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Pic 62호] #가속하라 4부 (2024. 1. 28.)

뉴스레터
작성자
진실연대자들
작성일
2024-03-13 11:54
조회
172


제 62 호
(통권 92호) 2024. 1. 28



🌎 열린 세미나 🌏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그리고 한반도



2월 시사토론 세미나 주제는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그리고 한반도>입니다.
전쟁의 기운이 세계로 확산되어 가는 가운데 최근 한반도에서도 여러 조짐이 일고 있습니다. 다음은 군수기업 한화의 제주 우주센터 건립에 관한 반대서명 링크에 개제된 내용의 일부입니다. (아래 서명 링크에서 입장문 전문과 더 많은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긴급] 단체/개인 연명을 받습니다]: 제주의 재앙이 될 한화우주센터 건립 철회하라! 로켓 발사 철회하라!↗

제주의 재앙이 될 한화우주센터 건립 철회하라!

- 전쟁장사기업 한화의 우주센터 건립을 반대한다!-
- 생태계 파괴, 기후재앙 악화, 군사화 증가시키는 로켓 발사 철회하라!-

‘민간’의 외피를 쓴 전쟁무기 기업, 한화가 ‘우주 산업’이란 이름으로 제주에 들어오고 있다.

오영훈 도정은 올해 5월 페리지 에어로 스페이스 등 4개 업체와 이른바 ‘우주산업 혁신 거점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은 데 이어 올 해 7월 6일 한화 시스템과 업무 협약을 맺었고 그 내용은 위성을 대량 생산, 발사하는 우주센터 조성이다. 한화(한국 화약)는 현재 팔레스타인을 대량 살상하는 이스라엘에 무기를 수출하는 등 전 세계의 분쟁 및 전쟁으로 이윤을 얻는 악명 높은 무기 기업이다.

협약시 한화시스템 대표이사는 "한화시스템은 제주도에 우주산업 전초기지를 구축” 하고 “제주도가 민간 우주산업의 허브(Hub, 중심)가 될 수 있도록 협력”할 것이라 말하였다. 우리는 제주가 전쟁무기 기업의 전초 기지가 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올해의 첫 시사토론 시간에는 이어진 전쟁상황들과 함께 한반도에 드리운 전운에 대해서 토론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열린 세미나에는 관심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  일정: 2월 1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  장소: 카카오톡 <열린 세미나> 오픈채팅방

   🔮 참가방법↗


  •  참고자료
[MBC] 9·19합의 효력정지 "북한이 합의 깨" vs "전쟁 일촉즉발"↗
[KBS]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100일, 기로에 선 중동↗
[한겨레] 미국 전 북핵특사 “2024년 동북아 핵전쟁 날 수 있다”↗




👇 지난 세미나 갈무리 👇



『 #가속하라 』

로빈 맥케이, 아르멘 아바네시안 엮음, 갈무리

4부

1월 18일 (목) 저녁 7시 30분



🕳️ 4부 → 예견
⚙️ 마크 피셔 → 터미네이터 대 아바타
⚙️ 안토니오 네그리 → 「가속주의 정치 선언」에 대한 성찰
⚙️ 알렉스 윌리엄스 + 닉 서르닉 → #가속하라: 가속주의 정치 선언
⚙️ 레자 네가레스타니 → 비인간적인 것의 노동
⚙️ 퍼트리샤 리드 → 가속주의에 대한 일곱 가지 처방



⚙️ 마크 피셔 → 터미네이터 대 아바타


ㅈ) 먼저, 터미네이터와 아바타를 '대'로 관계지은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ㅂ) 네, 저도 제목이 흥미로웠는데요, 각각(아바타와 터미네이터)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각각의 의미를 알면 '대'로 관계지은 이유도 함께 추측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ㄱ) “터미네이터 같은 거대죽음-충동으로서의 자본은 “흥정의 대상일 수 없고, 설득의 대상일 수 없고, 연민도 가책도 두려움도 나타내지 않고서 절대적으로 결코 멈추지 않을” 그런 것이다. 랜드가 <터미네이터>, <블레이드 러너>, 그리고 <프레데터> 영화들을 표절함으로써 그의 텍스트들은 어떤 수렴적 경향 ― 디지털 음향 연출이 혐오 당하기보다는 오히려 음미되어야 하는 비인간 미래를 드러낸 가속주의 사이버문화 ― 의 일부가 되었다.” (337쪽)

