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호] 어떤 과학이 왜 살아남는가: 『과학의 새로운 정치사회학을 향하여』 서평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3 14:51
조회
2046
어떤 과학이 왜 살아남는가:『과학의 새로운 정치사회학을 향하여』 서평

박진우


『과학의 새로운 정치사회학을 향하여』는 제목부터 커다란 중압감을 주는 책이었다. 이 책의 목표가 과학이라는 지극히 중립적인 것 같은 것에 모종의 정치성, 사회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정치사회학이라는 분야와, 과학이라는 뭔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의 조화에 대해 설명하는 책인가에 대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두 생각은 물론 책을 다 읽고 난 뒤, 모두 적절한 추측인 것 같았으나 이 책이 이야기하는 “거대한” 메시지를 내가 살짝 맛을 본 느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과학사회학이라는 뭔가 낯선 분야에 대해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은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여러 번 읽은 부분을 읽고 또 읽어야 했던 책이었으나, 이후 그 거대한 메시지를 읽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속도를 붙여가며 읽은 책이었다.

물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 책은 각각의 장들로 본다면 생각보다 명쾌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나의 거대한 메시지가 전달되기 어려운 이유는 이 책이 다수의 저자에 의해 쓰인 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수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맹아는 분명해보였다. 그것은 과학 연구를 둘러싼 시장, 사회운동, 국가의 긴밀한 제도적 연결망, 그리고 그 연결망 속에 형성되는 권력의 속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이 책에 대한 서평들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그것들이 어떻게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권력을 발생시키는지는 각 장에서 제시되는 예시마다 조금씩 달랐다. 이러한 전개구조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과학의 속성에 대한 도전이었다. 지금도 과학하면 사람들이, 뭔가 외부세계의 조건으로부터 독립된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같이 흔히 이야기하는 “과학의 자율성”에 대해 이 책은 애초부터 결별을 선언하고 있었다. 과학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현대과학의 구조는 정치성과 사회성을 가진 자율적이지 않은 것이고, 주변 정치, 경제,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메시지가 어쩌면 과학사회학 혹은 과학학의 시작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과학 지식은 사회학처럼 모종의 구성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과학 지식이 한 대상에 대한 연구를 통해 드러난 사실을 단순히 수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과학 지식을 둘러싼 행위자들 사이에 발생하는 협상과 경쟁을 통해 구성된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 책은 이러한 점을 20세기 후반에 나타난 구성주의적 연구의 성과로 제시하고 있는데, 물론 이 같은 매우 추상적인 내용을 설파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신과학정치사회학 연구자들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협상과 경쟁을 통해 구성되는 과학지식에 대해 이 책의 저자들은 매우 구체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러니까, 이 협상과 경쟁을 통해 어떤 과학지식이 탄생하고, 그 지식에 대한 소유권은 누가 가지며, 이 지식의 적자생존의 환경에서 어떤 과학 지식이 연구되지 않고 도태되는지, 같은 문제를 이 책은 정확하게 밝히고 있다. 이 협상과 경쟁에서 살아남은 과학지식의 면모를 보면, 그것들은 우리 사회를 넘어서, 더 근본적으로 말해, 우리 지구에 별로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물론 제도, 연결망, 권력이라는, 과학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것들을 통해 과학기술을 바라봐야 한다는 말이 매우 참신하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 같은 중립성이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은 어찌 보면, 근대를 이미 훌쩍 넘어선 우리 시대에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유는 이 같은 사실을 우리가 줄곧 잊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기는 했지만, 이 책은 간단한 이야기를 세분화하여 여러 장으로 묶은 책이 아니다. 각각의 장에서 제시되는 각각의 사례는 어쩌면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묶일 수 없을지 모른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부분을 매우 추상적으로 정리해 이야기하자면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을 이제 말하고자 한다.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인데, 나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각각의 논문 저자들이 독자에게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과학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복잡한 것이 아니며, 이것 또한 우리들이 신문에서 매일 보는 정치, 사회 뉴스처럼 정치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에 불과하며, 전문가가 아닌 비전문가로서 우리가 그 같은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야기하듯이 과학에 대해서도 그렇게 우리가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비전문가라는 이유로 이 과학지식을 둘러싼 경쟁과 협상의 라운드에서 그저 관망의 위치에 있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지도 않은 것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이미 과학이 상업화 혹은 기업화되었다는 점에서 과학은 전혀 인간적이지 않은, 파괴적인 활동을 펼칠 준비를 진작 끝내 놨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을, 그저 저 우주 속 이야기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는 나 자신에게 모종의 각성을 요구하는 시간, 그것이 바로 이 책을 읽는 시간이었다. 1주일하고도 며칠을 바짝 읽어야 했을 만큼 긴 책이었지만, 이 책은 내게 그 만큼 긴 각성의 시간을 제시할 수 있었다.

그 각성의 시간을 위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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