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일본을 찾아서 1』 3장 '대외관계' 발제문

작성자
jesbest
작성일
2022-07-16 11:51
조회
277
도쿠가와 시대에 관한 대부분의 서술은 막부가 대다수 외국인을 배척했다고 강조하나, 실제로는 대외정책이 있었다. 서양세계보다는 아시아와 더 많은 관련이 있었기에 서양 작가들이 ‘쇄국’이나 ‘고립’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또한 대외정책은 지속적으로 변화했다.

1. 배경

도쿠가와씨가 흥기할 무렵 일본은 서유럽 해양국가의 제국 및 국민국가 건설, 유럽의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 아시아에서의 왕조교체 등에 의해 크나큰 영향을 받았다.
-포르투갈, 스페인, 중국(세금 은납화 추진), 영국과 저지대 국가(베네룩스 3국: 직물↔향신료와 비단) → 해상경쟁은 동남아시아의 바다로 확대되었다. 당시 이뤄진 무역활동의 상당 부분은 일본과 신세계의 은을 중국으로, 중국의 비단을 일본으로 수송하기 위한 노선을 확보·유지하는 것이었다.

16세기의 종교개혁은 유럽의 그리스도교 체제를 뿌리째 뒤흔들어놓고 군주 개인의 정치적 목표와 결합하면서 한때 통일적이었던 그리스도교를 산산조각내 버렸다. 가톨릭의 반종교개혁을 지원하는 군주들은 16세기 중반 이후 아시아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예수회 사제들: 1540년 인도·중국·일본 향해 나아가기 시작(전투와 항해 신도구 유입)
16세기의 상업적·정치적 활기로 일본에서는 무역과 노략질이 다시금 증가하게 되었다. 16세기 중반 이후 포르투갈인들이 들여온 화승총은 일본의 통일과정을 촉진시켰다. 16세기 말 히데요시는 해적질을 조직화된 군사행동(1592년 조선 침공)으로, 통일자의 주인이 찍힌 공문서(해외무역 허가증인 주인장)를 소지한 선박들에 의한 무역으로 대체했다. 히데요시는 또한 선교사에게 등을 돌리고 1587년 규슈 평정 뒤 그들에게 추방령을 내렸다. 그러나 무역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은 중국 명조의 정치적·군사적 분열을 가속화했으며, 명조는 만주족의 공격을 받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2. 조선과의 관계

이에야스의 첫 과제는 조선 침공으로 인한 손실을 원상 복구하는 것이었다.
-1605년 강화. 1609년 기유조약: 조선과 무역 재개 허락. 부산 한 곳에서. 왜관에 주거제한.

-조선과의 관계: 막부 가신이자 쓰시마 번주인 소 씨 관리 (중국 비단실, 인삼 ↔ 은)
대규모 조선 사절단이 도쿠가와 시대 동안 열두 차례 일본을 방문했다. 1655년 이후 모든 통신사는 새 쇼군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일본에 왔다. 통신사 방문은 300~500명이 동원되는 인상적 행사로 목적은 외교적·문화적인 것이었다. 역대 통신사 수행원은 34종의 여행일지를 남겼다. 조선인이 중국의 문화전통에 더 친숙해, 통신사는 일본인들을 압도했다. (주자학 연구, 의학, 도예 등) 도쿠가와 시대 내내 조선과의 관계는 중요한 문제였으나, 무역량 감소와 막부 재정 악화로 1811년 파견된 마지막 통신사는 쓰시마에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3. 서양의 여러 나라

이에야스는 서양과의 무역 지속·확대에도 열의를 보였다. 17세기 유럽에서 가톨릭 진영과 경쟁·반복하던 네덜란드인과 영국인 유입 덕분에 이에야스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1600~1620년 영국인 윌리엄 애덤스. 1600년 영국 동인도회사 설립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실질적 독립된 공국): 향신료·설탕·도자기의 최대 수입·판매처. 마카오에 오는 포르투갈 선단 및 마닐라에서 오는 스페인 선단과 경쟁.

-네덜란드, 영국 동인도회사 일시적 동맹 ↔ 이베리아 세력
자바에 바타비아 건설, 일본 히라도에 자리잡음(네덜란드 1609년, 영국 1613년)
마카오에서 오는 포르투갈인의 거대 상선은 일본의 중요 거래선이었으나(~1639년 포르투갈 추방될 때까지) 선교사와 그리스도교는 또 다른 문제였다. 막부는 히데요시 법령·행동 계승.
스페인의 포르투갈 합병은 먼저 들어온 예수회 선교사들과 스페인 배를 타고 온 새 교단의 선교사들간 선교 경쟁을 야기해 막부의 그리스도교 금지령 시행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영국 덜 위협적. 네덜란드는 이데올로기가 완전히 배제된 통상 제의. → 성공했으나 사태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 포르투갈인 위한 나가사키항의 데지마가 거주지 됨. 많은 제약.