ㄱ) “할리우드 자체가 우리는 어쩌면 언제나 기술 중독자이고 사이버공간에 빠진 것처럼 보일 것이지만 내부에서, 우리의 진정한 자아 속에서 우리는 어머니/행성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고 군산복합체에 희생당한 원시인이라고 말해준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가 중요한 이유는 그 영화가 후기 자본주의 주체성을 구성하는 부인否認을 부각하기 때문인데, 이 부인이 어떻게 약화되는지 보여줄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바로 그 현존이 판도라 행성의 유기적 전원풍경의 파괴를 전제하는 영화적 원-가상현실 기술 덕분에 내부 원시인의 흉내를 낼 수 있을 뿐이다.” (332쪽)

ㅈ) 터미네이터는 자본주의적 가속주의, 혹은 가속주의적 자본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아바타는 포스트자본주의 주체성의 형상이지만, 원시주의에 갇혀 있는 형상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아바타가 터미네이터의 대안으로 사유되지만 그것의 잠재력이 원시주의적으로 갇혀 있는 상태에 있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자세한 설명은 더 이상 없는 것 같습니다.

ㅂ) 터미네이터와 아바타를 자본의 두 양상으로 볼 수 있을까요?

ㅈ) 이 글이 다루는 주요 인물인 랜드는 터미네이터에 유비 되는 것 같습니다. 터미네이터와 달리 아바타 형상을 피셔가 자본과 연관 짓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실천적으로 결국 자본의 것으로 수렴된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것의 모자람, 한계를 지적하는 차원이랄까요?

ㅂ) 마크 피셔는 좌파 지식인들을 비판하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터미네이터와 아바타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데에 실패하고 있는 지식인들의 두 얼굴을 나타내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ㅈ) 네, 그런 해석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ㅂ) 글의 마지막 구절을 응용해 표현해 보면, "실패한 반란의" 두 개의 "논리"로 볼 수 있습니다.

ㅈ) 그 논리 틀 속에서 아바타로 유비 되는 것 중의 하나가 339쪽에 나오는 "사회주의적 인간주의"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 글에서는 다뤄지지 않지만 뒤에서 레자 네가레스타니가 언급하는 "반인간주의"도 그런 유형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ㄱ) 피셔는 339쪽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도덕적 비판에 파묻히는 좌파"라고 말하는데요, 도덕적 비판 자체가 원시주의와 관련될까요?

ㅂ) 네. 그렇다면, 둘을 '대'로 연결시킨 이유는, 이제까지 반란의 논리에서 '터미네이터 대 아바타'의 이분법적 양자택일 구도가 있었다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고, 결국 이 글의 주장은 그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 같습니다.

ㅈ) 원시주의를 폭넓게 해석해서 이미 있던 것(즉 과거)을 기준으로 하는 사고법으로 해석한다면 도덕적 비판도 그런 경향을 보인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가능할까가 다음 글들의 주제이기도 하니 여기서 다음으로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ㅂ) 네, 다음 글은 책의 표제작이라 할 수도 있을, <#가속하라_가속주의 정치 선언>입니다.



⚙️ 알렉스 윌리엄스+닉 서르닉 → #가속하라: 가속주의 정치 선언


ㅈ) 알렉스 윌리엄스와 닉 서르닉의 이 글은 현 국면을 대전환점으로 설정합니다. 국민국가, 자본주의, 전쟁으로 조직된 근대사회의 총체적 위기가 기후체계 붕괴에서 나타나고 그것은 폭주하는 신자유주의 정부, 비정부권력, 기업권력이 부상하여 이 위기를 심화시킬 뿐이고 좌파의 기존 자산도 무효화 되어 총체적으로 대안이 사라진 시대라는 진단이 "현 국면"의 요지였습니다. 그래서 02의 제목을 "공백기"라고 붙인 것 같은데 그람시가 인용하여 정치 개념화시킨 카톨릭의 공위기interregnum가 그 원어가 아닌지 싶네요. 기존 질서(이전 교황)는 흔들리고 있는데 대안 질서(새교황)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태에 좌파 가속주의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회심적 글이 바로 이 선언문일 것입니다.

