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3 발제문

작성자
Namhee Kim
작성일
2018-03-13 19:02
조회
544
1982년 3월 10일 강의 후반부
?
424 마지막으로 ... 지도자가 하는 질책이 부당하다는 결론과 확신에 도달하게 하는 경우를 가정해 봅시다. ... 그것이 부당함을 참아낼 수 있는 훈련을 시키는 시련이기 때문에, 또 부당함은 인생 전반에 걸쳐 인간이 지속적으로 마주치는 것임에 따라 부당함에 대비해 인격을 쌓고 무장하며 장비를 갖추는 것은 필요 불가결하기 때문에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425 지도자의 부당함은 피지도자에게는 긍정적 시련입니다. 이 이상하고 놀라운 요소는 내가 아는 한 당대에 같은 장르의 다른 텍스트에서 결코 발견되지 않지만 기독교 영성 내로 이전돼 전개되고 있습니다.
??
430 요컨대 사유하는 바를 말하며 말하는 바를 사유하고 언어가 행실과 일치하게 만드는 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언어를 보고 들으며 변함없이 동일하게 남아있는 자 는 이 약속을 완수한 자이다.
???
영혼의 교류


1982년 3월 17일 강의 전반부
?
458 공정과 불공정에 관한 시련
일정 기간 동안 정직하고 합법적이라 할지라도 이윤을 포기하는 데 성공하는 것과 같이 보다 미묘한 바를 수련해야 한다.
이는 모든 불공정의 원천인 획득 욕구를 자신에게서 뿌리뽑는 데 성공하기 위해서 하는 수련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공정하다 할지라도 보다 확실하게 불공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윤을 포기하게 만드는 일종의 공정을 넘어서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련-자기 점검으로서의 시험이다.
??
459 아무 느낌도 갖지 말아야 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야 하며 정신을 완전히 비우고 중립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의 순결성과 이교도의 자제 간의 구별점 중 하나
사유,욕망,상상의 중화 작업이 문제다. 바로 이것이 시련의 노력이다.
자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유 작업, 즉 자기 자신에 의한 자기 자신의 사유를 수반해야 한다.
???
459-460 diakhusis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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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3월 10일 강의 후반부

갈레노스 <정념치유론>
-무엇으로부터 치료돼야 하는가: 정념과 오류
-정념과 오류로 인해 훨씬 더 심각한 맹목 상태에 있음(질병과 비교해서)
-왜냐하면: 자기애,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환상을 갖지 않기에는 항시 과도할 정도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
-자기애 때문에 우리를 치료하는 데 꼭 필요한 관용적이지도 않고 적대적이지도 않은 타자를 선별해 채용->정념과 오류의 치료를 의뢰해야 함
-타자;지도자 치료의 여러 갈래 (참고: 423-425)

1. 지도자를 가져야 할 필요성: 구조상의 필요성. 타자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
425 인생에서 적절하게 처신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지도자를 필요로 합니다. ... 동일한 테마가 기독교 내에서 빈번히 논평되는 것을 재발견할 수 있습니다.
2. 지도자는 일종의 영혼의 기술자 아님. 지도자에게 요구해야 할 바는 도덕적 자질. 핵심 두 가지:
(1)솔직함
솔직함parhesia, 솔직히 말하는 능력(기독교에서는 역전(피지도자-지도자)
(2)잘산 노인
이미 나이가 들고 사는 동안 자신이 선한 인간이라는 증거와 증표를 제시하는 사람을 되도록이면 선택해야 한다 (“가장 잘산 노인들을 좋아하라”)
(3)모르는 사람
사전에 어떤 관계도 없어야 한다.
관용이나 가혹함이 없을 정도로 사전의 관계가 가능한 한 최소화해야 한다.
(플라톤, 세네카: 애정 관계... 이미 잘 설정된 사교 관계)

영혼의 기술자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한 개인, 결과적으로는 지도자가 있다.
그는 중립적인 자, 낯선 자이며 그와의 관계에서 피지도자는 지도자의 시선의 대상과 담론의 대상 혹은 표적으로 놓여져야 한다. 지도자는 피지도자를 응시하고 관찰하며 피지도자가 이러저러한 정념이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한다. 그순간 지도자는 그의 parrhesia에 입각해 자유롭게 피지도자에게 말을 하게 될 거다. 그리고 이렇게 시선과 담론 주체의 외부적이고 중립적 지점으로부터 양심 지도 활동이 시작된다.