4. 쇄국정책

그리스도를 탄압하는 주요 결정들은 대략 1614~1615년 이루어졌고, 정치·경제·행정적 고려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런 고려들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무라이, 특히 그런 다이묘들이 그들의 도쿠가와 상급 영주에 대한 충성심 이상의 종교적 신앙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음.
-1614. 그리스도 교도 국외 추방: 전면적 박해의 신호탄, 막부 직할령 주민은 관할 사찰에 등록해야 하는 조치.(불교의 도구카와 국가 봉사)

-그리스도 교도 다이묘들의 지위 유지 위한 신앙 버림↔ 개종한 서민들의 인내
나가사키 주변 규슈 농촌지역서 대량 검거와 고문자행 (1637년 시마바라의 난)
일본을 ‘쇄국’으로 이끈 일련의 법령은 다이묘에 대한 정치적 통제가 점점 강화되었음을 나타낸다. (서남지역 다이묘 주인장 발급 제한, 대규모 선박 소유금지) 1633~1639년 5번의 주요 쇄국령이 공포되었다. 일본 내에서는 특정 정파에 의한 반란을 우려하여 19세기에도 사쓰마 번의 일향종을 근절하는데 신경을 썼다. 도쿠가와 막부의 박해에서 두드러진 점은 그 잔인함일 것이다. (3대 쇼군의 성격에서 기인)

5. 나가사키의 네덜란드인

영국인이 떠나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인이 일본에서 추방되자 네덜란드인은 자신들의 그리스도교는 경쟁자인 이베리아인의 그리스도교와 다름을 확신시키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데지마에서 네덜란드인은 매년 임대료 지불.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파견된 사람들은 상관장 지휘를 받음. 특히 통역자 집단 중요. 포르투갈어(17세기 중반까지 서구무역의 국제 공용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로 제한되자 네덜란드어 배울 필요성 생김. 약 20개 집안이 대대로 통역업무에 종사. 후계자 임명해 가업유지. 네덜란드인은 일본어 배울 생각 못하게 함.

물품대금으로 네덜란드인은 처음에는 은을, 17세기 중반 이후에는 구리를 받았다. 이후 1644년 만주족의 명조 정복으로 조선인 도공들이 빚어낸 일본의 청화백자가 무역의 주요 품목으로 등장. 데지마 상관장의 가장 중요한 공식 임무는 네덜란드 선박의 자바 출항 후 11월에 에도를 방문해 쇼군을 알현하는 일. 이 여행은 도쿠가와 시대에 총 116번 있었다.

-엥겔베르트 켐퍼(1651~1716): 1690년 의사로 옴. <일본사>(1727~1728). 칼페테르 툰베리 일본 식물표본 채집. 이자크 티칭 일본 체류. 네덜란드어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 높음.
무역량의 감소에도 불구, 데지마 상관이 계속 존재했던 이유는 데지마가 바타비아 상관의 연장선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속한 바타비아는 네덜란드에 계속해서 강대국의 지위를 부여해준 이익 많은 식민지였다. 일본 쪽에서는 네덜란드와의 접촉을 통해 외부 세계에 관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일본에 도착하는 선장들은 지난번 선박이 들어온 이후 유럽에서 발생한 사건들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6. 중국과의 관계

이에야스는 1609년 조선과 관계회복에 성공한 뒤 곧바로 명조와의 무역 재개를 위한 노력을 시도했다. 중국 상품, 특히 직물은 17세기 가장 중요한 수입품이었다. 도쿠가와 통치 초기 수십 년 간 중국인 거주자 수는 2천 명을 상회했다.
-1609년 사쓰마의 류큐 통제권 장악. 동시에 1611년, 1625년 막부는 푸젠 성 당국에 명조와의 직접 통상 재개 가능성을 타진하는 서한을 여러 차례 보냄.

일본의 ‘쇄국’은 서양세계를 주로 겨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네덜란드와의 무역은 아시아, 중국 상품을 거래하는 무역이었다. 적어도 도쿠가와 시대 후기 전까지는 네덜란드인과 중국인의 역할 및 대우에서 가장 큰 대조를 보인 부분은 문화적 역할이었다. (광대짓 조롱 ↔ 고급문화에 경의 표함) 사찰 건립. 중국인 승려들은 일본 중부의 우지에 선종인 임제종 계열의 황벽종을 개창하고 만푸쿠지를 창건했다. → 일본 엘리트층이 한 세기 이상동안 쇄국체제 통해 서양의 사상과 종교 차단 시도하는 동시에, 중국 문화 전통을 터득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 보여줌. 중국 숭배는 중국 상품, 조선 학자에 대한 존경으로도 연장.
‘쇄국’ 기간에도 일본의 국제무역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었다. 비단, 설탕, 약재 등 국내 생산을 장려하기 위해 막부는 열심히 노력했다.