ㅈ) 흥미로운 것은 마크 피셔가 터미네이터로 유비한 랜드의 우파 가속주의가 "속력"과 "가속"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ㅂ) 저도 속력과 가속을 구분하는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ㄱ) “랜드의 신자유주의는 속력을 가속과 혼동한다. 우리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지 모르지만, 자체적으로는 결코 흔들리지 않고 엄격하게 규정된 일단의 자본주의 매개변수 내에서만 그럴 따름이다. 우리는 탐색적이기도 한 가속 과정, 즉 보편적인 가능성 공간 내에서 이루어지는 실험적인 발견 과정을 경험하기보다는 오히려 국소적 지평의 속력 증가, 즉 단순하고 우둔한 돌진을 경험할 뿐이다. 우리가 본질적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바로 전자의 가속 양식이다.” (343~-344쪽)

ㅈ) 『개념무기들』(조정환, 갈무리, 2020) 「8장 속도:감속과 가속 너머」에서 나는 속도와 속력을 구분하고 전자를 양적인 것 후자를 질적인 것으로 설정했는데 이 구분법에 따르면 『#가속주의』에서 속력으로 번역된, 아마도 speed는 나의 '속도'에 해당할 것입니다. (『개념무기들』에서 속력은 speed가 아니라 velocity에 상응하는 것이었습니다.)
알렉스와 닉은 speed는 국소적 지평에서의 우둔한 돌진이고 가속은 탐색적인 것으로서 보편적 가능성 공간에서의 실험적 발견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ㅈ) 랜드는 자본주의를 가속 주체로 설정하는데, 알렉스와 닉이 보기에 자본주의는 진정한 가속 주체가 아니라 탈영토화한 것을 재영토화하는 쳇바퀴 주체입니다.

ㅂ) 문득, '가속'accelerate이라는 개념이 채택된 배경이 궁금해졌습니다. 책에도 언급된 부분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요, 니체의 어떤 구절에서 따왔던 것이었나요?

ㅈ) 이런 쳇바퀴 가속은 맑스나 레닌이 상상한 가속과는 배치된다는 것이 알렉스와 닉의 생각이지요. 그래서 ‘모더니티는 자본주의적 가치가 형성한 제약을 넘어 가속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나오게 됩니다. 들뢰즈가 니체의 경구 ‘경과를 가속하라’를 인용함으로써 유명해진 용어입니다.

ㅂ) 근대성과 자본주의를 한 덩어리로 보지 않고, 분리해서 사고하는 것이 가속주의의 특징 중 하나라고도 볼 수 있을까요?

ㅈ) 164쪽에 나오네요. 자본주의는 대체되어야 하지만 근대성은 가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랄까요?

ㅈ) 알렉스와 닉의 주장 중에서 통속정치에 대한 비판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ㅂ) <3 선언>의 12번을 말씀하시는지요? 저도 의문이 많이 생겼던 구절이었습니다.

ㅈ) 지역주의, 직접행동, 수평주의가 통속정치의 세 특징으로 적시되는데 필자들의 입장이 다소 모호하긴 하지만 절대민주주의의 직접민주주의적 축에 대한 부정적 뉘앙스가 매우 강한 선언이었습니다.

ㅂ)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 뉘앙스가 "프로메테우스주의 정치"의 긍정으로 연결된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선언>의 21번의 첫 문장을 어떻게 읽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ㅈ) 절대민주주의의 직접민주주의적 선분이 간접민주주의적 선분을 섭정할 역량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볼 때, 필자들은 전위적 대의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대비시키고 전자를 회복하여 후자와 절합해야 한다는 생각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수직성, 비밀주의, 위계…등이 전위적 대의주의의 요소로 제시되었습니다.

ㅈ) 프로메테우스주의는 맑스주의의 수사학적 표현으로 자주 사용되어 왔는데 21번에서 그것은 "복잡계 분석, 새로운 형태의 행동, 탐색적 실험"으로 요약되므로 그 자체로 문제적이지는 않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수행하는 주체가 전위적 대의주체로 한정된다면 문제적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직접민주적 다중주체도 "복잡계 분석, 새로운 형태의 행동, 탐색적 실험"을 수행할 수 있고 더 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 안토니오 네그리 → 「가속주의 정치 선언」에 대한 성찰


ㅂ) 설명 감사합니다. "프로메테우스주의"에 관한 네그리의 코멘트는 363쪽 아래 단락에 나오는데요, 네그리도 "전위적 대의주체"에 기대는 프로메테우스주의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ㄱ) “의심의 여지가 없이 여기에는 객관성과 물질성에 대한, 즉 일종의 발전의 현존재에 대한 강한 의존이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가 둘로 나뉜다”라는 기본 규약에 동의했을 때 존재한다고 가정했던 사회적·정치적·협력적 요소들에 대한 어떤 과소평가가 이루어지게 된다.” 361-362쪽 네그리의 말입니다.

