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후기]7/10<물질문명과 자본주의2-2>, 제5장 사회 혹은 "전체집합"/4장 기록

작성자
JJJJ
작성일
2021-06-30 06:06
조회
394
[공지, 후기]7/10<물질문명과 자본주의2-2>, 제5장 사회 혹은 "전체집합"을 공부합니다.
토론거리와 질문거리가 있다면 게시판에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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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6.토.(19:30~)
역사비판 세미나

범위: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2 <4장 자기영역에서의 자본주의>

길잡이:
내용토론
1.상업세계에서 계서제, 불균등, 포섭, 독점이 발생하는 조건들에 대해 논의해 보자: 특권, 공모, 화폐, 크레딧, 혁신, 운
2.상업세계에서 전문화와 탈전문화의 관계에 대해 논의해 보자
3.자본주의가 우월한 지위를 갖게 되는 전략장치들은 무엇인가?: 정보, 원거리무역, 국가
4.상업세계의 발전에서(그리고 국제적 독점의 형성에서) 국가, 정치의 역할에 대해 논의해 보자: 조세 무력 기업과 결탁
5.공공시장보다 사거래시장이 자본주의의 원천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한가?
6.지배욕구(독점)가 아니라 필요가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브로델의 생각에 대해 논의해 보자.
7.고급화폐와 저급화폐의 차이, 금광의 존재, 인플레이션이 노동계급 사람들과 특권층 사람들에게 미치는 효과는 어떻게 다른가?
8.자본주의 상사 및 회사의 유형과 발전에 대해 토론해 보자.
9.브로델은 삼분할체제 '재론'에서 어떤 측면을 특별히 새롭게 강조하는가?

구절토론
1.자본주의의 탄생과 관련하여 브로델은 "자본주의가 하나의 편협한 기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내지 문명이 제각기 자신의 몫을 했다 그리고 역사가 마지막 역할을 하면서 누가 이기고 지는지를 최종적으로 결정짓는다"고 말한다. 이 구절이 자본주의의 발생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유효한지 논의해 보자.
2.브로델은 역사에서 소수의 결정적 역할을 강조한다("다수의 사람 사물 상품은 거대한 가치를 가지지만 움직일 줄을 모른다 그 때문에 이런 것들보다 소수가 더 결정적일 수 있다.  역사의 선택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수의 의견에 따라서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소수의 활동이 다수에 대해서 우세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많이 있다). 다수보다 소수를 더 중요한 것으로 파악하는 이러한 역사관은 전위주의, 엘리트주의와 어떻게 같고 또 다른가?

우리시대와의 비교
브로델은 14세기-18세기 사이 서구 상인들의 인문주의 현상에 대해 설명한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날 기업가들의 인문주의 현상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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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기록:

사회자: A님 문제제기가 간단한 것 같으니, A님 의견을 먼저 듣고 B선생님께서 제기해 주신 내용토론을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모두: 네. 좋습니다.

A: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531쪽 둘째 단락과 관련한 생각입니다. 블로델은 일상의 언어 속에서 상업사회의 계서화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하면서 구체적인 언어 사용의 용례를 설명한 후, 이 용어의 사용이 단지 용어의 차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명백한 사회적인 차이가 있다고 말합니다. 보통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가 트리클-다운(trickle-down: 국가의 경제 시스템을 통해 부유층에서 서민층으로 흘러가는 것. ‘트리클-다운 이론’: 사회의 최부유층이 더 부유해지면, 더 많은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그 부가 서민들이나 그 아래층에게로 확산된다고 보는 이론) 할 것이라고 하는데, 해당 구절을 살펴보면 노동자에서 가장 먼 위치에 있는 금융인(대부업자)으로부터 그 아래로, 아래로 혐오가 흘러내리는 것을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엔 물건을 ‘직접’ 만들어 파는 사람들을 혐오한다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자본주의에서 노동에 대한 혐오 또는 생산에 대한 혐오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토론거리는 547쪽의 ‘징세청부인(traitants)’에 대한 것인데요, 생소한 용어라 알아보았습니다. 즉 국왕에게 돈을 빌려주고 특정 지역에 대한 징세권을 받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며 고대 로마에서부터 있었던 오래된 직책이고 우리말의 ‘세리’에 해당하는 용어라고 합니다. 또한 지금의 ‘원천징수제’의 유례로 함께 비교 언급되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이라 소개해 보았습니다.

사회자: 네, 혹시 지금 나온 두 구절과 관련해 덧붙여 이야기 해 볼만한 내용이 있을까요? 아니면 B선생님께서 올려주신 토론내용과 함께 검토해 보면서 같이 이야기해도 괜찮을까요?

모두: 네.

