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유럽을 지방화하기』 2장 자본의 두 역사

작성자
bomi
작성일
2023-03-01 14:45
조회
134
『유럽을 지방화하기』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지은이),김택현,안준범 (옮긴이)그린비2014-08-30




2장 자본의 두 역사

1. 맑스의 ‘자본’ 비판에서 자본 범주 안에는 19세기 유럽 사상의 두 측면이 붙박이로 들어있다. 계몽사상에서의 1) 추상적 인간 관념 2) 역사 관념. 맑스는 이 두 가지 사유 요소를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근대 유럽 제국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비판적 도구로 삼는다. 『서발턴 연구』 프로젝트는 인도 맑스주의 역사학의 전통이 없었다면 생각할 수 없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121)

2. 이 장은 맑스의 자본 비판과 분리될 수 없는 두 가지 관념, 1) ‘추상 노동’, 2) 자본과 역사의 연관을 자세하게 조사하기 위해 맑스의 철학적 개념인 ‘자본’을 검토한다. (126)

3. 맑스의 ‘추상 노동’이라는 관념에는 법적 자유(권리들, 시민성)라는 계몽 사상의 주제와 이 자유를 담지한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인간 개념이라는 계몽 사상의 주제가 결합되어 있다. 우리는 ‘추상 노동’ 관념을 조사함으로써 유럽 계몽 사상의 휴머니즘적 유산에서 중요한 대목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추상 노동’을 역사의 차이들이 어떻게 자본 논리로 지양되는가에 대한 설명의 일부로 읽을 수 있다. 맑스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전적으로 상이한 인민들과 역사들로부터 어떻게 인간 활동 측정의 동질적인 공통 단위를 추출해 낼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방식을 ‘추상 노동’에서 구했다. (127)

4. 이 장의 후반부에는 맑스가 두 유형의 역사를 구별한 것을 발전시킨다. 역사1) ‘자본에 의해 정립되는’ 역사들, 역사2) 자본의 ‘생애’에 속하지 않는 역사들. 이 둘의 구별을 탐구해 차이들이 자본 논리로 지양된다는 관념에 맑스의 사유들이 어떻게 저항할 수 있는지를 밝힌다. (127,8)


<자본, 추상 노동 그리고 차이의 지양>

1. 맑스의 자본에 대한 논의에서 근본적인 것은 상품에 대한 관념이며, 상품에 대한 이해에서 근본적인 것은 차이에 대한 질문이다.
상품 교환: 역사와 물질적 속성과 사용가치가 다른 사물들을 교환하는 것.
상품 형태는 차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유예한다. (128)

2.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교환은 공동체의 형성에서 중심적이다. 그런데 ‘상이하고 비동등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에서 교환이 공동체의 토대로 작용하려면 등가성의 척도가 있어야 한다. 그는 ‘합의’(또는 법)을 불러들여 이 문제를 해결했고 이를 표상하는 것은 화폐다. (129)
맑스는 상품들 사이의 차이를 매개한 항이 단순히 합의(즉 정치적 의지의 자의적인 표현)일 수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다른 두 상품 중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대해서 동질적인 것을 표시하는 것은 양자 모두에 공통으로 들어있는 동질적인 어떤 것은 표시하는 한에서만이다. 맑스에 의하면 이 동질적인 것은 바로 인간 노동이다.
차이들을 매개하는 공통의 실체인 이 인간 노동이 바로 맑스가 이해한 ‘추상 노동’이었고, 그는 이것을 “가치 표현의 비밀”이라고 묘사했다. 그리고 이러한 ‘비밀’은 부르주아 가치가 헤게모니적인 지위를 획득한 사회에서만 드러날 수 있었다. (130)
부르주아 헤게모니하의 계약적인 평등의 일반화가 맑스의 통찰이 태어나는 데 역사적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추상 노동이라는 관념은 계몽 사상 철학자들이 유포한 추상적 인간이라는 관념의 특수한 사례였다. (131)

3. 추상 노동이란 무엇인가?
맑스에 의하면, ‘추상 노동’은 “노동의 그 어떤 종별적 유형(현실적, 구체적 노동)과도 무관한 것”을 지시한다. (131)
맑스는 마치 추상 노동이 에너지의 순전히 생리적인 지출인 것처럼 쓰곤하는데, 그렇다고 이를 데카르트적 의미에서의 연장을 속성으로 지니는 실체로 생각하거나 “신경과 근육 에너지”롸 환원하면 이는 맑스를 오독하는 것이 된다. (132) 맑스는 ‘추상 노동’이 대상성을 소유한 “사회적 실체”라 말하지만, 즉각 이 대사성을 “유령 같은” 것으로 규정한다. “상품체의 대상성은 감각적으로 포착되는 데 반해 가치로서의 상품에는 단 한 소각의 자연 소재도 들어 있지않다.” (133)