세네카 텍스트
*지도자와 피지도자의 진정한 관계 <-> 대중적 웅변술 형태로 행해진 연설
*이 담론은 단순성과 숙고된 구성을 통해 우리의 심층부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는 두 개인 사이에서 제어되고 효율적인 담론적 관계여야 하는 바
-이 담론은 진실에 자리를 내어주는 담론이다.
-이 담론이 진실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서는 담론이 simplex해야, 투명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담론은 composita해야 한다. 어떤 질서를 따라야 한다.
이 질서는 진실과 관련해 만들어진 [질서]다.
-그 결과 진실과 투명하며 진실에 따라 잘 정련된 담론을 이용하면서 타자에게 건네진 이 담론은 듣는 자의 심층부로 내려갈 수 있다.

*진정한 지도와 조언의 관건
진정한 지도와 조언은 영혼에 가까스로 보이지만 싹틀 수 있고 혹은 자연이 인간에게 맡긴 지혜의 씨앗(이성의 씨앗과 싹)을 싹트게 하는 것을 돕는 작은 씨앗을 영혼에 뿌리는 것이 관건입니다. (<->대중적 웅변술: 결정적 수단에 호소하는 것이 관건)

1)특수한 방식으로 대담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2)수사학에 대한 태도: 담론의 장식이 전적으로 유용할 수도 있다. ... 수사학의 전술적 활용이 존재하지만 수사학 규칙에의 근본적이고 총체적이고 전체적인 복종은 있을 수 없다.
3)’솔직히-말하기’의 담론은 타자에게 유용해야 한다. 또 그에게 본질적으로 지향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솔직히-말하기는 영혼의 ‘교류’ animi negotium 내에서 유용하다.
*영혼의 교류 내에서 솔직히-말하기의 유용성의 궁극적 목표
: 들은 바를 그 아름다움을 상기하며 기억 한구석에 저장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기 안에 각인해서, 그것이 요구되는 상황에 처할 때 적절히 행위하는 것

429 일흔다섯번째 편지: “ ... 우리가 한가하게 앉아서건 산보를 하면서건 대면하게 되면, 내 대화는 꾸밈없이 이해하기 쉬운 형세를 갖게 될 것이다. ... 요컨대 내 편지는 꾸밈과 인위적인 것이 전혀 없다. 가능하다면 내 생각을 언어로 번역하기보다는 네가 직접 내 생각을 보게 하고 싶다. ... 무엇보다도 내가 말하게 되는 모든 것을 나는 사유하고 그것을 사유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해도 그것을 사랑한다는 것을 너에게 진심으로 이해시키고 싶다. ... 요컨대 사유하는 바를 말하며 말하는 바를 사유하고 언어가 행실과 일치하게 만드는 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 우리의 담론은 기분 좋은 것이 아니라 유용한 것을 지향해야 한다. ... 그리고 수사학은 지극히 아름다운 것의 뒤를 따라가야 하며, 또 자기 자신을 내보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사물을 드러내보이기 위해서 행해져야 한다. 다른 기술들은 절대적으로 정신에 호소한다. 여기서 우리는 오직 영혼을 위해 일한다.”