B: 하나씩 살펴보면서 떠올랐던 생각들을 돌아가면서 이야기 해보면 좋겠습니다. 내용토론 1번(상업세계에서 계서제, 불균등, 포섭, 독점이 발생하는 조건들에 대해 논의해 보자: 특권, 공모, 화폐, 크레딧, 혁신, 운)부터 볼까요? 저자는 상업세계를 영국의 큰 단위로 설정하는데요. 거기에 ‘계서제’를 언급하면서 그에 따른 불균등, 불평등의 측면을 부각합니다. A님이 말씀하신 혐오의 트리클-다운 현상과도 연관될 것 같은데, 저자는 혐오 외에도 부의 불평등, 양극화 그리고 부를 가진 자들이 그렇지 못한 자들을 이용하고 포섭하는 현상들을 규정하고 그러한 것으로서 ‘독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상업세계에서 독점이 어떻게 해서 발생하는지 지속적으로 서술 및 강조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독점의 문제가 오늘 세미나의 핵심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즉 독점이라고 하는 것이 자본주의를 특징짓는 핵심적인 요건인데, 그 요건으로서 독점이 어떻게 해서 발생했는가를 보자는 것이지요. 그리고 특권, 공모, 크레딧, 혁신, 운 등의 저자가 나열한 독점의 발생 조건들을 함께 연관지어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C: 독점과 관련해 대상인의 원거리 무역을 서술한 부분이 기억이 납니다.

B: 네. 원거리 무역은 일종의 국경 없는 무역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무역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들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데, 가령 밀을 수입할 때 기간 내에 수송이 이루어져야 상품이 상하지 않는다든지, 해적을 맞닥뜨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든지 등 여러 위험 요소들이 뒤따릅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위험요소들에 맞서 이윤을 내기 위해서는 충분한 재정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원거리 무역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규모의 배가 필요했기 때문에 규모가 클수록 배의 소유자가 여럿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즉 지분을 나눠 갖는 방식이었지요. 그러나 위험이 큰 만큼 이득도 컸습니다. 가령 배가 성공적으로 항해를 마쳤을 시에 벌어들이는 수익은 500%에 다다랐다는 서술에서 알 수 있듯이 가히 천문학적인 수익률을 낼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다른 독점 발생의 조건들도 말해볼까요?

사회자: 독점 발생의 조건은 아니지만 598-9쪽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대목이 있습니다. 독점이 정당화되는 근거가 경제 진보를 약속한다는, 즉 경제 성장의 안정성을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읽혀 왔지만 사실은 지배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서술이 흥미로웠습니다.

B: 클라인이라는 역사가를 인용하고 있는 대목이었죠? (사회자: 네)

D: 지금 토론하는 주제와 일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상 자본주의는 단순히 경쟁 시스템으로서 부의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체제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독점에 대한 저자의 서술을 통해서 투기 거래의 세계가 최상위 층인 자본주의의 핵심이며 돈이 있는 사람이 지배하는 일방적 체제(독점 체제)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것은 시장경제에서 이뤄지는 경쟁의 불투명성과 불공정을 확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경쟁은 독점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싶기도 했습니다.

C: 그와 관련해 국가와 자본의 관계를 더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블로델은 자본과 국가의 관계가 때론 공모자, 때론 방해자가 된다고 말합니다. 가령 1708년에 프랑스 정부가 그러했는데요, 전쟁 직전에 국가와 자본 간의 공모 관계를 나타내는 사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자본과 ‘공모’할 때는 전쟁 상황 즉 위급한 예외 상태일 때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국가와 자본의 관계는 어떠할까요? 공모 관계일까요? 그리고 방해가 될 때는 언제일까요? 그리고 4장 후반부 상사(商社)와 회사(會社)를 구분할 때 국가에 대한 언급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사실 그 부분은 독해가 좀 어려웠습니다.

B: 상사(商社)라는 것은 가족 관계에 기반한 것으로서 가족의 이해관계를 안정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는 수단이었습니다. 가족은 공동체 관계이지요. 즉 거의 무한책임에 가까운 관계라는 특징을 지닙니다. 그러한 무한책임의 관계로써 참여하는 것이 ‘합명’회사입니다. 모든 것을 종합한 인격체를, 개인의 전인격을 합친 회사가 합명회사라는 것인데요. 가족 외의 사람과의 연합이 어렵다는 성격을 띱니다. 또한 이웃 사람, 이웃 나라 등의 분명히 이득을 볼 수 있는 관계 임에도 자본만 합치는 경우 ‘합자’회사라고 합니다. 상대가 가지고 있는 돈과 내 돈만 합칠 때이지요. 운영상 책임 등은 지지 않기 때문에 이 경우 책임의 구획이 분명해집니다. 경영책임과 투자책임을 분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합자회사가 더 나아가면 주식회사가 됩니다. 그런데 합자회사의 경우 경영책임이 일정 정도는 남아있지만, 주식회사는 전적으로 자본에 참여하는 사람들(투자자)의 각자가 투자한 지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우며 나머지 경영책임은 고용한 CEO에게 할당하는 형태입니다. 그런 식으로 저자는 순수하게 자본만의 연합으로 나아가는 형태를 주식회사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상사라고 하는 전통적 관계를 활용한 회사 형태로부터 합자회사나 주식회사 같은 자본주의적 회사의 발전이 있었다고 설명하는 것이지요.

