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

작성자
點心
작성일
2020-05-08 02:11
조회
124
우리 부부는 인제는 굶을 도리밖에 없었다.
잡힐 것은 다 잡혀먹고 더 잡힐 것조차 없었다.
"아, 여보! 어디 좀 나가 봐요!”
안해는 굶었건만 그래도 여자가 특유한 뾰루퉁한 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
나는 다만 말없이 앉아 있었다. 아내는 말없이 앉아 눈만 껌벅이며 한숨만 쉬는 나를 이윽히 바라보더니 말할 나위도 없다는 듯이 얼굴을 돌리고 또 눈물을 짜내기 시작한다. 나는 아닌게 아니라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별 수 없었다.
둘 사이에는 다시 침묵이 흘렀다.
“아 여보 좋은 수가 생겼소!”
얼마 동안 말없이 앉아 있다가 나는 문득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뭐요? 좋은 수? 무슨 좋은 수요?”
돌아앉아 있던 안해는 좋은 수란 말에 귀가 띄었는지 나를 돌아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아니 저 우리 결혼할 때 …… 그 은 술가락 말이오.”
“아니 여보 그래 그것마져 잡혀먹자는 말이오!”
내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안해는 다시 표독스러운 소리로 또 다시 나를 흘겨본다.
사실 그 술가락을 잡히기도 어려웠다. 우리가 결혼할 때 저 먼 외국 가 있는 내 안해의 아버지로부터 선물로 온 것이다. 그리고 그 때 그 술가락과 함께 써 보냈던 글을 나는 생각하여 보았다.
“너희들의 결혼을 축하한다. 머리가 희도록 잘 지내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이 술가락을 선물로 보낸다. 이것을 보내는 뜻은 너희가 가정을 이룬 뒤에 이 술로 쌀죽이라도 떠먹으며 굶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이 술에 쌀죽도 띄우지 않으면 내가 이것을 보내는 뜻은 이글어 지고만다.”
대게 이러한 뜻이었다.
그러나 지금 쌀죽도 먹지 못하고 이 술가락마져 잡혀야만 할 나의 신세를 생각할 때 하염없이 눈물이 흐를 뿐이다 마는 굶은 나는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없이
“여보 어찌하겠소. 할 수 있소.”
나는 다시 무거운 입을 열고 힘없는 말로 안해를 다시 달래보았다. 안해의 뺨으로 눈물이 굴러 떨어지고 있다.
“굶으면 굶었지 그것은 못해요.”
안해는 목매인 소리로 말한다.
“아니 그래 어쩌겠소. 곧 찾아 내오면 그만이 아니오!”
나는 다시 안해의 동정을 살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 (조판 과정에서 문장이 빠진 듯하다) …… 말없이 풀이 죽어 앉아 있다. 이에 힘을 얻은 나는 다시
“여보 갖다 잡히기오. 빨리 찾아 내오면 되지 않겠소.”
라고 말하였다.
“글쎄 맘대로 하세요.”
안해는 할 수 없다는 듯이 힘없이 말하나 뺨으로 눈물이 더욱더 흘러내려오고 있다.
사실 우리의 전재산인 술가락을 잡히기에는 뼈가 아팠다.
그것이 은수저라 해서보다는 우리의 결혼을 심축하면서 멀리 XX로 망명한 안해의 아버지가 남긴 오직 한 예물이었기 때문이다.
“자 이건 자네 것, 이건 자네 아내 것. ㅡ 세상 없어도 이것을 없애선 안 되네.”
이렇게 쓰였던 그 편지의 말이 오히려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런 술가락이건만 내 것만은 잡힌지가 벌써 여러 달이다. 술취 뒤에는 축(祝) 자를 좀 크게 쓰고 그 아래는 나와 안해의 이름과 결혼이라고 해서로 똑똑히 쓰여 있다.
나는 그것을 잡혀 쌀, 나무, 고기, 반찬거리를 사들고 집에 돌아왔다.
안해는 말없이 쌀을 받어 밥을 짓기 시작한다. 밥은 가마에서 소리를 내며 끓고 있다. 구수한 밥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위가 꿈틀거림을 느끼며 침을 삼켰다.
밥이 다 되었다. 김이 뭉게뭉게 떠오르는 밥을 가운데 놓고 우리 두 부부는 마주 앉았다.
밥을 막 먹으려던 안해는 나를 똑바로 쏘아본다.
"자, 먹읍시다."
미안해서 이렇게 권해도 안해는 못 들은 채 하고는 나를 쏘아본다. 급기야 두 줄기 눈물이 안해의 볼을 흘러내리었다. 왜 저러고 있을꼬? 생각하던 나는 "앗"하고 외면하였다.
밥 먹는데 무엇보다도 필요한 안해의 술가락이 없음을 그때서야 깨달았던 까닭이다.