Parrhesia와 관련해 다른 텍스트
다른 요소 의학과 항해술, 그리고 자기와 타자의 통치간의 불가피하며 근본적인 비교.
요컨대 배를 지휘하기, 환자를 치료하기, 사람들을 통치하고 자기를 통치하기는 합리적이고 동시에 불확실한 동일한 행동 유형론에 속한다.
말의 기능(세네카): “말하기보다는 내가 체험하는 바를 보여주는 것이 관건이다.”
말하기보다는 자신의 사유를 보여주는 것 이 의미하는 바?
사유의 현시의 중요 요소 2가지
1)순수하고 단순한 사유의 전승
2)전승하는 사유가 그것을 전승하는 자의 사유임을 보여주어야 할 필요.
내가 말하는 바가 진실이라고 내가 실제로 체험한다는 것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내가 그것을 체험하고 진실로 간주할 뿐만 아니라 나는 그것을 사랑하며 애착을 느끼고 내 전생애가 그것에 의해 지배된다.
*어린아이에 하는 입맞춤, 단순하고 순수한 입맞춤 속에서 내 사랑을 현존하게 만든다. 결국 이것은 parrhesia라는 경험적 관념 내에서 본질적인 요소로 귀결된다.
*사람이 행하는 담론의 parrhesia(솔직함)를 보장하기 위해 말하는 바 내에서 말하는 자의 현존이 감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Libertas와 parrhesia 개념에서 핵심적인 요소이고, 여기 세네카의 텍스트에서 개진되는 핵심 요소라 말할 수 있다.
세네카 “사유하는 바를 말하고 말하는 바를 생각하고 언어가 행동과 일치하게 만들기, 바로 이것이 핵심 요점이다.
Parrhesia의 토대는 진실을 말하는 주체와 이 진실이 원하는 바대로 행동하는 주체 간의 일치라고 생각합니다. 전술적으로 타자에 맞추는 것 이상으로 phrrhesia와 libertas를 특징짓는 바는 말하는 주체 혹은 발화 주체와 행위 주체의 일치입니다.
바로 이 일치가 전통적으로 요청되는 형식을 넘어서서 말하는 바의 수용을 도모하기 위해 필요할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수사학의 방편과는 별개로 말할 수 있는 권리와 가능성을 부여합니다.

* Parrhesia는 한편으로 듣는 사람의 상황과 계기 그리고 특수성에 맞아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말하는 자의 측면에서는 발화 주체와 행동 주체 간의 약속과 관계의 가치를 지니며 일정한 계약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규칙으로부터 벗어나고 수사학적 절차들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말입니다. 말하는 주체는 약속합니다. “나는 진실을 말한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는 자신이 말하는 바를 행한다고 약속하고, 또 자신이 표명하는 진실에 정확히 따르는 행동의 주체임을 약속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적인 예가 없는 진실 교육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실을 말하는 자가 진실의 예를 보여주지 않는 진실 교육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인 관계가 필요합니다.
요컨대 공유하는 삶의 관계, 손에서 손으로 전승되는 살아 있는 모범의 긴 연쇄가 필요합니다. 이는 실례가 말해진 진실의 이해를 단지 더 수월하게 하기 때문이 아니라 실례와 담론의 연쇄에서 계약이 부단히 재생산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진실을 말하고 나는 당신에게 진실을 말합니다. 그리고 내가 당신에게 진실을 말한다는 것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바는 실제로 행동 주체인 내가 절대적으로, 전적으로, 완전히 내가 당신에게 말하는 바를 당신에게 말할 때 발화 주체인 나와 동일하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parrhesia의 핵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pedagogique / psychologique
-pedagogique: 주체에 앞서 정의된 소질을 갖추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관계
-psychologique: 주체에게 어던 소질을 갖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듣는 주체의 존재 방식을 변형시키는 임무를 띤 진실의 전승
-고대 psychagogie의 관계는 pedagogie의 관계와 대단히 가깝거나 상대적으로 가깝다.
왜냐면 스승은 pedagogie에서 진실을 보유하고 있고, 자신이 전승하는 진실된 담론에 내재하는 규칙 내에서 적절히 표현하는 한에서 스승이기 때문. 진실과 진실의 의무는 스승의 편에 있다.
-기독교 유형 psychagogie 인도되는 영혼으로 하여금 진실을 말할 것을 요구하면서 psychologie와 pedagogie를 분리. ... 기독교의 영성에서는 인도되는 주체가 자신의 참된 담론의 대상으로서 참된 담론의 내부에 현존해야 한다. 인도받는 자의 담론 내에서 발화의 주체는 언표의 지시대상이어야 한다. 요컨대 이것이 고백 의 정의
-반면 그리스,로마 철학에서 참된 담론에 현존해야 하는 자는 지도자. 그리고 지도자는 언표의 참조 대상의 형태로 현존할 필요 없음.
지도자는 “나는 이렇다”라고 말하는 사람으로서 현존하는 게 아니라 발화 주체와 자기 행동의 주체 간의 일치 속에서 현존한다. “내가 너에게 말하는 진실을 너는 내 안에서 본다.”