사회자: B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지점이 자연스럽게 내용토론 8번 항에 해당하는 내용과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된 김에 8번 내용을 좀 더 토론한 후 다시 순서대로 이야기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모두: 네)

C: 8번과도 관련되면서, 앞서 국가와 자본의 관계와도 관련된 내용인데요. 구체적으로 614쪽 둘째 단락에 해당합니다. 읽어보겠습니다. “상사와 회사는 비슷한 점과 유사한 기능에도 불구하고 구분이 필요하다. 상사는 자본주의 그 자체와 직접 연관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차례로 보이는 다양한 형태들은 곧 자본주의의 진화를 보여준다; 이에 비해서 대규모 회사(예컨대 동인도 회사)는 자본과 국가에 동시에 연관을 가진다; 국가는 커지면서 노골적인 간섭을 부과한다. 그러면 자본가는 거기에 굴복할 것인지 항의할 것인지를 결정하든가, 아니면 달리 어떻게 궁지에서 벗어나는 수밖에 없다.” 여기서 블로델이 어떻게 국가와 회사의 관계를 설정하고 있는지 명료하게 이해되지는 않는데요. 관련해 보충 이야기 해보면 좋겠습니다.

B: 국가에 대한 언급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지 않고 산발적으로 배치돼 있습니다. 다양한 장소에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국가의 역할이 서술되고 있는데요. 국가에 대한 부분은 따로 모아서 정리를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우선 독점과 국가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해봅시다. 맑스주의 전통에서 독점의 문제는 블로델의 독점과 차이가 있습니다. 힐퍼딩, 홉슨, 레닌 같은 사람들이 1870년대 자본주의 이후를 연구대상으로 삼으면서 그것을 ‘독점자본주의’라고 일반적으로 명명합니다. ‘일반적으로’라는 말을 사용한 이유는 그것이 조금씩 차이는 나지만 그럼에도 공통성을 가진다는 측면에서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그것을 1870년대로 볼 수도 있지만 1890년대를 독점자본주의 시기로 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때의 독점자본주의는 자본주의 발전단계의 하나에 해당합니다. 자유경쟁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역사적 시기를 19세기 후반으로 보는데, 이에 대해 큰 이견은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독점자본주의가 20세기의 초반, 즉 제1차세계대전 후에 공황을 겪고 나서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형태로서 나타납니다. 말하자면 19세기 후반의 독점자본주의와 구분된 ‘국가’독점자본주의를 설명하는 이론들이 등장한 셈이지요. 레닌의 경우 1920년대부터 국가독점자본주의가 나타난 것으로 말합니다. 사회주의라는 것이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권력을 장악한 국가독점자본주의와 다른 게 아니라는 식의 표현을 하니까요. 국가와 독점의 관계는 20세기에 더욱 첨예하게 등장하게 됩니다. 블로델과 맑스주의의 차이는 독점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달라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맑스주의 전통에서 ‘독점’은: 생산의 집중과 집적이라는 역사적 현상으로 기술됩니다. 생산이 집중, 집적이 되면 소유관계에서 독점이 필연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가령 핀, 볼펜을 만드는 것과 항공기, 거대 선박(항공모함), 철도를 만드는 것은 생산의 규모가 다릅니다. 이 경우 생산은 그 자체가 거대 규모를 요구하기 때문에 생산의 집중과 집적이 자연스럽게 뒤따르게 되고, 자본 소유관계의 독점은 거의 강제적으로 요구되는 셈이지요. 말하자면 개별 자본가가 감당할 수 없는 규모를 국가는 감당할 수 있으므로 국가가 독점의 주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 블로델의 ‘독점’은: 생산 문제와 이론적 연관성이 별로 없습니다. 역사적 연관성은 어느 정도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생산이 커진 것도 역사적 사례로 등장한다고 말하기 때문이지요. 블로델은 독점이란 처음부터 주어진 것으로 전제합니다. 물질생활과 시장경제, 독점으로서의 자본주의, 이 세 체제가 한참 후인 19세기 후반에 나타나는 게 아니며 처음부터 층화돼 나타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독점이 나타날 수 있는 조건들 중에서 가령 특권의 경우에 봉건 귀족들─엘리트 세습 귀족들이 가지고 있던 특권 내지는 그들 사이의 네트워크 등은 처음부터 주어진 것으로서 독점화될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따라서 특정한 역사적 단계인 생산의 거대 집중·집적이 요구되는 단계에서 독점이 발생한다는 맑스주의 담론과는 큰 차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제기됐던 국가 문제로 넘어가볼까요? 