ㅈ) 알렉스와 닉의 말 중에 13번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 관념은 폐기되어야 한다.”, “진짜 민주주의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집단적 자기지배)에 의해 규정되어야 한다.” 등의 단언은 그 단언의 맥락은 이해되지만, 위험하고 매우 섬세하게 다듬어진 다음에 제한적으로만 사용될 필요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ㅈ) 선언의 기본취지에 대한 동의 후에 364쪽부터 그런 우려를 표명하고 ‘ㄱ’님이 인용한 그 앞부분에서 이미 다중의 협력 요소에 대한 과소평가를 지적합니다. 이것은 공통적인 것에 대한 사유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ㅂ) 요식화된 통속정치의 수단들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형해화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에는 저도 일견 동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사회적, 정치적, 협력적 요소들에 대한 과소평가"가 더 문제적이라 생각합니다.

ㅈ) 앞서 언급한 『개념무기들』 8장에서 알렉스와 닉에게 기술결정론이 과잉되어 있다는 네그리의 비판은 이미 다루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까 "정치결정론"도 과잉되어 있다는 비판이 들어 있네요.
이때 정치는 다중의 삶정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수직, 위계, 비밀(선언의 필자들이 취하는 레닌주의의 주요 개념들입니다만)에 입각한 프로메테우스 정치를 지칭하는 것이겠지요.

ㅂ) “우선 「가속주의 정치 선언」은 인지노동의 힘을 그 잠재성에서 떼어냄으로써 해방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선언은 두 가지 요소를 강조한다. 첫 번째 요소는 내가 “고정자본의 재전유”이자 그 결과로 인한 노동하는 주체의 인간학적 변형이라고 일컫곤 하는 것이다.” 360쪽 <고정자본의 재전유>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이어서 MAP가 제시한 긴급한 목표 세 가지도 이야기하는데요, 1) 새로운 지적 하부구조를 구축할 것, 2) 주류 대중매체의 지형에 대한 강한 주도권을 조직할 것, 3) 계급권력의 모든 가능한 제도 형태를 활성화하는 것(363쪽), 이라고 합니다.

ㅂ) 「#가속하라: 가속주의 정치 선언」과 「'가속주의 정치 선언'에 대한 성찰」에서 좀 더 나눠 주실 이야기가 있으신지요?

ㅈ) 인지노동 영역에서 강력한 생산적 힘인 다중의 삶정치적 협력 요소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이러한 주장이 펼쳐졌으면 좋을 텐데라는 아쉬움의 표현 외에 대체로는 수긍하는 방향이었다고 생각됩니다.



⚙️ 레자 네가레스타니 → 비인간적인 것의 노동


ㅈ) 레자 네가레스타니의 글은 읽기가 쉽지 않았는데도 묵직한 주제를 차분히 전개해 나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비인간주의를 인간주의의 정교한 확대로 보면서 반인간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ㅂ) “비인간주의는 인간주의를 실천적으로 정교하게 확대한 것”이라는 첫 문장이 저도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ㅈ) 글 전체가 '개입적 태도를 통해 서술에서 처방으로, 말하기에서 행하기로 나아가는 구성적 실천이 비인간주의다'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ㄱ) “인간성은 우리의 배후에 자리하는 하나의 주어진 사실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신념 형성과 이성에의 순응에 내재적인 재평가와 구성의 가닥들이 뒤얽혀 있는 신념이다. 요컨대 인간이라는 것은 하나의 분투이다. 이 분투의 목표는 이성의 공간을 통해서 인간적인 것을 구성하고 수정하라는 요구에 응답하는 것이다.” (422쪽)

ㅈ) 네, 구성적 실천은 분투, 수정, 실천적 분기, 생산,…등등의 용어로 변용되고 있었습니다.

ㅂ) 논의 중에 가속주의는 “자본주의는 대체되어야 하지만 근대성은 가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했었는데요, “인간주의”에 관한 논의도 근대성 논의와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ㅈ) 그것은 인간주의에 포함되어 있는 고정과 보존의 보수주의를 극복하는 실천적 정교화, 재구성, 변경, 갱신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논리상의 공통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ㄱ) 아래 문장에 '근대적'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의 처방책은 서술description들을 산출하고 수정하는 것으로서의 근대적 지식 체계와 언제나 동조해야 하는 일단의 서술에 상응해야 한다는 점 역시 인식되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처방 없는 서술은 체념의 근원이고 서술 없는 처방은 한낱 일시적 변덕에 불과하다.” (414쪽)

ㅈ) 물론 인간주의가 보수화되어 과거로써 현재를 폭정하는 장치로 등장할 때는 그것을 가속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인간주의가 인간의 의의와 인간존중을 융합하는 것으로서 비인간주의의 초기조건을 구성하는 것으로 이해될 때의 인간주의는 가속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말입니다.
레자에게서 특징적인 것은 이 서술에서 처방으로, 말하기에서 행하기로의 구성적 실천에서 이성의 자율성을 강조한다는 점이었습니다.

