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개념무기들> 8장 속도 : 감속과 가속 너머

작성자
ludante
작성일
2021-05-15 13:08
조회
234
배추 님 부탁으로 대신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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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속도 : 감속과 가속 너머

1. 감속할 것인가 가속할 것인가? (326 ~ 331)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로부터 촉발된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위기로 확대되고,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세계에서 소득격차의 심연은 <채권.채무 관계>를 통해 환상적이면서도 억압적인 방식으로 봉합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대응 방향은 속력과 관련하여 두 흐름으로 갈라지고 있다.

1) 감속의 흐름
- 근대성을 자본주의로 파악하고 또 자본주의를 진보와 가속의 체제로 이해하면서 저항의 가능성을 감속에서 찾는 흐름
- 이성의 목적주의와 기만성 그리고 패권성에 대한 경고와 거부, 정보와 같은 디지털 자동언어에 대한 거부와 아날로그적인 시적 언어에 대한 찬미, 빠름에 대하여 느림을 대치시키기, 감성의 공동체적 가능성에 대한 긍정, 지역과 유기체적 공동체로 돌아갈 필요성에 대한 강조, 도시에서 농촌으로의 회귀, 발전보다 생태계의 보존을 우위에 놓기 등
- 이 흐름은 자본주의가 오늘날처럼 성장동력을 잃고 일반화된 긴축과 감속의 시대로 접어든 시대에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자본주의가 아래로부터의 저감속적 운동을 포획하면서 자신을 녹색세력(녹색자본주의)으로 정의하기 시작한 시대에도 그러할까?

2) 가속주의 흐름
- 다중의 삶이 자본주의적 관계 아래로 실질적으로 포섭된다는 조건
- 감속주의적 흐름들이 순수함, 겸손, 비판, 시위라는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의식들에 대한, 그리고 과거의 불안정하고 덧없는 민중 집단성의 형태들에 대한 감상적인 애착을 가진 반동 적인 강박관념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 자본주의라는 낡은 체제를 넘어서 다른 삶으로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정지 외에 그 체제의 요소들 중에 무엇을 취하고 버릴 지를 결정해야 하는 데, 감속주의적 흐름이 새로운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 질문을 회피한다.

3) 들뢰즈 철학은 감속주의와 가속주의 모두에 자원을 제공한다.
- 이성에 대한 비판이나 감성과 정동에 대한 가치부여에서, 그리고 이동하기보다 앉아있는 유목민의 형상을 새로운 주체형상으로 제시하고 있는 점 : 감속주의적 흐름에 자원을 제공
- 일반화된 기계론을 제안하고, 고정된 자아 주체에 대하여 애매한 전구체, 분열자, 예언자, 추상기계, 전쟁기계 등 (상황에서 앞서 움직이며 자르고 결합하며 구멍을 파는) 소수적 주체성을 제시하며,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그것의 탈영토화와 탈코드화가 충분하지 못하므로 그것들을 더욱 가속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 : 가속주의적 흐름에 자원을 제공



2. [가속주의 정치 선언]과 가속의 이념 (331 ~ 335)
1) [가속주의 정치 선언]의 필자인 닉 서르닉과 알렉스 윌리엄스의 문제의식
-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인류는 원시주의. 항구적 위기, 전 지구적 생태붕괴로의 완만한 파 편화인가, 전지구화된 탈자본주의로의 가속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지배로 인해 빈곤해진 정치적 상상력을 회복하고 가속하려 한다.
- 20세기 말의 가속주의자였던, 닉 랜드는 속도(velocity)와 가속도(acceleration)를 혼동했고 그 결과 가속도를 속도로 환원함으로써 실천적으로 자본주의에 흡수되었다.
- 억압된 가속도를 회복하기 위해 잠재적 생산력을 회복해야 한다. 현대 자본주의는 특허 전쟁이나 아이디어 독점을 통해 기술 생산력을 제한하거나 협소한 목적에 종속시킨다. 이렇게 기술과학이 자본주의적 목적에 예속되고 억압되고 변형되어 왔음을 고려하면, 근대의 기술사회적 몸이 무엇일 수 있고, 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우리는 모른다.
- 이 진화과정을 가속시키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사회에 의해 가능해진 모든 기술과학적 진보 를 이용하는 것이 필요하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인지테크놀로지는 파괴될 필요가 없 고 공통의 목적을 향해 재정향되는 것이 필요하다.