국가에 대한 블로델의 언급을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국가라는 것은 자본주의의 공모자가 되기도 하고 방해자가 되기도 하는데, 국가가 자본주의를 배치하거나 회피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즉 국가는 강제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자본주의의 독점화 경향을 제재할 수도 있고 자극할 수도 있는 이중의 능력을 가지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1708년 프랑스에서 국가가 화폐를 대량으로 발행합니다. 당시의 프랑스는 전쟁으로 인해 몰락하다시피 했는데 이때 화폐 발행을 늘림으로써 악화(나쁜 돈)가 화폐가치를 떨어뜨리는 기능을 하게 됩니다. 그때는 국가가 사적 자본가들을 짜낼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지는 가치를 추락시키는 기능을 하게 된 셈이죠. 그 다음에 자본주의가 국가 및 사회와 공모관계에 있었다는 것은 시장법칙, 즉 통상의 교환관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으로 동인도 회사의 경우 국가로부터 허락을 받아 무력을 가진 채 흡사 전쟁을 방불케 하는 무역을 합니다. 이때 동인도 회사는 국가와 강하게 결탁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규모의 문제에서, 국가와 결탁했을 때 기업의 규모가 눈에 띠게 커졌으며 국가는 그 자체가 가장 거대한 근대 기업으로서 스스로 커가면서 다른 기업을 키우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설명을 합니다. 이 부분에서 국가를 서술하는 방식이 재밌는데요. 국가를 일종의 기업으로 묘사하는 것은 20세기 국가를 파악하는 데 유효한 관점이라고 봅니다. 사회주의국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국가는 하나의 근대 기업체로서 그 자체가 소유의 주체일 뿐만 아니라 국유의 기업을 통한 생산 주체로 등장했으니까요. 오늘날 중국의 경우 그러한 사례의 전형으로 보입니다. 또한 국가는 특권을 가진다는 표현에서 특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요. 대상업 회사의 선례에서 회사의 독점의 조건 중 ‘국가가 허락하는 특권’이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네치아에서는 모든 것이 국가 위주였지만 제노바의 경우, 자본 위주라는 차이가 있는데요. 근대 국가가 일찍 자리잡은 리스본에서는 제노바 식의 자유방임 같은 형태가 불가능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삼률법’에 대해서도 국가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 회사의 독점은 세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가능했는데 국가가 기업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전면에 나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중 하나이지요. 즉 회사의 독점 조건으로 국가의 효율성과 전면화가 필요한 셈이지요. 마지막으로 프랑스에서는 민중들이 국가를 불신해서 자본주의가 발전하기에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서술이 있습니다. 이때 ‘콩종크튀르conjoncture’, 즉 ‘종합국면’─다양한 요소나 계기들이 합해지고 연결되는 정세나 상황을 표현─으로 번역되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국가에 대해 믿음이 있을 시 국가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되고 그 역일 경우 반대의 상황이 됩니다. 그럴 경우 자본주의의 발전도 효율성을 발휘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그 발전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전반적으로 블로델이 언급한 국가에 대해 살펴보았는데요. 국가는 어쨌건 자본주의를 촉진하거나 해체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프랑스나 제노바의 경우에 국가가 부정적으로 작동한 사례이고 베네치아나 기타 여러 나라의 경우 국가가 자본주의를 촉진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C: 그런데 상사와 회사를 비교하는 부분에서 국가에 대한 블로델의 서술은 국가가 오히려 자본을 방해하고 간섭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요. 큰 흐름에서 보면 블로델에게 자본주의는 곧 독점이기 때문에 둘 간의 관계가 공모와 충돌의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독점화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그렇다면 국가가 자본을 방해하는 경우는 예외적인 상태로 볼 수 있을까요?

