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일본을 찾아서 1』 8장. 변화·저항·개혁 발제문

작성자
deepeye
작성일
2022-07-30 12:23
조회
307
들어가며

- 19세기 초중반 도쿠가와 시대는 위계와 복종이라는 외적 형태는 그대로였지만, 급속한 경제 발전을 겪으며 이면에서는 점진적인 변화가 끊이지 않았다. 막부와 번의 균형,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촌락의 지도자와 촌민의 관계 등에서도 변화가 생겨났다
.
1. 인구

- 한때 학자들은 도쿠가와 일본을 멜서스의 인구론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17세기의 급격한 인구증가로 자원이 고갈되면서 당국자들의 과도한 착취가 이루어졌고 더 이상의 성장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19세기 외국인 여행자들의 기록으로 반박되며, 19세기 후반 일본의 역동적인 성장과 양립하기 어렵다.

- 도쿠가와 시대 전체를 통틀어 인구가 3배 증가했는데, 이런 요인에는 확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유형이 변화한 것, 그리고 농경지의 확대와 관련 있다. 18세기의 인구 정체현상은 얼핏 멜서스주의를 정당화해주는 듯하지만, 실은 에도와 같은 대도시에 한정되었던 것이고 지방 도시의 인구는 계속 성장하고 있었다.

- 당시 일본의 인구성장의 억제요인들은 멜서스적 정체보다, 1) 대규모 재해(기상 이변, 화산 폭발, 기근 등), 2) 비교적 늦은 나이에 이루어지는 결혼문화 3) 불평등한 상속으로 인한 타향살이 4) 예전부터 내려져오던 여러 낙태 방식 등의 인구조절 수단들에 초점을 맞춰서 분석하는 게 합당하다.

2. 지배자와 피지배자

- 지배 초기인 17세기, 막부는 조정과 다이묘 사이의 접촉을 차단하고, 후다이다이묘와 도자마다이묘 간의 구분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나 평화로운 시기가 길어지면서 혼인과 양자결연이 빈번해졌고 공가와 무가로 양분되어 있던 특권층이 융합되었다.

- 각 번과 번주는 영지의 석고에 따라 서열이 매개지고 명예와 의전 혜택이 주어지는데, 이에야스 시기 정해진 석고와 실제 석고 사이에 간극이 커졌음에도 기준을 그대로 두었다. 석고 재산정은 복잡한 서열 변화를 수반하고 불평과 저항으로 이어지기 때문.
- 촌락세계는 자치적이었고 잉여 생산물의 축적과 함께 상인 못지 않은 유력 농민들이 등장했다. 하야미 아키라는 이 시기를 ‘근면 혁명’이라 정의. 반면 상당수 사무라이는 좌절 속에서 비참한 삶을 이어갔다.

- 쇼군의 명령에 의해 추진되었던 쇼나이 번 전봉 문제를 두고 서민들이 나서서 항의한 것, 그리고 도자마다이묘들의 공동상소문 제출은 막부의 영향력 악화를 드러낸 사건이다.

3. 민중의 저항

- 도쿠가와 시기 당국은 농촌에서 산출된 잉여 생산량을 우려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농민들의 거센 잇키(저항)에 부딪혀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 잇키가 혁명적인 목적을 갖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대개 토지세 할당의 불공정성, 탐관오리의 행패, 시장거래의 독점적 규제에 대한 반항으로 촉발되었다. 재해와 기근 때는 그 정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 도시 발전은 지방들을 통합된 경제지역으로 묶었고, 막부는 잇키에 대응하여 다이묘들의 상호협력을 권장했다. 다이묘들의 연대를 견제하던 과거 법령은 유명무실해졌다.

4. 막부의 대응

- 상업화로 인해 도쿠가와 통치의 첫 세기와 달리 토지에 대한 노동의 가치가 상승했다

- 소농들은 부농에게 토지를 팔고 소작인, 임금노동자가 되거나 도시 빈민층에 합류했다

- 쇼군의 통치 기간 대표적인 세 개혁이 시도되었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으나, 각각의 개혁은 복잡한 문제들을 처리하려는 시도를 통해 제도적 혁신을 더해갔다

1) 교호

- 교호개혁은 8대 쇼군 요시무네(1716~1745)가 ‘교호’기에 실시한 개혁이다.

- 요시무네는 로주의 권력을 제도적으로 견제했고, 투서함(메야스바코)을 설치했으며, 1742년 모든 행정과 재판의 기준을 정한 법전을 완성했다. 이 시기 막부는 강력한 행정조직으로 거듭났지만 일본 사회의 깊은 모순을 해결하기에 역부족이었다.

2) 덴메이

- 요시무네의 교호개혁이 무색하게 덴메이기(1781~1789)는 사치에 휩싸였다.

- 경제적으로는 기존 개혁들이 고정된 것 안에서 자원을 재분배하는 것이었다면, 다누마는 적극적인 경제성장 정책을 통해 자원 증대를 꾀했다. 지방 다이묘들은 수출은 극대화하며 수입은 줄이는 정책을 통해 막부와 경쟁했다.

- 그러나 다누마는 부패와 파벌 문제에서도 ‘혁신’을 선보였고, 대규모 사업을 벌이다 기근, 대규모 폭동이 발생하면서 실각했다.

3) 간세이

- ‘간세이’ 개혁은 마쓰다이라 사다노부(1758~1829)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가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기는 4년 남짓이지만, 이 기간 오사카, 교토의 경제적 영향력을 줄여 에도를 경제 중심지로 만들었다. 행정적으로는 검약을 강조했고 관료 숙청과 출판 검열을 이어갔다. 또한 학파 경쟁이 초래하는 혼란을 줄이기 위해 1790년 ‘이학 금지령’을 선포한 뒤 주자학을 정학으로 삼았다.