1982년 3월 17일 강의 전반부

피타고라스 정숙 규칙
관상학 지원생들->정숙(각자에게 맞춤):일차적 연수->말하고 메모할 수 있는 권리
(정숙은 본질적으로 기억의 훈련)

참된 담론은 영혼에 필요한 장비, 즉 개인에게 발생하는 인생의 사건들에 대면하거나 아무튼 대면을 준비하게 해주는 장비인 paraskeue를 구축해야 합니다. 따라서 그것은 고행의 첫번째 초석입니다.

또다른 고행의 층 -참된 담론의 사용과 활성화
기억이나 사유내에서의 활성화가 아니라, 주체의 활동 내에서의 활성화.
다시 말해, 어떻게 주체가 참된 담론의 주체가 되느냐가 문제
이 또다른 고행의 단계는 참된 담론과 진실을 ethos로 변형시켜야 한다.
바로 이것이 엄격한 의미에서 흔히 askesis라 불리는 바를 구축합니다.
고행(수련)의 또다른 이 층과 수준을 지시하는 용어: ascetique

*ascetique
: 도덕적이고 철학적이며 또 종교적 체계 내에서 한정된 영적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개인이 사용할 수 있고, 권고받을 수 있으며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다소 체계화된 수련들의 총체
영적인 목표: 행동과 참된 인식의 주체로서 개인의 변형과 변모를 의미

ascetique, 즉 고행-수련 체계 전반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기술적 문제라 할 수 있다.
당대에는 명령되고 추천되는 상이한 수련들이 무엇인가를 규정
그것들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자 서로 구분되는지
각각의 수련이 부합해야하는 내적인 규칙들이 무엇인지 규정
절제, 명상, 죽음의 명상, 닥쳐올 질병들에 대한 명상, 의식 점검 등을 포함하는 도표 작성..

<알키비아데스> 후반부 전체: 자기 배려가 무엇인가와 우선 돌보아야 할 자기는 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에 할애됨. 대답=>영혼
영혼에 호소하는 이 배려는 <알키비아데스>에서 본질적으로 영혼 자신에 의한 자기 인식으로 기술됨.
자기 자신의 본질적 부분을 구축하는 요소, 즉 nous 내에서 자신을 응시하며, 영혼은 자기 자신을 재인식해야 한다.
요컨대 자기 자신의 신성과 사유의 신성을 동시에 재인식해야 한다.

스토아-견유주의 자기수련이 자기 인식의 원칙을 중심으로 조직되지 않았음.

헬레니즘,로마 시대에 스토아-견유주의자의 자기 수련은 <알키비아데스>에서 논의,표현된 바와 비교할 때 이중적 단절을 갖는다.
*이중적 단절: 자기 인식의 원칙과 관련한 수련 전반의 단절이 존재, 또 플라톤주의자들에 있어서 신성한 요소인 자기에 대한 재인식이라는 중심축과 관련한 자기 인식의 단절이 있다.
1)자기 인식의 정언과 관련한 자기 수련(수련의 총체) 자료집 전체의 단절. 자기인식은 askesis의 중심축이 아니다. 이것은 자기 인식의 축과 관련한 askesis 전반의 격차다.
2)신성한 요소인 자기의 재인식은 중심적 위치를 점유하지 않는다.

이 이중적 단절은 역설적으로 기독교 내에서 이 수련들의 역사적 운명으로부터 기인된 것이며, 역설적으로 기독교 내에서 그들의 역사적 운명으로부터 결과된 것.

