻하기 때문이었다. 후자의 잔혹함에 대해서도 일방적으로 비판하기보다, 서구 국가들이 내비친 뿌리 깊은 혐오와 압박, 파시즘 허용 역시 결코 무관할 수 없음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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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스키는 볼셰비키의 조직과 행동을 안에서부터 이해하기 위해 청교도와 구조적으로 비슷한 점들을 언급한다. 일종의 선민의식, 결정되어 있는 승리에 대한 확신,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의 텍스트를 성경 대하듯 하는 태도 등이 그렇다. 이런 비교를 구체적으로 든 것은 당시 일반적인 영국인들 입장에서 소련의 모습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래스키는 초기에 공산주의 및 종교에 내재된 독선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냈었지만, 이후에는 문명 변혁기에서 공산주의가 근본적인 전환을 위한 ‘새로운 신앙’으로 기능할 것이라 기대했다. 예컨대 <혁명론>에서 서구 민주주의 입장에서 상당한 정도로 스탈린 정권을 비판했지만, 이후 <문명론>에서는 ‘독재’의 변호로 시종일관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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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스키의 이같은 도달점은 1921년 저서 <카를 마르크스 : 하나의 에세이>와 비교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래스키는 다원적 국가론의 제창자로서 학문을 출발했지만, 세 가지 역사적 계기를 접하며 계급국가론으로 전환했다. 그것은 첫째, 1931년 영국 공황 때 자본 진영에 투항한 맥도널드 노동당 내각의 배신, 둘째, 루스벨트의 뉴딜 당시 월 스트리트가 보였던 격렬한 적의, 그리고 193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공권력의 노조 탄압, 마지막으로 나치에 의해 국가권력이 노동자계급을 억압하는 도구로 이용당하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이런 관점 변화는 비겁한 ‘전향’과 거리가 멀다. 마루야마가 보기에 그는 “인격적 자아의 실현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입장을 ‘내적 필연성’으로 삼은 채 생각을 변화시켜 왔다. 그 점은 러시아 혁명에 관한 그의 시각이 다원적으로 흐르는 것에서 역시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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