ㅡ 송몽규 소설 <술가락>(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1935년 1월 1일 게재)

송몽규는 신춘문예 응모 작품을 준비하면서 자기의 호를 ‘文海’라고 짓는다. ‘文海藏書’라고 새긴 네모난 도장을 만들어 책을 분류하고 정리할 때 사용한다.

윤동주 시인의 유품들 가운데 ‘文海藏書’라는 도장이 찍한 [철학사전]이 지금도 남아 있다(윤동주 평전. 송우혜 지음. 2017년)고 한다.

그는 '글의 바다’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끄집어올리고 있는가? 이 질문의 대답은 소설 <술가락>에 있다.

소설 <술가락>은 한 편의 기적이다.

왜냐하면, 소설 <술가락>은 <운수 좋은 날>(현진건)이나 <감자>(김동인)와 다르게, 상호 존중과 환대의 시간과 공간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굶다가 못해서 전재산을 전당포에 잡히러 갈 때 가더라도 할말은 하는,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대화의 행간에 신뢰가 묻어난다. 상호 존중은 상대가 싫다고 거절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포기할 마음을 먹을 때 가능하다. 이런 존중과 환대의 시간과 공간은 <운수 좋은 날>처럼 사람이 사람을 무시 • 멸시하며 모멸감을 주고 폭행하는 행동들과 결이 사뭇 다르다.

일제 강점기 • 미군정기 • 군부 독재의 시간을 관통하고 현재 진행형의 권위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사회의 가부장제 성폭력 시스템에 기생하는 남성 지배의 어둠은 소설 <술가락>에 끼어들 틈이 없다.

재치있는 반전으로 소설 읽기의 맛을 내는 솜씨도 일품이고, 치밀하게 계산한 구성으로, 작품에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서 '지금 여기와 다른' 세계를 독자가 상상하게 하는 내공은 무릎을 탁 치게 한다.

빙산의 작은 일각을 보여 주면서 (무대에서 지금 안 보이는) 바다 밑의 빙산을 독자가 꿈꾸게 하는 '기적'을 빚어낸다.

독자의 눈길은, 소설에 드러난 일상(허구)보다 소설에 안 드러난 실체(진실)에 이끌린다.

이런 보물선을 '글의 바다'에서 인양하여 17살에 혜성 같이 등장한 송몽규는 '10대 등단' 문인이고 최연소 소설가다.

송몽규 외에도 10대에 등단한 작가들이 없지는 않다.

김소월 : 1920년 창조 (시). 18살.
임화 : 1926년 매일신보 (시). 19살.
백석 :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소설). 17살.
오장환 : 1933년 조선문학 (시). 15살.
곽신하 : 193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소설). 17살.
황석영 : 사상계 신인문학상(소설). 고3.
최인호 : 한국일보 신춘문예(소설). 고2.
홍지현 :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희곡). 19살.
이슬 : 2017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시). 17살. 고2.

해마다 전국의 신문사들이 신춘문예 당선 작품을 발표한다. 새해 첫날 100여 명의 신인 작가(소설가, 시인, 아동문학 작가 등)들이 등단하고 있다. 바야흐로 ‘신춘문예 등단 작가 boom’의 시절인 것 같다.

한편, 신춘문예 당선작을 발표한 그해(1935년) 3월에 송몽규는, 소설 <술가락>을 쓰며 인지한 진실을 찾아 집을 나선다. 혁명의 그 길에서 송몽규(26살)는 1943년 7월 10일에 경찰에게 피체된다.

1943년 12월 6일 : 검사국 송국.
1944년 2월 22일 : 기소.

송몽규와 윤동주를, 검사가 기소한 같은 날에, 이탈리아의 파르티지아노 '프리모 레비'(24살)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가는 '한번 타면 결코 되돌아올 수 없다'는 기차를 탄다.

포로생활 첫 며칠 동안 숟가락이 없다는 사실은 무력감과 박탈감을 불러일으켰다. 어릴 적부터 여러 개의 수저들(아무리 가난한 집의 부엌이라도 수저는 있다)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이것이 하찮게 보일 수도 있는 작은 세부사항이지만, 결코 하찮지 않은 문제였다. 숟가락 없이는 매일 죽을 개처럼 핥지 않고는 먹을 수가 없었다. 오랜 견습 기간(여기서도 곧바로 이해하고 자신의 말을 이해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던가!)이 지난 뒤에야, 수용소에 물론 숟가락은 있지만 암시장에서 죽이나 빵을 주고 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숟가락 한 개의 값은 보통 빵 반 개나 죽 1리터였지만 새로 들어온 물정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훨씬 더 많은 양을 요구했다. 그런데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해방되었을 때 우리는 창고에서, 막 도착한 강제 이송자들의 짐꾸러미에서 나온 알루미늄, 강철, 심지어 은으로 된 숟가락 수만 개 외에도, 완전히 새것인 투명 플라스틱 숟가락 수천 개를 발견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근검절약의 문제가 아니라 굴욕감을 주려는 정확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ㅡ 프리모 레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돌베개.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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