4. 추상 노동은 어떻게 개념화되어야 하는가?
- 수행적이고 실천적인 범주로서의 추상 노동:
자본의 기호아래 삶을 조직한다는 것은 마치 노동이 항상 박혀 있으며 또 어떤 특수 노동이든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모든 사회적 직물tissue로부터 노동이 실제로 추상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133) (야만인들과 달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추상하기라는 특수 노동이 그 자체로 여타 유형의 구체적 노동의 전부 또는 대다수의 한 요소가 될 것이며, 그리하여 관찰자에게 더욱 가시적으로 될 것이다. “추상[이]... 실천 속에서 진실이 된다.” 추상 노동의 준거는 어떤 실천, 어떤 활동, 추상화 작업이라는 어떤 구체적인 수행인데, 이 작업은 ‘노동’이라 불리는 추상적 범주에 대해 말할 때 경제학의 분석적 전략들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134)

5. 추상화는 그 실존에 대한 의식적인 인지에 선행한다. “사람들은 교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먼저 각기 다른 생산물을 가치로 등치시키는데, 바로 이런 행위를 통해서 그들은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서로 다른 노동을 인간 노동으로 서로 등치시키는 것이다.”(136)
추상화-추상하기의 노동-의 수행을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구성적인 특징으로 가시화하는 것이 규율 과정들이다. 공장에서의 노동 분업, 공장 규제 규정들, 기계와 인간의 관계, 공장 생활 조직을 지도하는 국가 입법, 현장 감독의 일 등. (137)

6. 『자본』 1권에서 맑스는 ‘노동’ 범주의 특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자신이 노동자의 ‘목소리’라 부르는 것을 무대에 올린다. ‘노동자’가 자기 내면을 성찰하는 목소리로 자본가에게 말한다. “나는 내일도 오늘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상태의 힘, 건강, 원기를 갖고 노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추상화가 뜻하는 바는 ‘정서들’은 추상화된 노동자와 역시 추상화 형상인 자본가의 이 상상의 대화에서 아무 구실도 못한다는 것이다. (138)
합리적인 집단적 실체의 형상인 노동자 안에서, 맑스는 노동 계급의 통일성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 문제는 경험적 노동자들이 감성적, 심리적으로 연대하는 그런 사안이 아니다. ‘노동자’는 그 구성상 추상적이고 집단적인 주체이다. 스피박이 우리에게 환기시킨 바와 같이, 즉자 계급과 대자 계급의 변증법이 작동하는 것은 집단적이고 추상적인 주체 안에서다. (139)


<비판으로서의 추상 노동>

1. 맑스에게 ‘추상 노동’이라는 보편 범주는 자본에 대한 묘사이기도 하고 자본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141)
추상 노동이라는 관념은 자본의 해석학의 중심 특성을 재생산한다. (141) 하지만 ‘추상 노동’은 동일한 해석학에 대한 비판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맑스에게 추상하기의 노동은 특정 유형의 부자유를 정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의 즉, 전제despotism는 자본에 구조적인 것으로 단순히 역사적인 것이 아니다. (142) “규율들은 근대적 생산양식의 자연법칙들로 여러 가지 상황을 통해 점차로 발전해 온 것들이었다. 그것들이 하나의 기준으로 만들어져서 공인된 다음 국가에 의해 공포된 것은 오랜 기간에 걸친 계급 투쟁의 결과였다” 맑스는 또한 자본 그 자체에 내재적인 것으로서의 ‘자본에의 저항’에 대해 쓰고 있다. 자본의 자기 재생산은 “끊임없이 극복되면서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정립되는 모순들 안에서 운동한다.” (143)

2. 맑스는 이 저항을 자본의 논리 그 자체 안에 자리매김한다. 말하자면 그는 그것을 자본의 역사적인 ‘생성’becoming보다는 오히려 자본의 구조적인 ‘존재’being안에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맑스가 ‘자본의 전제’라고 본 것이 자본주의의 역사적 단계와도 무관하며 경험적인 노동자의 의식과도 무관하다는 점이야말로 그의 논지에서 중심적이다. 자본주의 나라가 발전된 나라인지 아닌지는 맑스의 논지에서 중요하지 않다. (143)

3. 맑스는 ‘추상 노동’이라는 자본주의적 실천 안에 박혀 있는 추상적 인간이라는 전망을 활용하여 자본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비판을 낳는다.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인간이 동등하다는 개념이 대중적인 인식으로 이미 확립”되어 있기에, 같은 관념을 이 사회 비판에 사용할 수 있었음을 그는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사적 차이는 이 비판에서 지양되고 유예된 채로 남게 된다. (149)