2) 가속주의자들과 기술유토피아주의자들의 차이.
- 가속주의자들은 기술이 자동적으로 새로운 사회를 가져온다는 낙관주의를 제시하지 않으며, 기술의 진화와 가속을 담지할 새로운 탈자본주의적 계획화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이 계획은 사회경제적 계획일 뿐만 아니라 지구 사회의 하부구조로서 기능할 물질적 플랫폼 을 구축하는 것을 포함한다.
- 불공정하고 전도되어 있으며, 진보를 억제하는 체제로서의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전 지구적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루어 내기 위해서는, 사회와 환경에 대한 극대의 지배라는 프로메테우스 정치가 필요한데, 이것은 추상, 복잡성, 지구성, 기술의 근대성을 가속할 지적 하부구조의 구축, 광범한 미디어 개혁, 다양한 계급권력의 구축을 요구한다.
- 이 가속주의적 프로메테우스 정치학은 정치를 역동적 체계들을 집합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이 정치학은 직접행동, 지역주의 민중정치, 수평주의 등 지금까지 대항/대안운동을 지배해온 특수한 행동양식을 특권화하지 말고 수평성, 개방성, 포함성만이 아니라 수직성, 비밀, 배제까지도 정치적 행동 양식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3. 들뢰즈와 속력의 존재론 (335 ~344)
1) 속력의 존재론
- 1981년에 출간된 [스피노자의 철학]의 6장 “스피노자와 우리”는 ‘속력의 존재론’이라 부를 수 있을 독특한 스피노자적 존재론을 제시한다.
- 유일한 자연과 모든 몸, 모든 개체라는 원리는 무한히 많은 방식으로 변화하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개체인 자연이라는 원리인데, 이것은 “모든 신체들, 모든 영혼들, 모든 개체들이 존 재하는 내재성의 공통평면의 펼침”이다.
- 이 내재성의 평면 혹은 공재consitance의 평면은 계획이나 프로그램과 같은 정신 속에서의 구상의 의미로서의 평면이 아니라 단면, 교차점, 도표와 같은 기하학적 의미의 평면, 양태적 평면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온전하게 존재하는 평면이면서 동시에 건설되어야 하는 평 면이기도 하다.

2) 내재성의 평면에 존재하는 몸들은 두 가지로 정의될 수 있다.
- 첫 째, 외연관계(운동)의 측면에서 정의하는 것
몸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언제나 무한히 많은 분자들을 포함하며 이 분자들 사이의 운동과 정지, 빠름과 느림의 관계가 그 몸의 개체성을 규정한다. 몸은 형식, 기관, 기능이 아 니라 분자들의 빠름과 느림의 관계에 의존한다. 모든 개체들은 빠름과 느림을 통해서 다른 사물들에로 빠져들어 가고 다른 사물들과 결합한다.
이것이 몸에 대한 동학적 규정이며, 들뢰즈는 이런 관계를 몸의 경도라고 부른다.
- 둘 째, 내포량(강도)의 측면에서 정의하는 것
동역학정 측면에서 한 개체의 몸과 영혼은 주체나 실체가 아니라 정동하고 정동되는 역량이 다. 수레를 끄는 말의 정동 역량은, 프로이트가 보고한 어린 한스가 그랬듯이, 자부심을 갖는 다, 눈가리개를 갖고 있다, 빠르게 간다, 무거운 짐을 끈다, 주저앉는다, 채찍을 맞는다, 다리 로 요란한 소리를 낸다는 등으로 목록화할 수 있다. 이 역마의 정동역량은 경주마의 정동역 량보다는 소의 정동역량과 더 공통적이다.
들뢰즈는 한 몸을 실행시키는 정동들, 즉 익명의 어떤 힘(존재의 힘, 정동역량)의 내포적 상 태들의 전체를 위도라고 부른다.

3) 행동학
- 들뢰즈는 내재성의 평면 위에서 분자들의 빠름과 느림의 결합인 속도관계(경도)와 정동하고 정동되는 내포역량(위도)에 대한 연구가 바로 행동학이라고 말한다.
- 행동학의 관점에서는 정동들이 사물을 위협하는가 가속하는가, 빠름과 느림의 역량을 어떤 질서로 구성할 것인가 등이 문제이다. 문제는 이용이나 포획이 아니라 관계와 공동체이다.
“어떻게 개체들이 서로 결합하여 보다 우월한 개체를 형성하는가? ... 어떻게 한 존재는 다른 존재를, 그것의 고유한 세계를 보존하면서 자신의 세계 속으로 가져올 수 있는가? ...”

4) 스피노자의 [에티카]와 행동학
- [에티카]에서는 부분들의 빠름과 느림의 관계들이 연속적으로 그리고 동시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하나의 동일한 개체로 결합된다.
- 변화해 가는 상대적인 빠름들이 3종 인식 속에서 사유의 절대적인 빠름, 가장 큰 빠름으로 정동되어 가장 풍부한 운동 속에서 펼쳐진다.
- [에티카]의 5부는 단 한 번의 작용 속에서 가능한 가장 많은 수의 사유의 관계들을 지각하는 역량(즉 직관)으로 응축된 사유의 무한 속력을 보여주기에 이른다.
- [스피노자의 철학]보다 10년 뒤인 1991년에 출간된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들뢰즈는 사유의 이 무한속력에 대해 다시 업급하면서, 그것은 스피노자적 환경을 넘어 철학이 생산하는 개념 일반이 갖추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 내재성의 평면이 개념들을 감싸고 흘려보내는 유일한 하나의 파도라면 개념들은 오르내리는 다양한 파도이다. 내재성의 평면이 그 평면을 통과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무한한 운동들을 감싸는 전체라면, 개념들은 매번 단지 자신 고유의 구성요소들만을 주파하는 제한된 운동들의 무한한 속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이 속력의 관점은 철학과 과학을 구별하는 데에도 사용되는데, 철학이 잠재적 평면 위에서 유한한 구성요소들 사이를 이행하는 무한한 속력을 표현한다면, 과학은 현실적인 것들의 제한된 변수 사이를 움직이는 빠른 속도를 표현한다.