7. ‘쇄국’이라는 문제

일본은 결코 완전히 ‘닫혀’ 있지는 않았다. 일본인의 세계는 정신적, 문화적, 기술적으로도 결코 폐쇄적이지 않았다. 도쿠가와 시대 전 기간에 걸쳐 중국인 학자·예술가·승려들이 나가사키에 왔다. 18세기 네덜란드인 역시 중국인과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네덜란드 서적들이 반대급부인 구리보다 더 중요해졌다. 반면 그리스도교에 대한 일본인의 극도의 의심은 결코 누그러지지 않았다. -1708년 조반니 바티스타 시도티 규슈 도착.

쇄국이 도쿠가와 전통의 일부가 되었고, 수입물품 비중이 줄어들었다. 서양세계가 가장 극적으로 변화한 것은 18~19세기 초 일이었다. 군사기술상 변화는 일본인의 무기와 무기소지자 중심의 계급구조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만들었다. 서양열강 간 상대적 지위도 급변. 초기 네덜란드는 유럽 강대국 중 하나였지만 19세기 작은 무역국가로 변함. 잘못된 선택을 했고, 그 결과 뒤쳐져버렸다는 느낌이 근대 일본인이 자신의 ‘닫힌’ 국가에 대해 많은 문헌을 남기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데 일조했다.

-와쓰지 데쓰로(1889~1960): 쇄국을 일본의 ‘비극’으로 묘사. 쇄국은 국가 통제하의 저돌적 근대화의 추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서양열강과 경쟁을 벌이고 그들을 능가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태평양전쟁의 결말을 맞게 되었다고 생각.
그러나 오늘날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에도 시대를 매우 다르게 조명. 쇄국체제 재평가. 쇄국을 자신과 자신의 경계를 정의하려는 근세국가의 정상적인, 적어도 이성적인 반응으로 보길 더 좋아한다.
전체 0

전체 210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사항
[새책 공지] 요나하 준, 『헤이세이사』 첫 세미나 참가자 모집! ― 12월 09일 토요일 오전 10:00 시작!
deepeye | 2023.11.18 | 추천 0 | 조회 1042
deepeye 2023.11.18 0 1042
공지사항
세미나 홍보 요청 양식
다중지성의정원 | 2022.01.11 | 추천 0 | 조회 1577
다중지성의정원 2022.01.11 0 1577
공지사항
다중지성 연구정원 세미나 회원님들께 요청드립니다.
다중지성의정원 | 2019.11.03 | 추천 0 | 조회 2719
다중지성의정원 2019.11.03 0 2719
공지사항
[꼭 읽어주세요!] 강의실/세미나실에서 식음료를 드시는 경우
ludante | 2019.02.10 | 추천 0 | 조회 3222
ludante 2019.02.10 0 3222
공지사항
세미나를 순연하실 경우 게시판에 공지를 올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ludante | 2019.01.27 | 추천 0 | 조회 2944
ludante 2019.01.27 0 2944
145
『현대일본을 찾아서 1』 10장 '막부의 멸망' 부분 발제문
deepeye | 2022.08.06 | 추천 0 | 조회 347
deepeye 2022.08.06 0 347
144
[공지] 08/06 『현대일본을 찾아서 1』 다섯 번째 시간 공지
deepeye | 2022.07.30 | 추천 0 | 조회 297
deepeye 2022.07.30 0 297
143
『현대일본을 찾아서 1』 8장. 변화·저항·개혁 발제문
deepeye | 2022.07.30 | 추천 0 | 조회 306
deepeye 2022.07.30 0 306
142
『현대일본을 찾아서 1』 7장. 교육·사상·종교 발제문
jesbest | 2022.07.30 | 추천 0 | 조회 316
jesbest 2022.07.30 0 316
141
『현대일본을 찾아서 1』 5장 '도시화와 교통' 발제문
sook | 2022.07.16 | 추천 0 | 조회 347
sook 2022.07.16 0 347
140
[공지] 7/30 『현대일본을 찾아서 1』 네 번째 시간 공지
jesbest | 2022.07.16 | 추천 0 | 조회 228
jesbest 2022.07.16 0 228
139
『현대일본을 찾아서 1』 3장 '대외관계' 발제문
jesbest | 2022.07.16 | 추천 0 | 조회 277
jesbest 2022.07.16 0 277
138
『현대일본을 찾아서 1』 6장 '서민문화의 발견' 발제문
deepeye | 2022.07.14 | 추천 0 | 조회 380
deepeye 2022.07.14 0 380
137
[공지] 07/16 『현대일본을 찾아서 1』 세번째 시간 공지
sook | 2022.07.11 | 추천 0 | 조회 277
sook 2022.07.11 0 277
136
[공지] 07/09 『현대일본을 찾아서 1』 두 번째 시간 공지
deepeye | 2022.07.05 | 추천 0 | 조회 237
deepeye 2022.07.05 0 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