ㅈ) 좌파 가속주의자들에게 두루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탈구조주의 흐름에서의 sentience(감수성, 이 책에서는 '지각'으로 번역된 듯) 강조보다 sapience(지성)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다는 것입니다. 스티븐 샤비로가 <사물들의 우주>와 <탈인지>에서 강조하는 역량이 sentience임을 감안하면 뭔가 의미심장한 차이가 엿보이는 지점입니다.

ㅈ) 그런데 레자에게는 이성의 자율성, 이성의 기능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이성이 "탈사유화하고 안정화하는 공동의 조직공간인 언어의 기원 및 기능과 연결"되어 사회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탈구조주의 경향에서는 사회성, 공통화의 기능을 오히려 정동, 감수성에서 찾는데 이 점이 차이가 나는 것 같은데, 다시 생각해 보면 스피노자도 제2종 인식인 이성이 개념(관념)을 통해 공통적인 것을 직조한다고 했던 것을 상기해 보면 이 강조점의 차이가 유연하게 이해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ㅂ) 가속주의와 샤비로의 차이, 음미해 볼 지점 짚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퍼트리샤 리드 → 가속주의에 대한 일곱 가지 처방


ㅂ) “재정향하라, 편심화하라, 사변하라, 허구화하라, 기하학화하라, 공통화하라, 추상화하라.”

ㄱ) 리드의 용어 제안을 어떻게 읽으셨을까요?
“나는 약간 덜 끌리지만 더 정직한 용어를 제안하겠다. 재정향하라.” (503쪽)
저는 가속주의를 자본주의 생산력을 가속화하자는 주장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재정향이라는 메시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가속하고_재정향하라 일까요?

ㅈ) 들뢰즈라면 "다르게 반복하라"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내재적’의 ‘재’에는 차이가 포함되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ㅂ) 왜 리드는 “재정향하라”는 용어가 덜 끌리지만 더 정직한 용어라고 하는 것일까요?

ㅈ) 가속보다 레자의 '수정, 재구성'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더 정직한 용어로 보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ㅈ) 편심(탈중심)은 수정과 재구성에서의 차이를 표현하는 데 적절한 말이 아닐지 생각됩니다. 레자의 가속주의에서의 추론, 가추가 퍼트리샤 리드에게서는 사변, 허구화, 추상화, 기하학화 등의 용어로 변주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ㅈ) 그렇다면 공통화하라는 어떤 내용일까요?

ㄱ) <6절 공통화하라>에서 리드는 수정된 근대주의가 우려스럽다고 합니다.
“수정된 근대주의의 기조는 매우 우려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근대주의적 기획의 보편주의적 영향에 본질적으로 내재하는 폭력과 부정의를 그대로 남겨둔다.” (512쪽) 그리고 “가속주의를 추동하는 관념들이 비인간[주의]적인 (인식적) 수정주의를 위한 끊임없는 투쟁과 비총체성을 포괄하는 윤리의 씨앗을 포함할 수 있으려면 (전 지구적 정의에 관한 물음은 물론이고) 더 미묘한 판본의 보편성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512쪽)
이 미묘한 판본의 보편성이 공통장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포괄적 평등이 아무튼 구현된다면 그것의 현장과 재료는 공통장이고, 따라서 그것은 (자본의 논리에 대응하는 노동관계와 더불어) 잉여(재정적) 가치를 극대화하라는 명령을 넘어서는 다른 생산양식들을 단언하는 프로메테우스주의적 기획이다.” (513쪽)

ㅈ) 이런 점에서 퍼트리샤 리드의 생각은 이 점에서는 알렉스와 닉의 선언에 대한 네그리의 비판을 일정하게 받아들인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ㅂ) 위 처방들은 “합리적 구상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집합적 환상을 동반해야 하며, 그 결과 노동과 사회의 강한 자기-가치화를 조직해야 한다.” (363쪽) 이 문장과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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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Pic 59호]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2023.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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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Pic 58호] #가속하라 1부 (2023.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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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Pic 57호] 윤석열 정권의 역사전쟁은 어디로? (2023.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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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Pic 56호] 캐런 바라드 (2023.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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