5) 운동과 속력
- 들뢰즈는 운동과 속력을 구분한다. 운동은 아무리 빨라도 그것만으로는 속력이 될 수 없다. 또 속력은 아무리 늦어도, 설령 전혀 움직이지 않더라도 여전히 속력이다. 운동은 외연적이며 속력은 내포적이다.
- 어떤 물체가 <어느 한 지점에서 다른 한 지점으로 이동>하는 경우 갖게 되는 상대적 성격이 운동이다.
- 어떤 물체의 환원 불가능한 부분들(가령 원자)이 돌연 <어떠한 지점에서라도 출현할 수 있고> 또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매끈한 공간을 차지하거나 채우는> 경우 물체가 갖는 절대적 성격이 속력이다.
- 들뢰즈는 운동을 과정processus으로 속력을 경과procès로 부른다.
- 들뢰즈가 가속하라고 한 것은 과정이 아니라 경과이다. 다시 말해 상대운동의 가속이 아니라 절대운동인 속력의 가속을, 탈영토적 흐름의 가속을 요구한 것이다.


4. 들뢰즈와 가속 : 문명화된 자본주의 기계와 속력 문제 (344 ~ 353 )
1) 자본주의 문명 기계
- [안티 오이디푸스]의 3장 9절에서, 자본주의 문명기계는 자신이 직면하는 한계를 끊임없이 넘어서고, 전위시키고, 절단하면서 부단히 확대되는 분열과 흐름의 통일성이다.
- 자본주의는 사회적 내재성의 장으로, 공재성consitance의 평면으로 나타난다. 자본주의는 스스로 외적 한계를 갖지 않고 다만 자본 그 자체라는, 그래서 자본이 대면하지는 않지만 늘 전위시킴으로써 재생산하는 내부 한계만을 갖고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다른 모든 사회의 외적 한계로 나타난다.
- 자본주의는 그것의 확장하는 내재성 속에서, 애초의 정위定位에서 나타나는 (이윤율의) 저하 경향을 그 전위轉位에서 재구성한다. 이렇게 경향은 종결에 이르지 않고 한계는 위기들, 사고들, 일탈들에 의해 끊임없이 지연된다. 이 영속적 전위의 운동은 중심에서 주변으로, 개발국에서 저개발국으로 잉여가치 착취의 장소를 바꾸어 나가는 자본주의의 탈영토화 운동이다.
- 자본주의는 분열적 흐름들을 부단히 확대하면서도 동시에 제한하는 성격, 즉 이중성을 갖고 있다. 자본주의의 분열적 흐름을 제한하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사회기계의 공리계이다. 자본주의 공리계는 자본주의 이전 사회들의 코드화를 대신하는 것으로, 자본주의 사회기계가 이윤(율)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표현한다. 탈코드화와 탈영토화의 흐름들이 이 공리계에 종속된다는 점이 자본주의의 특성이다.

2) 잉여가치
- 자본주의에서 이윤은 잉여가치의 흐름에 근거하는데, 맑스의 용어법에서 잉여가치는 몇 가지로 구분된다.
- 절대적 잉여가치 : 노동생산성과 노동강도가 주어져 있다는 조건 위에서 노동일의 증대에 의해 창출되는 잉여가치가 절대적 잉여가치이다.
- 상대적 잉여가치 : 노동일이 주어졌을 때 노동생산성이나 노동강도의 증대에 의해 창출되는 잉여가치가 상대적 잉여가치이다.
- 특별 잉여가치 : 개별자본가들 사이의 사회적 경쟁이라는 조건하에서, 특정의 개별자본이 노동생산성이나 강도를 증대시켜 자신의 상품의 개별가치를 사회적 가치보다 낮게 만든 후에 그 상품을 사회적 가치에 판매함으로써 얻는 잉여가치.

3) 들뢰즈와 잉여가치 개념
- 들뢰즈는 맑스의 개념적 구분법을 인간적 잉여가치와 기계적 잉여가치, 그리고 흐름의 잉여가치라는 개념으로 수정한다.
- 인간적 잉여가치 : 이것은 가변자본을 근거로 하는 잉여가치로서, <노동과 생산 각각의 탈코드화된 흐름들 사이의 미분비?>를 기초로 추출되며, 그것의 생산 중심은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이전하지만, 중심부에서도 방대한 잔여지대들을 유지하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 기계적 잉여가치 : 이것은 불변자본을 근거로 하는 잉여가치로서, 중심부의 ‘최첨단’ 영역들에서 과학기술 코드의 흐름들의 공리계를 기초로 추출되며, 인간적 잉여가치의 상대적 저하 경향을 상쇄시킨다.
- 흐름의 잉여가치 : 이것은 인간적 잉여가치와 기계적 잉여가치의 총체로 규정된다. 흐름의 잉여가치는 이 두 잉여가치 양상의 방출을 보증함으로써, 잉여가치의 두 형식을 흡수하거나 실현하는 총체이다.

4)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과 [자본]의 맑스
- 들뢰즈에 의한 잉여가치의 수정은,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의 맑스로써 [자본]의 맑스를 보완하고 두 맑스를 ‘흐름의 잉여가치’라는 체제 속에서 종합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맑스는 [자본]에 앞서,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과학기술의 생산에의 응용으로 말미암아 직접적 노동시간이 더는 생산의 중심도 아니며, 가치척도로서 기능할 수도 없는 고도로 기계화한 생산조직의 단계를 예상하고 있다.
- 들뢰즈는 가치척도가 노동시간에서 가처분시간으로 이동하고 심지어는 가치의 측정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맑스의 예상을 역사 속에서 극단화하고 구체화한다.

