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호]과학의 민주화에 대한 지침서 | 김영호(대전민예총 이사장)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3 14:41
조회
1989
과학의 민주화에 대한 지침서

김영호(대전민예총 이사장)


처음『과학의 새로운 정치사회학을 향하여』의 출간 소식을 접했을 때, 그간 관심을 가져왔던 ‘과학에 대한 인문학적 통제’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관점과 분석틀을 얻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먼저 들었다. 우리 사회를 온통 들끓게 하고도 아직까지 사실에 대한 과학적 의문이 명확히 해소되지 않은 ‘황우석 사태’나 ‘천안함 사건’ 등을 겪으며, 과학이 엄격한 실험을 통해 구체적으로 입증된 객관적인 사실을 순수하게 제시하는 학문이라는 소박한 믿음이 크게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사회적 체험을 통해서, 과학은 별개의 독립된 학문이 아니라 과학적 연구나 개발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내외적 여건들에 크게 영향을 받는 복합적인 학문이라는 걸 조금씩 밝혀졌다. 특히 경제적 후원이나 지원을 통한 국가나 자본의 통제나 사회적 이슈와의 연합에 따른 여론형성 등에 의해 엄청나게 굴절된다는 점이 시민과학자나 단체들에 의해 그 일단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일반 시민에게 과학은 쉽게 이해하기 힘든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거리감이 여전히 남아있다. 시민과학자와 사회단체의 노력으로 과학연구 과정의 민주화나 과학자의 윤리의식 제고 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상당히 높아졌지만, 소위 과학기술동맹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인식은 여전히 소박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황우석 사태’에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정부기관이나 언론이 자성의 기회를 제대로 갖지 않은 채 과학자 개인의 일탈로 사태를 봉합하면서 사회적 성찰의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한편 ‘천안함 사건’을 겪으면서는 양심적 과학자나 시민의 적극적 참여로 과학적 진실의 사회적 탐구수준이 크게 높아지면서 제도권 내 과학자들이 국가제도의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굴절되는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특히 재외 과학자들의 객관적 실험과 명쾌한 분석 그리고 용기 있는 의혹 제기로 제도권 과학자들의 한계가 더욱 확연해지기도 했다.

『과학의 새로운 정치사회학을 향하여』는 순수 자연과학자들의 과학적 사고와 원리를 밝히는 책이 아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학자들이 과학과 정치사회적 영향관계의 올바른 재구성을 지향점으로 과학적 연구와 개발에 미치는 다양한 현실적 힘의 영향을 분석하고 이것이 시민들의 삶의 조건에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를 구체적 사례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과학적 업적이 대중들의 삶에 고르게 영향을 미치도록 과학과 정치사회학의 바람직한 상호작용에 대한 구상을 제시한다.

우리 사회가 10여 년에 걸쳐 겪은 일련의 과학적 사건을 통해 ‘과학의 윤리적 통제’에 대한 사회적 각성을 어느 정도 이루었기 때문인지 11장의 참여과학의 기원과 여러 유형 그리고 그 미래에 대한 전망이 비교적 실감 있게 읽힌다. 그런가 하면 10장의 대안과학의 전략들 중 국방기술에 대한 평화적 전략은 우리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역으로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평화적 전략으로 우리 현실에 적합하게 응용해 볼 가치가 있다고 보인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은 과학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동인들의 역학 관계를 정치사회학적 관점에서 섬세하게 분석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물론 과학의 자정 노력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여러 힘들의 영향을 드러내려다 보니, 전문적인 시각과 이론틀 그리고 전문적인 용어들이 사용되어 대략의 취지를 이해하면서도 구체적인 이해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과학에 영향을 미치는 동력들을 자본과 국가제도 등으로 구분한 뒤 사회운동으로 새로운 관계설정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큰 구성을 가지고 여러 학자들의 분석을 싣고 있어, 우리가 현실 속에서 겪는 사안에 따라 해당 분야의 분석을 찾아보고 우리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시사점을 얻는 데 있다. 따라서 늘 곁에 두고서 생명공학의 상업화나 의료민영화 등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다시 찾아 읽을 수 있는 지침서로 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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