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일본을 찾아서 1』 6장 '서민문화의 발견' 발제문

작성자
deepeye
작성일
2022-07-14 19:36
조회
381
17세기에는 도시의 발달과 함께 식자능력이 하층으로까지 퍼져나갔다. 시, 그림, 다도, 연극 등과 같은 상층 문화의 경계 역시 허물어졌다. 이번 장에서는 사회 전반적인 가치관의 변화, 그리고 예술을 통해 반영된 겐로쿠 시대 ‘서민문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지배계급의 개명

내전 당시 필요한 것은 강한 사무라이였지만, 도쿠가와 시대 이후 사무라이의 ‘개명’ 작업이 주요 현안으로 떠올랐다. 문민정부에 유용한 인재가 필요함에도 상당수 사무라이들이 문맹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적게나마 1715년까지 20개 번에 사무라이를 위한 공립학교가 설립되었고, 초기에는 개인교사나 불교 승려에 의해 교육이 이루어졌다. 이런 기조하에 17세기 말쯤 들어서 문맹인 사무라이는 시대에 뒤떨어진 존재로 여겨졌고, 18~19세기 무렵에는 한시와 하이쿠, 바둑, 군사행정에 대한 능력 정도(?)는 갖추고 있어야 했다. 개명은 사무라이들의 폭력성을 잠재우는 화평을 수반했으며, 역설적이게도 1657년의 메이레키 대화재는 평화로운 생활양식에 더 알맞게 도시를 재건할 계기가 되기도 했다.(244p~245p)

도쿠가와 시대에는 건축, 회화, 조각, 서예, 연극에 대한 후원과 발전이 크게 이루어졌다. 회화의 경우 대표적으로 중국풍의 가노파, 그리고 도사파가 엘리트들이 선호하는 미술적 기준을 세웠다. 건축 분야 역시 나라가 평화로워진 덕분에 지배계급의 많은 후원을 받았다. 거의 모든 사찰이 도쿠가와 시대 초기에 재건되었는데, 대부분 중국 건축양식을 맹목적으로 모방하던 경향에서 벗어나 단아한 특징을 띄었다. 하지만 대표적인 예외로 중국 명대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따른 만푸쿠지, 이에야쓰를 신격화해서 위패한 신사인 닛코도쇼구가 있다.(246p 참조) 다도의 경우 교양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습득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도공들에게 절호의 기회를 안겨주었다. 또한 도시의 발달로 평범한 도공들 역시 전국의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서민들에게도 목기가 아닌 질그릇 사용이 보편화 되었다. 이처럼 귀족들이 최상급 회화와 도자기를 향유하기도 했지만, 시대가 진보함에 따라 서민들에게도 그 경계가 열리며 ‘서민문화’가 등장했던 것이다. 잰슨은 법령으로 지배층에 국한했던 몇몇 문화보다 널리 확산되고 공유되었던 이런 문화들을 높이 평가했다.(247p~249p)

2. 서적과 식자

평화기 일본에서 사무라이만이 식자능력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고닌구미(5인 감시제도) 책임자의 법령 보고, 촌락 지도자의 인구 파악과 문서화, 상인의 회계장부, 교차로와 다리에 설치된 고사쓰의 공고문 독해 등 도시 생활을 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것으로 자리 잡았다. 도쿠가와 치세의 첫 세기 이후에는 서민 교육기관인 데라코야가 설립되기도 했다.(249p) 서양과 달리 일본의 출판은 주로 목판인쇄로 이루어졌다. 왜란 당시 조선에서 활자인쇄술을 훔쳐와서 한동안 사용한 적 있지만, 한자와 두 가지 체계의 발음기호로 보완된 일본어의 특성상 목판이 더 적합했기 때문이다. 또한 인쇄기를 비롯해 기술적 측면이 중요했던 서양의 인쇄업과 달리, 일본의 인쇄업은 인적인 부분이 더 중요했다.(250p~251p)