5) 통약 불가능성
들뢰즈 “잉여가치의 정의는 가변자본의 인간적 잉여가치와 구별되고 또 흐름의 잉여가치 집합체의 측정불가능한 성격과 구별되는 불변자본의 기계적 잉여가치의 관점에서 수정되어야만 한다. 잉여가치는 노동력의 가치와 노동력에 의해 창조된 가치 사이의 차이에 의해서는 정의될 수 없고 오히려 서로에게 내재하는 이 두 흐름의 통약불가능성에 의해, 이 두 흐름을 표현하는 화폐의 두 양상 간의 어긋남에 의해, 또 그것들의 관계에 외적인 한계의 부재에 의해 정의될 수 있다.”

- 자본주의에서 기계적 잉여가치 흐름은 결코 독자적이지 않고 자본주의 공리계의 이익과 목적에 종속되어 있다. 예컨대 과학기술적 혁신은 그것에 대한 투자가 비용절감을 가져옴으로써 제공하게 될 이윤율 상승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결정된다.
- 과학기술의 분열적 흐름들이 지속될 수 있는가, 또 그것이 기계적 잉여가치를 낳을 수 있는가 없는가는 과학기술 자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공리계에 달려 있는 것이고, 양자의 흐름에는 어떤 통약 가능성도 없다.
- 자본주의 문명기계는 인간적 잉여가치와 기계적 잉여가치의 총체인 흐름의 잉여가치를 자본주의 공리계에 종속시킴으로써, 탈코드화와 탈영토화의 분열적 흐름을 촉발하면서 동시에 지연시키고 억압하는 이중성의 기계이다.
- 인간적 잉여가치는 소득으로서 구매력을 측정하는 화폐에 의해 표현될 수 있고, 기계적 잉여가치는 참된 경제력을 측정하는 것으로서의 화폐에 의해 표현된다.
- 전자는 환류로서의 화폐이다. 화폐가 노동자들이나 생산요소들에 분배됨으로써, 즉 소득형태로 할당됨으로써 구매력을 획득하자마자 재화와 맺게 되는 관계, 그리고 이 소득 형태가 실제적 재화로 변환되자마자 상실하게 되는 관계이다.
- 후자는 은행들이 자기들에 대한 부채로서 자발적으로 창조하는 ‘순식간의 창조적 흐름’, 즉 기존의 통화를 지불수단으로 이전시키는 대신 충만한 몸의 한 극단에서 마이너스 화폐(은행의 채무로 되는 화폐)를 파내고 그것의 다른 극단에서 플러스 화폐(은행이 생산적 경제에 준 신용)를 투사하는 무에서의 창조, 소득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구매로도 향하지 않는 ‘돌연변이의 힘을 지닌 흐름’, 순수한 처분 가능성, 비-소유, 비-부다. (흐름으로서의 화폐)
- 흐름과 환류라는 두 양상의 화폐는 서로 통약불가능이다.

6) 경과를 가속하기
- (노동과 이윤 사이의 통약 불가능성, 인간적 잉여가치와 기계적 잉여가치의 통약 불가능성, 흐름으로서의 화폐와 환류로서의 화폐의 통약불가능성 등 여러 가지 통약 불가능성의 조건들 위에서 자본주의적 생산과 반생산 장치가 결착하여 만들어 내는) 자본주의 공리계가 헤게모니를 행사하게 되면 자본주의에서의 탈코드화와 탈영토화의 흐름은 제한되어 충분치 못하게 된다.
- 이런 조건에서 정신분석은 화폐와 가장 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경제적-화폐적 종속 체계 전체를 자신이 다루는 환자들의 욕망의 핵심에 등록하는 방식으로 잉여가치를 흡수하는 거대한 기업이다(들뢰즈).
- 경과Prozeß에서 퇴각하지 않고 더 멀리 가야 한다. 경과를 가속하라가 들뢰즈의 지상명제로 된다.


5. 탈영토적 가속에서 절편화 대 블록화 : 특이성들의 공통되기 (353 ~ 364)
1) 선과 속력의 배치물로서의 몸
- [천 개의 고원]에서 탈영토화하고 탈코드화 하는 분열적 흐름의 개념은 선과 속력의 개념을 통해 정교화 된다. 여기에서 하나의 몸은 선과 속력의 배치물로 이해되며 그것들의 흐름의 상대적 비율은 느림과 빠름, 점착과 파열의 현상을 가져온다.
- 그램분자적이고 견고한 분할선 혹은 점 : 기계적 배치물은 한편에서 지층, 유기체, 기표작용적 총체성, 주체, 영토화로 향한다. 거시정치적이다. 분자적 흐름들을 경직시킬 위험성을 갖는다.
- 분자적이고 유연한 분할선 : 기계적 배치물은 기관 없는 몸, 탈유기체, 탈기표작용적 입자들, 순수한 강렬함들, 탈영토화로 향함. 미시정치적이다. 애매하고 타협적일 위험을 가진다.
- 절대적 탈영토화의선, 즉 도주선 : 분자적 흐름의 가속은 상대적이라서 음속의 장벽에 도달하면 입자들이 이 벽에서 튕겨 나오거나 블랙홀에 붙잡혀 지층의 환경 속으로 다시 떨어진다. 이런 경우들과 달리 입자들이 벽을 뚫고 나가게 되는 때가 있다. 이때 입자들은 공재면/고른판의 형식화되지 않고 탈지층화 된 요소에 도달한다.
이 선은 앞의 두 선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실재했지만, 이 두 선의 충돌과 폭발의 순간에 비로소 현실화되는 진정한 단절이다. 이 선은 앞의 두 선으로 퇴행할 위험만이 아니라 파괴 혹은 블랙홀로 내몰려 깊은 절망에 빠질 위험을 갖는다.
- 이 세 가지 선은 항상 혼재되어 있는데, 이것들 중 일차적인 것은 절대적 탈영토화의 절대적 도주선이다.
- 분열분석은 당신의 선들은 무엇인가, 당신은 어떤 추상적 선을 그리려고 하는가, 당신은 어떤 선을 끊고 어떤 선을 늘이거나 다시 붙잡는가, 당신은 어떤 도주선을 발명하는가 등을 다룬다.
- 도주선은 각 절편들이 도주선을 막기 위해 부단히 견고해지고 경직되는 때에, 관에 구멍을 내듯이 세상을 달아나게 만드는 선이다.