B: 저자는 14-18세기의 권력 형태를 왕정, 절대왕정, 근대국가의 모습으로 차근차근 그리고 있는데요. 해당 세기가 다 국가 형태로서 나타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국가를 장악하고 있는 계급이랄까, 왕정이나 절대왕정의 경우 귀족이었고 근대국가는 브루주아지라고 볼 수 있는데요. 14-18세기를 언급할 때 국가의 모습은 근대적 형태라기보다 소위 봉건제라고 부르는 왕정체제가 우선적으로 거론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랬을 때 국가가 독점을 촉진/저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는데요. 내용토론 4번 항을 보시면 공공시장과 사거래시장에 대해 언급했는데 공공시장은 국가의 제재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장이고 사거래시장은 국가가 제재를 하려고 하지만 자꾸 벗어나려고 하는 시장이기 때문에 국가의 제재가 잘 먹혀들지 않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국가는 사거래시장을 일정 억제하려고 하는 부분도 있지만 한편 시장을 키워서 장악하려고 하는 이중적 모습이 공존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그 경계선이 어디 쯤 일까요? 그것은 개별 자본가들의 힘이 국가의 힘보다 더 거대해 지는 것은 막으려고 하고 그렇지 않는 한에서는 계속 키우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지요. 얼마 전에 중국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요. 알리바바(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로, 1999년 마윈에 의해 설립됐다. 2003년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타오바오를 개설하면서 가파른 성장을 이뤘고, 2004년에는 온라인 결제 시스템인 알리페이를 설립하였다.)라는 자국 회사를 중국 공산당에서 적극적 지원을 통해 키워왔는데 창업주인 마윈의 세력이 커지면서 국제 시장에서도 애플 기업과 맞먹을 정도의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마윈은 중국 공산당에 가입을 했는데요. 당대회가 열리면 당원은 발언권을 갖게 되지 않습니까? 이떄 마윈이 발언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당 중앙위원회 간부가 기업체들이 당의 지시를 따라야한다고 압박을 주는 상황에서 마윈은 가슴에서 쪽지를 꺼내 준비된 듯 보이는 답변을 합니다. 그 내용인즉 기업에 대해 국가가 통제를 하면 기업이 발전하기 힘들어진다는, 간부의 문제제기에 대한 정면 반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마윈이 수개월 간 잠적했고 나중에 골프장에서 나타나긴 했으나 다큐멘터리는 마윈이 중국 공산당에서 통제를 받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연출을 하더군요. 이처럼 기업체가 커지는 것이 중요할 때는 해당 국가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려고 하지만 국가의 운영 자체에 도전하는 형국이 되면 바로 제재를 가하는 방식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국가의 모습들이 블로델이 말하는 14-18세기의 경우에도 일정하게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자: 저도 마침 그 다큐멘터리를 재밌게 보았는데요. 국가와 자본의 관계에 대해 궁금했고 이 책으로 그러한 의문들이 모두 해소될 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봉건제 국가와 자본주의 초기 국가의 결탁관계가 현재의 네이션스테이트로 거론되는 국가 형태와 오늘날의 자본주의와의 결탁하는 방법들이나 과정들이 분명 결정적인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블로델 서술만으로는 궁금한 부분들을 채우기에 부족할 것 같고 관련한 자료나 책들을 더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나온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내용토론 7번 항과 관련되는데요. 그리고 1~5번 항에 대해서도 토론이 이뤄진 것 같습니다. 간략하게 언급이 된 것 같지만, 2번 항(상업세계에서 전문화와 탈전문화의 관계)에 대해서 덧붙일 만한 이야기가 더 있을까요?

B: 보통 전문화라고 하면 위로부터 아래로 진행될 것 같잖아요? 가령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기술의 도입 등이 상층으로부터 이뤄지고, 따라서 전문화 기능은 하층의 경우 탈숙련화-탈전문화가 되면서 마치 포드주의처럼 단순 조립공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또한 AI의 광범위한 보급으로 인해 기술자나 과학자는 높은 평가를 받지만, 반면 배달노동 또는 고객응대처럼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노동은 숙련과는 동떨어진 영역에서 강제되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이러한 전문화/탈전문화의 개념으로는 블로델의 논의가 유효하지 않지요. 블로델은 적은 자본일수록 아주 구체적인 영역에 투자해 발전시키는 경향이 있고 반면에 돈이 많을수록 구체적인 영역을 벗어나 광범위하게 돈을 투자하고 수익을 올리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오늘날 종합상사랄까요? 이런 형태로의 발전경향이 있었다는 취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관련해서 다른 분들 덧붙이실 말씀 있을까요?

A: 아마도 그 (종합상사와 같은) 전형이 구글이나 아마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들 말씀 듣다가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요. 아마도 내용토론 1번 항과 연관이 될 것 같은데 책에서는 541쪽 둘째 단락과 관련합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본주의적인 성공이 돈에 달려 있다는 말은 이때의 돈을 모든 사업에 필수적인 자본의 뜻으로만 보면 그야말로 하나마나한 소리이다.” 이러한 말의 맥락에서 제가 느끼기에 블로델은 돈을 주어진 것 정도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돈을 벌기 위한 필수적인 정보력, 원거리무역 능력, 국가와의 결탁 능력 등으로 돈을 설명하는 방식 때문인데요. 맑스와 비교하자면,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에서 맑스가 산노동(living labor)을 통해 자본의 외재성을 본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이 블로델에게는 없기 때문에 자본이 처음부터 주어진 것으로서 자연스럽게 스스로 변화를 거쳐 가는 묘사를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사회자: A님 논의가 중요해 보이는데 어려운 논의 같아서 저는 대답을 못할 것 같습니다. 혹시 다른 분들 추가하실 내용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고 없으시면 쉬는 시간을 가진 후 이어서 논의를 하면 좋겠습니다.

(10분 휴식)

사회자: 6번 항에 해당하는 내용토론부터 이어서 시작해 보겠습니다. 지배욕구(독점)가 아니라 필요가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블로델의 생각을 어떻게 보시나요?

