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호] ‘소유공화국’을 넘어 공통체의 세계로 | 조정환(다중지성의 정원 대표)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3 15:36
조회
2450
‘소유공화국’을 넘어 공통체의 세계로
『공통체』서평

조정환(다중지성의 정원 대표)


* 이 글은 『경향신문』 2014년 1월 4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1032030225&code=960205


22일간 최장기 파업과 노동자 총파업, 그리고 광범한 사회적 연대에도 불구하고 좌절되어 결국 분신의 절규와 정권퇴진의 함성으로 이어지고 있는 철도노조의 파업. 그것이 실제로 제기하는 문제는 무엇일까. 사유화되지 말아야 할 것은 철도만이 아니다. 토지·대기·물과 같은 자연적인 것들, 식량·주택·의료·교육·교통·지식·정보·소통·정동(情動) 같은 사회적인 것들의 사유화는 삶을 위태롭게 만든다. 이것들은 ‘공통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이 ‘공통적인 것’을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으로 분리해 사적이거나 공적인 소유체제에 종속시켜 왔다. 최근의 자본주의인 신자유주의는 경제적인 것을 모두 ‘사적인 것’으로, 사회적인 것을 모두 ‘공적인 것’으로 재배치하는 구도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것의 효과는 사유화된 경제적인 것에서 다중의 완전한 배제이고, 공유화된 사회적인 것에서 다중에 대한 권력의 철저한 감시와 통제다. 이 과정을 통해 ‘공통적인 것’은 완전히 비가시화될 위기에 처해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공통적인 것의 이 비가시화 전략이 바로 우리 삶의 모든 것이 공통적인 것에 의거한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는 시기에 전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물·대기는 온난화하거나 오염되고 있고 교통과 통신은 정체되고 있고 금융과 재정은 위기에 빠져 있고 삶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겁박을 받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공통적인 것을 바탕으로 삼는 현대 자본주의가 그것을 경제적인 것의 사유화(신자유주의)와 사회적인 것의 국유화(공화국)라는 이중체제하에 포섭한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지금 다중에게 긴급한 문제는 신자유주의 소유공화국의 흡혈과 은폐에 의해 그림자만 어른거리는 공통적인 것의 유령에, 분명한 실재성과 정치적 형상을 부여하는 일이다.

<제국> <다중>에 이은 제국 3부작의 종결이자 <선언>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탐구의 출발인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책 <공통체>는 이 긴급한 문제에 답하기 위한 이론적 실천의 산물이다. 이들에 따르면, 모든 개인들을 소유자로서 구성하고 보호하는 장치인 소유공화국은 동시에 소유에서 배제되는 광범위한 사람들, 즉 가난한 사람들도 동시에 생산한다. 공화국에서 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소유기계의 부품으로서 물질적·비물질적 노동을 통해 그것을 떠받치는 역할이 부과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런 의미에서 공화국 내부에 있는 그것의 외부다.

19세기와 20세기에 프롤레타리아들은 거듭되고 끈질긴 혁명운동을 통해 일부 지역에서 자유주의 공화국을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대체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사회주의 공화국은 소유체제의 종말이 아니라 국유체제의 확립으로 끝났고 이후 지구는 서(西)의 사유체제와 동(東)의 국유체제로 양분되었다. 이것이 냉전시대의 구도다. 경제적인 것은 사유화하고 사회적인 것은 국유화하는 신자유주의 전략은 이 두 체제를 지구적 차원에서 종합한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분리를 통해 ‘공통적인 것’을 비가시적 ‘지하-자원’으로 만드는 신자유주의의 이 전략은 그러므로 근대 소유공화국 논리와 그 역사의 심화이자 중층화인 셈이다.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역사적 국유체제의 국가들은 ‘해체’ 혹은 ‘요동’의 시기를 이용해, 또 미국을 비롯한 역사적 사유체제 국가들은 금융위기나 재정위기를 이용해, 경제적인 것의 사유화와 사회적인 것의 국유화에 기초한 지구 제국의 문법을 공동으로 확립해 왔다. 저자들이 ‘공적인 것’의 수호 혹은 창출에서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찾는 좌파의 ‘보수적’ 상식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그와는 다른 방향에서 신자유주의적 사유화에 대한 대안을 찾을 것을 요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국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공사 가운데 양자택일이 아니라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분리와 이중화 그 자체를 넘어서는 것이 필요하다. ‘다중의 군주되기’라는 말로 요약되는 이 과정에 대한 탐구는 6부로 구성된 각 부의 3장들(‘빈자 다중’ ‘대안근대성’ ‘다중의 카이로스’ ‘반란의 계보’ ‘단층선을 따라 일어나는 전진(前震)’ ‘혁명을 다스리기’)에서 서술된다.

이 장들을 통해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신경제학이 서술하는 ‘사회적 자본’ ‘외부경제’ ‘불경제’ ‘호의’ ‘무형자산’ 등 경제적 범주들이 숨기고 있는 것이 바로 자연적이거나 사회적인 ‘공통적인 것’이며 2008년의 촛불봉기, 2011년의 실질 민주주의를 위한 반란, 2013년의 철도 사유화 반대 투쟁 등이 모두 공통적인 것의 운동임을 감지할 수 있다.

제국의 경제를 구성하는 생산적 힘이면서 제국에 대항하는 사회적 반란의 주체성인 공통적인 것의 이 유령들이 어떻게 공화국을 넘어 공통체를 구성할 수 있을까. 이 책이 제기하는 이 물음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어느 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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