2) 절대적 탈영토화의 도주선을 긋기 위해 필요한 것은?
- 들뢰즈는 속도와 가속을 탈영토화의 중요한 요소로 파악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발달지체에서처럼 우리는 상대적인 느림이나 지체를 통해서도 절대적인 것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탈영토화가 상대적인가 절대적인가 하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탈영토화의 본성에 의해 결정된다. 탈영토화가 겉지층들과 곁지층들을 구성하고 분절된 절편들을 따라 가느냐, 아니면 고른판의 웃지층을 그리는 선, 절편으로 분해할 수 없는 선을 따라 하나의 특이성에서 다른 특이성으로 도약하느냐가 관건이다.

3) 추상기계
- 탈영토화의 첨점들을 구성하고 결합하면서 고른 판을 그리며 나아가는 탈영토화의 기계를 들뢰즈는 ‘진정한 추상기계’라고 부른다.
- 추상기계는 지층들이나 재영토화들을 따라 내용과 표현들을 형식화화하면서 그 구분을 지층들, 영역들, 영토들에 분배하지만, 그 자체는 탈지층화되어 있고 탈영토화되어 있어 자신 안에서 내용과 표현을 구분하지 않으며 물리적이거나 물체적이지 않고 기호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인공과 자연의 구분을 알지 못하는 도표(다이어그램)로서, 실체가 아니라 질료에 의해 작동하고 형식이 아니라 기능에 의해 작동한다.
- 입자인지 기호인지 말할 수조차 없는 그 기계는 강렬함의 정도들, 빠름 또는 지체의 정도를 나타내는 질료-내용이며 수학적 표기나 음악적 표기에서와 마찬가지로 텐서tensor들만을 나타내는 기능-표현이다.
- 추상기계는 가장 탈영토화된 내용과 가장 탈영토화된 표현을 결합시켜 고양시킴으로써, 다시 말해 각각의 탈영토화들의 접합접속을 가능케 하고 공통적 가속을 가능케 함으로써 그것들의 문턱을 넘어갈 수 있게 만든다.
- 추상기계는 어떤 것을 표상하지 않고 오히려 도래할 실재, 새로운 유형의 현실을 건설하는 선도적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은 견고한 그램분자적 선, 즉 덧코드화의 추상기계 아래서, 그 선과 추상기계의 변이, 탈영토화의 양자들, 연결접속들, 가속들을 방출하는 도주선, 즉 탈영토화의 추상기계이다.
- 도주선은 피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파괴한 후 자기 자신도 해체되고 파괴할 전쟁으로 될 위험, “파괴, 순수하고 단순한 소멸, 소멸의 열정”으로 될 위험을 갖는다.
- 전쟁기계는 본래 전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추상기계이지만 전쟁기계가 국가를 탈취했을 때 그러한 위험이 현실화되는데, 들뢰즈는 파시즘이 그 사례라고 말한다.
- 소멸을 막기 위해 “최소한의 지층, 최소한의 형식과 기능, 최소한의 주체를 남겨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실제로는 ”분자적 성분들을 한데 모아 내는“ 방양의 탈영토화를 가속시킬 필요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4) 리트로넬로 ritronello
- 화음의 수직선과 선율의 수평선 사이를 지나가는 사선 위에 하나의 음의 ”블록“, 탈영토화 된 리듬들의 ”블록“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 음악은 횡단선이 소멸의 선으로 바뀔 위험을 무릅쓰면서,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면서 다시 태어나기를 향해 도주하는 운동인데, 본질적으로 영토적인 성격의 리토르넬로가 그러한 생성적 음악에 고유한 내용의 블록을 제공함으로써 탈영토적 리트로넬로가, 그리고 리듬이 탄생한다.
- 정치적 좌파가 대중운동의 위치를 밝히고 진로를 제시한다고 할 때 그 좌파는 대중의 분자적 운동을 지각 가능하게 만드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탈영토화와 재영토화, 분자와 그램분자의 잔존하는 상관관계는 결코 양자의 타협이나 평균의 방식이 아니라 중간을 뚫고 나가는 생성 그 자체의 사선들의 블록 속에서, 즉 생성의 내재적 블록화를 통해서 사고되어야 하는 것이다.