B: 이러한 문제제기를 한 이유를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맑스의 「고타강령비판」에서 능력에 따라 노동하고 필요에 따라 배분하는 것이 코뮤니즘의 원리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것은 고타강령비판 뿐만 아니라 맑스의 다른 저작들에서도 널리 등장하는 관점인데요. 그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블로델이 필요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 상당히 주목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자본주의를 다루면서 물질생활-시장경제-독점의 삼층구조를 사고할 때 물질생활과 시장경제는 독점과는 달리 필요에 의해 구축된 영역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본주의는 독점의 원리로, 시장경제와 물질생활은 필요에 의해 조직된 세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D: 필요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것과 경쟁에 공정한 룰에 의해 합리적 경쟁이 일어나고 분배가 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죠? 제가 블로델을 잘못 이해한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저는 물질생활과 시장경제는 공정한 경쟁의 룰에 따라 자원이 분배되는 영역으로, 자본주의는 독점과 투기에 의해서 좌우되는 영역으로 이해했습니다.

B: 경쟁 대 독점이라고 하는 대립은 자유주의 문법에서는 주요한 항이지요. 독점을 비판하기 위해서 자유주의가 그 근거로 사용되니까요. 그런데 협력, 협동, 협업의 경우 경쟁과 독점이라는 항의 너머 또는 바깥에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경쟁 대 독점이라는 대립을 가지고서는 협력의 문제를 다루기 힘들어집니다. 생물학에서도 이와 유사한 논쟁이 있습니다. 다윈에 대한 비판이 그것인데요. 다윈의 생물학이 경쟁의 문법이기 때문에 협력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것입니다. 경쟁보다 협력이 근본적이라는 입장에서는 경쟁과 독점에 대한 문제를 설명하는 것이 또 다른 문제겠지만요.

C: 맑스와 블로델이 필요라는 말을 각자 다른 의미에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고타강령비판에서 필요는 ‘필요로 하는 삶’에 대한 것이고 그러한 삶의 전제는 ‘일하는 삶’이지 않습니까? 즉 노동하는 삶의 노동자 또는 생산자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받는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블로델은 가령 599쪽의 구절들을 보면 산업적 필요라는 말을 사용하는데요. 이때의 필요란 상인들의 필요로 이해됩니다. 즉 상인들이 재고를 분배하는 방식에서 산업적 필요가 작동한다는 식의 서술로 읽혀지는데요. 따라서 상인의 필요와 생산자의 필요는 다른 필요이지 않을까, 저 역시 이에 대해 더 확장된 고민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D: 그런데 상인의 필요라고 한다면 결국 그것은 상인의 이윤 추구 아닌가요? 그렇다면 그것은 다시 경쟁의 법칙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닐까요? 산업적 필요라고 하는 것은 결국 경쟁의 논리인 이윤 추구와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C: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독점으로 가지 않고 2층-시장경제에서 공정한 경쟁,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한 것 같은데.. 음, 그런데 자유로운 경쟁은 블로델이 언급했던 것과는 배치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블로델이 앞서 언급했던 ‘분배해야 한다’는 것은 일정 룰을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것은 무조건적 자유경쟁과는 배치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D: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은 금융위기 시에 양적 완화를 통해 상황을 해결하려고 했고 우리나라의 경우도 현재 비슷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다만 차이점은 당시의 미국은 양적 완화로 풀었던 돈이 일반 대중에게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기업체에 몰렸기 때문에 문제가 됐으므로, 국민들에게 직접 돈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알맞은 표현을 찾기가 어렵습니다만 결국 독점과 경쟁의 문법으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B: 책에서 필요가 등장한 맥락을 되짚어 볼까요. 1787년 ‘코치닐’이라는 염색에 쓰이는 사치품은 독점이 실패한 사례로 등장합니다. 코치닐은 백년초에 기생하는 연지벌레에서 추출한 색소인데요. 우리가 마시는 딸기우유의 색깔도 이 코치닐 성분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딸기인 줄 알고 마시던 것이 사실은 벌레였다니, 재밌는 사실이죠? 호프 상사는 대대적인 자본의 투하를 통해 매입을 시도했지만 실패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그 실패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호프 상사가 전유럽에 걸쳐 매입하려고 했던 재고는 이미 산업적인 필요라는 법칙에 따라서 재분배되어 있었다. 바로 이 필요라는 것이 주도권을 쥐고 있거나 혹은 쥐었어야 했다.” 즉 재고 정보의 잘못된 전달로 인해 지속적인 매입에도 불구하고 이미 엄청난 생산량이 시장에 풀려있다는 사실을 호프 상사가 알지 못했고 바로 그 점에 대해 저자는 코치닐이 산업적인 필요에 의해 이미 재분배되어 있었다는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코치닐과 같은 필요도가 높은 상품의 경우 산업의 세부적인 영역들과 상품 거래 영역까지 다방면에 걸쳐 확산돼 있기 때문에 독점을 하려고 해도 좀처럼 쉽지 않고 설사 독점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것이 독점의 주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경제의 안정화나 공공복리에 도움을 주는 게 전혀 아니라는 것이지요. 독점을 정당화하는 논리에 대한 비판으로 산업적 필요를 언급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네, 내용토론의 대부분을 해결한 것 같은데요. 7번과 9번 항에 대해 보충 설명을 하고 구절토론으로 넘어가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B선생님 혹시 7번 항(고급화폐와 저급화폐의 차이, 금광의 존재, 인플레이션이 노동계급 사람들과 특권층 사람들에게 미치는 효과)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B: 7번 항은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이라 토론거리로 옮겨보았는데요. 금, 은처럼 가치가 높은 재료로 제작된 고급화폐와 구리, 종이 등의 싸구려 재료로 만들어진 저급화폐가 계급적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급화폐는 특권층이 사용했고 저급화폐는 서민층이 사용했다고 하니까요. 고급화폐의 경우 소지하고 있을수록 그 가치가 올라가는 자산의 성격을 뚜렷이 나타내고 있지만, 저급화폐는 소지해봤자 점점 가치 하락이 나타나기 때문에 교환 과정을 밟지 않고도 그저 사회의 자연 상태에서 노동계급의 사람들은 가치저하를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사회의 경우에도 특권층은 금, 은, 달러인 고급화폐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가치의 상승이 이뤄지는 화폐의 성격상 더 쉽게 부를 축적할 수 있지요. 이것은 소득 또는 분배효과가 소유하고 있는 화폐 종류에 따라 결정돼 버리는 현상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자: 이어서 8번 항(삼분할체제 ‘재론’에서 어떤 측면을 특별히 새롭게 강조하는가)도 이야기 해볼까요? 이 부분은 4장의 거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내용이군요.