<역사들과 자본 분석성>

1. 맑스는 자본의 ‘존재’와 ‘생성’을 구별하는 관점에서 자본의 과거에 대해 쓴다. ‘존재’는 자본의 구조적 논리, 즉 자본이 전면화된 상태를 지시한다. ‘생성’은 역사적 과정을 지시하는데, 이 과정을 통해서 자본의 ‘존재’의 논리적 전제들이 실현된다. ‘생성’은 자본에 앞선 달력상의 과거 또는 연대기적 과거가 아니라 자본 범주에 의해 회고적으로 정립되는 과거이다. ‘전제’가 설정되다는 것이 역사의 실제 과정이 아니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맑스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목적론이 아니다. (149,50)

2. 역사 1과 역사 2
역사 1:
(‘전제’인 역사를) 맑스는 “자본에 의해 정립되는” 자본에 선행하는 것들이라고 불렀다. 여기에서 자유로운 노동은 자본주의 생산의 선행 조건이기도 하고 “불변적 결과”이기도 하다. 이것은 우리가 자본과 결부시키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역사이다. (151)
역사 2:
역사 2의 요소들 역시 자본에 “선생하는 것들”이지만, 그러나 “자본 자체에 의해 확립되는 선행하는 것들이 아니며, 자본 자신의 생애의 형태들이 아니”다. (151,2)

3. 역사 2, 어떻게 볼 것인가?
따라서 “자본에 선행하는 것들”(역사 2)은 역사 1을 구성하는 관계들일 뿐 아니라 자본 논리의 재생산에 부합하지 않는 다른 관계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맑스는 화폐화 상품처럼 자본의 기능과 밀접하며 그 기능에 필수적인 실체들을 역사 2의 사례로 든다. (152) 화폐와 상품의 역사 안에서 읽어내는 이질성의 사례는 자본 논리의 재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관계들이 그 재생산에 기여하는 관계들과 내밀하게 접속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역사 2들은 자본과 분리된 과거들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 안에 내재하면서 자본 자체의 논리의 진행을 중단시키고 이 진행에 구두점을 찍는다. (153)
‘비-자본가’ 또는 ‘비-노동자’라는 맑스의 범주들의 애매함에 주목해야 한다. ‘아직 아님’을 역사가의 어휘 목록에 따라 읽는다면, 우리는 역사를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필요한 일정 시기로 보는 관념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154) 우리는 ‘아직 아님’이라는 표현은 자본의 존재 바로 그 논리에 내재적인 지연과정을 지시하는 것으로 해체적으로 읽는 것을 허용한다. (155)
차이(역사 2)는 자본에 외재적인 것이 아니고 또 자본에 포섭된 어떤 것도 아니다. 그것은 자본과의 내밀하면서도 복수적인 관계들, 즉 대립에서 중립까지 다 아우르는 관계들 안에서 살아간다. (155)
역사 2가 자본의 사상들에 대안적인 역사들을 서술하는 프로그램을 또렷하게 해주지는 못한다. 역사 2를 역사 1이 총체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지속적으로 중단시키는 기능을 담당하는 범주라 생각하는 것이 더 낫다. (156)
역사 2에 대해 필연적으로 전자본주의적 또는 봉건적이라거나 심지어는 본래 자본과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틀린 생각일 것이다. 역사 2의 관념은 우리가, 자본에 대한 맑스의 분석 안에서, 인간의 귀속과 다양함의 정치를 위한 여지를 갖는 것을 허용한다. (158)

4. 자본의 역사적 형태는 아무리 글로벌해져도 결코 보편적일 수 없다. 글로벌 자본은 자본의 보편적 논리를 표상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자본 형태는 어떤 것이든 누군가의 역사 2들에 의해 변경된 역사 1로 이루어진 일시적 타협이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에 보편자는 자리를 점유하는 자로서만 실존할 수 있으며, 언제나 그 자리는 보편자를 자임하는 역사적 특수자에 의해 참칭된다. (163)

5. 자본은 철학적-역사적 범주이고, 이는 곧 역사적 차이가 자본에 외재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에 구성적이라는 말이다. (164)

6. 자본의 글로벌화는 자본의 보편화와 같지 않다. 글로벌화가 뜻하는 것은 맑스의 비판에 그토록 결정적인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자본 논리인 역사 1이 실현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자본의 자기 실현을 중단시키고 지연시키는 것은 항상 역사 1을 변경하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역사적 차이를 주장하는 데 근거 노릇을 하는 다채로운 역사 2들이다.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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