6. 기술적 요소와 배치의 문제 : 무기와 도구 (364 ~ 371)
1) 무기와 도구
- 무기는 투사적, 원심적인 반면 도구는 내향저기고 구심적이다.
무기는 속도를 발명하며 속도라는 고유한 벡터를 출현시키는 모터로서, 소진되는 일이 없는 연속적 동력원인 자유행동 모델을 따른다. 무기의 절대적 운동은 소용돌이 운동을 통한 공간의 차지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다. 자동운동적이다.
- 도구는 저항에 부딪히면서 외부에 작용해 결과를 창출하고 소진되는 활동인 노동 모델을 따른다. 도구의 상대적운동은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의 선적인 이동에 의해 구성된다. 피동운동적이다.

2) 무기와 도구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차원
- 기술적 요소는 그것이 전제하고 있는 배치물과 관련되지 않는 한 추상적일 뿐이고 완전히 무규정적이다.
- 기술적 요소보다 우선하는 것은 기계인데, 기계는 기술적 요소들의 집합적 기계가 아니라 사회적 또는 집단적 기계이다. 그러므로 무기인가 도구인가를 구분하려면 그것들이 전제하고 집입하는 구성적 배치(기술적 구성과 정치적 구성)를 먼저 규정해야 한다. 그것들의 내적 특성이 그것들과 연결되는 배치물들에 따라 규정되기 때문이다.
- 어떤 기술적 요소가 ‘노동기계’라고 하는 배치에서 노동모델을 따르는 도구로 되기도 하고 ‘전쟁기계’라는 배치에서 자유행동모델을 따르는 무기로 되기도 한다.
- 국가는 시민 교육, 노동자 양성, 병사의 조련이라는 노동모델 배치 속에 전쟁기계를 삽입함으로써 감정sentiment이라는 노동자의 정념체제를 만들어 내고 이것을 통해 전쟁기계를 자신의 도구로 전화시킨다.
- 전쟁기계는 동체 자체의 속력과 요소들 간의 속력의 합성에만 관여하는 정동affect체제를 통해 기술적 요소를 무기로 바꾼다. 무술인이 무기를 사용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사용하지 않는 법도 배우듯이, 전쟁기계 체제에서는 자신을 탈각하고 자신을 비우는 것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전쟁기계의 무위, 주체해체, 탈코드화의 길이다.
- 무기와 도구는 방향(투사-내향), 벡터(속도-중력), 모델(자유행동-노동), 표현(보석-기호), 정념과 욕망의 음조(정동-감정)라는 다섯 가지 점에서 구분된다.

3) 완전자동화
- 오늘날 고정자본과 가변자본 모두는 변이적.소수자적.민중적.혁명적 기계들의 특징을 이루는 예상 밖의 반격이나 예상치 못한 주도권을 장악할 가능성을 끊임없이 창조하고 있다. 이것이 국가적 전쟁기계를 넘어 전 지구적 전쟁기계를 가능케 하는 조건이다.
- 들뢰즈는 한편에서 고도테크놀로지 체제가 자유의 체제이기는커녕 ”세계적 규모의 노예화 체제“로 되고 있음을 직시한다.
-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이러한 기계적 노예화조차 결정 불가능한 명제와 운동의 용광로이며 혁명적 결정인들의 발생 장소로 되면서, 하이테크 전문가들의 독점을 넘어 라디오-되기, 전자적인 것-되기, 분자적인 것-되기 등 혁명적 연결접속과 세상-모든-사람-되기에 무기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7. 가속과 주체성 : 프롤레타리아의 집합적 배치 (371 ~ 383)
1) [몸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가속주의] (비포)
- 이 글에서 비포는 들뢰즈의 모든 사유가 가속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아님을 인정하지만, 들뢰즈의 사유가 가속주의를 지지하기는커녕 그것에 대립한다고 주장한다.
- 들뢰즈와 과타리는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안티 오이디푸스]에서와는 달리, ”우리는 카오스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아주 작은 질서를 요구한다. 그 자체에서 도주하는 사유보다, 즉 우리가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하는 다른 것들 속으로 치닫거나 혹은 망각에 의해 이미 부식되어서 채 모습을 갖추기도 전에 날아가 사라져 버리는 이념들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라고 말한다.
- 비포는 들뢰즈와 과타리의 생각이 이렇게 변한 것은 1972년에서 1992년 사이에 전개된 경제적 지구화와 정보기술혁명이 욕망하는 몸에 가속의 효과를 미치고 그것을 강화시킨 것에 주목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 비포는 가속은 자본주의적 정복의 특징들 중의 하나이며 이 과정에서 무의식은 점점 상승하는 정보권의 속도에 종속되고 이 종속은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패닉을 야기하면서 마침내 어떠한 자율적 주체화의 가능한 형태도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2) 유물론적 내재주의 비판
- 자본주의에 대한 내재적 유물론의 비판은, 역사에 어떤 초월적 차원도 없고, 미래의 가능성은 사회의 현재적 구성에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 비포는 내재적 관점은 노동과 기술의 현재적 구성 속에 포함된 잠재성의 전개를 하나의 필연성으로 오인한다는 점에서 철학적으로 위험하다고 평가한다.