의외로 인쇄업은 개인사업으로 이루어졌으며, 막부는 출판물에 대한 철저한 통제, 선별적 승인과 같은 조치를 거의 취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교 관련 출판에 대한 경계, 도쿠가와가와 현실정치에 대한 논의가 금기사항이긴 했지만, 대개 조치를 취할 필요가 거의 없었으며, 처벌이 동반된 사건들은 막부가 정책적으로 개혁과 중흥을 추구했던 세 기간(1729~1736, 1787~1793, 1837~1843)에 한정되었다. 17세기 후반에는 상업과 관련된 실용적인 내용을 담은 오라이, 사교술에 대한 지식을 담은 중보기, 그리고 서양의 가정용 백과사전에 가까운 세쓰요슈로 분류되는 책들이 유행했다. 17세기에 제작된 출판물의 총 수는 7,200종에 달하며, 이것은 당시 일본의 독서열과 출판 규모를 가늠케 한다.(251p~253p)

3. 오사카와 교토

18세기를 기점으로 에도는 교토, 오사카를 따라잡고 일본 최대의 도시가 되었다. 이 세 도시를 불러 흔히 산토, 즉 ‘세 수도’라 불렀다. 간사이에 위치한 두 도시는 에도를 정점으로 하는 여타 조카마치와 구조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조카마치가 군사 중심지로서 사무라이들의 거주 비율이 높았다면, 교토와 오사카는 사무라이들의 수가 적었고 다른 집단이 우선적이었다. 특히 교토는 조정과 공가의 고향이라 부를만했다. 그만큼 거주 주민과 생산품이 세련되기로 유명했고 도쿠가와 시대까지 그 명성을 지켰다. 이외에도 교토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것은 사찰이었다. 진종(眞宗)의 본산인 히가시혼간지와 니시혼간지 그리고 정토종(淨土宗)의 본산인 지온인 역시 교토 중심부에 위치하며 위엄을 드러냈다. 사찰들의 내부는 모모야마궁을 모방하여 화려하게 장식됐으며, 각 사찰이 주재하는 불공은 주변 조경의 장엄함과 접목되어 극적인 효과를 연출했다. 권력의 중심지가 에도로 바뀐 후에도 교토가 순례자들로 북적인 이유였다. 막부는 마치부교, 교토 쇼시다이를 두어 교토의 조정을 견제했다.(253p~255p)

오사카는 항구와 상업을 통해 일본역사에서 늘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도쿠가와 통치 첫 세기에 일본경제의 중심이 되었고, 다이묘들은 오사카에 형성된 전국적인 시장을 이용해 잉여 쌀을 판매했다. 이렇게 얻은 이익으로 참근교대에 소요되는 비용을 충당했다. 오사카에는 수많은 수로가 있었고 그 길을 따라 창고(구라야시키)가 펼쳐졌는데, 초기에는 사무라이들이 관리를 맡았지만, 숫자와 계산을 ‘상점주인의 도구’라고 경시하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합리적 사고를 우선시하는 서민 출신 상인에게 필적할 수 없었다. 이들은 번의 대리인으로서 세 가지 역할을 했다. 1) 번의 잉여 쌀과 물품을 판매하고, 2) 상층 사무라이들의 사치품을 구매하는 것 그리고 3) 돈을 융통하는 것이었다. 특히 그들의 ‘현물’ 시장과 선물거래는 복잡한 자본주의적 교환을 위한 물족인 토대를 제공하기도 했다.(256~258) 이런 환경 속에서 자연스레 대규모 상사 역시 생겨났다. 무가의 가훈이 공적인 측면을 강조했다면, 상가의 가훈은 자기 분수를 지키고 사적인 이익에 충실하도록 하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엄격한 가법을 제정해 근대적 기업으로 나아가는 기반을 드러내기도 했다.(260p~264p 참조)

4. 겐로쿠 문화

겐로쿠 시대는 1668년부터 1704년까지를 가리킨다. 이 시기 일본문화는 결정적인 변화를 맞기 시작했고, 겐로쿠라는 용어는 ‘도쿠가와 서민문화’와 맞바꾸어 쓸 수 있다. 5대 쇼군 쓰나요시의 동물보호령은 서민들에게 부담을 안겨주었지만, 상인의 부와 대도시의 유흥구에서 드러나듯 번영도 누릴 수 있었다. 특히 후자의 측면이 부각되어, 겐로쿠 시대는 몇 세기가 지난 뒤에도 경제적 성장을 가리키는 은유로 통용되었다. 이때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당시 쏟아져 나온 시와 산문, 그리고 목판화와 연극에서 드러나는 특징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265p)