4) 가세이 시대: 분카와 분세이

- 분카(1804~1818)와 분세이(1818~1830)를 합쳐 일명 가세이 시대라고 부른다. 이때를 ‘인디언 섬머’ 같은 시기로 묘사하기도 하는데, 18세기 말엽처럼 잇키가 즐비하거나 흉년이 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또한 상업과 농업의 발달로 마을 엘리트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마을 대소사를 좌지우지 했다. 부자들은 관리와 재판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사무라이들은 궁핍에 찌들었고, 사무라이 신분을 사고 파는 것이 흔하게 여겨질 만큼 위상이 추락했다.

- 도사, 조슈와 같은 웅번들은 자기 영내의 일들을 통제할 수 있었지만, 19세기 초 막부는 거대도시의 상인조합을 통제하는 것조차 쉽지 않게 되었다.

5) 덴포

- 문명적 차원에서 덴포(1830~1844) 시대는 개막, 개혁, 문화적 업적을 떠올리게 하지만, 도쿠가와 지배체제에 있어서는 재앙에 가까웠다. 대기근으로 공공질서와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으며 분쟁이 빈발했다.

- 특히 오시오 헤이하치로의 반란은 진압되었지만, 도덕적 동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도쿠가와 사회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었다. 그의 신분이 청렴한 사무라이 관료였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 이제 사회, 정치적 개혁은 막번 세력에게 시급한 과제로 다가왔다. 하지만 막부의 로주 미즈노 다다쿠니가 주도한 개혁은 실패한 반면, 서남 웅번인 조슈, 사쓰마는 성공함으로써 향후 메이지 유신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기반을 쌓았다.

- 서남 웅번은 문민화 된 막부와 달리 사무라이 세력의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무력으로 상인들의 채무를 탕감할 수 있었고, 해상무역에 유리한 해안지방을 적극 활용했던 게 주요 성공 요인이었다. 특히 사쓰마의 경우 반식민지에 가까웠던 류큐(오키나와)를 ‘사탕지옥’이라 불리는 거대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으로 만들어 이용하기도 했다.

- 막부의 로주 미즈노 다다쿠니의 실패요인으로는 그 자신의 1) 비윤리적 행실, 2) 그리고 전매금지 실시와 에도, 오사카 주변 토지의 환수를 추진하면서 각 번의 자치권을 건든 것 3) 대규모 공사로 인한 재정부담을 들 수 있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강력한 중앙권력이 가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체 0

전체 210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사항
[새책 공지] 요나하 준, 『헤이세이사』 첫 세미나 참가자 모집! ― 12월 09일 토요일 오전 10:00 시작!
deepeye | 2023.11.18 | 추천 0 | 조회 1045
deepeye 2023.11.18 0 1045
공지사항
세미나 홍보 요청 양식
다중지성의정원 | 2022.01.11 | 추천 0 | 조회 1578
다중지성의정원 2022.01.11 0 1578
공지사항
다중지성 연구정원 세미나 회원님들께 요청드립니다.
다중지성의정원 | 2019.11.03 | 추천 0 | 조회 2720
다중지성의정원 2019.11.03 0 2720
공지사항
[꼭 읽어주세요!] 강의실/세미나실에서 식음료를 드시는 경우
ludante | 2019.02.10 | 추천 0 | 조회 3223
ludante 2019.02.10 0 3223
공지사항
세미나를 순연하실 경우 게시판에 공지를 올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ludante | 2019.01.27 | 추천 0 | 조회 2945
ludante 2019.01.27 0 2945
145
『현대일본을 찾아서 1』 10장 '막부의 멸망' 부분 발제문
deepeye | 2022.08.06 | 추천 0 | 조회 347
deepeye 2022.08.06 0 347
144
[공지] 08/06 『현대일본을 찾아서 1』 다섯 번째 시간 공지
deepeye | 2022.07.30 | 추천 0 | 조회 298
deepeye 2022.07.30 0 298
143
『현대일본을 찾아서 1』 8장. 변화·저항·개혁 발제문
deepeye | 2022.07.30 | 추천 0 | 조회 307
deepeye 2022.07.30 0 307
142
『현대일본을 찾아서 1』 7장. 교육·사상·종교 발제문
jesbest | 2022.07.30 | 추천 0 | 조회 316
jesbest 2022.07.30 0 316
141
『현대일본을 찾아서 1』 5장 '도시화와 교통' 발제문
sook | 2022.07.16 | 추천 0 | 조회 347
sook 2022.07.16 0 347
140
[공지] 7/30 『현대일본을 찾아서 1』 네 번째 시간 공지
jesbest | 2022.07.16 | 추천 0 | 조회 229
jesbest 2022.07.16 0 229
139
『현대일본을 찾아서 1』 3장 '대외관계' 발제문
jesbest | 2022.07.16 | 추천 0 | 조회 277
jesbest 2022.07.16 0 277
138
『현대일본을 찾아서 1』 6장 '서민문화의 발견' 발제문
deepeye | 2022.07.14 | 추천 0 | 조회 382
deepeye 2022.07.14 0 382
137
[공지] 07/16 『현대일본을 찾아서 1』 세번째 시간 공지
sook | 2022.07.11 | 추천 0 | 조회 277
sook 2022.07.11 0 277
136
[공지] 07/09 『현대일본을 찾아서 1』 두 번째 시간 공지
deepeye | 2022.07.05 | 추천 0 | 조회 237
deepeye 2022.07.05 0 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