B: 블로델 서술의 특징상 결론부에서 주장이 명확하게 정리됩니다. 저자의 관심은 한 가지에 집중돼 있고 동시에 역사적 과정을 훑어가는 역사 서술을 통해서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이론적 정립을 해가는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삼분할체제의 ‘재론’이라고 언급한 것은 말 그대로 삼분할체제에 대해 구체화하거나 수정을 한다는 뜻이겠지요? 그것은 650쪽 마지막에 드러납니다. 자본주의라고 하는 삼층의 구분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물질생활: 일상의 영역’, ‘시장경제: 투명성과 규칙성의 영역’, ‘자본주의: 독점과 투기의 영역’이라는 삼분할 중 특히 경제와 자본주의 사이의 구분이 뚜렷할 수 없음을 지적합니다. 가령 밀이라고 하는 상품은 소비대상일 때 물질생활, 시장경제, 자본주의의 세 영역에 걸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네 단계로 서술하고 있는데요. 즉 ①물질생활에 해당하는 소비대상으로서 밀, ②근거리 무역 시 규칙적인 교역품으로서 밀, ③지방 간의 불규칙적, 투기적인 교역의 대상으로서 밀, 마지막으로 ④원거리 무역의 대상으로서 밀, 이때는 활기찬 투기 대상이 됩니다. 셋째 항은 시장경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 상태로 보입니다. 말하자면 투기의 강도 차원에서 구분된 것이지요. 이러한 작업을 통해 해석할 수 있는 ‘재론’의 핵심은 상업세계 내에서 층이 바뀔 때마다 다른 경제주체(때로는 투기 주체, 때론 생활인, 때론 소매상, 도매상..등) 또는 경제 행위자들이 동시에 바뀌어가면서 동일한 상품의 성격을 재규정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삼층의 세계가 명확히 구분된다는 오해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E: 선생님, 그렇다면 블로델이 독점이 아니라 필요가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논의에서 산업적 필요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상업적 필요와 구분하는 것일까요? 아니라면 산업적 필요와 상업적 필요는 어떤 관련성을 가지는지 궁금합니다.

B: 이 책에서 산업과 상업이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블로델이 역사학자이기 때문에 개념적으로 명확하게 규정된 용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산업과 상업은 일정하게는 구분이 됩니다. 산업은 주로 생산과 관련된 부분인 매뉴팩처로 불릴 수 있는 것이고 상업은 그 산업체가 생산한 것을 유통시킬 때 상업으로 불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만 사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좀 전에 상업세계에 대한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블로델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즉 산업세계까지도 포괄하는 것으로 광범위하게 상업을 설명하고 있지요. 아마도 산업적 필요는 물질생활과 시장경제에서 작동하고 있는 생산영역들의 요구에 다 맞춘 필요라고 보지 않았을까요.