3) 비포는 가속주의의 가설이 두 개의 요점에 기초를 둔다고 생각한다.
- 하나는 가속하는 생산주기가 자본주의를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는 가정이며 또 하나는 자본주의 형식 속에 포함된 잠재성이 필연적으로 자기 전개할 것이라는 가정이다.
- 첫 번째 가설은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 경험에 의해 기각된다. 자본주의는 탄력적이어서 불안정화 되기는커녕 합리적 정부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자동적 통치성으로, 욕망하는 몸을 갖지 않는 추상적인 자동체제로 되어가고 있다. 합리적 정부는 기술언어적 자동주의의 단순한 결합으로 대체된다.
- 가속주의의 두 번째 가정은 주체화의 과정을 방해하고 왜곡시키는 장애들과 한계들을 완전히 과소평가한다. 해방적 형태의 내재성은 그것의 전개 가능성을 뜻할 뿐이고 그것의 필연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 네그리-하트가 말하는 네트워크 생산에 구현된 일반지성의 잠재력은 금융 매트릭스의 권력에 종속되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들뢰즈의 리좀학은 해방의 방법이 아니라 전 지구적 금융자본주의의 항구적 탈영토화의 방법론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리좀 이론은 자본주의적 탈영토화를 서술하는 방법론이면서 동시에 탈영토화된 주체성의 지반을 재정의하기 위한 시도이지만, 가능성의 실현을 가로막는 장애에 대한 인식이 없는 한 자율성의 이론은 될 수 없다.
- 가속주의적 입장은 내재주의적 구상의 극한적 표현으로서 자본주의적 가속의 궤도가 그것의 내적 동학을 전복하는 것으로 이끌게 되리라는 그릇된 붕괴론적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4) 자율에 대한 비포의 인간주의적 독해 경향
- 그는 몸과 뇌를 유기체적 존재인 인간의 입장에서 이해함으로써 몸과 뇌, 그리고 사회적 주체성이 일정한 한계 이상으로 가속될 수 없다는 생각에 자신의 해석과 비판을 정초한다.
- 이것은 들뢰즈의 비-인간주의적 철학과 양립할 수 없다. 들뢰즈가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절대속력에 대한 망각 혹은 거부는 비포로 하여금 내재성에 대한 기각으로 이끈다.
- 현재의 사회적 구성 속에 깃들어 있는 해방의 잠재력이 인정되기 어려우며 있다고 하더라도 실현될 수 없다는 비포의 생각은, 해방의 힘을 실재하는 것이 아닌 어떤 것에서 불러와야 하는 어려운 입장으로 그를 이끈다.

