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굴레> 서문~1장 발제문

작성자
deepeye
작성일
2022-02-05 17:53
조회
443
서문

80년대 일본이 선망의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경제, 정치, 산업 문제에 있어 대표적인 반면교사로 여겨지고 있다. 태가트 머피가 서문에서 언급한 뉴욕타임스 사설에는 일본 경제를 비판하며 똑같은 늪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경고가 담겨 있다. 저자가 이를 두고 ‘창작’이라 비판한 것은, 이런 지적들이 단순하게 일본의 의사결정자들이 무지하다거나 고집이 세다고 전제한 채 설교하려 들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에 일본의 모순적인 정책과 실패를 들여다보는 데 필요한 문화적, 역사적, 지리적, 정치적 ‘굴레’에 대한 이해는 결여되어 있기 마련이다.

가령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숙명론적 태도, 광범위한 사회 형식으로 기능하고 있는 지나친 사과와 친절, 예의 바름은 저자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본의 매력’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일본을 매력적이고 성공적으로 만든 원천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모든 일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믿으면서 애써 부정하려는 치명적인 정치적 차원의 문제”(35)를 내포하기도 했다. 정치인의 대중 착취, 전쟁의 비극과 역사에 대한 집단 망각, 모순적인 피해자 의식과 같은. 태가트 머피는 서문에서 이런 양가적인 시스템 구조에 대한 분석을 예고한다.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 ‘이렇게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두고 봐라’ 협박하는 게 아니라, 과거의 굴레가 어떻게 현실을 왜곡하고 있는지, 왜 일본과 같은 나라에서 누구나 아는 상식을 실행하지 못했는지, 일본이라는 나라를 오랫동안 사랑해온 사람으로서 말이다.

1장 에도 시대 이전의 일본

근대 이전의 일본은 오랜 시간 중국 문명의 테두리 바깥에서 성장해왔다. 그러면서도 한국이라는 필터를 통해 문화적, 기술적 성과를 받아들였고, 언어, 종교 음악, 통치제도 등 거의 모든 부분을 간섭없이 ‘일본적인 것’으로 변환시킬 수 있었다.(44~48) 일본의 천황은 로마의 교황처럼 그 뿌리부터 종교적인 역할로 성격이 규정되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기존 통치자가 쫓겨났던 것과 달리, 천황은 그런 운명을 겪지 않았고, 지배자에게 통치할 자격을 부여하는 정치적 정통성의 중요한 상징으로서 역할해왔다.(49~51).

헤이안 시대

후지와라 가문은 8세기부터 12세기까지 권력을 잡아 초기 국가제도를 확립했다. 이 시기인 794년 나라에서 교토로 수도를 옮겼는데, 평안한 수도라는 뜻의 ‘헤이안쿄’라 불리기도 했고, 여기서 헤이안 시대가 유래한다. 귀족들은 침략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수세기 동안 세련된 취향의 문화예술에 전념할 수 있었고, 이때 발달한 헤이안 시대의 문화는 오늘날까지 현대 일본에 녹아있다.(ex 즉위식, 결혼식, 장례식과 같은 황실 의례, 헤이안 음악, 일본 료칸의 꽃꽃이와 같은 섬세한 디테일 등) 또한 이 시대 대표적인 문학인 <마쿠라노소시>, 그리고 최초의 소설 <겐지 이야기>는 모두 여성에 의해 창작되었다. 이 작품들은 고귀한 ‘미학’, ‘신분’만이 유일한 가치로 상정된 헤이안 시대를 그려내고 있으며, 상층 계급의 성적, 예술적 스폰서 운용과 신분이 억압된 사회에서 빚어질 수밖에 없는 ‘질투심’에 대한 묘사는 현대 독자들에게도 매력을 가지고 있다. (51~60)

헤이안 질서의 붕괴와 봉건주의의 등장

경제가 흔들리면서 후지와라 가문과 헤이케 시대 역시 쇠락을 겪게 된다. 헤이안 말기 후지와라 가문과 미나모토 가문의 치열한 전쟁은 <헤이케 이야기>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멸문지화를 당한 후지와라 가문을 중심으로 삼고 있는데, 여기서 드러나듯 “가망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목숨 바쳐 지키고자 하는 대의를 향한 충성심과 순수함으로 싸우다 스러지는 고귀한 패자는 일본 문화에 식상하리만큼 자주 등장하는 전형 중 하나다.”(63) 이후 권력을 잡은 요리토모는 일본의 중심을 도쿄가 위치한 간토의 동쪽으로 옮기고 막부 제도를 만들어낸다.(61~66)

막부는 ‘역사의 전형적인 패턴’을 거치며 천황과 쇼군을 둘러싼 갈등에 따라 가마쿠라 막부, 아시카가 막부 그리고 도쿠가와 막부에까지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점차 중앙의 조정이 아닌 지방 군벌들에 의해 실질적 지배가 이루어지는 봉건 국가로 변해 있었다. 20세기 일본의 역사학자들에게 봉건제도를 둘러싼 논쟁은 숙명적이었다고 한다. 민족주의 역사가들은 천황의 권력을 되찾으려던 고다이고 천황의 시도를 근대 일본의 ‘유신’으로 발전하는 선례로 보았고, 맑스주의를 받아들인 지식인들에게 당시 봉건시대는 자본주의로 이행하기 이전 단계였으며,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기에는 봉건주의 잔재가 너무 많이 남아 있었다. 냉전시기 미국 학자들에게 비서구 국가로서 일찍이 산업 국가가 된 일본은 맑스의 공식이 틀렸다는 반증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일본의 봉건제도가 유럽의 것과 비슷했다는 데 이견은 없었다고 한다.(7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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