이 수련들이 16-7세기 영성 내에서 재발견될 정도로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다면, 오랜 생명력을 가지고 기독교 내에서 존속돼 오다가 통합됐다면,
이 수련들이 비플라톤적이었고 자기 인식과 자기 수련의 격차, 그리고 신성한 요소인 자기의 재인식과 자기 인식의 격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영성, 4세기부터 근동에서 발전하는 기독교의 영성은 근본적으로 반그노시스(인식)적이었고, 그노시스로부터 벗어나려 노력했다.
인식의 실천에 집중돼 있지 않고 ‘자기 자신을 신성한 요소로 재인식하기’의 원칙에 인식의 문제를 위치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기독교 영성의 첫번째 특질이다.

스토아-견유주의 ascetique는 말하자면 기독교가 그노시스 영성에 빠지지 않기 위한 기술적 보증이었다.
이 자기 수련은 대체적으로 인식의 질서에 속하지 않던 수련들을 이용했다.
예를 들면, 절제, 시련 등과 같은 수련의 중요성은 인식이나 자기 인식과의 관계 부재 내에 있었다.

따라서 이 금식의 신체가 중요하다 .자기 자신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을 임무와 목표로 삼는 인식 및 자기 훈련이 두번째 특질이다. (신성한 요소인 자기를 재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지속적인 의심의 불안이다. (신성한 바를 재인식하는 거창한 활동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일차적으로 재인식해야 하는 것
-스토아: 과오나 나약함 같은 것의 흔적을 간파
-기독교: 자기 죄의 흔적과 신이 아닌 타자인 사탄의 존재 흔적을 파악
이것은 인식에 집중된 것과는 거리가 먼 훈련. 인식에 집중될 때에도 신성한 재인식보다는 자기에 대한 의심에 집중된 훈련
=>바로 이 점이 철학적 기원을 갖는 이 수련들의 기독교 내부로의 이동을 설명
이 수련들은 가시적이고 완벽하게 4,5세기 영성 내에 이식된다.

*이 수련들은 무엇? (분석에 기독교가 훨씬 유용(제정시대 철학적 자기수련보다))
16-17세기 진정으로 독실한 신앙(가톨릭)을 가진 삶-... 수련들로 덥여있고 배가돼 있는/ 모든 수련을 설명하는 전체 교서
수련들은 분명히 규정돼 있고 서로 잘 분할돼 있음

*수련을 필요로 할 경우 주체에 의한 수련의 자유로운 선택이 더 중요하다.
단지 몇 가지 신중의 규칙과 이런 수련을 전개하는 방식에 대한 의견이 개진될 뿐

*수련과 그 연쇄에 대한 대단히 가벼운 규정과 이 정도의 자유가 있다 해도 그것은 생의 규칙이라는 틀 속에서가 아니라 tekhne tou biou(생활의 기술)의 틀 속에서 발생한다
자신의 삶을 tekne의 대상으로 삼는 것, 결과적으로 자신의 삶을 작품으로 만드는 작업은 tekne를 사용하는 사람의 자유와 선택을 필연적으로 전제한다.
=>이것은 철학적 수련과 기독교의 수련을 가르는 선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잘 파악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요소다.

*기독교에서 생활의 규칙은 핵심적
반면 철학적 삶 혹은 철학자들이 tekhne에 힘입어 획득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정의한 삶은 forma형식에 따른다.(규칙regula 아니라)
아름다운 형식을 부여하기 위해 충분히 자신의 자유를 활용하는 사람.
아름다운 작품은 일정한 forma(생의 일정한 양식과 형식) 관념에 따릅니다.
우리는 수련의 영역, 즉 금욕실천론을 각기 참조하지만 그것의 두 양상 혹은 두 군을 지시하는 두 용어에 집중하면서 실마리를 풀기 시작할 수 있는 훨씬 혼란스러운 집합체와 관계한다.
1)meletan 실제적 노동
사유가 자기 자신에 가하는 노동이지만 개인이 곧 해야 할 바를 준비시키는 작업
2)gumnazein
자기 자신을 위해 개인이 하는 신체적 훈련을 지시
자기 자신을 단련하다 / 수련하다라는 의미를 가짐
실제 상황에서의 실천과 관련이 있음
-1,2의 구분
1은 명상하는 것, 즉 사유상에서 수련하는 것을 의미. 사물과 원리를 사유하고 성찰해 사유를 통해 준비
2는 이것들을 쓰는 행위(그러므로 사유하고 쓰는 행위). 현실 속에서 수련하는 것 의미.