5) 가속주의에 대한 네그리의 견해
- 네그리는 비포와는 달리, [가속주의 정치 선언]이 파국론과 종말론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케인스주의적 개혁주의 복지론과도 구별되는 급진적 입장을 표현한다고 본다. 그는 [가속주의 정치선언]의 입장이, 좌파의 긍정적 유산을 물려받으면서 새로운 미래를 구축하는 전복적 지식의 공간을 열어놓는다고 평가한다.
- 그는 [가속주의 정치선언]이 제안하는 기술적 생산력의 가속에 대한 테제를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재전유하면서, 생산가속화와 생산계획화보다 투쟁가속화와 투쟁계획화가 더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포스트포드주의에서 고정자본은 정보테크놀로지, 개인미디어, 소프트웨어, 특허, 집단지성 등의 형태를 포함하며 고정자본의 재전유는 집합노동자들의 이런 생산능력을 투쟁의 관점에서 재전유하고 이를 통해 노동주체의 인류학적 변형을 추구하는 것이다.
- 그는 2011년에 시작된 새로운 투쟁주기의 말기에 그 투쟁들이 강력하고 그것의 내용이 진정으로 새로웠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권력과 충돌하는 조직형태에서는 뚜렷한 한계를 드러냈다고 말한다.
- 가속주의자들도 이런 생각에 동의하면서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 째, 새로운 이상적 프로젝트와 새로운 경제모델 연구를 위한 새로운 지적 하부구조의 구축, 둘 째, 주류 매스미디어의 지형에서 강력한 주도권을 조직하기, 셋 째, (과도적이건 영구적이건, 정치적이건 조합주의적이건, 지구적이건 지역적이건 간에) 계급권력의 가능한 제도적 형태를 활성화하기 등이 그것이다.
- 네그리는 이런 세 가지 제안들이 적합하고 현실적이라고 받아들인다. 그것들이 탈인간주의적이고 과학적인 유토피아로서 노동과 사회의 강력한 자기가치화를 조직할 가능성을 제시하고 또 지구화의 내부만이 있는 현실에서 그 내부 속에 외부를 도입하는 미래구축의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의미에서이다.
- 하지만 네그리는 여기서도 약간의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하는데, 가속주의라는 용어가 전혀 미래적이지 않은 것에 미래주의적 의미를 귀속시킨다는 점에서 조금 부적합하며, 경향을 물질적이고 잠재적인 주체화의 힘에 의해 구성되는 것으로 이해하기보다 기술정치적인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파악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 네그리는 가속주의 정치학이 기술적 구성에 대한 파악에 기초하여 프롤레타리아적 협력의 헤게모니 문제에 대한 탐구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제안한다. 왜냐하면 [가속주의 정치선언]이 물질적 생산에서의 기술적 측면에 비해 생산의 협력적 차원(노동력의 인류학적 변형)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6) 공통적인 것의 통화
- 네그리가 보기에 화폐는 추상기계이며 사회에서 수탈된 가치를 측정하는 최고의 형태이다. 오늘날 화폐는 세 가지 성격을 갖는다. 척도화폐, 위계화폐, 계획화폐가 그것이다. 이 화폐적 추상은 저항과 전복의 잠재적 형태를 가리킨다.
- 오늘날 가치를 추상하고 수탈하는 최고의 기반은 공통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공통적인 것을 재전유하고 그것을 헤게모니적 권력 구축의 기반으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
- 공통적인 것의 통화는 자본에 의해 노동에 부과된 척도에 대한, 사장에 의해 부과된 잉여노동 위계에 대한, 자본주의 국가에 의해 부과된 소득의 일반적.사회적 분배에 대한 공격을 함축한다.
- 노동거부는 현대적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데, 그것은 알고리즘적 자동화가 낳은 생산성에 대한 포착, 노동시간의 축소, 실질적 봉급인상, 기본소득, 그리고 삶의 기쁨의 증대를 의미한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명령과 주권에 대항하여, 열정을 치열한 방식으로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주체성을 생산하는 활동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 이를 위해서는 수직적 국가명령을 구축하지 않으면서 지식과 생산적 능력의 네트워크로 수렴하고 탈자본주의적 코뮤니즘 제도들을 발생시키는 투쟁의 계획화를 생산의 계획화보다 우선적인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8. 무엇을 가속할 것인가? (383 ~ 389)
1) 가속주의
- 2010년대 초에 유럽(특히 영국)의 젊은 좌파들로부터 제기된 가속주의 정치학은 자본주의의 실제적 감속과 긴축이라는 상황에 맞설 대안전략으로 지금까지 전통적 좌파에 의해 제기되 어온 완전고용(총고용)의 요구 대신에 완전자동화를 요구한다.
- 이것은 노동 속에서의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완전고용의 요구가 갖는 퇴행성과 복고성을 거부하고, 맑스의 노동시간 단축요구와 이탈리아 오뻬라이스모 및 들뢰즈의 노동거부 요구에 의해 표현되었던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의 요구를 과학기술적 방식으로 실현할 방법으로 제시된다.
- 이 대안은 노동에서 분리된 소득, 즉 보편적 기본소득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데, 이것은 자동화된 생산체제가 산출하는 (그런데 오늘날 금융자본에 의해 지대형태로 수취되고 있는) 기계적이고 사회적인 잉여가치의 합리적 분배방식이자 지대의 사회화 방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들뢰즈의 속력이론은 존재론적이다.
- 자연적 객체들은, 외연적으로는 무수히 많은 분자들 사이의 운도오가 정지, 빠름과 느림의 관계에 의해 규정되며 내포적으로는 다른 몸들을 정동하고 또 그것에 의해 정동되는 역량에 의해 규정된다. 전자는 상대적이고 관계적인 운동이며 후자는 절대적이고 무한한 속력이다.
- 들뢰즈는 내포적 역량의 가속을 주장하지만 외연적 운동의 가속을 주장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가속 그 자체가 아니라 분자들의 빠름과 느림의 결합인 상대적 속도관계(정도)와 정동하고 정동되는 절대적 내포역량인 속력(위도)의 결합에 대한 연구로서의 행동학이다.
- 들뢰즈의 관점에서 기술적 요소나 기술적 몸은 그 자체로 해방적일 수 없고 그것이 전제하고 있는 배치물과 관련되어 평가되어야 한다.
- 완전자동화라는 가속주의적 대안도 그것이 전제하고 또 진입하는 사회적 배치물이 무엇인가에 따라 먼저 평가되어야 한다. 그것이 노동기계(의 도구)로 기능하지 않고 전쟁기계(의 무기)로 기능하게 할 수 있는 배치에 대한 사유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몸을 노동에 예속시키지 않고 자유행동(즉 활동)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실제적 조건에 대한 사유가 중요하다는 네그리의 지적은 바로 이점을 가리킨다.
- 들뢰즈의 관점에 따르면 기술적 요소를 성격 규정하는 집단적 배치는 정념적인 것이며 욕망의 편성이다. 국가가 전쟁기계를 노동기계로 흡수하기 위해 시민 교육, 노동자 양성, 병사 조련과 같은 방식으로 주체성을 형성하는 것은 이런 점을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 들뢰즈는 국가의 이러한 흡수 전술에 맞서 기술적 요소를 전쟁기계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주체성을 탈각하고 자신을 비우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3) 대안적 주체성
- 좌파의 가속주의 정치학에서 가장 크게 결여된 것이 바로 대안적 주체성에 대한 사유이다. - 기술적 플랫폼이 노동으로부터의 실제적 해방과 자유로운 미래를 발명할 장치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기본소득만으로는 부족하고, 가속주의 정치학이 기술정치를 사유하기 위해 괄호치고 있는 다중정치, 즉 주체성의 정치를 기술적 플랫폼에 대한 사유와 긴밀히 결합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예상의 정치를 자생의 정치와, 정치적 인식론을 정치적 존재론과, 기술기계를 사회기계와 결합시키는 것이야말로, 기술적 몸들을 자본주의에 고유한 것으로 평가하여 부정하는 낡은 인간주의로 추락하지 않으면서 그 몸의 빠름과 느림, 응결된 긴장과 가속화된 운동의 상대적 관계를 그것의 절대적 탈영토화 속력의 내포역량에 따라 고려하고 평가하며 조직할 수 있는 섭정의 사유능력을 보여주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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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공지] 루스 배러클러프, 《여공문학》 — 9월 3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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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개념무기들> 8장 속도 : 감속과 가속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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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4/19 『개념무기들』 6장 정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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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4/17 『개념무기들』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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