가령 일본 시의 전통에서 한 장을 차지하고 있는 마쓰오 바쇼는 유랑 중 시적 기행(紀行)을 남겼는데, 이때 지방, 산촌 사람들과 시 경연을 벌인 일화가 많았다. 이것은 시가 도시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상당히 광범위하게 많은 사람들이 향유했음을 보여준다. 산문에 있어선 한자보다 훨씬 읽기 쉽도록 가나로 쓴 책인 ‘가나조시’가 출판되기 시작했다. 이때 공가나 의사 외에 가난한 사무라이나 불승도 작가가 되었다. 대표적인 경우로 일본 최초의 전업작가로 꼽히는 아사이 료이가 있다. 특히 그의 유명한 『우키요 이야기』는 불교적 무상함을 뜻하던 ‘우키요’를 조류처럼 흘러가는 현재의 쾌락으로 변용했다는 점에서 시대의 통속적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266p~268p)

연장 선상에서 1682년 소설가 이하라 사이카쿠는 『호색일대남』이라는 난봉꾼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우키요조시’라는 새로운 소설양식을 개척했다. 우아한 문체에 당시 조닌 문화와 친숙한 테마를 결합시킨 것이다. 여기에 히시카와 모로노부와 같은 일군의 화가들이 표지 삽화를 그렸는데 이를 ‘우키요에’라고 한다. 소설 내용과 마찬가지로 덧없이 사라지는 미색과 순간의 기쁨과 같은 특징을 드러내면서, 말과 글이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당시 문화를 보여준다. 서민들의 삶을 화폭에 담았던 우키요에는 조닌을 즐겁게 한 것뿐만 아니라, 19세기 서양의 수집가들을 자극했고, 더 나아가 인상파 화가들을 매료시키기까지 했다. 한편 예술 영역에 파고든 유흥구는 유교적 도덕관에서 보면 눈살 찌푸릴 만하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매춘업과 도덕적 불명예를 결부시키지 않았고, 농촌여성의 유흥구 진입이 자기희생적인 덕행으로까지 간주되는 문화 덕분이었다.(269p~273p)

겐로쿠 시대를 알기 위해선 연극 역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연극은 당시 모든 계층의 일본인을 속박했던 위계화된 의무에 대한 가장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준다. 대중에게 익숙한 ‘가부키’라는 말의 본뜻은 틀에서 벗어난 마구잡이 식의 행동을 가리키는데, 세키가하라 전투 직후 몇 년 동안 활동했던 이즈모노 오쿠니라는 여성의 춤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초기에는 매춘업자들에 의해 유녀들이 무대에 올랐으나, 막부의 금지 정책으로 무대는 남자배우들의 세계가 되었다. 이때 여자배우를 두고 싸우던 사무라이들은 이제 남자배우를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다.(273p~274p)

이후 가부키 역시 전쟁무용담, 인형극 등으로 변형되며 다양한 시대극과 세태극이 만들어졌다. 특히 가장 뛰어난 극작가로 꼽혔던 지카마쓰 몬자에몬은 인정(人情, 닌조)과 의리(義理, 인정)의 딜레마에 갇혀 정부와 동반 자살하는 신주 이야기, 그리고 억울하게 죽은 주군의 원수를 갚는 47인의 로닌 이야기가 담은 「추신구라」를 통해 당시의 세태를 민감하게 반영했다. 전자의 서사가 사회관계 속에 형성되어 있는 엄격한 도덕률의 압박을 보여줬다면, 후자는 봉건적 가치관의 쇠퇴 속에서도 공동체에 헌신하고 죽어가는 ‘국가적인 문화의식’의 형성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사람이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가 사람을 만들면서 사무라이들은 서민들의 고충을 이해했고, 서민들은 몰락한 사무라이에게 공감할 수 있었던 게 겐로쿠 문화였다.(276p~28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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