Gumnazein, 실제적 상황에서의 수련 - 금욕 체제와 시련의 수행
무소니우스 루푸스 (제정 초기 스토아주의 철학자)
: 신체는 간과돼선 안 된다.
이유는 도구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신체는 덕이 생활의 활동에서 잘 활용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
덕이 능동적이 되려면 신체를 거쳐 가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신체를 돌봐야 하며, askesis는 신체를 통합해야 한다.

어떤 유형의 수련에 몰두해야 하는가? 신체 수련 자체가 따로 있고, 영혼의 훈련 자체가 따로 있음. 그러고 나서 신체와 영혼의 수련이 있다. (신체 수련 언급X)
*영혼과 신체의 훈련은 두 가지 목표를 가짐
:영혼과 신체의 수련은 andreia, sophrosune, 즉 용기로 제어를 형성하기 위해 행하는 수련
1)용기andreia를 형성, 강화
여기서 용기는 외부 사건들에 저항할 수 있는 힘, 외부 사건들에 의해 고통받거나 쓰러지거나 화를 내지 않고 견딜 수 있는 능력
2)제어sophoroune, 자제할 수 있는 능력을 형성하고 강화하는 목표
모든 내적인 동요, 즉 자기 자신의 동요를 파악하고 해결하며 제어할 수 있게 해줌

*플라톤에게 외부 세계에 대한 용기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제라는 두 덕을 확보해 주는 바가 신체적 수련, 체조적 수련이다.
*무소니우스 루푸스에 있어서 체조 전체가 사라짐. ‘절제’를 통해 성취
-절제: 배고픔, 취위, 더위, 수면과 관련한 인내 요법
*수련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신체-도덕적인 절제의 관건이자 적용점인 체조적 신체가 아니라, 인내, 끈기 자제의 신체이며 바로 이 점이 중요한 차이다.

세네카

*절제로 전환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이따금씩 되돌아갈 수 있고, 생에 forma형식을 부여하게 해주는,
다시 말해서 개인에게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이루는 사건들에 직면해 적절한 태도를 취하게 해주는
일종의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훈련으로서의 절제를 통합하는 것이다.

절제 훈련을 통해 형성되는 것은 양식, 의복, 주거와 관계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 절제 훈련은 생활의 양식을 형성하기 위한 훈련이지 명시적인 금지와 금기에 맞추기 위한 절제 훈련이 아니다.

**금욕적 실천의 또 다른 집합인 ‘시련의 실천’
-시련은 항시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일정한 질의를 포함한다.
-시련은 주체가 자기 자신이 하는 바와 그것을 하는 자기에 대해 양식 있고 의식적인 일정한 태도를 취하는 조건에서만 시련일 수 있다.
-현실에 직면한 일반적 태도. 결국 생애 전반이 시련이 돼야 하고, 바로 이것이 스토아주의자들에게 시련이 갖는 의미

시련의 첫번째 두 요소
1)자기 자신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시련
이미 이룩된 향상, 자기가 도달해야 하는 지점과 관련해 현재 자기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시련의 수련에서 가늠해 보려고 한다.
2) 이중적인 부분을 갖는 수련으로서의 시련
현실 내에서의 수련임과 동시에 사유에 관련된 수련
현실에 직면할 필요가 있고, 또 동시에 내적인 태도를 구상하는 것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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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문] 4/10 『말과 사물』 서문, 1장
bomi | 2018.04.10 | 추천 0 | 조회 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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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사물> 첫 주 읽을 범위입니다 (1)
Yeongdae Park | 2018.03.31 | 추천 0 | 조회 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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