C: 블로델이 물질생활을 소비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측면에서 보면 소비에 강조점을 두는 것 같은데요. 그것은 그가 시장경제의 시선에서 물질생활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을 필요의 관점으로 보면 물질생활의 필요는 소비의 필요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고타강령비판에서 생산자, 노동자를 소비의 주체로 전제할 때의 필요는 개별 생산자의 소비에 대한 필요로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물질생활을 생산자 중심으로 이야기 한다면 생산을 위한 소비? 생산의 원동력이 되는 필요? 늬앙스에 따라 달리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B: 우리가 소비라는 말을 개인적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소비로 접근하기 쉬운데요. 사실 생산이라는 것도 소비 과정이지요. 가령 빵공장에서 밀가루를 소비한다든지, 자동차 공장에서 금속자재나 전기를 소비한다든지. 최종 소비자인 개인들을 생각하곤 하지만 생산하는 과정에서의 산업적 소비가 소비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따라서 소비 개념은 폭넓게 이해돼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필요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가 능력에 따라 일하고 분배받는다고 했을 때 그때 각자는 개인들로 생각하기 쉽지만 개인뿐만 아니라 집합체─공장, 사무실 등─도 각자에 속할 수 있습니다. 한 사회의 자원을 배분함에 있어서 개인차원의 배분도 중요하지만 산업적 집합체의 필요만큼 분배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 됩니다. 이미 그러한 부분은 현재도 이뤄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식으로 필요개념도 다층적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C: 그런데 ‘생산도 넓게 보면 소비’라는 말은 사실은 그 말을 뒤집어도 가능하지 않나요?

B: 맞습니다.

C: 그렇다면 결국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서 전개되는 논의는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맑스는 생산에 방점을, 블로델은 소비에 방점을 찍고 이야기를 진행한다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B: (블로델은) 소비보다는 유통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C: 소비와 유통이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데 블로델은 소비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를 한다고 읽히는데, 앞서 사치에 관한 부분에서 특히 소비를 강조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조금 다른 맥락일 수 있는데요. 블로델이 유통과정 내 중개인 또는 매개인의 존재를 중요하게 다루는 것 같습니다. 관련해서 나투르의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과도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맑스에게는 중개/매개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게 다뤄지는지 궁금합니다.

사회자: C님이 큰 질문들을 던져주신 것 같습니다. 다만 시간이 촉박하여 구절토론으로 넘어가서 이야기를 진행해도 될까요? 구절토론도 7분 내에서 정리해야 할 것 같네요.

B: 큰 문제들이라.. 구절토론 첫째는 자본주의의 탄생과 기원을 이해하는 문제인데요. 블로델은 경제, 정치, 사회, 문화가 종합적으로 그 기능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현대의 다원주의적 설명과 가까워지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보면 다수의 사람들에게 별다른 비판의식을 필요로 하지 않고 하나의 당연한 사실 정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맹점이 있는데요. 맑스의 경우 자본주의의 기원을 설명하는 논리가 차곡차곡 쌓이는 것처럼 개념의 단계들을 밟아나갑니다. 원시적 축적부터 폭력을 동원한 생산수단의 쟁취 등. 특징적으로 폭력을 도입하기 때문에 정치적 설명법이 기원 차원에서 두드러집니다. 그런데 일정 단계가 지나면 경제가 핵심적 계기로 등장하면서 부정적인 요소로 나타납니다. 엥겔스가 최종심급으로까지 언급하기도 했는데 이처럼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경제의 역할이 우선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블로델은 이와 대조적입니다. 마지막 역할을 하는 것은 ‘역사’라고 말하는데요. 역사에 대한 블로델의 생각이 무엇이었길래 역사를 주어로서 삽입할 수 있을까요? 역사가 최종적으로 결정을 짓는다고 하니까 역사 결정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러나 이 부분은 지금까지의 서술 과정을 다시 정리해서 회부해 짚어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당장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남은 부분을 읽으면서 이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면 유익하지 않을까 합니다.

사회자: 구절토론에 덧붙여 꼭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단적으로 영국이 인도를 집어 삼켰다는 것이 정말로 맞는 말일까 라는 대목이 있었잖아요? 635쪽입니다. 이것은 블로델의 역사 서술방식 그리고 역사에 대한 관점의 어떤 단적인 장면이 드러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인도 내에 이미 지배를 받아들일 토대 같은 것들이 내발적으로 있었다는 서술로 읽혀지는데요. 그런데 맥락을 지우고 그러니까 경제의 문제를 지우고 봤을 때, 블로델 본인의 지배 당사자 위치성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발언은 역사가인 블로델을 재평가해야 할 문제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삼층의 구분과 그 안에서 경제 주체나 행위자를 다루는 방식들이 서구 중심의, 서구 보편사의 관점으로 기술됐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즉 제3세계나 식민지, 후발 근대국가의 위치성이 균질적이고 등가적인 정도로 다뤄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둘째 문제로 넘어갈까요?

B: 둘째 구절토론은 문맥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질문은 아니고 블로델이 다수와 소수의 문제 즉 민주주의의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사회자: 그렇다면 두 개의 구절토론과 우리시대와의 비교 문제는, 중요하기도 하고, 다음 세미나 때 연결해서 논의를 이어가면 어떨까요?

모두: 좋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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